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칠살 적마혁-4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저녁, 선우진은 외딴 장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장원인가?”
선우진의 질문에 적마혁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공자.”
거의 귀주성 근처까지 갔었던 선우진은 이틀 만에 적마혁과 함께 사천성 중남부에 위치한 악산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저 장원, 사천살문의 본문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잠시 망설이던 적마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공자. 공자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신으로 사천살문과 정면 대결을 벌이시는 건 좀….”
그 말에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나를 걱정해 주는 건가? 내가 사천살문을 없애든, 무모하게 들어갔다 죽어 버리든 너와는 상관없는 일일 텐데?”
그러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던 적마혁이 침중한 말투로 대답했다.
“제가 비록 쓰레기처럼 살았지만, 무엇이 옳은 것이고 누가 은인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아둔하지는 않습니다.”
적마혁의 대답에 선우진은 빙긋이 웃음 지었다.
역시 시간을 들여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재였다.
선우진이 여동생 적하연을 죽이지 않고 남동생 적하군마저도 죽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적마혁은 눈물을 흘리며 선우진에게 감사를 전했었다.
그리고 선우진에게 전폭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우진은 적마혁으로부터 사천살문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를 앞세워 그곳에 막 도착했던 참이었다.
바로 이곳, 사천살문을 지우기 위해서 말이다.
적마혁이 다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천살문은 사천성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살수 단체입니다. 웬만하면 절정 고수들은 의뢰 대상으로 삼지 않는 다른 단체들과는 달리, 상당수의 절정 고수들을 암살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었지요. 게다가 지금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저 안엔 오십 명도 넘는 살수들이 항시 매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매복하지 않고 상주하고 있는 살수들을 더한다면 백 명도 넘겠지요. 그러니 아무리 공자라도 정면 돌파를 하시기엔….”
적마혁은 지금 진심으로 선우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가 사천살문을 지워 주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햇살처럼 웃으며 속여서 미안하다고, 동생 하군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해 준 순간부터 그가 은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아직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며 두 동생들의 신병을 인근의 하오문에 맡기면서도, 사흘 후에 자신이 오지 않거든 적마혁에게 동생들을 돌려줘도 된다고 말해 놓기까지 했었다.
자신이 사천살문을 지우는 것을 실패했을 때의 대비라며 말이다.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의 제대로 된 선의를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적마혁에게 있어서, 선우진의 모든 행동들은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협객들의 행보와도 같이 느껴지고 있었다.
남자에게 반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선우진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그에게 씨익 웃어 주며 대꾸했다.
“걱정해 줘서 고맙군. 근데 난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얘기는 한 적이 없었는데?”
“…예?”
선우진의 말에 적마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선우진의 신형이 한순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부스러지듯 흩어져 버렸다.
스스스슥!
“?!”
적마혁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천성에서 최고를 다투는 살수 조직 사천살문의 칠살인 그가, 직접 보고 있던 눈앞에서 다른 사람의 존재를 놓쳐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분명 은신술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익힌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은신술, 전율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디? 어디로?’
온 정신을 감각에 집중해 봤다.
하지만 선우진의 기척은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설마?’
자신의 감각을 확신할 수 없었던 적마혁은 바로 은신술을 전개해 장원 쪽으로 다가가 봤다.
그러자 이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매복한 자들의 기척이 사라지고 있어?!’
사천살문의 본진인 이 외딴 장원은 한산한 겉모습과는 달리 많은 살수들이 매복한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매복한 살수들의 기척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바람이 지나가면 꺼지는 작은 촛불들처럼. 먼동이 터오면 사라지는 별빛들처럼 말이다.
선우진이 은신한 채 그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적마혁은 그것이 너무도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져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결국 반각도 지나지 않아 모든 기척들이 다 사라져 버리자, 선우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정문의 문을 열고 나오며 적마혁에게 말을 걸었다.
“들어오지. 장원 안쪽은 안내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적마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에게 물었다.
“혹시… 공자께서 암혈향이십니까?”
얼마 전 도문승에게서도 같은 질문을 들었던 걸 떠올리며 선우진은 피식 웃음 지었다.
“그럴 리가. 은신술은 그냥 취미로 익혀 본 건데?”
적마혁으로선 암혈향이라는 대답보다 더 자괴감이 드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
같은 시각, 사천살문의 문주이자 일살인 계수력은 본전에서 특급 이상의 살수들을 모아 놓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십이영, 칠살로부터는 아직도 아무런 보고가 없나?”
그러자 십이영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작업에 들어간단 보고까진 있었는데 그 이후론….”
일살 계수력은 마침내 분노한 표정으로 자신의 탁자를 내리쳤다.
콰앙!
그러곤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그 선우진이란 놈 때문에 삼살, 오살, 육살, 칠살까지 잃어버리게 됐단 말이지?”
계수력은 한편으론 분노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에겐 이제 두 가지 길이 있었다.
더 손해를 보기 전에 의뢰를 포기해 버리는 것과 마지막 힘을 모아 의뢰를 완수하는 길.
심정적으론 그만 포기해 버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입은 피해가 막대한 데다 마지막 힘을 모은다는 건 자신까지 나서야 한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엄청난 위약금도 위약금이지만, 의뢰자가 사천당문의 데릴사위가 될 거라는 홍사검룡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의 의뢰를 이제 와서 취소하는 건 사천당문의 눈 밖에 나는 짓일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게다가 홍사검룡은 이 의뢰가 사천당문의 뜻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밝히기도 했지 않던가.
결국 이 사천성 내에서 계속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서든 의뢰를 완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계수력은 장내에 모인 이살과 사살을 포함한 특급 살수들을 바라보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이번 의뢰에 사활을 건다. 지금부터 나를 포함한 전원이…!”
그때였다.
끼이익!
본전의 문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계수력은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어떤 놈이냐?! 누가 감히 특급 회의 중 들어오는 것이냐?!”
하지만 그렇게 소리쳤던 계수력의 표정은 묘해지고 말았다.
열린 문 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장난질이지?”
그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모두가 특급 살수인 그들의 시선을 속이고 은신술을 사용해 들어올 수 있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말이다.
선우진은 은신한 채 이동하며 역시 문 옆에 은신해 숨은 적마혁에게로 전음을 날렸다.
- 아무도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도록.
그리고 다음 순간, 선우진의 신형이 집결해 있던 특급 살수들의 그림자 사이에서 쑤욱 솟아올랐다.
마치 유령과도 같은 등장이었다.
“!”
“!”
그러자 그의 등장에 깜짝 놀란 살수들이 황급히 먼 쪽으로 몸을 날리며 암기를 던지려 했다.
하지만 연보라색 빛줄기가 태양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선우십삼검 십오 초.
공즉시색.
화아아악!
장내의 모두는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단 한 순간, 연보라색 태양이 빛을 발하듯 사방으로 검영을 뿜어내자, 몸을 날리려던 삼십여 명의 특급 살수들이 그대로 참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소리는 없었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도, 비명 소리도.
그저 고요한 가운데 빛이 있었고, 그것이 사라지자 수십 명의 피를 뿜어내는 시신들이 힘없이 무너져 갔을 뿐이었다.
털썩! 털썩!
그 시신들 사이에 유일하게 선 잘생긴 남자가 비릿하게 웃으며 계수력에게 물었다.
“네가 살문주인 일살이란 놈이겠지?”
그러자 넋을 잃고 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계수력이 침을 꿀꺽 삼키며 반문했다.
“다, 당신은?”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선우진.”
그러자 계수력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확대됐다.
저자가 그 선우진이라니, 게다가 어떻게 이곳까지?
하지만 깊게 생각해 볼 여유는 없었다.
그가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악문 계수력이 외쳤다.
“무얼 하느냐?! 한꺼번에 쳐라!”
그러자 아직 살아 있던 특급 살수들이 본능적으로 그를 향해 암기를 투척하기 시작했다.
퓨퓨퓨퓩! 쉬이이익! 휘리리릭!
수십, 수백 개의 암기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공간을 까맣게 채운 채 선우진을 덮쳐 가고 있었다.
그러자 선우진의 검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일검법 오 초.
회풍삭.
회풍삭은 방어와 비검에 특화된 점창파의 절기 회풍무류사십팔검과 맥을 같이하는 사일검법의 방어 초식이었다.
선우진이 그것을 펼치자 마치 거대한 원형의 방패처럼 회전하는 검이 암기를 모두 쳐내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당!
그러자 그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는 계수력의 표정은 한층 더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저럴… 수가.”
그리고 그 순간, 검을 휘두르고 있는 선우진의 후방으로 천천히 접근하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바로 사천살문의 사살인 사필측이었다.
어려서부터 겁이 많고 숨는 것을 좋아했던 사필측은 검술이나 암기술을 포기한 채 은신술에만 집중했었다.
적과 검을 맞부딪치는 것도 암기를 투척하는 것도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숨어다니기만 하던 그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아무도 자신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고, 그런 자신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라는 사실을.
그는 아까 문이 열림과 동시에 깜짝 놀라 은신술로 몸을 숨겼던 상태였다.
몸에 체화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방어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선우진이 자신을 볼 수 없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의 비어 있는 등은 바로 자신의 몫임에 틀림없었다.
‘흐흐흐흐, 잘 가라.’
속으로 웃음 지은 사필측이 선우진의 바로 발 뒤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이제 그의 등을 향해 침통만 발사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암기를 막고 있던 선우진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발을 세게 굴렀다.
바로 사필측이 숨어 있는 그림자를 향해서였다.
퍼석!
그러자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없어진 사필측의 시신이 밖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아무리 은신의 고수라 해도 머리를 잃고서는 은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그의 시신을 힐끗 보며 생각했다.
‘이자가 사살이겠지?’
그는 이미 적마혁에게 사천살문에 대한 정보를 다 얻어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은신술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살을 제일 경계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를 처리했으니 더 망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선우진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당!
회풍삭으로 암기를 막고 있던 선우진의 신형이 한순간 갑자기 측면을 향해 포탄처럼 쏘아졌다.
파앙!
이제 선우진의 움직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 된 폭진보의 효과였다.
푸화악!
그러자 측면으로 벌리고 있던 살수들이 그대로 폭발하듯 난자당했다.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덮쳐 온 선우진의 검격 때문이었다.
살수들은 그의 속도를 반응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아차 하는 순간 피분수를 뿌리며 고혼이 됐을 뿐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진 일살 계수력이 소리쳤다.
“이살! 뭐 하느냐?! 놈을 막아라!”
이살은 격전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한쪽 옆에서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던 남자였다.
하지만 그도 계수력의 명령이 떨어지자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신속하게 몸을 날리며 암기를 던졌다.
쉬이익! 휘리릭!
빛살처럼 날아오는 강전과 회전하며 날아오는 표창들, 다른 살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의 암기에 선우진이 차마 무시하지 못하고 검을 휘둘러 그것을 막아냈다.
티티팅!
그때였다.
그 순간 어느새 다른 살수들의 뒤로 이동했던 이살이 그를 향해 살수 한 명을 확 밀쳐 버렸다.
“!”
경악한 눈빛의 살수가 선우진에게로 날아오고 있었다.
선우진은 피식 웃으며 검으로 그의 목을 간단히 베었다.
샤아악!
그러자 그 순간, 살수의 뒤에서 튀어나온 이살이 도를 휘둘렀다.
슈학!
챙!
단 한 번의 부딪침, 막히긴 했지만 대단히 위협적인 기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우진이 자신의 기습을 간단히 막아내자, 이살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바로 몸을 날려 다시 살수들 사이로 숨어들어 갔다.
그리고 바로 다시 암기를 날렸다.
쉬이익! 휘리리릭!
선우진은 피식 웃으며 암기를 막아내고는 다시 남아 있는 살수들을 격살하기 시작했다.
적마혁에게 듣기로 저 이살이 사천살문 최고의 도객이자 살문주의 칼이라더니만 과연 재밌는 자였다.
절정의 경지를 넘지도 않았건만 자신이 쓸 수 있는 기술을 적절히 조합하는 것만으로 웬만한 절정 고수보다 더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씨익 웃음 지은 선우진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생각했다.
‘자아, 어디 이것도 한번?’
선우진의 검이 뿌연 검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일검법 칠 초.
흑천검우.
슈하아아악!
먹구름 같은 뿌연 검기 사이로 검영이 빛줄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십여 명의 살수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절초였다.
푸화아악!
이살은 검기에 몸이 관통당해 피를 뿜어내는 살수들 사이에서 다급하게 탈출했다.
자신의 단도로 몇 개의 검영들을 튕겨 내면서였다.
채채챙!
‘놓칠 수 없지!’
선우진의 신형이 유령처럼 그에게 따라붙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눈을 살짝 찡그린 이살이 근거리에서 발작적으로 암기를 뿌렸다.
휘리리릭!
하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부드럽게 그것들을 흘려 낸 선우진은 바로 이살의 지척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자 이살의 단도가 몇 개의 빛줄기가 되어 선우진을 덮쳤다.
따다다다당!
놀라운 속도의 연환격이었다.
그의 팔이 몇 개로 늘어난 듯 잔상까지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대충 검을 휘두르며 그것을 모두 여유 있게 막아낸 선우진은 마침내 빙긋이 웃고는 그에게 검격을 날렸다.
사일검법 일 초.
일시사일.
쉬익!
이살 견중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맹세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하지만 언젠가 닿아 보고 싶었던 그런 검격이 자신의 몸을 꿰뚫고 있었다.
퍼억!
검기에 적중당한 그가 벽에 날아가 부딪치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끝이었다.
“흐음.”
선우진은 가볍게 주변을 둘러봤다.
눈에 보이는 모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모두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대항할 수 있는 자는 이제 없었다.
단 한 명만 빼고.
선우진은 이제 그 한 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일살 계수력이 부들부들 떨리는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선우진에게 죽통 하나를 겨누고 있던 중이었다.
당문에서 유출된 학령홍이라는 극독을 살포하는 죽통이었다.
만약 이살조차 그를 막을 수 없다면 그는 미련 없이 그 죽통을 발사할 생각이었다.
이 방 안에 있는 살수들은 모두 다 죽겠지만, 적어도 해독약을 지닌 자신만은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죽통을 누를 수 없었다.
계수력이 분노가 가득한 말투로 씹어뱉듯 말했다.
“칠살, 네놈이 배신했구나.”
그러자 어느새 은신술로 접근해 계수력의 뒷목에 검을 대고 있던 적마혁이 대답했다.
“배신? 고독으로 나와 동생들의 목숨을 쥐고 협박하고 있던 네놈이 배신을 논한다고? 적반하장도 풍년이로구나.”
어쩐지 많이 유쾌해진 듯한 적마혁의 목소리에 계수력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씹어뱉듯 말했다.
“네놈, 이런 짓을 하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네놈과 네 동생들이 모두 고독으로 죽어도….”
그때 선우진이 다가오며 말을 끊었다.
“오, 그래! 그 고독. 우리 그것에 대해 좀 대화를 나눠 볼까? 너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빨리 말하고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법, 그리고 온갖 고통을 다 당한 후에 결국 말하고 나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법.”
그러자 계수력이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내게서 어떤 것도…!”
그 순간 선우진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타다다닥!
선우세가의 서재에서 읽고 외워 뒀던 분근착골의 수법이었다.
그러자 한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해일처럼 밀려와 그를 덮치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고통에 계수력은 눈을 까뒤집으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선우진은 그런 그를 잠시 부드럽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에헤이, 이제 일 단곈데 벌써 그러면 쓰나. 간단히 오 단계까지 가 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선우진이 익혔던 분근착골의 수법은 모두 십 단계로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계수력에겐 긴 하루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