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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47화 (134/359)

147화 덫-2

선우중이 선우연하를 개양문에 시집보내겠다고 선언한 날에서 다시 며칠이 지난 후, 그는 다시 한번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엔 선우가의 가족들은 물론 장로, 대주들과 제갈세가의 사람들까지도 모두 함께였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앞에서 또 한 번의 폭탄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며칠 전 나는 개양문에 우리 연하와 혼인시킬 청년을 물색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었소. 그리고 오늘 그 답신이 왔더구려. 답신에 따르면 개양문에선 벌써 적당한 청년을 몇 명 선발해 놨다는 모양이었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오늘 그 내용을 처음 들은 장로들이나 대주들은 물론, 며칠 전 폭탄선언을 들었던 사람들조차도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이나 급박한 진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선우중의 얘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그래서 이번에 연하를 직접 개양문에 보내 보려고 하오. 연하야, 네가 개양문으로 가서 그들을 만나 보고 적당한 청년을 스스로 골라 보도록 하거라.”

선우중의 말은 모든 이를 다 놀라게 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선우연하만큼 놀랄 수는 없었다.

아직 외조부에게 답신도 오지 않았는데 일이 너무나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그야말로 청천벽력을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얼굴이 완전히 창백해져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우연하의 반응에도 선우중은 더 이상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다시 큰아들인 선우성에게로 시선을 돌려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이번에 성이가 연하를 데리고 함께 개양문에 다녀오도록 해라. 내가 같이 가는 것이 도리겠지만, 세가에 일이 많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구나. 어떠냐? 가주 대리로서 나 대신 다녀올 수 있겠느냐?”

그 질문을 들은 선우성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가주를 대리해서 가는 일이라니, 선우성이 그걸 마다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즉시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 물론입니다, 아버지!”

선우연하는 자기도 모르게 망연한 눈빛으로 넷째 오빠인 선우기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게 그녀에겐 너무나도 꿈만 같았다.

빨리 깨 버리고 싶은 나쁜 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바람에도 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셋째 선우진이 환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지! 혹시 저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선우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진이 네가 말이냐?”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다른 가족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저 멍청한 놈이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지?’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선우중과 얘기하고 있는 중인 그를 타박하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다들 아무 말도 없이 일단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어쩐지 매우 신이 나 보이는 선우진이 순박한 얼굴로 말했다.

“연하가 상대를 고를 때 저도 꼭 옆에 같이 있어 주고 싶습니다, 아버지!”

그의 대답에 가족 모두가 한심하단 얼굴로 비웃음을 흘렸다.

선우진 따위가 뭔데 선우연하가 남편감을 고를 때 함께 있어 준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황당한 요구에 아버지 선우중만은 흐뭇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진이, 네가 여동생을 위하는 마음이 크구나.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그러자 예상치 못한 선우중의 긍정적인 반응에 가족들은 모두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선우중이 그런 요구를 허락해 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선우진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혹시 제갈 소저도 같이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성 형님과 비무를 하시게 될 테니 형님의 외가인 개양문을 구경해 보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 갑작스러운 제안에 사람들의 시선은 순식간에 제갈서율에게로 쏠렸다.

특히 선우진과 같이 가게 됐다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선우성의 표정 변화는 너무도 극적이었다.

그가 황급히 외쳤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갈서율과 함께 개양문에 갈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 환상적인 여정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선우진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당황해하던 제갈서율이 문득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대체 또 무슨 짓을 꾸미는지 알 수 없는, 그저 겉으로만 세상 순진한 척 웃고 있는 가증스러운 그의 얼굴을 말이다.

그의 눈빛이 마치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나를 따라올 자신이 있으시오, 소저?’라고.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제갈서율은 이제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고 있었다.

저 가면을 어떻게든 깨부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남몰래 이를 악물었던 제갈서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밌겠네요. 저도 개양문에 한번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오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소저!”

선우성은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넷째 선우기는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말을 하려다, 선우연하와 눈이 마주치고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선우진은 의미심장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혈교를 끌어들이는 낚시에 제갈세가를 참관인으로 대동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운씨세가를 장악한 혈교의 존재를 알게 될 제갈세가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무척 궁금했다.

또한 이제 벼랑 끝에 몰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선우연하의 행동도 말이다.

***

“왜지? 왜 아무 연락이 없는 거야.”

선우연하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계속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금방 회신이 왔던 것 같은데, 느낌 탓인지도 모르지만 이번엔 회신이 너무 늦어지고 있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는데….”

선우중은 당장 이틀 후에 그녀에게 개양문으로 출발할 것을 명한 상태였다.

그러니 더 늦어지면 운씨세가에서 회신이 오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그녀의 방과 연결된 뒤뜰 쪽, 문밖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하 아가씨. 외조부께서 보내셨습니다.”

“!”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기다리던 연락이 드디어 온 것이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바로 만류했다.

“거기서 조용히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 자들에게 들킬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멈칫한 선우연하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사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됐다.

그러다 문득 지난번엔 이런 식으로 오지 않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자세히 생각해 보기엔 그녀의 마음이 너무 급한 상태였다.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외조부께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으셨습니다.”

그 나지막한 물음에 선우연하는 울컥한 나머지 짜증을 내듯 작게 소리쳤다.

“그걸 몰라서 물어요?! 저를 개양문 사람과 혼인시키겠다잖아요! 그걸 막아야죠!”

그러자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개양문과의 혼인을 막아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어떤 식으로 말씀이십니까?”

그의 반문에 선우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하! 그건 당신들이 알아서 하셔야죠! 그때도 알아서 잘하셨잖아요!”

그러자 잠시 조용했던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그때라면, 단가장의 단하상을 죽일 때처럼 말씀이십니까?”

그 질문에 선우연하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요, 단하상. 그를 죽이고 그 병신에게 누명을 씌웠을 때처럼 말이에요.”

문득 셋째 오라버니, 그 병신이 자신을 자기 친구와 혼인시키겠다고 설치던 때가 떠올랐다.

어찌나 어이가 없었던지.

그때 선우연하는 단하상을 죽여 주겠다고 한 운씨세가 쪽 사람에게, 그 누명을 선우진에게 씌워 달라고 요구했었다.

다시 선우진이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러자 문밖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도 돌아간 모양이었다.

“하아아아!”

선우연하는 이제야 편안히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그때처럼 모든 일이 잘 처리될 거라는 걸 그녀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

같은 시간, 그녀의 뒤뜰 담장 너머에선 세 명의 남자가 침중한 표정으로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선우진이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단 형님. 참기 힘드셨을 텐데….”

그러자 방금 전까지 선우연하와 대화를 주고받았던 단가장의 대공자 단하선이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친구를 죽였다고 누명을 써야 했던 자네만 했겠는가. 그간 고생이 많았네.”

선우진은 진작 하오문의 노삼룡을 통해서 그때 단하상이 죽은 사건의 재조사를 부탁했던 상태였다.

그리고 노삼룡은 그때 매수됐던 점소이와 기녀들을 역추적해 그 사건에 운씨세가의 손길이 미쳤음을 밝혀낼 수 있었다.

드디어 선우진의 친구 단하상을 죽인 진범을 찾아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 있었다.

‘운씨세가에 협조하고 있었던 사 장로 요두면이 그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지. 분명히 우리 쪽에서 정보를 주고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 텐데도 말이야.’

현재 병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 장로 요두면은 사실 모처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운씨세가를 속이기 위해 그가 배신자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단하상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선우진은 요두면 말고도 운씨세가와 선이 닿아 있는 자가 또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유력한 용의자로 세 명을 꼽았었다.

‘다섯째 어머니 운 부인과 신응삼대주인 공도경, 그리고 연하. 분명히 이 세 명 중 한 명이겠지.’

그래서 선우진은 선우중으로 하여금 일단 가족들 앞에서 선우연하를 혼인시키겠다는 선언을 하게 했던 것이었다.

일단 운 부인과 선우연하의 행동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때 눈빛이 심상치 않았던 선우연하의 뒤를 따라갔던 선우진은 마침내 그녀가 전서구를 날리는 것과 그 전서구를 적마혁이 가로채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운씨세가와 닿아 있는 또 다른 선을 찾아내고 말았던 것이었다.

담장 밖에서 침중한 표정으로 서 있던 선우중은 문득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다 내 탓일세. 내 모자람이 자네의 동생을 죽이고 진이에게 누명을 씌우고 말았군. 대체 어떻게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 말에 단하선이 고개를 저으며 그를 위로했다.

“아닙니다, 선우가주님. 이제 억울한 죽음을 밝혀냈으니 하상도 편히 쉴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복수는 해야겠지만요.”

그의 말에 선우중 또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히 복수를 해야겠지. 당장 연하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자네에게 내줄 수도 있네. 설사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네.”

그러자 단하선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진이의 계획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아이를 죽이는 것만으로 복수가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단하선과 선우중은 선우진을 바라봤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이 담긴 눈빛들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은 단하선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원수를 앞에 두고 참는 것이 쉽지 않으실 텐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선 형님. 소제가 반드시 모든 원수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선우진의 약속에 단하선은 뜨거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네.”

***

귀주성 금사 운씨세가의 집무실.

과거 사천에서 사천제일공자 백옥지룡이라고까지 불렸던 관옥 같은 외모의 남자 구유상은 집무실에서 하오문 귀양 지부장인 노삼룡이 보낸 보고를 읽고 있었다.

“선우연하를 개양문으로 시집보내겠단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구유상의 입가엔 진한 호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염라혈승 축호탁이 그에게 말했다.

“예, 그녀를 개양문에 직접 보내 신랑감을 고르게 한다는 모양입니다. 아마 선우세가 내에서 운씨세가의 영향력을 제거하겠다는 뜻이겠지요. 또한 첫째인 선우성이란 놈의 정통성을 강화해 주는 효과도 있을 테고요. 그곳의 가주 선우중이라는 자가 아마 제대로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얼마 전 하씨세가를 삼킨 수완도 그렇고 제법 능력이 있는 자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구유상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까지 끌고 온 걸 보면 확실히 능력이 있는 자이긴 하지. 제갈세가가 딱히 뭘 하지도 않았건만 그들을 이용해 명분을 만든 점도 그랬고. 게다가… 나는 이 정보가 이렇게 쉽고 빠르게 유출된 것도 좀 이상하군. 마치 우리가 빨리 듣고 대처해 주길 기다리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자 염라혈승 축호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그게 무슨…?”

그의 질문에 구유상은 이제 혼잣말을 하듯 생각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용만 보면 선우성을 후계자로 밀어주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긴 해. 한데 그 정보가 너무 쉽게 퍼졌단 말이지. 당연히 반발할 운씨세가를 생각했다면 더 철저히 보완을 유지했어야 할 소식이 말이야.”

그러고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마치 운씨세가에게 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유력한 후계자 후보인 선우성이 곧 선우연하를 데리고 개양문으로 간다? 꼭 경쟁자들에게 습격해 달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럼 공자님의 말씀은?”

구유상이 눈빛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내 눈엔 왠지 개양문과 운씨세가를 상잔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선우세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외부 세력을 모두 제거하려고 말이야.”

“으음.”

그러자 구유상의 말에 잠시 침음성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던 축호탁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첫째인 선우성마저 몰락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마저 제거하면 선우가의 후계자가 될 이는 서기당과 연결된 넷째 선우기라는 아이밖에 없을 텐데요. 선우중도 서기당이 운씨세가와 연합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 선우성을 습격하게 하려고 정보를 풀었다기에는 그 시점이 너무 가깝습니다. 당장 내일인 듯한데 습격을 준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구유상의 입이 다시 진한 호선을 그렸다.

“그래, 중간에 습격하기엔 시간이 모자라지. 아예 개양문 자체를 공격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운씨세가를 장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모를까, 운씨세가가 개양문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때 머리 쓰는 것이 별로라 이런 대화에는 끼어들지 않고 있었던 흡혈마호 노조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선우세가에는 아들이 한 명 더 있지 않습니까? 그 전선에서 휴가를 나왔다는. 만약 그자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는 거면…?”

그러자 구유상이 피식 웃음 지으며 반문했다.

“다른 아들? 그 선우진이라는 벌레 같은 놈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 문득 그때 봤던 선우진의 한심한 모습이 떠올랐다.

동생에게 처참하게 얻어터지고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선우연하에게 달려오던.

구유상이 고개를 저으며 노조송에게 말했다.

“그놈은 내가 직접 봤다네. 선우중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놈을 후계자로 점찍었을 것 같지는 않군.”

“아, 그, 그렇습니까?”

노조송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뒤로 물러서자 축호탁이 구유상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우세가는 포기할까요?”

그러자 구유상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야 없지. 지존께도 곧 선우세가를 접수하겠다고 보고했지 않은가. 더군다나 내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아직 품어 보지도 못했는데 다른 놈한테 줄 수도 없고 말일세.”

“그럼?”

구유상이 순간 매섭게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일단 놈의 의도대로 어울려 주지. 노조송!”

“예, 공자.”

“절정 다섯 명 정도와 무사들을 이끌고 개양문으로 가라. 가서 그곳과 선우성이라는 놈을 반드시 지워 버리도록 해라!”

“예, 공자!”

흡혈마호 노조송은 내공 구십 년이 넘는 고수였다.

그런 그가 절정 고수 다섯 명과 다른 무사들을 이끌고 가다니, 절정 고수가 한 명도 없는 개양문 따위는 순식간에 지워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피 맛이 그리웠던 염라혈승 축호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자, 그러면 저는…?”

그의 질문에 구유상이 비릿하게 웃음 지었다.

“축호탁, 그대는 남은 절정들을 데리고 선우세가로 가라.”

그 말에 축호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선우세가로 말입니까?”

“그래. 감히 우리를 우롱하려고 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 할 것이 아닌가. 가서 그 선우중이란 자가 더 이상 머리를 굴리지 않도록 만들어 주거라.”

그 말을 들은 축호탁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예! 알겠습니다!”

“아, 마음껏 날뛰는 건 좋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용할 껍데기는 남겨 놔야 할 것이다.”

구유상은 자신이 내린 명령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내공 구십 년을 넘어 초절정을 앞두고 있는 흡혈마호 노조송과 초절정을 넘어선 염라혈승 축호탁이라면 고작 귀주성의 문파인 개양문과 선우세가를 상대로는 너무 과분한 전력일 테니까 말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선우중과 선우성은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구유상이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자아, 그럼 나는 개양문이 무너진 후 그 귀여운 소저나 구해 주러 가 볼까? 어디 그때도 그렇게 발톱을 세울 수 있을지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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