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정리-1
아직 동이 트기 전인 어두운 새벽.
하씨세가의 백호일대와 이대는 선우세가에서 단가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흑웅림이라는 숲에 도착했다.
“정보대로라면 한 시진쯤 후에 선우중과 선우성이 이곳을 지나가겠지. 이 대주 자네는 숲 왼쪽 편에 매복하게. 내가 오른쪽에 매복하겠네.”
“알겠소, 일 대주.”
그들은 숲에 매복해 있다가 선우중과 맏아들 선우성이 이곳을 지나갈 때 사방에서 덮칠 계획이었다.
이곳 흑웅림은 주변의 인적도 드물고 길도 하나뿐이니 습격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정보에 따르면 선우세가 가주인 선우중은 혹시 모를 일을 막기 위해 해가 뜨기 전의 이른 새벽에 출발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결정이 오히려 자신들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죽이게 될 것이라곤 아마 상상도 못 하고 있을 것이었다.
숲의 오른편으로 간 백호일대주 간종치는 부하들을 향해 작게 말했다.
그러자 강력한 내공이 실린 그의 목소리가 부하들의 귀로 선명하게 퍼져 들어갔다.
“다들 잘 알겠지만 매복의 생명은 기척을 숨기는 것이다! 소리를 내서 일을 망치는 초보적인 실수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믿겠다!”
“예! 대주!”
백호일대주 간종치는 나직하지만 절도 있는 대원들의 대답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자신이 직접 키운 하씨세가의 최정예들다운 듬직한 모습이었다.
간종치는 이제 짧게 명령했다.
“모두 위치로!”
그 말과 동시에 백호일대원들은 신속하게 움직여 길옆의 수풀 사이로 퍼져 들어갔다.
아주 조용하면서도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숲엔 그들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위험한 자들이 미리 와 있었다는 사실을….
***
백호일대의 신입 막내 대원인 장이는 능숙하게 매복하는 선배들을 보며 문득 부러움을 느꼈다.
모든 임무가 처음인 그는 당연히 이런 매복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혹여 대주의 눈에 띌까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는, 옆에 매복하는 선배를 곁눈질하며 똑같이 따라 했다.
부스럭!
순간 옷깃에 수풀이 쓸리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만 소란스러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주변 선배들을 살펴봤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문득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혹시 선배들의 눈총을 받을까 조심조심 수풀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아마도 이걸로 매복을 완료한 것 같았다.
그러자 약간의 여유를 찾은 장이는 문득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숲 바깥쪽은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매복한 어두운 숲 안쪽은 여전히 칠흑 같았다.
우거진 수풀이 빛을 가려 고작 근처의 윤곽만 볼 수 있을 뿐, 약간만 거리가 떨어져도 그저 깜깜한 어둠만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한 시진을 가만히 버텨야 한단 말이지?’
장이는 벌써부터 가슴이 좀 답답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어려서 귀신을 두려워했던 그는 이런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영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뭐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깜깜한 어둠도, 벌써 주변에서 웽웽거리기 시작한 모깃소리도 다 싫었다.
‘그래도 모기는 낫지, 뱀 같은 건 제발 안 왔으면 좋겠군.’
문득 지난 매복 때 뱀이 와서 발을 물었음에도 매복을 풀지 않았었다며 자랑하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은 차마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문득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됐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두서없이 떠오르자 벌써부터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약간 떨어진 곳에 매복한 선배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자신과 달리 정말 바위가 된 듯 가만히 있는 선배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어설픈 자신만 이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장이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때였다.
‘응?’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장이가 문득 다시 선배 쪽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뭔가 이상한 걸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장이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그림자가, 그림자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어두운 선배의 주변에서 가장 까만 그림자가 스르르 움직여 선배의 등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처음엔 헛것을 보는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부릅떠 봤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본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귀, 귀신?’
귀신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말로만 듣던 악귀인 것 같았다.
저대로라면 저 악귀가 선배를 완전히 덮쳐 버릴 것만 같았다.
선배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줘야만 했다.
‘하지만 소리를 내선 안 되는데?’
그의 심중에서 격렬한 내적 고민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망설이던 장이는 결국 용기를 내서는 선배 쪽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그래서 살짝 몸을 움직였을 때였다.
문득 발밑을 쳐다봤던 장이는 순간 경악해서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자신의 발밑 그림자가 손을 뻗쳐 자신을 덮쳐 왔던 것이었다.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광경, 어린 시절 상상만 했던 악귀가 덮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장이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잊고 비명을 지르려 했다.
“!”
하지만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자신의 목을 감싸 버린 악귀의 팔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리 뒤쪽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장이가 살아서 느낄 수 있었던 마지막 감각이었다.
***
다른 자들과 달리 주의가 산만했던 매복자를 간단히 처치한 선우진은 다시 적마혁과 견중에게 전음을 보냈다.
- 계속.
그러자 잠시 멈춰 있었던 그림자 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우진의 감각에 매복자들의 기척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종이에 먹물이 스며들듯 아주 서서히, 백호대원들의 생명이 꺼져 가고 있었다.
매복한 백호대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 숲에 매복한 순간부터 이미 저승에 발을 반쯤 걸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백여 년 전 살수들의 지존이라고 불렸던 무영살의 천살비기를 익힌 세 사람은, 이런 환경에선 그들에게 사신과도 같은 존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
한 시진 후, 백호이대주인 국사항은 서서히 밝아져 오는 숲길로 말을 탄 두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우중과 선우성, 오늘의 목표들이 틀림없었다.
따그닥, 따그닥!
그들이 자신들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막 국사항이 매복한 앞을 지나가려 하는 중이었다.
‘그래, 지금!’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일 대주 간종치의 신호가 오지 않았다.
‘뭐지? 왜 습격 지시를 안 내리는 거지?’
계속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국사항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늘 자신이 일 대주라고 거들먹거리기나 하더니 이런 중요한 시점도 맞추지 못하다니.
그래서 참다못한 국사항은 자신이 먼저 소리쳤다.
“쳐라!”
그리고 제일 앞에서 뛰쳐나가며 외쳤다.
“선우중! 우리 단가장의 원한을 갚아 주마!”
그러자 국사항의 눈에 당황한 얼굴의 선우성과 역시 절정고수라고 바로 검을 뽑아 말에서 뛰어오르는 선우중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아압!”
콰콰쾅!
선우중의 보라색 강기와 국사항의 흰색 강기가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막상막하였다.
둘 다 절정 초입의 무인들이기에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공중에서 한 초식만을 교환한 후 서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수를 이루고 뒤로 물러서던 국사항은, 오히려 그런 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공격하면 당연히 나타나 합공을 할 줄 알았던 백호일대주 간종치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간종치만이 아니라 백호일대 자체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듯 잠잠한 상태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자신의 뒤를 따라 나온 백호이대원들도 상태가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대체…?!”
오십 명이어야 할 백호이대원들의 수가 삼십 명도 채 되지 않고 있었다.
고작 한 줌밖에 안 되어 보이는 부하들이 간신히 두 사람을 둘러싼 채 당황한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였다.
선우가의 장자 선우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선우중에게 소리쳤다.
“아, 아버지! 단가장이 저희를 습격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선우중이 코웃음을 치고는 손가락으로 먼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들이 단가장이라면 저들은 누구란 말이냐?!”
“예?”
선우성이 의아한 눈빛으로 선우중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단가장 쪽 방향에서 백여 명의 무사들이 그들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선두에 선 무인이 소리쳤다.
“선우가주님!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황토색 무복에 회색 영웅건.
그건 분명한 단가장의 복식이었다.
그러자 안 그래도 당황해 있던 백호이대주 국사항은 이제 완전히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저들은 또 어떻게 알고 여기를 온단 말인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백호일대가 사라지고 자신의 부하들도 반 토막 나더니 이젠 단가장의 무사들까지 습격해 오다니.
그때였다.
국사항의 머릿속에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설마, 함정?’
아무래도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진실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중이긴 했지만, 국사항은 더 이상 추리를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선우중이 그를 덮쳐 왔기 때문이었다.
“이놈! 정체를 밝혀라!”
슈하악!
“윽!”
깜짝 놀란 국사항도 황급히 검을 들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그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단가장의 무사들은 아직 거리가 좀 있었고, 자신의 부하들도 삼십 명 가까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숲속에서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의복면인 세 사람이 튀어나왔다.
푸슈슈슈슉! 휘리리리릭!
“크아아아악!”
“으아아악!”
국사항은 또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세 명의 흑의인이 뿌린 암기들이 빛살처럼 날아와 자신의 부하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충 뿌리는 것 같았음에도 엄청난 속도와 정확성이었다.
‘어디서 저런 암기의 고수들이?!’
선우가 맏이 선우성의 당황한 표정을 보건대 그들 또한 모르는 자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하압!”
푸화악!
“크으윽!”
국사항의 검을 든 오른팔이 날아가고 말았다.
계속된 당황스러운 일들로 국사항의 정신이 혼란스러워진 틈을 놓치지 않은 선우중의 일격 때문이었다.
같은 절정 초입이라곤 하지만 선우중의 실력이 조금 더 위였던 데다, 상대의 틈을 놓치지 않았기에 쉽게 결판이 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후, 곧바로 국사항을 점혈해 그의 신병을 확보한 선우중은 흑의복면인 중 한 명인 선우진과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선우진은 적마혁, 견중에게 전음을 보내 한꺼번에 전장에서 벗어나 다시 숲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단가장의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이놈들!”
“감히 우리 단가장을 사칭하다니!”
“용서치 않겠다!”
개개인의 실력이야 하씨세가의 백호대 무사들이 단가장의 무사들보단 위였겠지만, 구심점을 잃고 십여 명밖에 남지 않은 백호대 무사들이 백여 명의 단가장 무사들을 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학살당하고 말았다.
“크아아악!”
“아아아악!”
“사, 살려 줘!”
선우중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바로 자신이 잡은 복면인에게 다가가 복면을 벗겼다.
그리고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백호이대주 국사항! 역시 네놈들은 하씨세가의 무리들이었구나!”
***
“백호이대주 국사항! 역시 네놈들은 하씨세가의 무리들이었구나!”
아버지의 외침을 들으며 나는 피식 웃음 지었다.
모든 것이 다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 아버지와 대화할 때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제갈세가에게 복속될 것처럼 분위기를 조장한 후, 공정하게 무공 실력으로만 후계자를 정하겠다고 한다면 다른 부인들도 차마 반기를 들지는 못하겠지. 거기까지는 나도 이해했다만 그게 어떻게 다른 세력들을 쳐내는 방법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구나.’
나는 씨익 웃으며 아버지께 질문을 던졌다.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선우세가를 차지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면 아버지께서 생각하시기에 그중 가장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자들이 누구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으음, 아무래도 하씨세가일 것 같구나. 같은 귀양에 있기도 하고, 실제 우리 세가에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요. 그럼 만약 엉뚱하게 큰형에게 후계자가 넘어갈 것 같은 데다가, 거의 다 차지했다고 생각한 선우세가마저 제갈세가로 넘어가게 될 상황이라면 그들이 과연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질문에 아버지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그 답만큼은 명확히 알고 계시는 표정이었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판을 뒤집고 싶을 겁니다. 아버지와 큰형을 죽여서라도 말입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내가 아는 하구양이라면 반드시 그럴 사람이긴 하지. 하지만 진아. 아무리 하씨세가의 전력이 강해도 우리 선우세가를 정면으로 쳐들어오기엔 부담스러울 거란다. 그러니 그의 마음대로 되지는….’
그때 내가 악동 같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정면으로는 당연히 부담스럽겠지요. 그러니 아버지와 큰형 두 분이서만 외출을 한번 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말입니다.’
내 말에 깜짝 놀란 아버지는 당황하신 표정으로 물으셨다.
‘…그들이 노리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둘이서만 밖으로 나간단 말이냐?’
‘예, 그것도 행선지까지 알려 준다면 그들이 얼씨구나 미리 매복해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위험하지 않겠느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으시는 아버지께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미 알고 있는 매복은 더 이상 매복이 아니니까요.’
그러고는 하씨세가 이외에 다른 세력들이 더 끼어들지 못하도록 빠르게 출발했던 것이 지금 이 사태의 전말이었다.
결국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습격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이제껏 하오문으로부터 실시간 정보까지 받고 있었던 내 손바닥 안에서 논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선우가주님, 무사하십니까?!”
“자네들이 제때 와 준 덕분에 아무 일 없었다네. 정말 고맙네.”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단가장의 무사는 내 죽은 친구인 단하상의 형님 단하선이었다.
친구인 단하상은 살아 있을 때 자신의 형을 인품, 지략, 재능, 무공,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최고의 기재라며 내게 자랑하곤 했었다.
그때 나는 나와 달리 형제와 우애 좋게 지내는 그를 무척 부러워했었고 말이다.
나는 처음 귀주성에 왔을 때, 하오문 귀양 지부를 접수한 후 바로 단가장부터 찾아갔었다.
그리고 나를 죽이겠다고 원한에 찬 눈으로 검을 뽑는 단하선에게 그렇게 물었었다.
‘하상은 예전부터 형님을 많이 자랑하곤 했었습니다. 무척 현명하신 분이시라고요. 그런 형님이니 당연히 알고 계시리라 믿었습니다만, 하상의 평이 과했던 모양이군요. 형님께선 그때 진짜로 제가 하상을 죽였다고 믿으십니까? 아니, 죽일 수나 있었다고 믿으십니까?’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도 의심스러워하고는 있었으리라.
하상의 둘도 없는 친구라 여동생까지 중매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술에 취해 그를 죽였다는 말도, 당시 무인 같지도 않았던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었다는 말도 말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살기를 띤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네가… 하상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당시 세가에서도 외톨이였던 제가 제 유일한 친구였던 하상을 죽인다고요? 대체 왜 말입니까? 그리고 형님이 알고 계시는 하상은 당시 돼지에 불과했던 제게 죽을 만큼 허약한 친구였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살기가 사라진 것으로 나는 그가 내 말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이렇게 약속했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하상을 죽인 진짜 범인을 찾아내겠습니다. 그리고 그를 형님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또한… 단가장을 비상시켜 드리겠습니다.’
잠시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는 결국 내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단가장은 이미 가장 처음부터 내 계획에 동참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턴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줘야만 했다.
아버지가 모두가 다 듣도록 우렁찬 목소리로 단하선에게 물으셨다.
“나는 이제부터 선우세가 내의 배신자들을 처벌하고 나를 죽이려 한 하씨세가를 벌하려고 하네. 혹시 단가장에서 힘을 빌려줄 수 있겠는가?”
그러자 단하선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감히 저희 단가장을 사칭해 누명을 씌우려 한 자들을 저희 또한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가주님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은 굳게 손을 맞잡았다.
무척이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사전에 계획된 행동이었다는 걸 몰랐다면 그랬을 거란 얘기였다.
거기까지 본 나는 적마혁과 견중에게 전음을 날렸다.
- 가자.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다.
- 네, 공자!
- 알겠소.
우리는 그들보다 먼저 선우세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