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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61화 (148/359)

161화 살수들의 왕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전선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지 일 년도 채 안 되어 나는 다시 한번 전선으로의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상으로야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와는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진 상태였다.

“잘 다녀오거라, 진아.”

“소가주님, 부디 보중하셔야 합니다!”

“소가주님, 절대 무리하지 마십시오. 선우세가의 미래가 소가주님께 달려 있음을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소가주님….”

“소가주님….”

일단 배웅하러 나온 인원수가 너무 달랐다.

장로들, 대주들은 물론 일반 무사들도 잔뜩 몰려나와 내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땐 아버지와 연하뿐이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 모두가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게 몸조심하라며 당부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들에 귀가 다 얼얼할 지경이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배웅에 가능한 정성껏 화답해 주었다.

두 번의 삶에 걸쳐 처음으로 받게 된 열렬한 지지에 분명 마음이 날아갈 듯해야 할 터인데, 지금은 어째 정신만 없을 따름이었다.

‘머리가 어지럽군. 빨리 출발하고 싶을 정도야.’

아무튼 이번 귀환이 대성공이었다는 것만큼은 아무리 냉정하게 돌이켜봐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선우세가를 바로 세웠고, 귀주성의 혈교도 세력을 몰아냈으며, 난혼마녀 소난소라는 초절정의 고수를 조력자로 얻었으니 말이다.

물론 다시 떠나는 이 순간까지도 제갈서율 소저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마음에 좀 걸리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사과했는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 가 보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드디어 인사를 마치고 가볍게 몸을 날렸다.

짐도 적었고, 적마혁과 견중도 화사유가 죽은 뒤 바로 광검 스승님께 보내 버린 상태였기에 현재 내 몸은 아주 단출한 상태였다.

다만 마음만은 단출하지 못했다.

내 짐 속에 아버지께서 직접 써 주신 서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사천당문의 가주인 독암지존 당정후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그 서신에는 내가 선우세가의 소가주임에 틀림이 없다는 내용과, 후일 정식으로 사천당문에 혼담을 넣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 이것은 사실상 사천당문에 보내는 선우세가의 청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정식으로 혼담이라….’

어째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물론 나나 당 소저나 바로 전선에 돌아가 봐야 하기 때문에 그런 서신을 줬다고 당장 뭘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냉정히 말해 이건 그저 당 소저가 그 온제웅이란 놈과 혼인할 수 없도록 시간을 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는 한데….

어째 마음이 계속해서 싱숭생숭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네. 발걸음은 또 왜 이렇게 가볍지? 좀 달려 볼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속도를 높여 보기로 했다.

어차피 신법 수련도 해야 하니까 말이다.

‘뭐, 달리면 좋지. 비사영 녀석을 신법으로 눌러 버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수련해야 하니까.’

그랬다.

그러니까 이건 절대로 당 소저가 빨리 보고 싶어서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비사영 녀석을 눌러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파앙!

폭진보를 이용해 몸을 급가속했다.

몸이 가벼워서인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마 오늘 날씨가 좋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절대 당 소저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는 아니었다.

‘그럼! 그렇고말고! 으흐흐흐!’

입으로 자꾸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내 신형은 바람처럼 가볍고 표홀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

같은 시각.

선우세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

커다란 나무 한 그루의 그림자 속에서 문득 두 개의 안광이 천천히 뜨여졌다.

희미했지만 엄청난 공력이 서린 안광이었다.

곧 나지막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나왔군.”

암혈향이었다.

천하제일의 살수이자 천하삼십육성에 속한 유이한 살수이기도 한 암혈향 조우생이 이틀 전 이미 선우세가 근처에 도착해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홍사검룡 온제웅을 만날 때 사천당문에도 유령처럼 침투했던 그가, 선우세가에 숨어 들어가 목표인 선우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암혈향은 기다렸다.

여령색마 손은상이 선우세가에 머물러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 소문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섣불리 접근했다가 변수를 만드는 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암혈향은 선우진이 밖으로 나오기를, 그를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살수인 그가 목표를 노리기 위해 몇 주 정도 기다리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이틀 만에 나오다니, 이번 의뢰는 운이 좋았군.’

암혈향은 그림자가 되어 선우진을 천천히 쫓아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 선우세가에서 완전히 떨어진 후 일을 벌일 생각이었다.

선우진은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밝은 표정으로 바람처럼 속도를 높여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암혈향이 그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유령처럼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은 채였다.

스스스슥!

암혈향은 선우진의 심안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은밀한 움직임으로 그의 뒤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쫓아가기 시작했다.

선우진은 그의 미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싱글벙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바람처럼 달린 그들은 순식간에 귀양을 벗어나 운씨세가가 있던 금사 방면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사에 들어가기 전, 드디어 암혈향이 행동을 개시했다.

‘이곳 정도라면 조용히 처리할 수 있겠군.’

유령 같은 움직임을 유지하던 암혈향은 문득 허리에 감긴 구절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그의 허리를 감고 있던 구절편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꼭 여러 마디를 가진 갑각류처럼 생긴 구절편이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여 자신의 머리 부분을 암혈향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구절편 끝에 위치한 홈에 작은 쇠구슬을 끼워 넣었다.

그의 독문병기인 흑오공편이었다.

다음 순간,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그의 몸이 세차게 회전했다. 그 회전력에 흑오공편 역시 맹렬하게 휘둘러졌고, 암혈향의 속도와 공력, 거기에 원심력까지 더해진 흑오공편의 머리가 마침내 쇠구슬을 토해 냈다.

투우우웅!

그것은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암혈향의 공력에다 긴 도구의 원심력까지 이용한 초고속의 탄환이었다.

쐐애애애애액!

쇠구슬이 공기를 찢으며 맹렬히 날아갔다.

하지만 그 속도가 소리보다 빨랐기에 선우진은 쇠구슬이 날아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푸욱!

찰나였다.

쇠구슬이 선우진의 가슴을 꿰뚫기까지 걸린 시간은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멀쩡히 신법을 전개하던 선우진은 갑자기 가슴을 관통당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헉!”

그 갑작스러운 사태에 그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뚫린 가슴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명중이었다.

하지만 단 한 발의 쇠구슬만으로 선우진을 처리하는 데 성공한 암혈향은 살짝 귀찮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빗나갔군. 운인가? 아니면 감각?”

얼핏 보기엔 완벽히 명중한 것처럼 보였지만 암혈향은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 선우진의 몸이 살짝 기울어지며 정중앙을 꿰뚫었어야 할 쇠구슬이 오른쪽 가슴으로 쏠려 버렸음을….

지난 십여 년간 흑오공편으로 저격해서 한 방에 죽이지 못한 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랜만에 두 번의 손을 써야만 할 것 같았다.

***

푸확!

갑작스러운 통증과 함께 온몸의 힘이 쭈욱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이 관통당한 것이었다.

그러자 앞으로 나아가던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아마 이 속도로 땅에 처박힌다면 이번에는 확실히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큭!’

힘껏 몸을 움직여 회전시키며 땅에 부딪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러자 곧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텅! 터터텅! 텅! 텅! 텅!

땅에 부딪친 몸이 물수제비처럼 십여 회를 튕기며 뒹굴고 있었다.

몸 여기저기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는 게 천운이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아무 소음도 없는 암기가 뒤에서부터 가슴을 관통했다고?’

아까의 상황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방금 전의 나는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절대 주변 경계를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았었다.

전선의 근무자인 내게 있어 그건 거의 습관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월하환검무 비월의 상태에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럼에도 소리는커녕 심안으로도 아무것도 감지 못한 가운데 암기가 날아들었던 것이다.

도대체 얼마만큼 빠른 암기이면 그게 가능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까 그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갑자기 든 불길한 느낌에 급히 방향을 틀었었다.

그 미약한 느낌을 무시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대체 누구냐?!’

뚫린 오른쪽 가슴을 감싸며 일단 시선을 뒤로 돌려봤다. 그러자 흑의인 한 명이 그야말로 유령 같은 움직임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는 보이지만 심안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 진짜 유령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설마 진짜 유령인가?’

그럴 리는 없었다.

방금 내 가슴을 꿰뚫은 쇠구슬을 날린 자가 유령일 리는 없었으니까.

아마도 내가 감당하지 못할 고수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쇠구슬 한 방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암살하곤 하는 살수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암혈향!’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천살문을 지워 버린 것으로 암살 시도는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그 홍사 놈을 너무 허술하게 봤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걸 후회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일단 살아남아야 후회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저자가 암혈향이 맞다면, 어차피 대비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겠지. 가능한 방법이라고 해 봐야 손은상 선배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것밖에 없었을 테니.’

나는 잠시 달아날까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또 뒤돌아 도망치다 아까와 같은 것이 날아온다면 이번엔 진짜 피하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월하환검무 이 식.

현월 발동.

순간 아찔한 느낌과 함께 확장된 감각이 내 몸을 덮쳤다.

동시에 가슴에 느껴지던 통증도 마치 남의 것인 양 관조할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그 순간, 유령처럼 날아오던 흑의인으로부터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채찍 같은 것이 내게로 쏘아졌다.

쐐애액!

엄청난 속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속도의 일시사일보다도 빠른 찌르기가, 직선도 아닌 곡선으로 찔러 오고 있었다.

‘큭!’

바로 천풍화엽을 전개했다.

파스스슥!

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살아 있는 뱀처럼 쏘아진 놈의 병기가 내 왼팔을 강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치이익!

“크으윽!”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걸 확인할 새도 없었다.

놈의 병기가 진짜 살아 있는 듯 바로 방향을 틀어 내 등 뒤를 덮쳐 왔기 때문이었다.

천풍화엽으로 만든 잔상들은 전혀 효과가 없는 모양이었다.

파앙!

폭진보를 전개한 내 몸이 오른쪽으로 쏘아지며 또 간신히 놈의 병기를 피했다.

쉬이익!

하지만 여전히 숨을 돌릴 수는 없었다.

놈이 바로 유령처럼 내 뒤를 따라붙었다.

폭진보를 전개한 나와도 비슷한 속도였다.

‘젠장!’

기가 막혔다.

내 능력 중 가장 뛰어난 걸 하나만 고르자면 신법일 텐데, 심지어 폭진보를 썼는데도 놈의 속도와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능력들이 얼마나 차이가 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일단 살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 봐야 했다.

‘가자!’

월하환검무 삼 식.

현망월 발동!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월하환검무의 최고식이었다.

그러자 한순간 또 내 시야가 바뀌었다.

화아아아악!

분명 그럴 리가 없건만 마치 혼이 몸 밖으로 나가 육신을 조종하는 듯한 묘한 감각이었다.

문득 몸의 통증이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감각을 꺼 버렸다.

그러자 그 순간 아예 통증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사이 놈의 병기가 뱀처럼 내 주변을 한 번 휘돈 후 찔러 오고 있었다.

그것이 지네처럼 생긴 구절편이었음도 이제는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찔러 오는 구절편 끝의 창날을 피해 봐야 주변에서 감아 오는 구절편에 몸이 찢길 거라는 것도.

그러니 저걸 피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었다.

공력 차이가 너무 심했기에 방어해 봐야 뚫고 들어올 테니까.

막을 수는 없고 피해도 소용없는 상황.

그 상황에서 나는 온힘을 다해 앞으로 검을 찔러 냈다.

사일검법 일 초.

일시사일.

쉬이이익!

태앵!

순간, 처음 봤을 때부터 늘 평온했던 암혈향의 눈이 최초로 약간 찌푸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날아오는 구절편의 창끝을 검으로 찔러 검첨으로 맞부딪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창끝을 검 끝으로 쳐 내는 묘기와도 같은 임기응변이었다.

그것으로 약간의 틈을 만든 나는 간신히 다시 폭진보로 몸을 날릴 수 있었다.

파앙!

그러자 잠시 제자리에서 나를 바라봤던 놈이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를 향해 덮쳐 왔다.

마치 살아 있는 지네처럼 놈의 몸 주위를 휘도는 구절편을 대동한 채였다.

그 순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까진 그냥 대충대충 구절편을 휘둘렀던 놈이 이제 진짜 초식 같은 것을 펼치고 있다는 걸.

놈의 구절편이 한순간 회오리처럼 휘돌더니만 나를 썰 듯이 휘둘러 왔다.

츄하아아아악!

이번에도 절대 피해선 안 된다는 걸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구절편을 마치 도처럼 휘두른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그 움직임은 원형.

저걸 피하면 놈의 구절편 안에 갇혀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막든가 쳐 내야만 했다.

으득!

이를 악문 나는 아직 한 번도 실전에서 펼쳐 보지 않았던 사일검법의 최종식을 전개했다.

사일검법 구 초.

후예사구일.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렸다던 후예처럼, 극에 이르면 일 검에 아홉 개의 일시사일을 찔러 낼 수 있다는 사일검법 최고의 절초였다.

아직 내 수준으로 펼칠 수 없는 초식이었지만, 지금 삼 식 현망월의 상태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쉬쉬쉬쉬쉭!

내 팔에서 뻗어 나간 다섯 개의 빗살 같은 찌르기가 놈의 구절편과 부딪쳤다.

역시 검첨으로 정확히 편의 모서리를 찔러 낸 임기응변이었다.

쩌저정!

그 부딪침으로 구절편의 움직임이 잠깐 멈칫했다.

놈과의 싸움 후 처음으로 발견한 틈이었다.

이를 악물고는 바로 다음 초식을 전개했다.

조금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선우십삼검 십삼 초.

환검경.

쏴아아아아아!

수백, 수천 개의 환검이 놈을 둘러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바로 연환초로 이어 갔다.

선우십삼검 십오 초.

공즉시색.

화아아아아악!

수천 개의 검영들이 사방에서 놈을 덮쳐 갔다.

내가 쓸 수 있는 최강의 절초였다.

하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수천 개의 검영에 갇힌 암혈향의 눈이 여전히 평온해 보이는 것을….

놈은 어느새 회수한 구절편을 뱀이 똬리를 틀 듯 응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폭발하듯 방출시켰다.

촤아아아아악!

그것은 마치 폭발적으로 성장한 용권풍과도 같았다.

휘둘러진 구절편이 맹렬히 회전하며 내 공즉시색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던 것이었다.

내가 만든 수천 개의 검영들이 소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한순간에 불과했다.

내 온 힘을 다한 절초를 간단히 파훼한 놈은 당연하게도 바로 공세로 전환했다.

용권풍 속에서 용이 뛰쳐나오듯 놈의 구절편이 나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지고 있었다.

내 공세가 막 끝난 시점이기에 쳐 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의 공격이었다.

촤아악!

피가 터져 나왔다.

창끝이 내 허벅지를 강하게 훑으며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 발을 묶으려는 모양이었다.

현망월의 효과로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아주 냉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내 발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끝장인가?’

그 순간, 허벅지를 가르고 지나갔던 놈의 구절편이 바로 방향을 바꿔 내 등을 찔러 왔다.

몸을 돌려보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진짜 끝장인 모양이었다.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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