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화사유
귀주성 금사에 위치한 운씨세가.
백옥지룡 구유상은 그곳의 가주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부복한 부하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게 무표정한 상태였지만, 그의 앞에 부복한 부하는 보고를 모두 마친 후에도 덜덜 떨면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구유상으로부터 몸이 시릴 정도의 차가운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하는 구유상이 지금 너무 분노해서 표정을 잃어버린 상태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구유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염라혈승 축호탁과 그가 데리고 갔던 절정고수 일곱 명이 모두 다 죽은 이유가, 난혼마녀 소난소와 그 선우진이란 놈 때문이란 말이지?”
원래 구유상은 흡혈마호 노조송과 염라혈승 축호탁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는 노조송이 개양문을 뒤집은 후 천천히 그곳을 따라갈 예정이었다.
선우연하를 구해 주고 앞으로 선우세가를 차지하기 위해 그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막 운씨세가를 출발하려던 그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고야 말았다.
노조송과 부하들이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에게 몰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제갈세가의 비밀 호위인가?’
그 생각은 꽤나 합리적인 것이었다.
제갈지용과 제갈서율이 개양문으로 따라갔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에 구유상도 ‘아차!’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양문으로 가고 있던 구유상은 이를 갈며 다시 운씨세가로 돌아와야만 했다.
노조송을 죽였다는 그 괴인의 무위도 심상치 않았지만, 무엇보다 지금 제갈세가와 부딪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곧이어 다음 날 들려온 소식은 구유상을 극도로 분노하다 못해 무표정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염라혈승 축호탁과 절정 고수 일곱 명이 모두 전멸당했다고?’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설사 제갈세가의 힘이 닿았다고 해도 초절정 고수인 축호탁이 돌아오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것은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축호탁의 행방에 그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우세가로 간 축호탁과 고수들 역시 전멸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구유상은 보고를 한 부하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제하며 최대한 빨리 자세한 상황을 조사해 오도록 했다.
그러자 반나절 후 도착한 정보에서 듣게 된 것이 바로 그들 두 사람의 이름이었다.
혈교의 배신자인 난혼마녀 소난소와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선우진이라는 놈의 이름 말이다.
구유상은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선우진이라고? 그 선우세가의 수치라는 선우진? 그놈이 축호탁을 죽일 정도의 고수였다고? 허, 허허.”
문득 그의 머릿속에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삼남인 선우진이 선우세가의 진정한 후계자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노조송의 말에, 그런 쓰레기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이 확언했던 것이 말이다.
설마 노조송이 맞고 자신이 틀렸을 줄이야.
구유상의 명석한 두뇌가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놈은 일부러 운씨세가에서 온 자신 앞에서 멍청한 모습을 보여 줬던 것이리라.
자신을 완전히 감추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자신이 혈교의 사람이라는 것까지야 알 수 없었겠지만… 아니, 어쩌면 그것까지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난혼마녀 소난소와 이미 손을 잡고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구유상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완전히 농락당한 것이었군. 하하, 하하하하!”
운남성에서 나온 뒤 늘 다른 자들을 농락하기만 했던 자신이 이렇게 완벽하게 농락당하다니.
너무 어이가 없으니 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이 끝난 후 남은 것은 너무나도 진득한 살기였다.
구유상이 독사 같은 살기를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그래, 인정하지. 내가 한 방 먹었다. 그러니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그의 눈이 독이 잔뜩 오른 독사처럼 차갑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득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치, 침입, 으아아악!”
“끄아아악!”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닌 여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내는 비명 소리였다.
안 그래도 분노해 있던 구유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허겁지겁 뛰어나갔던 부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스, 습격입니다! 무림맹의 타격대입니다!”
무림맹?
그 단어에 구유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무림맹 귀주 지부의 지부장 장무도객 장도옥과 무사 백여 명이 습격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존재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무림맹이라….”
구유상은 다시 한번 헛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갈세가를 개양문에 함께 보낸 이유가 이거였군. 우리 존재를 보여 주기 위해서.”
소난소에게 정보를 얻었을 테니 자신들이 운씨세가에 있다는 건 원래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니 제갈지용과 제갈서율이 습격받은 후 바로 그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전달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무림맹의 무사들이 이렇게 빠르게 들이친 것이 설명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구유상은 이를 갈며 놈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선, 우, 진!”
으드득!
실제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것이 놈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인 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때 부하가 다시 다급하게 물었다.
“고, 공자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하지만 구유상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도망가라고? 내가? 불에 뛰어든 불나방들이 무서워서 말이냐?”
“…예?”
부하는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림맹 귀주 지부장인 장무도객 장도옥이라면 내공 구십 년이 넘는 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거의 구대문파의 장로급 고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장도옥과 백 명도 넘는 무림맹의 타격대에게 정체가 밝혀지고 습격을 당했는데 그들을 불나방이라고 표현하다니.
하지만 그는 그 의문을 바로 풀 수 있었다.
아무도 없던 자신의 바로 옆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래. 역시 조카는 차기 혈마가 될 인재야. 그런 놈들이야 당연히 불나방에 불과하지, 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봤던 부하는 목소리 주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푹 숙이며 부복했다.
“어, 어르신을 뵙습니다!”
무료한 표정으로 건들건들 서 있는 잘생긴 청년, 그는 바로 탐화색마 화사유였다.
혈교오마이자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바로 그 화사유 말이다.
구유상이 빙긋이 웃으며 화사유에게 물었다.
“화 숙부, 불로 뛰어든 불나방들을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화사유가 경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그럼! 이 숙부만 믿으시게, 조카. 불로 뛰어든 불나방들이야 이 숙부가 모두 태워 버리겠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구유상의 말이 끝났을 때는 화사유의 모습이 이미 사라진 후였다.
구유상은 피식 웃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불나방들이 불에 타는 광경을 직접 눈에 담기 위해서였다.
그가 전각 밖으로 나왔을 때 처음 본 광경은 화사유가 한군데 뭉쳐 있던 무림맹의 무사들을 덮쳐 가는 광경이었다.
화사유가 그들 사이로 뛰어들며 양팔을 휘두르자, 순간 그를 중심으로 피의 파도가 해일처럼 퍼져 나갔다.
푸화아아악!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크어어어억!”
그것은 무척 불가해한 광경이었다.
그의 손에 닿은 것이 아님에도 반경 이 장 정도의 공간이 모두 피바다로 변해 버렸던 것이었다.
화사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부드럽게 이동하며 계속해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보이지 않는 긴 손톱이 휘둘러지듯 이장 정도 거리의 무사들이 모조리 갈라져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가기 시작했다.
마치 도술을 부리는 신선, 또는 요괴의 이적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게다가 위협적인 것은 화사유 자신만이 아니었다.
언제 던졌는지 화사유의 백색 섭선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섭선이 스쳐 갈 때마다 무림맹 무사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져 가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백여 명의 무림맹 무사들이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반수 이하로 줄어들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자 장도를 든 도객 한 명이 다급한 표정으로 화사유를 향해 뛰어들었다.
무림맹 귀주 지부장인 내공 구십 년 이상의 고수 장무도객 장도옥이었다.
“이놈!”
일 장이 넘도록 길게 뻗어 나간 황색 도강이 화사유를 일도에 양단할 것처럼 휘둘러 오고 있었다.
과연 구대문파의 장로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수다운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를 본 화사유는 그저 무료한 표정으로 검지 손가락을 들어 그를 가리켰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승부가 결정되었다.
푸욱!
“!”
그것은 지켜보고 있던 모든 무림맹 무사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만 광경이었다.
그들의 지부장이자 구대문파의 장로급 고수인 장도옥이, 그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만으로 머리가 관통당해서는 쓰러져 죽어 버렸던 것이었다.
들고 있던 도도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 싸움 또한 정리되었다.
너무도 무력하게 지도자를 잃은 무림맹 무사들에게는 더 이상 반항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탐화색마 화사유는 대략 스무 명 정도의 무사들이 남을 때까지 그들을 학살하다가 이내 귀찮다는 듯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자 그의 뒤를 이어 혈교의 무사들이 무림맹의 무사들을 포위해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모두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러자 구유상이 옆에 있던 부하에게 명령했다.
“모두 떠날 채비를 해라. 서둘러 귀주성을 벗어난다. 운씨세가는 모두 소각해 버리도록.”
“예! 알겠습니다!”
구유상은 그간 자신이 거점으로 삼았던 운씨세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꽤 만족스러웠던 곳이었지만,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곳이 습격당한 이상 귀주성의 모든 거점 역시 발각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테니까 말이다.
문득 부하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바로 운남성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그러자 구유상의 눈빛이 돌연 날카로워졌다.
그가 멀리 북쪽을 바라보며 이를 갈 듯 중얼거렸다.
“그럴 수야 없지. 감히 내 앞길을 막아선 대가는 치르게 해 줘야 할 테니까.”
구유상의 눈이 다시 탐화색마 화사유에게로 향했다.
그와 함께라면 그 선우진이란 놈이 얼마나 실력을 감추고 있었든, 난혼마녀 소난소와 함께 있든 말든 상관없을 것이었다.
바로 장도옥처럼 만들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구유상이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감히 내 앞길을 막은 대가는 너와 관계된 전부이다, 선우진. 선우세가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주마.”
***
다그닥! 다그닥!
제갈서율은 홀로 말을 달려 선우세가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선우성 일행 역시 선우연하를 구속한 채 돌아오고 있었지만, 제갈서율은 고집을 부려 혼자서 먼저 선우세가로 출발한 상태였다.
선우성은 물론, 숙부 제갈지용도 없는 상황에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제갈서율은 생각했다.
‘선우진 공자. 당신이 정말 그 괴인인가요?’
개양문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감쪽같이 사라진 선우진의 행방에 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워낙 굵직한 일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일 것이었다.
제갈세가 내에서도 머리가 명석하기로 유명한 제갈지용 숙부조차 그를 주목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자신을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모든 일을 뒤에서 주관한 것이 맞다면 분명….’
한참을 달리자 드디어 제갈서율의 눈에 선우세가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격전의 흔적을 말해 주듯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린 정문의 상태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제갈서율은 곧 그 부서진 정문의 지붕 위에서 여유롭게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역시!’
제갈서율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개양문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그가 어느새 선우세가에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역시 선우세가가 혈교도들의 습격을 물리친 이면에는 저 사람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제갈서율은 더 참지 못하고는 말을 달리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선우 공자!”
그러자 선우진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빙긋이 웃으며 그녀에게 대답해 주었다.
“일찍 돌아오셨구려, 제갈 소저.”
그녀에게 별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여상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런 그의 대답에 제갈서율은 문득 설움이 몰려오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자신은 이렇게 열심히 그를 만나러 돌아왔는데 정작 그는 저런 무심한 태도라니….
하지만 제갈서율은 이를 악물었다.
제갈세가의 자식인 그녀가 감정에 휩쓸려 해야 할 얘기를 하지 못할 수는 없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추궁하듯 물었다.
“그 청의괴인, 당신이었죠?”
그러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되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구려. 청의괴인이 대체 누굴 말씀하시는 거요?”
그의 의뭉스러운 모습에 제갈서율은 이제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시치미 떼지 말아요! 당신이 개양문에서 사라진 후 그 청의괴인이 나타났다고요!”
하지만 선우진은 그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여전히 빙글빙글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소생은 그저 너무 무서워 서둘러 세가로 돌아온 것뿐이라오. 전선에서도 무서웠지만 여기서 혈교의 마두들을 만나니 더 무섭더구려.”
그 능청스러운 태도에 제갈서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말을 저런 태도로 하고 있다니, 누가 그 말을 믿어 준단 말인가.
“거짓말 말아요! 당신은 분명…!”
그러자 선우진이 문득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애초에 소생의 말을 믿지도 않을 거라면 대체 왜 제게 묻고 계신 거요?”
그 말에 제갈서율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맞는 말이었다.
계속 저런 식으로 대답한다면 이렇게 물어봐야 소용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갈서율은 다시 선우진에게 물어봐야만 했다.
그녀가 가장 궁금해하고 있는, 반드시 알아야만 할 그 사실을….
“당신이 정말 선우세가의 후계자를 노리고 있는….”
제갈서율은 묻고 싶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선우세가의 후계자가 되기 위함인지를, 그래서 자신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자신과의 대결을 계획한 것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선우진이 그녀의 뒤쪽 허공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손님이 오셨구려.”
제갈서율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뒤에서부터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천재지변과도 같은, 무언가 거대한 것이 들이닥치고 있는 듯한 섬뜩한 느낌.
하지만 폭풍이라도 몰려오는 듯한 존재감과는 달리,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단 두 명의 남자였다.
그것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잘생긴 두 사람의 미공자들, 특히 그중 한 명은 제갈서율이 이제껏 만났던 남자들 중 가장 미남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자였다.
하지만 제갈서율의 시선이 못 박힌 곳은 그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 쪽이었다.
존재감을 전혀 숨기지 않고 있는 그의 몸에서 마치 폭풍과도 같은 광폭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유상과 탐화색마 화사유, 그들이 드디어 선우세가로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금세 선우세가의 앞에 착지했다.
그러고는 화사유는 제갈서율에게로, 구유상은 선우진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화사유가 문득 환하게 웃으며 구유상에게 물었다.
“호오, 여기에도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있었을 줄이야. 유상아, 내가 저 아이를 가져도 되겠느냐?”
잘생긴 얼굴과는 달리 경박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뱀처럼 섬뜩함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제갈서율은 그의 탐욕스러운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쳐야만 했다.
그러자 구유상이 선우진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화 숙. 다만 그 전에 청소부터 먼저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높여 선우진에게 말했다.
“선우진, 재밌는 짓을 벌였더구나! 나도 아주 감쪽같이 속았어!”
그러자 선우진은 빙글빙글 웃으며 대꾸했다.
“소생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구려. 처음 뵙는 분 같은데 대체 뭘 속으셨다는 건지. 뭘 착각하신 것이 아니시오?”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뚝 떼는 그의 모습에 구유상은 문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안 그래도 농락당했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젠 놀림까지 받게 된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구유상이 눈빛만으로도 선우진을 찢어 버릴 듯 노려보며 다시 말했다.
“시치미를 떼겠다면 그것도 좋겠지. 선우세가를 지워 버린 후 다시 물어주마. 그때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두고 보마.”
그러고는 화사유를 향해 말했다.
“화 숙,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화사유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두려무나.”
그렇게 대답한 그의 몸에서 폭풍 같던 기세가 이제 광풍이 되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화아아악!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탐화색마 화사유가 선우세가를 지우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