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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27화 (114/359)

127화 사천살문-1

사천(四川)성 제일의 살수문파라고 자부하는 사천(死川)살문의 특급 살수, 칠살 중 삼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석질이 의뢰를 들은 것은 정오쯤이었다.

“대상이… 비천흑랑 선우진이라고?”

그의 질문에 사천살문에서 온 전달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귀주 선우세가의 삼남으로 선우세가의 수치이자 무인보단 돼지에 가깝다는 소문이 있었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올 초 비룡대에 들어간 후 얼마 전 귀주팔세의 하나인 흑상방의 절정 고수 흑살표 동패경을 죽이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는 젊은 고수입니다.”

그 말에 전석질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절정 고수를 죽였어? 설마 선우진 그자도 절정 고수라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게… 맞습니다. 의뢰인의 정보에 따르면 최소 내공 칠십 년 이상의 절정 고수로 추정된답니다.”

그러자 순간 전석질의 눈이 독사같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돌변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내공 칠십 년 이상의 절정 고수인데 그런 놈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아들였단 말이지?”

전석질의 눈빛이 점차 유리알처럼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채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치 인형의 눈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전달자는 알고 있었다.

외부로 방출되는 살기도,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도 하나 보이지 않는 저 모습이 바로 전석질이 사람을 죽이기 직전의 모습이라는 걸.

전달자는 다급하게 고개를 푹 숙이며 급히 소리쳤다.

전석질이 저런 반응을 보일 것을 예상했기에 할 수 있었던 빠른 대처였다.

“문주님의 지시셨습니다! 오살과 육살을 붙여 주고, 인원도 얼마든지 써도 되니 일단 한번 해 보라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의뢰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 역부족이라면 몸을 피하는 것도 허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칠살도 부르시겠다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전석질의 눈에는 다시 감정이 돌아왔다.

그 감정의 색깔은 흥미로움이었다.

“흐음, 인원 제한도 없고 오살과 육살을 붙여 주겠다. 모자라면 칠살까지? 문주가 급하긴 했나 보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전석질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전달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석질이 문득 다시 물었다.

“그래서 목표의 위치와 실행 장소는?”

그러자 전달자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오전에 성도의 사천당문에서 출발해 귀주성 귀양의 선우세가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신법의 고수라고 하니 내일 오전에는 이곳을 지나지 않을까 예상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혹시 그보다 빠를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시라는 전언이셨습니다.”

그의 말에 전석질이 알겠다는 듯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면 보고하도록.”

하지만 전석질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른 시간이었다.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전달자는 다시 그를 향해 황급히 뛰어와 소리쳤다.

“당장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조들이 놈의 행적을 놓쳤답니다! 너무 속도가 빨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아무래도 놈이 습격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신속하게 이동 중인 것 같답니다! 그래서 그 속도를 유지한다면 오늘 저녁 안엔 이 지역을 통과할 거라는 전언이셨습니다!”

그 말에 전석질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뭐? 반나절 만에 성도에서 이곳 내강까지 온다고? 무슨 하늘을 나는 새라도 된다는 얘기냐? 게다가 온다는 것도 아니고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정확한 위치도 파악이 안 된다는 건데 그럼 대체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냐? 점쟁이한테 점이라도 쳐서 찾아내란 얘기냐?”

그러자 전달자가 우물쭈물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것이… 실패해도 탓하지 않을 테니 최선을 다해 달라고만….”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은 전석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놈을 찾을 수 없다. 그럼… 직접 찾아오게 만들 수밖에 없겠군. 놈이 협객이라고 했으니 그 부분을 노리는 수밖에.’

마음의 결정을 내린 전석질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인원을 모아라. 최대한 많이. 그리고 오살, 육살을 준비시켜.”

“예! 알겠습니다!”

***

전석질이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무고한 자들을 습격하는 것이었다.

선우진이라는 자가 성도에서 귀양을 향해 최단 거리로 달리고 있다면 반드시 관도를 지날 것이고, 협객이라고 했으니 관도를 지나는 자들을 습격하다 보면 끼어들지 않겠냐는 것이 전석질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선우진이란 자가 관도가 아닌 다른 길로 간다든가, 무고한 자들이 습격받는 것을 보고도 굳이 상관하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긴 했다.

전석질은 물론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협객이라는 놈들은 대부분 위선자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하고도 놈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땐 정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전석질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전석질은 오늘 저녁, 사천살문의 살수들로 하여금 벌써 세 번째 상단을 습격하게 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지금 관도는 온통 피비린내와 비명 소리로 진동하고 있었다.

“아아악! 내 팔! 사, 살려 주시오, 제발!”

“으아아악! 내 눈! 내 눈!”

“아, 안 돼! 물건은 모두 드리겠소! 제발 목숨만!”

“제 딸은 아직 어린아이요! 이 아이만이라도 제발!”

푸화악!

“아아악!”

“안 돼! 얘야!”

“살려 줘!”

복면을 쓴 사십여 명의 살수들에게 습격당한 상단은 온통 고통스러운 비명과 살려 달라고 사정하는 목소리들로 가득했다.

최대한 잔인하게, 그리고 천천히 사람들을 죽이라는 전석질의 지시 때문이었다.

살수들은 그의 지시대로 상단 사람들의 팔다리, 눈, 코, 입을 하나씩 잘라 가며 천천히 괴롭혔고, 사람들은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며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죽어 갔다.

하지만 그들을 죽이는 살수들의 눈빛은 그저 반복된 업무를 처리하듯 무감정할 뿐이었다.

전석질은 한쪽 구석에 은신한 채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상단도 거의 정리됐군.’

상단의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숨을 거둔 상태였다.

아무래도 이제 또 다른 목표물을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이번 습격도 무의미한 학살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딱히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혹시나 싶어 일찍 시작했을 뿐, 벌써 선우진이란 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이곳에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사람이 아니라 새라고 할 수 있겠지.’

전석질의 예상으론 빨라야 오늘 밤, 늦으면 내일 오전에나 지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이런 짓을 오늘 밤 내내, 심하면 내일 오전까지도 계속해야 한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무고한 사람들을 이렇게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 일들을 말이다.

그 사실이 지긋지긋할 만도 하건만, 전석질은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인내는 살수들이 가장 먼저 익혀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

일반 살수도 아닌 사천살문의 삼인자인 삼살 전석질이 그런 것에 약간의 감정이라도 소모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전혀 짜증 내는 기색 없이 상단 사람들이 완전히 전멸당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멈춰라!”

어디선가 울려 퍼진 청명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유성처럼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빛살과 같은 속도, 신법에 웬만큼 자신이 있다는 전석질로서도 처음 보는 놀라운 신법이었다.

그로선 상대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슈하악!

‘!’

전석질이 그의 등장을 인식한 순간, 그는 이미 빛줄기가 되어 십여 명의 살수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잔상만 남은 연보랏빛 검광이 그의 뒤로 유성처럼 꼬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자 한 박자 늦게 살수들의 몸에서 터지듯 피가 뿜어져 나왔다.

푸화악!

마치 일부러 짠 듯 동시에 붉은 핏줄기가 분수처럼 공중으로 뿜어지는 모습, 그것은 장관이기까지 했다.

꿀꺽!

전석질은 은신한 채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그의 살수 인생 중 여태껏 저렇게 빠른 검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게… 가능한가?’

믿을 수가 없었다.

전석질이 데리고 온 일반 살수들은 모두 사십여 명, 그중 절반이 벌써 고혼이 된 상태였다.

저 검사가 나타났다는 걸 인식하고 고작 호흡 몇 번 한 사이에 말이다.

환상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연보랏빛 검광에, 살수들은 누구 하나 반격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살수 한 명이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한꺼번에 덮쳐라!”

현장에 있는 살수 중에선 그나마 가장 지위가 높은 살수였다.

그러자 그의 명령에 남아 있던 모든 살수들이 한꺼번에 남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사방팔방에서 인의 장막처럼 그를 둘러싼 모습이었다.

쉬이익!

샤아악!

아무런 기합도 없는 이십 개의 검광이 사방에서 그를 찔러 갔다.

그러자 전석질은 분명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아마도 선우진일 젊은 검사가 그 자리에 멈춘 채 빙긋이 웃음 짓는 것을.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독순술을 익혔기에 입술 모양으로 말을 읽을 수 있는 전석질은 그가 한 말을 속으로 되뇔 수 있었다.

‘공즉시색?’

다음 순간.

화아아악!

그를 중심으로 수십, 수백 개의 검이 환상처럼 분열해 사방으로 쏘아졌다.

마치 온 천하에 연보라색 빛을 뿜어내는 태양이 나타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푸화아아악!

단 한 순간이었다.

그를 덮쳐가던 살수들이 모두 피투성이가 된 채 절명해 그 자리에 떨어졌다.

아무런 비명도, 심지어 검이 부딪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던 조용한 학살이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전석질은 입을 떡 벌린 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선우진은 어느새 지시를 내렸던 살수의 앞에 서 있었다.

그가 경악한 표정의 살수를 향해 물었다.

“물건을 약탈하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식의 학살이라니. 뭐 하는 놈들이냐, 너희는?”

그러자 퍼뜩 정신을 차린 살수가 이를 악물고는 선우진을 향해 물었다.

“네놈이 선우진이냐?”

그 말에 선우진의 눈이 꿈틀했다.

“…날 노린 행동이란 말이냐, 이게?”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놈은 선우진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번개같이 달려들며 검을 내리쳤을 뿐이었다.

쉬이익!

“!”

아니, 내리치려고 시도했었다.

다만 검이 내려오기도 전에 팔을 잘렸을 뿐.

푸화악!

머리 위로 들어 올렸던 살수의 팔을 간단히 베어 버린 선우진이 그를 바로 점혈하고는 다시 물었다.

타닥!

“다시 묻겠다. 누구냐, 너희는?”

그러자 살수는 잘린 자신의 팔로 뿜어져 나오는 피를 힐끗 보고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크윽, 흐흐흐, 글쎄, 내가 그걸 말해 줄 이유가 있을까?”

양팔을 잘리고 점혈 당했음에도 살수의 눈빛은 전혀 포기한 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함정으로 잘 걸어 들어오고 있다는 듯 득의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득의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던 것은 은신한 채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전석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우진이라는 자는 놀라운 고수이긴 하지만 역시 젊은 나이인 만큼 아직 경험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살수에게 저렇게 시간을 주다니 말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전석질의 눈에 육살 도단무가 습격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전석질이 속으로 외쳤다.

‘가라, 육살!’

사천살문의 칠살 중 육살인 도단무는 희귀병에 의해 몸이 자라지 않는 난쟁이였다.

그런 그의 암살 특기는 어린아이인 척 연기하는 것과 타인의 몸 뒤에 자신을 감추는 은신술이었다.

그래서 지금 도단무는 선우진의 앞에 서 있는 살수의 등에 딱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어린아이의 체격인 도단무이기에 앞에서 보면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죽였다면 모를까 그를 살려 두고 대화를 시도한 순간부터 선우진은 육살이 쳐 놓은 덫에 걸린 것과 다름없었다.

육살이 살수의 등에 암기통을 갖다 대고 쏘아 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살수가 다시 선우진에게 물었다.

“으흐흐, 말해 보시지? 내가 그걸 말해 주면 나를 살려 줄 테냐? 그렇지 않다면 굳이 얘기해 줄 이유가….”

그렇게 말하며 음흉하게 웃음 지은 살수는 몰래 입속에 있는 독주머니를 깨물었다.

그러자 확 퍼져 가는 비릿한 액체, 다음 말을 할 때 살수는 그것을 선우진에게 뿜을 생각이었다.

‘아혈을 점하지 않은 네놈의 실수다.’

물론 그 정도로 고수인 선우진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걸 뿜으며 상대의 주의를 돌릴 때 육살인 도단무가 자신의 뒤에서 놈을 습격할 것이니까.

놈은 결코 그 습격을 눈치챌 수 없을 것이었다.

살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선우진의 틈을 노리고 있을 때였다.

문득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 그럼 네 뒤에 있는 놈에게 물으면 되나?”

“!”

그 순간 살수는 선우진이 육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독을 뿜으려 할 때였다.

더 반응이 빨랐던 육살이 먼저 암기통을 발사했다.

푸슉!

“컥!”

살수는 자신의 심장을 관통해 날아가는 암기의 고통에 독을 제대로 뿜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검은 액체를 입으로 질질 흘리며 흐려지는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자신의 가슴을 뚫고 빛살처럼 날아간 암기를 선우진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흘려 버리는 것을.

그리고 그대로 검을 찔러 자신의 가슴을 꿰뚫어 버리는 것을 말이다.

푸욱!

“!”

살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파르르한 떨림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뚫은 검이 육살마저 꿰뚫어 버린 모양이었다.

결국 저 선우진이란 자는 처음부터 자신들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실패였다.

전석질은 그 상황을 지켜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육살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보기엔 완벽한 상황이었는데.

과연 내공 칠십 년 이상의 절정 고수는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전석질은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 오살과 자신이 남아 있었으니까.

아무리 고수라 해도 변장과 독에 능한 오살이라면 분명 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별로 마음에 드는 놈은 아니지만 오살은 벌써 열 명이 넘는 절정고수들을 처리한 전적이 있지. 아직 경험이 모자랄 젊은 놈이니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선우진은 일단 눈에 보이는 살수들을 모두 처리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내의 상황은 끔찍했다.

상단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당했거나 사지가 잘린 채 죽어 가고 있었다.

“으으으.”

“사, 살려 줘.”

“으흐흐흐흑!”

사방이 신음 소리였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니 새삼 이가 갈렸다.

선우진은 장내를 꼼꼼히 살펴봤지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대다수가 오히려 지금 숨을 끊어 고통을 덜어 줘야 하는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사혈을 눌러 숨을 끊어 주고는 살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한쪽에 모으고 있을 때였다.

문득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젊은이, 나 좀 살려 주게.”

거의 죽어 가는 듯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선우진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운반하던 짐마차가 부서져 짐이 무너진 곳에 노인 한 분이 깔려 있었다.

짐에 몸이 가려져 오히려 운 좋게 살수들에게 당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그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오살 냉지단은 짐에 깔려 죽어 가는 표정을 한 채 다가오는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죽을 자리인 줄도 모르고 놈이 서둘러 자신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속으로 웃음 지었다.

‘으흐흐흐, 어서 오너라.’

오살 냉지단의 특기는 변장과 독술이었다.

어려서부터 은신이나 암기술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그는 노인이나 여자로 변장한 후 목표물의 근처에 접근해 독으로 암살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해 왔었다.

그래서 그는 상단을 습격하자마자 일부러 짐마차를 무너뜨리고 짐 속에 깔려 대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혹시 선우진이 다가온다면 상단 사람인 척 놈을 암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이제 막 결실을 맞이하려는 참이었다.

‘자아, 어서 오너라.’

냉지단은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오독문의 무취독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당문의 무형독처럼 완벽한 무색무취는 아니지만 거의 냄새가 나지 않고 색도 흙색이라 흙먼지와 잘 구분이 가지 않는 극상의 독.

냉지단은 선우진이 상자를 치울 때 그 독을 몰래 뿌릴 생각이었다.

상자를 치우며 나는 흙먼지와 섞인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드디어 이 비싼 놈을 사용해 보는군. 잘 가라, 어린 절정고수 놈아.’

선우진은 서둘러 다가와 냉지단의 위를 덮고 있는 짐들을 치웠다.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그사이 이미 해약을 먹었던 냉지단은 공기 중으로 무취독을 살포했다.

흙먼지 사이로 흙색의 무취독이 서서히 퍼져 선우진의 코로 들어가는 것이 냉지단의 눈에는 보이고 있었다.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됐군! 끝이다!’

냉지단은 이제 죽어 가는 노인처럼 아주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도주할 준비를 했다.

자신이 중독됐다는 것을 깨달은 선우진이 공격하기 전에 달아나야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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