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사천살문-2
그때였다.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무척 귀한 독을 쓰시는 모양입니다, 어르신?”
그 말에 경악한 오살 냉지단이 선우진을 바라봤다.
“…뭐?!”
그러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그 혀에는 신비한 오색 빛깔의 구슬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그걸 본 냉지단이 경악해 소리쳤다.
“피. 피독주?”
그것은 분명 독을 막아 주는 피독주였다.
그것도 오색의 피독주라면 부식독을 제외한 대부분의 독을 막아 준다는 극상품의….
다음 순간 선우진의 검이 빛살로 화했다.
휘리릭!
“크으윽!”
순식간에 냉지단의 손발이 모두 잘려 나갔다.
그러자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에게 선우진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호오, 이제야 말이 좀 통할 것 같은 놈을 찾아냈군.”
그는 죽어 가면서도 두려운 눈빛도, 신음 소리도 흘리지 않았던 다른 살수들과는 좀 달랐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두려움도 감추지 못하는 인간미를 지닌 살수, 아무래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보면 많은 것들을 얘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득의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우리 오래 대화를 나눠 보자고.”
그 모습을 구석에서 은신한 채 지켜보고 있던 삼살 전석질은 헛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강한 자가 피독주까지 지니고 있었다니.
그것도 오색 빛깔의 피독주라면 당문의 고위 간부들이나 지니고 있다는 극상품의 피독주가 아닌가.
아무래도 무리였다.
지금은 선우진을 습격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삼살 전석질, 자신의 은신술이 육살 도단무보다야 훨씬 뛰어나지만, 이미 저렇게까지 대비하고 있는 상대를 노리는 건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석질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칠살 그 건방진 놈과 힘을 합쳐야겠군.’
칠살은 고작 이십 대의 애송이 주제에 삼살인 자신조차 이긴다고 자신할 수 없을 만큼의 은신술과 암기술을 익혀 낸 천재였다.
그러니 그와 힘을 합친다면 다시 한번 기회를 노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전석질은 일단 선우진이 이곳의 뒷수습을 하고 있는 사이 먼저 빠져나가기로 했다.
그래야 미리 가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전석질이 은신한 채 천천히 후방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선우진이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벌써 포기한 거야? 다음은 뭘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딜 가시려고?”
그 목소리를 들은 전석질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이미 자신의 존재까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파박!
전석질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최대한 빨리 도주해야만 했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으니 자신의 신법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뒤를 돌아봤던 전석질은 경악하고 말았다.
선우진의 신형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신법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속도였다.
전석질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이대로 도주하는 것은 어차피 실패였다.
할 수 있는 모든 발악이라도 해 봐야 했다.
“하아압!”
퓨슈슈슉!
살수인 그가 기합을 지를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암기를 뿌렸다.
암기술이 특기인 그의 비장의 암기들을 모두 한꺼번에 뿌린 것이었다.
온 공간을 가득 채운 암기의 비가 마치 사천당문의 만천화우처럼 흩뿌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암기의 빗속에서도 선우진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화아아악!
선우진의 검이 환상처럼 분열하며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마치 연보라색의 투명한 막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막에 닿은 암기들이 무력하게 튕겨 나갔다.
티티티티팅!
그러자 경악한 표정이 된 전석질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거, 검막?”
그 순간 모든 암기를 쳐낸 선우진은 이미 그의 지근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전석질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이젠 다 포기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다 포기하는 듯하던 그의 표정에 선우진의 검이 그를 바로 베지 않고 생포할 듯 잠시 느려진 순간, 그의 눈빛이 돌변했다.
포기한 표정조차도 속임수였던 것이다.
“퉷!”
전석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 냈다.
쉬익!
그의 마지막 비기, 입으로 뱉어 내는 설침이었다.
마치 완전히 끝난 듯한 상황이었기에 더 치명적인 한 수였다.
아주 작고 가느다란 세침이 선우진의 이마를 향해 쏘아졌다.
전석질은 사납게 웃음 지으며 생각했다.
아무리 고수라도 이렇게 지근거리에선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선우진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사뿐히 움직여 침을 흘려 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굳어진 그의 목으로 빛줄기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샤악!
“어떻… 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전석질의 목에서 붉은 실선이 생겨났다.
그러곤 천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푸화악!
그의 목이 떨어지며 뒤늦게 피가 뿜어져 나왔을 때, 선우진은 이미 잡아 놓은 노인 쪽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정보를 얻을 자를 잡아 놨으니 다른 놈은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차피 뭘 말할 것 같은 자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노인의 앞에 선 선우진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노인으로 변장했던 살수는 입에서 피를 흘린 채 이미 죽어 있었다.
아마 독단을 물고 자결했던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결국 어떤 놈들인지 못 알아냈군. 분명 꽤 유명한 살수 조직일 텐데.”
무척 아쉬웠다.
정체를 알아냈다면 역공을 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상관없는 자도 처참하게 학살할 수 있는 잔인성,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암살을 수행하려는 독기, 다양한 암살 방법까지, 대단히 체계화된 살수들이었다.
게다가 분명 습격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신속하게 이동했음에도 먼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무척 넓은 세력을 지닌 자들임에 틀림없었다.
아마도 습격이 이 정도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선우진은 바로 마음을 털어 냈다.
이미 불가능해진 일에 미련을 가져 봐야 소용없었으니까.
게다가 위안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설풍 조장에게서 배운 심안과 선우세가의 서재에서 배워 놓은 천살비기 덕분에 살수들의 습격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다른 무인들이었다면 치명적이었을 그들의 습격이, 선우진에게 있어선 정면 대결을 위주로 하는 무인들보다 더 상대하기 쉬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피독주까지 있으니.”
선우진은 입에서 피독주를 꺼내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문득 이것을 준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피독주를 그에게 준 사람은 바로 당여은이었다.
광검의 밑에서 월하환검무를 배우고 있을 때, 당여은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으면서도 선우진이 겪었던 일에 대해선 계속해서 묻곤 했었다.
실력이 더 떨어지는 자신이 어떻게 선우진을 죽일 수 있었을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선우진은 자신이 그녀의 완맥을 그냥 놔줬던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제압했을 때 무형독에 당했었다는 이야기까지는 해 줬었다.
그러자 당여은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이 갖고 있던 피독주를 선우진에게 넘겨줬었다.
자신이야 당문으로 돌아가면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선우진에게도 독에 대비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면서였다.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선우진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당문의 자제들이 제일 먼저 교육받는 것 중 하나가 전투를 벌이기 전에 반드시 이 피독주를 입에 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당문의 싸움엔 절대 독이 빠질 수 없거든요. 처음엔 불편하겠지만 진도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해요. 이 작은 차이로 목숨을 구할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죠? 꼭 약속해 줘요.’
그녀의 강권에 선우진은 할 수 없이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 주고 말았었다.
그리고 결국 그 약속 덕분에 간단히 이번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말이다.
문득 당여은의 햇살같이 환한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같은 시각, 당여은은 자신의 방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선우진이 했던 말들이 계속해서 떠돌고 있었다.
‘잊지 말아요.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난 여은을 믿어요.’
당여은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백 번을 생각해도 그의 말이 맞았다.
이대로 주변에 끌려다니기만 하며 타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것이 설사 당가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인 가주, 아버지의 명령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자신이 정말 정략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선우진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자신을 믿어 주었던 그의 앞에 당당히 서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내가 뭘 할 수 있지?’
당가에서 가주의 명은 절대적이고 지엄한 것이었고, 자신 정도의 비중 없는 직계 혈손이 정략결혼의 수단으로 쓰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이건 당가인 모두의 상식을 깨부숴야만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막막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무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다시 절망의 빛으로 마음을 채색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여은은 곧 다시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자신을 좀먹으려는 절망감을 떨쳐 냈다.
‘아니야. 방법은 분명히 있어. 내가 아직 모를 뿐이야. 그가 했던 말들을 생각해 봐. 어떤 상황에서든 해결 방법이 없는 일 따위는 없어.’
그리고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가능한 방법을.
‘가주님께 가서 못 하겠다고 말하는 건 안 돼.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억압하려 하실 거야. 이 당가 내에서 누군가가 가주님의 권위를 따르지 않는 것을 용납지 않으실 테니까. 아무도 가주님의 뜻을 거부할 수는….’
거기까지 생각하던 당여은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당가 내에 있지만 가주의 권위를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을….
그런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긴 했던 것이다.
당여은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마리를 생각해 낸 그녀의 눈빛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당여은이 떠올린 첫 번째 사람의 이름은 바로 당무광이었다.
그는 전대 가주이자 당여은의 조부인 전대 독암지존 당무정의 이복형제였다.
그리고 그는 달리 천하 오괴의 일인인 괴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사천당문의 최강자인 괴독 당무광 말이다.
당문의 누구도, 현 가주인 당정후는 물론 심지어 태상가주인 당무정조차도 그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었다.
그는 독에 미친 괴인이자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말도 섞지 않는 독불장군이었으니까.
그를 떠올리는 당여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니까 만약 그분께서 나서만 주신다면 내 정략결혼 따위는 순식간에 없었던 걸로 만들어 주실 수 있을 테지.’
그랬다.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괴독 당무광이 한번 뜻을 정한다면 현 가주인 당정후는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었다.
괴독 당무광과 당여은 자신 사이에 접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찾아가 정략결혼을 막아 달라고 부탁할 만한 핑계나 대가가 당여은 자신에겐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를 설득할 만한 무엇이 없다면 태상가주의 말도 우습게 여기는 그가 당여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당여은은 처음부터 어차피 그에게 찾아갈 생각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분이 지금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니까.’
당여은은 머릿속으로 바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인물을 떠올리고 있었다. 당가에서 당정후의 의지를 거역할 수 있을 만큼의 위명을 지닌….
그녀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분들이라면 충분히 협상할 만한 여지가 있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당여은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문밖으로 나갔다.
가능성을 본 이상 조금도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아니, 최대한 빨리 서두를수록 좋을 것이었다.
선우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당정후의 말도 거짓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당여은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이런 진취적인 행동력은 선우진과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그녀가 단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드디어 알을 깨고 자신의 발로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
당여은이 향한 곳은 사천당문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숲이었다.
그리고 그 숲을 당가인들은 이렇게 불렀다.
‘외당림’이라고.
당여은은 지금 선우진에게 배운 은신술로 그 외당림의 안으로 침투한 상태였다.
물론 당가의 직계 혈손인 그녀이니만큼 외당림의 입구를 통해 정식으로 들어오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당여은은 그냥 숨어서 들어오는 쪽을 택했다.
‘가주님께 내 행동이 알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최대한 비밀리에 움직여야 해.’
숲의 초입까지 들어와 은신을 푼 그녀는 입구 쪽을 한번 스윽 바라보고는 거침없이 숲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을 외당림으로 말이다.
‘외당림’.
사천당문의 안에 위치해 있지만 당문의 바깥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수많은 무림의 은거 기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원래 여러 무림 세가들은 외부의 무인들을 초빙해 식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무력 때문이었다.
‘세가에 존재하는 식객들이 얼마나 고수이고 몇 명이나 있는가에 따라 세가의 힘이 좌우되니까.’
몸을 의탁한 식객들은 중요한 순간 세가를 위해 힘을 빌려 줄 수 있는 숨겨 둔 칼과도 같았다.
또한 그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적대 문파들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억제력이기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무공의 발전은 언제나 타 무공과의 대립과 교류를 통해 이루어지는 법, 다양한 계통의 무공을 지닌 식객의 유무는 세가 무공의 발전 속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모든 무림 세가들은 뛰어난 식객들을 머물게 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 사천당문을 제외하면 말이지.’
그랬다.
사천당문만큼은 굳이 다른 세가들처럼 그렇게 식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가만있어도 많은 이들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무림 최고의 독의 명문인 사천당문은 당연하게도 약과 의술에 있어서도 무림의 어떤 곳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사천당문이 그저 독물들만 가득한 지옥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무림의 여러 문파 중 가장 영약을 많이 보유한 곳이 바로 이 사천당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치료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 또는 그들의 지인들이 수없이 당문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당연히 무림의 고수들도 있었다.
당문에서도 쉽게 대할 수 없는 고수들까지도 말이다.
그런 고수들 중 조용히 은거하고 싶은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당문의 안에 있지만 당문의 바깥이라고 불리는 이 ‘외당림’이었다.
“…….”
당여은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울창한 숲속을 둘러봤다.
적어도 눈에는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월하환검무를 발동하며 예민해진 감각이 그녀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누군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고.
당여은은 문득 숲을 향해 정중히 포권하고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당가의 여식 당여은이 무림의 대선배님을 뵙습니다! 제가 지금 양문헌, 양 노사님을 찾고 있사온데 혹시 어느 곳에 계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잠시 후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당가의 여식이라고? 쳇, 재미없게 됐구나. 몰래 숨어들어 왔기에 뭐 재밌는 일이라도 생길까 기대하고 있었더니만. 그래서 양 형님은 왜 찾는 것이냐?
역시.
당여은은 누군가 있다는 자신의 직감이 맞았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감도 느껴야 했다.
애초에 이 외당림에 있는 자들은 괴물 아닌 자들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부리는 작은 변덕만으로도 자신의 생명 따위야 쉽게 사라져 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조심, 또 조심해야만 했다.
당여은은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말씀드릴 일이라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만 합니다. 대선배님께 대답해 드리지 못하는 것을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그러자 그 순간, 바로 누군가가 그녀의 앞으로 그림자처럼 떨어져 내렸다.
타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