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143화 (130/359)

143화 정리-4

그때였다.

자신의 진보된 도격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던 모순도의 표정이 문득 굳어졌다.

나무와 함께 산산이 찢긴 것이 사람이 아닌 흑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후방에서 다시 암기들이 날아들었다.

휘리리리릭!

후방에 위치한 나무 뒤에서부터 비표들이 사방으로 회전하며 날아들고 있었다.

암기들을 확인한 모순도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따위 것으로!”

티티티티팅!

이제 벽을 깬 모순도에게 그 정도 비표들을 튕겨 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간단히 그것들을 쳐낸 모순도는 바로 몸을 날려 그것들이 날아온 나무에 다시 도격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또다시 폭발하듯 비산하는 나무 둥치.

하지만 그 나무 뒤에도 견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견중을 찾지 못해 인상을 찡그린 모순도가 힐끗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밑동이 날아간 나무가 하필 그의 머리 위로 천천히 넘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흥!”

느리게 넘어지고 있는 나무 따위야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히 몸을 움직여 그것을 피하려던 모순도는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넘어지는 나무를 향해 도격을 날렸다.

저 뒤에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흡!”

콰아아아앙!

하지만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나무를 조각냈음에도 여전히 견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조각난 나무의 상부만이 그의 머리 뒤로 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쿠우웅!

나무 상부가 땅에 떨어지며 부러진 나뭇가지와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튕겨 날 때였다.

갑자기 나뭇잎 사이에서 솟아난 듯 나타난 견중이 튕겨 나는 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모순도의 뒤를 향해 덮쳐 갔다.

완벽하게 허를 찌른 기습이었다.

쉬이익!

하지만 벽을 깬 모순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순간 뒷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그가 바로 몸을 돌려 도를 휘둘렀던 것이었다.

부아아아앙!

강력한 도격이 견중을 사선으로 내리찍었다.

터텅!

하지만 견중 또한 이미 예상했던 듯 도강을 씌운 단도로 그것을 받아 냈다.

모순도의 강력한 도격이 어렵게 단도를 타고 빗겨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견중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쉬이이익!

견중이 왼손을 뿌려 암기를 던지며 돌진했다.

무려 대도의 안쪽 영역에서 뿌려진 암기였다.

“크윽!”

모순도는 당황했다.

너무 지근거리였다.

“으드득!”

힘껏 손목을 휘돌렸다.

대도를 당겨 도면으로 몸을 가리자 직선으로 날아오던 비도들이 도면에 부딪쳐 튕겨 났다.

티티티티팅!

회전하는 비표들 또한 대도를 스쳐 가고 있었다.

대단한 임기응변이었다.

하지만 견중의 공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대도의 안쪽 영역까지 접근해 단도를 휘둘렀던 것이었다.

쉬이이이익!

순간 대여섯 개로 분열한 견중의 팔.

빛살 같은 속도의 단도가 사방에서 모순도를 그어 오고 있었다.

심지어 너무 가까운 거리라 대도로는 공격을 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익!”

이를 악문 모순도는 대도를 이리저리 움직여 어떻게든 도면으로 견중의 단도를 받아 내려 했다.

티티티티팅!

그러곤 바로 땅을 박차며 거리를 벌렸다.

딱 한 걸음, 대도를 휘두를 수 있는 거리까지만 벌릴 수 있다면 놈이 자신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합!”

그리고 도면으로 견중을 확 밀쳐 내며 물러선 모순도는 결국 그 한 걸음의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됐다!’

그의 얼굴에 드디어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 모습을 드러낸 놈에게 드디어 자신의 진보한 도격을 먹여 줄 차례였다.

“잘 가라!”

모순도의 두 손이 도파를 강하게 움켜잡으며 그의 팔 근육이 도를 휘두르기 위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 순간.

푸욱!

“큭?!”

모순도는 그 순간 자신의 등에 깊숙이 박힌 무언가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암기가 날아와서 박혔던 것이었다.

‘어떻게?!’

순간 모순도의 머릿속에 방금 지근거리에서 견중이 날렸던 암기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직선으로 날린 비도와 회전하는 표창들.

그리고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에 날렸던 비표에는 소리가 없었구나!’

분명 아까 날린 비표들은 회전할 때 요란한 소리를 냈었건만, 이번에 날린 비표들에게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비표들이 회전해 돌아와 자신의 등에 박힌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아까 자신이 그것들을 흘려 낸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러기 위해서 던졌던….

그리고 그걸 깨달은 찰나의 순간, 견중의 단도가 모순도를 덮쳤다.

슈아아아악!

아까보다도 더욱 빨라져 여덟 개로 분열된 단도였다.

“끄으읍!”

모순도는 다시 대도를 움직여 어떻게든 그것을 막아 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등의 요혈을 당한 그의 손에선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티티티티팅!

그리고 마침내.

츄하악!

“크헉!”

계속 막히던 견중의 단도가 마침내 모순도의 어깨 힘줄을 끊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팔에 힘이 풀린 모순도는 결국 바로 자신의 목을 그어 온 견중의 도를 막아 낼 수 없었다.

샤아악!

피시시시식!

견중의 단도가 스치고 간 모순도의 목에서 피가 예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끝이었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모순도는 원통한 눈빛으로 하늘을 보며 무너져갔다.

‘이제야 간신히….’

쿠웅!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견중은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어느새 은신을 풀고 나온 선우진과 적마혁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고생했다.”

그러자 견중이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그가 선우진에게 보여 준 첫 웃음이었다.

그러다 문득 선우진이 옆에 있던 적마혁에게 물었다.

“마혁도 혹시 견중처럼 절정 고수와 일대일로 싸워 보고 싶은 건가?”

그러자 적마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굳이….”

선우진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선우중이 들이치기 전까지 아직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남은 절정 고수인 이 장로 처용구도 처리해야 했고 다른 백호대의 대주들도 미리 처리할 생각이었다.

선우중이 오기 직전 하씨세가의 정문도 열어 놔야 하고 말이다.

적마혁까지 일대일로 싸워 보겠다고 하면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역시 적마혁은 좋은 수하였다.

“자, 그럼 또 빠르게 움직이자.”

“네, 공자!”

“알겠소.”

선우세가의 병력들이 들이치기도 전에 하씨세가는 이미 무너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주 하구양으로선 그 사실을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

하씨세가의 가주 하구양은 자신의 애도를 들고 본전의 일 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의 가슴 속에서 용암 같은 분노가 미칠 듯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감히 선우중 따위가 나를 공격하다니, 절대 살려 보내지 않겠다!’

기습으로 어떻게든 여기까지 오긴 한 모양이지만, 이제 각 백호대의 대주들과 장로들이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모이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만 모인다면 선우세가의 잡놈들쯤은 아무런 위협도 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으로 뛰어 내려간 하구양은 정문을 부순 채 들어오고 있는 선우중과 선우세가의 장로, 대주들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 또한 고수들만 이끌고 본전으로 진입한 모양이었다.

하구양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지금 선우세가의 무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건 자신과 본전을 지키던 몇몇 일반 무사들뿐이었다.

아무래도 장로들이 모이는 데 시간이 걸릴 모양이었다.

‘이 굼벵이 같은 자들이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속에선 열불이 터져 나왔지만 하구양은 일단 아무렇지 않은 듯 애써 웃음 지으며 선우중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시간을 좀 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위, 아침 일찍부터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깜짝 행사라도 계획한 건가?”

그러자 선우중이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새벽같이 자객을 보내셨길래 바로 와 봤습니다. 무척 급하셨던 모양이더군요. 그러니… 저도 급히 보내 드려야겠지요.”

하구양의 눈이 순간 움찔했다.

역시 백호일대와 이 대가 실패했던 모양이었다.

‘병신 같은 놈들!’

하지만 겉으로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하구양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뭐? 으하하하하!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혹시 꿈이라도 꾼 것이 아닌가? 내가 대체 왜 내 딸의 부군에게 자객을 보낸단 말인가? 대체 뭣 때문에?”

하지만 선우중은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당연히 선우세가를 갖고 싶으셨겠죠. 혁이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후계자가 돌아갈 것 같으니 급해지신 것 아닙니까? 제갈세가에 빼앗기기도 싫으셨을 테고 말입니다.”

완전히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구양은 애써 웃으며 그 말에 반박하려 했다.

“으하하하! 그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지만 선우중은 더 이상 그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가 검을 들어 하구양에게 겨누며 말했다.

“이제 대화는 이만하면 된 것 같군요, 장인어른.”

그리고 장로들과 대주들에게 외쳤다.

“선우가의 무인들은 들어라!”

“예! 가주!”

그러자 하구양은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저들과 싸우면 끝장이었다.

“당장 저 악적을 처단…!”

“잠깐!”

그가 선우중의 말을 끊으며 급히 외쳤다.

“무인 대 무인으로! 가주 대 가주로서 일대일 대결을 해 보자, 선우중! 네놈도 무인이라면 설마 겁쟁이처럼 부하들 뒤로 숨지는 않겠지?!”

선우중이 그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보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그 말을 들은 선우중은 피식 웃더니만 중얼거렸다.

“일대일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뭐?”

선우중의 대답에 하구양이 오히려 더 당황하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멍청하게도 일대일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그것도 고작 절정 초입의 경지인 선우중이?

하구양의 무위는 내공 칠십 년을 넘어서 팔십 년을 꽉 채운 지 오래였다.

그러니 혹시 선우중이 최근 내공 칠십 년의 벽을 깼다 해도 아직 미숙할 터. 자신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멍청한 짓을 하겠다는데 굳이 막을 필요가 있을 리 없었다.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른 하구양이 환하게 웃음 지으며 선우중을 북돋웠다.

“호오! 역시 선우중! 선우가의 가주답군! 그래, 무인이라면 일대일로 자신의 무위를 증명해야지! 그것이 진정한 무인의 자세가 아니겠나?! 자, 그럼 어서 들어와 보시게!”

물론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바보 같은 놈, 우리 장로와 대주들이 올 때까지만 시간을 끌어 주마. 그 후엔 네놈은 끝이다!’

하지만 선우중은 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빙긋이 웃음 지으며 말했을 뿐이었다.

“마음이 급하시구려. 일대일을 꼭 내가 한다고 한 건 아닌데 말이오.”

그 말에 하구양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선우중이 아닌 다른 자가 상대한다고?

선우가의 최고수는 분명 선우중일 텐데?

문득 그의 머리에 선우중이 제갈세가에게 복속될 듯한 발언을 했었다는 게 떠올랐다.

‘설마 제갈세가의 고수?’

하구양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선우중을 향해 물었다.

“그럼… 누가 나를 상대한단 말인가? 설마 선우세가도 아닌 외인을 끌어들여 상대하겠단 말은 아니겠지?”

제갈세가의 개입을 막기 위한 어휘 선택이었다.

하지만 선우중은 다시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도 안 될 건 없겠지만, 아니오. 장인어른께는 다행히도 선우가의 사람이라오. 바로 장인의 뒤에 있는 내 아들이지요.”

뒤?

그 말에 깜짝 놀란 하구양이 휙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방금 내려왔던 계단 앞에는 어느새 잘생긴 젊은 청년 한 명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선우진이었다.

하지만 살이 빠진 선우진은 하구양으로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놈은?”

선우진은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포권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우가의 삼남 선우진입니다.”

“선우진?”

하구양은 그 이름을 듣고도 순간 그가 선우가의 삼남임을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머리를 굴리던 하구양의 얼굴은 점차 놀라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설마?! 네 녀석이 그 돼지 같았던?”

그의 말에 선우진은 빙긋이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구양이 감탄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오, 대단하구나! 살을 뺐다고 이렇게 미남이 되었다니! 근데… 욕심이 지나친 것이 아니냐. 네가 살을 좀 뺐다고 나와 일대일로 상대하겠다는 것이냐?”

선우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을 끄셔도 기다리는 이들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뭐?”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있었던 하구양은 정곡을 찌른 선우진의 말에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런 그를 향해 선우진은 서서히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든요.”

“뭐, 뭐라고?! 설마 네놈…!”

하구양은 이제 선우진이 뿜어내기 시작한 기세에 경악하고 말았다.

아직 이십 대에 불과한 놈의 몸에서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칼날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찌나 기세가 강력한지 자신의 피부가 다 따끔거릴 정도였다.

“이, 이럴 수가!”

선우진은 묵랑의 검파를 손에 잡으며 말했다.

“제가 후배이니 먼저 출수해도 괜찮겠지요?”

“아, 아니!”

하구양은 어떻게든 말을 더 이어 가려 해 봤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스르릉!

묵랑의 검날이 그 백색의 광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뽑힌 묵랑에서 한순간 연보랏빛 검강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아악!

하구양은 경악했다.

놈의 검강을 보건대 그 수준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최소한 동급,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갑니다!”

선우십삼검 일 초.

신응비상.

하구양의 눈앞에 찬란한 연보랏빛 날개가 펼쳐졌다.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신응비상의 초식, 하지만 여태껏 봐 온 중 가장 화려하고 커다란 날개였다.

“이놈! 감히!”

하구양은 이를 악물고 도를 휘둘렀다.

어차피 환검임을 알고 있으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슈하악!

하지만 그 이후의 움직임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연보랏빛 날개가 마치 살아 있는 듯 홰를 치며 자신의 도를 피해 냈던 것이었다.

“뭐, 뭣?!”

그리고 날개가 부서지며 깃털과 같은 검광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선우십삼검의 이 초식, 신응피익이었다.

“크윽!”

하구양은 손목을 꺾어 도를 휘돌리며 쏟아지는 검광들을 방어했다.

휘리리리릭!

이 중 대부분이 환검일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차마 무시하기엔 너무 선명한 검광들이었다.

사사사사삭!

그의 도에 닿은 환검들이 눈 녹듯 사라져 갔다.

하지만 하구양은 정신없이 뒷걸음질 쳤다.

그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다음으로 올 초식은 아마도 신응강하. 저 환검들 사이에 숨어 있을 실검이 빛살처럼 내리꽂힐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선우진과 하구양은 둘 다 내공 팔십 년 정도의 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악전고투를 거치며 단련되어 온 선우진의 검과 하씨세가에서 배부르고 편안하게 지내 온 하구양의 도가 같을 수는 없었다.

그 날카로움은 거의 천양지차에 가까웠다.

“허어!”

“저럴 수가….”

선우세가의 가신들은 내공 팔십 년의 고수 하구양이 형편없이 뒤로 몰리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선우가의 수치라고 불렸던 선우진에게 말이다.

이미 선우진의 무위를 알고 있었던 대장로 허진국과 신응사대주 담무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장로 서통성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겐가?”

그것이 지금 모든 이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이었다.

선우십삼검 삼 초.

신응강하.

슈하악!

쏟아지는 환검들 사이에서 하나의 실검이 빛살처럼 내리꽂혔다.

하구양이 두려워하고 있던 그 초식이었다.

촤악!

“크으윽!”

하구양은 자신의 옆구리를 강하게 스치고 지나간 선우진의 검에 고통 속에서도 안도했다.

자신이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덕분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다음 초식을 펼쳐 내자, 그는 그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사 초 신응난비

오 초 색즉시공

육 초 신조포웅

초식이 거듭될수록 하구양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선우진이 아까 자신을 죽이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됐기 때문이었다.

샤아악!

“크윽!”

자신이 놈의 검격을 도저히 받아 낼 수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의 검이 약간씩 빗나가고 있었다.

이제 하구양은 놈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를 상대로… 선우십삼검을 시연하고 있어?!’

그리고 그걸 깨달은 건 선우가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제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선우진의 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봐 왔던 선우십삼검이 그렇게 새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선우십삼검은 오래전부터 귀주성을 대표하는 환검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의 무학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정이 아닌 일류 정도의 검법이라는 평을 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이 보여 주고 있는 선우십삼검은 그렇지 않았다.

그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을 뿐 선우십삼검 자체는 구대문파의 무학들에게도 꿀리지 않는 절정의 검법임에 틀림없었다는 것을, 선우진이 직접 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가주 선우중과 대장로 허진국의 얼굴에 진한 감격의 표정이 떠올랐다.

선우진이 보여 주고 있는 일 검, 일 초식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선우진의 검은 드디어 그들이 알고 있는 마지막 초식, 십삼 초 환검경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수십, 수백 개의 검영이 하구양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자 이미 혼이 나간 듯한 하구양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흥! 이까짓 환검경 따위! 어차피 다 환검이라는 걸 모를 줄 아느냐?!”

그 순간이었다.

하구양을 둘러쌌던 수백 개의 검영들이 갑자기 실체가 되어 그를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선우십삼검 십오 초.

공즉시색.

푸푸푸푸푸푹!

하구양의 온몸에 수백 개의 검영들이 꽂혔다.

마치 고슴도치가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하구양의 벌려진 입에선 아무런 말도 새어 나올 수 없었다.

그저 단말마와 함께 숨이 끊어졌을 뿐이었다.

“꺽!”

푸화악!

온몸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 내는 하구양을 등 뒤로, 선우진은 천천히 피 한 방울도 묻지 않은 묵랑을 납검하며 선우중 쪽으로 걸어왔다.

선우중은 감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와락 달려들어 끌어안았다.

너무나도 뜨거운 포옹이었다.

“고생했다. 고생했구나, 진아.”

뜨거운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