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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56화 (143/359)

156화 마지막 패

탐화색마 화사유가 막 광폭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을 때였다.

선우진이 문득 구유상에게 물었다.

“왜 직접 오지 않으시오? 정작 용무가 있으신 건 그쪽 분이신 것 같은데?”

갑자기 구유상에게 말을 거는 선우진의 모습에 화사유는 일단 행동을 멈추고 구유상을 바라봤다.

그러자 어쩐지 위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선우진의 물음에 구유상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라고?”

그의 반문에 선우진은 다시 빙글빙글 웃으며 물었다.

“저쪽 분은 예쁜 제갈 소저에만 관심이 있지 딱히 원한은 없으신 것 같구려. 원한이 있어 보이는 건 그쪽 분이신 것 같은데 왜 직접 안 오느냐고 묻고 있는 거요. 무인이라면 자기 용무는 자기가 직접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겠소? 아, 혹시 무인이 아니신가?”

구유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우진을 노려봤다.

놈이 감히 혈마의 후계자로 꼽히는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이었다.

살기가 확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그런 살기가 느껴지지도 않는지 선우진은 계속해서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잇고 있었다.

“흠, 눈빛을 보니 무공을 익힌 분은 맞는 것 같구려. 근데 친구에게 얻어맞고 이르는 어린아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복수를 부탁한다라…. 아, 혹시 겁이 많으시오? 직접 상대방과 검을 부딪치면 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도 나고, 뭐 그러신 거요? 쯧쯧, 멀쩡하게 생기셨는데 안타깝구려.”

구유상은 선우진이 자신을 도발하려는 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무시하면 된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늘 남들을 눈 아래로 깔아보고 계략을 이용해 좌지우지하던 그가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농락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그자가 지금 자신을 비웃으며 놀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고민하진 마시구려. 사람이 겁이 많을 수도 있지. 뭐 어쩌겠소? 그래도 형장은 얼굴은 잘생겼으니 정말 다행이 아니오. 겁이 많은데 얼굴까지 모자랐으면 쓸 데도 없었을 텐데 말이오. 형장은 그래도 기… 흠….”

선우진은 ‘기’까지만 말하고 실수했다는 듯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구유상은 그 말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기생오라비’라는 말이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자들을 어떤 식으로든 살려 둔 적이 없었다.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구유상은 이제 악귀같이 일그러진 얼굴이 되어 씹어뱉듯 말했다.

“이 건방진 놈이…. 갈기갈기 찢기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하지만 그에 대한 선우진의 반응은 이번에도 구유상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선우진이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오오! 방금 멋있었소! 진짜 남자다워 보일 뻔했구려. 물론 진짜 남자라면 말보단 먼저 행동을 했겠지만 말이오. 좋은 시도긴 했지만 항상 조심하시구려. 제대로 된 남자라면 요란하게 짖는 개가 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말이오. 자칫하다간 개처럼 얻어맞게 되는 수가 있다오.”

그 말에 구유상은 이제 너무 화가 나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란하게 짖는 개가 누구를 뜻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러다가 개처럼 얻어맞는다니, 듣고 있던 화사유마저도 피식 웃음 지었을 정도였다.

“이, 이, 이런 개 같은 놈이…!”

구유상이 머리에서 김이 나올 것만 같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주먹을 불끈 쥐었음에도 차마 자신이 직접 손을 쓰지는 못했다.

염라혈승 축호탁을 죽였다는 선우진의 무위가 미지수이기 때문이었다.

승산이 확실하지 않은 상대와 드잡이질을 하는 건 구유상의 취향이 아니었다.

결국 구유상은 화사유를 향해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화 숙! 당장 저놈을 내 앞에…!”

그러자 선우진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하더니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직접 손을 쓰지 못하다니, 어지간히는 겁쟁이로구나. 너 무인은커녕 남자는 맞는 거냐? 일곱 살짜리 꼬맹이도 네놈보단 용감하겠다.”

그 말에 구유상이 시뻘게진 얼굴로 대꾸했다.

“흥!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한다더냐?! 네놈같이 저급한 놈과 직접 손을 맞대기 싫을 뿐이다! 화 숙, 뭐 하시는 거요?! 당장 저놈을 병신으로 만들어 내 앞에 꿀리시오!”

그러자 화사유가 할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선우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구유상을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을 뿐이었다.

“방금 그 말, 후회하게 될 거다. 너는 결국 나와 손을 맞대게 될 거거든.”

그 순간 화사유가 선우진을 향해 가볍게 손을 그으며 중얼거렸다.

“일단 팔부터 잘라 줄까?”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는 강기가 선우진을 향해 순식간에 짓쳐 들었다.

화사유의 무색 강기로 생성한 강환이었다.

***

쉬이익!

월하환검무 비월까지 발동한 채로 감각을 집중해 봤다.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온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가히 빛살이로군.’

물론 엄청난 속도였지만 저것 하나만이라면 어떻게든 피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환을 날린다는 건 한꺼번에 저런 것 몇 개도 날릴 수 있단 얘기였다.

하지만 지금 내 실력으론 저런 보이지 않는 강환 두세 개만 날아와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 이렇게나 무력하군.’

역시 천하삼십육성과의 거리는 이렇게나 멀었다.

혈교를 무너뜨리겠다는 내 목표까지의 거리도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문득 막막해져 왔다.

그 순간 무색의 강환이 나를 덮쳐 왔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나는 어느새 내 앞으로 나타나 강환을 막아 준 이의 등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러자 그녀가 뒤돌아 생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뭘 그런 말을 다, 나를 믿고 그렇게 여유를 부려 준 건데 내가 그 믿음을 저버려서야 쓰겠느냐?”

그렇게 말하는 여인은 이제 갓 스물이나 됐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홍의의 여인이었다.

그러자 자신의 무색강기를 막아 낸 여인의 등장에 깜짝 놀란 눈으로 보고 있던 탐화색마 화사유의 표정이 일순 환해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는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화사유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걸자, 그의 표정도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도발적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너 색마라며? 나도 색만데, 우리 색마끼리 한번 재밌게 어울려 볼까?”

“…색마라고?”

화사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자신의 무색강기를 간단히 막을 정도의 고수이면서, 갓 스물이나 됐을까 싶을 정도의 어린 외모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

게다가 스스로를 색마라고 부르다니.

그런 사람이 무림에 많을 리가 없었다.

마침내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 화사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설마… 여령색마, 손은상?”

그러자 손 선배께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게 바로 나란다. 전부터 너를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는 구나. 반갑다!”

여령색마 손은상.

천하사마의 일인인 그녀는 화사유가 모시는 주군이자 같은 사마에 속한 혈교의 지존 혈마와도 동급으로 평가되는 이 시대의 절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탐화색마 화사유가 아무리 천하삼십육성 중 한 명이라 해도 그녀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아니, 아예 급이 다른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녀의 정체를 깨달은 화사유의 얼굴은 마침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것은 함께 있던 구유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그런! 소, 손은상이 대체 이곳에 왜?!”

녀석의 비명 같은 질문에 나는 혀를 차며 대답해 줬다.

“쯧쯧, 감히 손 선배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겁만 많은 것이 아니라 예절도 없구나. 선배님, 저놈은 제가 알아서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이 네게 맡겨 두마.”

내가 여령색마 손은상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사천성 하오문 지부에서 귀주성의 상황을 전해 들었을 때였다.

아무래도 귀주성에 와 있을 혈교의 마두가 심상치 않을 것 같다는 예상에 내가 쓸 수 있는 최강의 패를 써야만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때 두 통의 서신을 보냈었다.

한 통은 사천당문의 당 소저에게 상황 설명을 하며 못 돌아갈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고, 또 한 통은 생사괴의 마종환과 함께 있을 여령색마 손은상에게 도움을 청하는 서신이었다.

물론 그녀가 와 줄 거란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손 선배가 와 주지 않는다면 전선에 계신 검성 어르신께라도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여령색마 손은상은 내 서신을 받고는 흔쾌히, 그리고 신속하게 선우세가로 와 줬었다.

그러니 이번에 내가 선우세가를 비우고 염라혈승 축호탁이 습격해 왔을 때도 사실 그다지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었다.

‘내가 걱정했던 건 혹시라도 혈마 본인이 오거나 혈교 오마 중 두 명 이상이 오게 될 상황이었지, 축호탁 따위가 아니었거든.’

결국 구유상과 나는 둘 다 마지막까지 최강의 패를 꽁꽁 숨겨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오문의 노삼룡을 통해 일부러 정보를 풀어 놈이 찾아오도록 했던 나는, 마침내 놈과 만나 서로의 마지막 패를 뒤집어 견줄 수 있게 되었다.

‘오래 기다렸지.’

그리고 드디어 서로의 패가 드러난 지금.

누구의 패가 더 강력한지는 놈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구유상의 백옥처럼 잘생긴 얼굴이 아예 핏기 하나 없는 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

놈의 얼빠진 모습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녀석에게 말해 줬다.

“내가 말했었지? 너는 결국 나와 손을 맞대야 할 거라고.”

넋이 나간 듯한 녀석의 눈엔 이제 선연한 두려움이 떠오르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쾅!

옆쪽에선 손은상과 화사유가 벌써 싸움을 시작한 상태였다.

깔깔 웃으며 바로 화사유를 덮쳐 간 손은상의 공격에 화사유는 황급히 무색강기를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강환들을 날리며 반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손은상의 대응은 아주 간단했다.

호신강기를 뿜어내 간단히 그것을 막아 버렸던 것이었다.

초절정 고수들조차 엄청난 내공 소모 때문에 쉽게 쓰지 못한다는 호신강기였지만, 무림의 절대자인 그녀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꺄하하하하! 진짜 안 보이잖아?! 네 강기 진짜 특이하다! 더 해 봐, 더! 더!”

“크윽!”

호신강기를 내뿜은 그녀는 자신의 몸 자체를 포탄처럼 이용해 화사유를 향해 부딪쳐 갔다.

화사유는 감히 그녀와 정면으로 맞부딪치지 못하고 강환을 날리며 간신히 도망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던 나는 이제 사납게 웃으며 묵랑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자, 이제 우리도 한번 붙어 보자. 구유상.”

난혼마녀 소난소에게 듣기로 놈은 혈마의 전인이며 차기 혈마로 손꼽히고 있는 자라고 했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놈을 없애 버릴 수 있다면 차기 혈교의 미래를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얘기가 되는 것이었다.

파앙!

폭진보를 쓴 내 신형이 놈을 향해 포탄처럼 쏘아졌다.

사일검법 칠 초.

흑천검우.

뿌연 안개 같은 검기 사이로 빗줄기 같은 검영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슈하아악!

하지만 혈마의 후계자 소리를 듣는다는 놈이 만만할 리 없었다.

구유상이 이를 갈고는 검을 뽑아 휘둘렀다.

“건방진!”

그러자 붉은 번개가 파직거리는 놈의 검이 벼락처럼 솟구쳐 올랐다.

츄학!

“저건?!”

그것은 놀라운 검격이었다.

한순간 붉은 뇌전이 검기로 이루어진 짙은 안개와 수십 개의 검영마저도 쪼개 버리고는 내게 짓쳐 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검로를 변형시켜 놈의 검을 막아 내야만 했다.

사일검법 오 초.

회풍삭.

순간 맹렬히 회전하며 원형의 방패를 만들어 낸 내 검 위로 놈의 뇌전과도 같은 검격이 충돌했다.

콰아아앙!

그 한 번의 충돌 이후 우리는 서로 양쪽으로 갈라져 잠시 검을 멈췄다.

나는 묵랑을 쥔 내 손을 슬쩍 바라보았다.

놈의 검과 부딪쳤던 순간 손이 감전되어 아직까지 저릿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소한 느낌에 문득 놈에게 물었다.

“그게 바로 혈뢰검결인가?”

혈뢰검결은 남궁세가의 가주들만이 익힐 수 있는 최강의 검법 제왕검결을 혈교에서 입수해 변형시켜 만들어 냈다는 검법이었다.

그 검법은 현재 혈교 최강의 검법 중 하나이며 또한 남궁세가 역사상 최악의 수치로도 유명했다.

그러자 이제 자신감을 되찾은 듯한 놈이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감히 그따위 실력으로 나를 놀리고 있었다니! 이 개 같은 놈! 갈가리 찢어 주마!”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해 줬다.

“오! 아깐 역시 쫄아 있었던 거였구먼? 쯧쯧, 그런 훌륭한 검법을 익혀 놓고 쫄기나 하고, 네가 익힌 검법에 미안하지도 않냐?”

그러자 놈의 얼굴이 확 붉어지더니만 바로 덮쳐 왔다.

“이놈!”

놈의 검이 다시 붉은 뇌전이 되어 짓쳐 들었다.

속도와 위력을 모두 다 갖춘 위협적인 검격이었다.

꽈르릉!

그러자 태연한 표정과는 달리 나는 속으로 꽤 긴장했다.

놈은 겁쟁이었지만, 무위가 뛰어나고 검법이 위협적인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까.

천풍신법 비기.

천풍화엽.

파사사삭!

놈의 검격이 붉은 낙뢰처럼 내게 꽂힐 때, 내 신형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되어 파사삭 흩어졌다.

접촉하면 감전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최대한 검을 부딪치지 않는 쪽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놈이 코웃음을 치며 검을 사방으로 뿌렸다.

“흥!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파지지직!

놈의 검이 휘둘러지며 붉은 뇌전을 사방에 줄기줄기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천풍화엽에 딱 적합한 한 수였다.

뇌전 한 가닥, 한 가닥이 위협적인 위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내 잔상을 부수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순식간에 내 모든 잔상들을 지져 버린 놈이 바로 내 진신을 찾아냈다.

“거기 있었구나!”

하지만 나도 계속 맞아 주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놈이 내 진신을 파악한 순간, 내가 먼저 검초를 전개했다.

선우십삼검 팔 초.

검익장막.

쏴아아아아!

내 검영이 몇 겹의 작은 날개가 되어 놈의 시야를 가렸다.

공격을 위한 검초라기보다는 시야를 교란시키기 위한 초식이었다.

“허튼짓!”

촤아악!

그러자 곧 붉은 뇌전이 몇 겹의 날개들을 간단히 찢어발기며 뛰쳐나왔다.

하지만 놈은 아주 잠깐 내 위치를 시야에서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 순간 측면으로 이동했던 내 검이 초고속으로 놈에게 찔러 갔다.

사일검법 일 초.

일시사일.

슈하악!

“크윽?!”

당황한 놈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황급히 검을 휘둘러 내 검을 비껴 내려 했지만 이미 좀 늦은 상황이었다.

촤아악!

“끄으윽!”

놈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내게는 아쉽게도 황급히 휘둘렀던 놈의 검은 내 검을 살짝 흘려내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래서 내 검은 놈의 얼굴을 그으며 지나가 버렸고, 놈은 비명 같은 기합을 지르며 다급하게 검초를 펼쳤다.

“끼야아아압!”

파지지지직!

순간 붉은 뇌전이 중첩되며 허공에 커다란 적벽을 만들어 냈다.

나는 그 뇌전의 벽에 감전되지 않기 위해 재차 공격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파박!

하지만 뒤로 물러선 나는 놈의 얼굴을 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해 줬다.

“여어, 한결 남자다워졌는데, 기생오라비?”

놈의 백옥 같았던 얼굴 왼쪽이 길게 사선으로 갈라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러자 놈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고는 이내 악귀 같은 표정이 되어 포효했다.

“이놈! 죽여 버리겠다아아!”

그러고는 바로 돌진해 들어왔다.

아까보다도 더 광폭하게 파직거리는 붉은 뇌전이 놈의 검을 감싼 채 내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슈하아아악!

‘엄청나군.’

나는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놈의 무위는 분명 대단했다.

아마도 내공 구십 년, 내가 아는 이십 대 최고의 고수인 설풍 조장과도 비견될 만한 경지였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나 또한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그간 나는 검성 어르신께서 알려 주신 대로 검초가 아닌 검격에 집중해 계속 수련해 왔었다.

그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수천, 수만 번을 검을 찌르고 베었었다.

그리고 얼마 전 흡혈마호 노조송의 호신강기를 그간 계속 수련해 왔던 찌르기로 뚫어 냈을 때, 또 그 직후 바람 그 자체가 되어 무아지경의 상태로 선우세가까지 달려왔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또 한 단계 벽을 넘어섰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축호탁과 싸울 때는 벽은 넘었어도 내공은 채울 수 없는 상태였기에 이전과 비슷한 능력으로 싸워야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싸움 직 후 바로 가지고 있던 영약들을 때려 넣어 내공을 채웠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 구유상의 무위와 완전히 대등한 상태인 것이었다.

내공 구십 년을 꽉 채운 놈과 말이다.

‘게다가 나는 아직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거든.’

광인처럼 달려드는 놈을 향해 씨익 웃어 주고는 바로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수법을 발동시켰다.

월하환검무 일 식.

비월.

화아아악!

그러자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다시 꿈결과 같은 장막으로 뒤덮였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 또한 가슴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지금의 상태라면 염라혈승 축호탁과도 일대일로 싸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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