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독안괴검 서일-1
쉬이이익!
내가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가운데, 구절편 끝에 달린 창날이 내 등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이걸로 끝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어이없이 죽는다고 생각하니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였다.
태앵!
빛살이 되어 내 등을 꿰뚫으려던 구절편이 무언가에 충돌해 옆으로 튕겨 나갔다.
‘!’
깜짝 놀라 그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것이 어디선가 날아온 군청색의 빛 덩어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강환?! 대체 누가?’
그것은 강환이었다.
그것도 예전에 봤던 소면마군 사원양의 강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고 밀도 높은 강환.
암혈향과 나의 고개가 동시에 강환이 날아온 방향으로 홱 돌아갔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외눈의 검객 한 명이 검병(손잡이)을 천으로 감싼 검을 늘어뜨린 채 방만한 자세로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는 것을.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삼류 건달처럼 방만하게 건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강하다! 여령색마 손 선배나 검성 어르신만큼은 아니지만 무림맹주 모용검 정도는 될 존재감이야!’
그로써 그가 누구인지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협왕 모용검과 비슷한 기도의 외눈 검객, 게다가 삼류 파락호 같은 인상을 지닌 자라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와 똑같은 것을 깨달은 암혈향이 신음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독안괴검… 서일?”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꼴을 보아하니 네놈이 암혈 뭔가 하는 살수 나부랭이인 모양이구나. 내가 저 녀석에게 볼일이 있으니 좀 비켜 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걸음걸이뿐만이 아니라 말투 또한 삼류 건달처럼 가볍고 무례했으며 또 오만했다.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이자 천하 살수들의 왕이라는 암혈향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었다.
그 무례한 태도에 늘 평정심을 지켜왔던 암혈향도 눈을 살짝 움찔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독안괴검 서일과 싸울 생각까지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무리한 부탁이시오, 괴검. 나는 지금 의뢰를 수행하고 있는….”
그러자 서일이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끊었다.
사나운 표정과 함께 태풍 같은 기세를 뿜어내면서였다.
화아악!
“하, 내가 지금 네놈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걸로 보였나? 착각이 꽤나 심하구나. 머리도 좀 나쁜 것 같고 말이야. 어떻게, 죽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고 말해 줬어야 알아들었을까?”
그렇게 말한 독안괴검 서일은 방만하게 늘어뜨리고 있던 검 끝을 천천히 위로 세웠다.
그러자 태풍처럼 사방으로 뿜어지던 기세가 암혈향을 향해 집중되기 시작했다.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움직임임에도 마치 눈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할 것만 같은 엄청난 기세였다.
그러자 암혈향은 더 버티지 못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그는 그대로 신속하게 몸을 날려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스스슥!
역시 살수다운 너무나도 미련 없는 도주였다.
나는 문득 허탈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게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던, 마치 만리장성과도 같았던 그를 그저 협박 한마디만으로 쫓아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당사자인 독안괴검 서일은 그것이 매우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암혈향이 도주한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내게 물었다.
“네놈, 그 검은 어디서 얻었느냐?”
그렇게 묻는 그의 시선은 내 검 묵랑에 못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에 드러난 감정은 분명한 탐욕과 호기심이었다.
‘괴검이 묵랑을?’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그가 나를 순수한 이유로 구해 준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독안괴검 서일은 어떻게 무림의 절대자가 됐는지도 이해되지 않을 만큼의 소인배라고 했었으니.’
그는 물론 불패의 승부사이긴 했다.
하지만 그 불패라는 호칭 또한 극강이라는 느낌보단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절대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승냥이 같은 자라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서일에겐 추종자가 없었다.
무림 공적인 혈마조차 수많은 추종자가 있건만 유일하게 누구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절대자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근데 그런 서일이 지금 내 묵랑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지?’
암혈향에게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던 내가 그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어떻게든 대화로 해결해 봐야만 했다.
“묵랑은….”
하지만 일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던 나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월하환검무로 통증을 차단해서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내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일단 월하환검무 삼 식, 현망월의 상태를 풀어 버리기로 했다.
문득 환각 상태를 감당할 수 없어야 정상일 텐데, 계속 생명의 위협을 받느라 환각 상태에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막 현망월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순간, 온몸에 해일과도 같은 격통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화아아악!
“끄으으윽!”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았다.
내 전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른쪽 가슴이 관통당하고 허벅지 삼 분의 일이 베인 데다, 한계를 벗어난 상태로 몸을 계속 움직여 댔으니 멀쩡했다면 오히려 이상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출혈 또한 이미 한계 이상이었던 모양이었다.
정신이 순간 흐릿해지고 있었다.
내 몸은 한순간 그대로 푹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서일의 질문에 대답하지도 못한 채였다.
털썩!
그러자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서일의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뭐야?”
그 소리를 끝으로 의식이 사라졌다.
***
독안괴검 서일은 바로 직전까지 암혈향과 멀쩡하게 싸우고 있던 선우진이 갑자기 픽 쓰러져 버리자 인상을 확 찡그렸다.
묵랑검에 관한 대답을 하기 싫어 일부러 꾀병을 부리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나운 눈빛으로 씹어뱉듯 소리쳤다.
“감히 누구 앞에서 그딴 짓을…?!”
하지만 허공섭물로 선우진의 몸을 가볍게 뒤집어 올린 서일은 곧 그가 진짜로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피를 너무 흘려 안색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된 데다 온몸이 만신창이였던 것이다.
그러자 약간 놀란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호오, 이 몸으로 그렇게 싸우고 있었다고?”
서일은 살짝 감탄하고 말았다.
엄청난 정신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래 남을 잘 인정해 주는 성격이 아닌 그는 곧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흥, 미련하기 그지없는 놈이로군.”
서일은 잠시 짜증 섞인 표정으로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죽든 말든 그냥 내버려 두고 가고 싶긴 한데, 아직 그에게 물어볼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그의 대답을 들으려면 어떻게든 살려 놓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선우진의 묵랑검을 들고는 잠시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하지만 검에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몇 번 허공에 휘둘러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휘리릭!
그것은 그저 잘 드는 검에 불과했다.
결국 한숨을 내쉰 서일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공중에 떠 있던 선우진을 바닥에 천천히 눕혀 주었다.
“일단 살려 놓기는 해야겠군. 귀찮은 놈 같으니.”
서일은 무척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처를 소독할 때 써야 할 술도 아까웠고, 상처에 발라 줄 금창약도 아까웠다.
무엇보다 자신의 시간을 이딴 놈에게 써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서일이 사나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를 이렇게 귀찮게 만들다니, 아무것도 모르기만 해 봐라. 아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말겠다.”
물론 어떤 대답이 나온다고 해도 살려 둘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서일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허공섭물로 선우진의 옷을 벗겼다.
그러곤 역시 허공섭물로 독한 술을 부어 그의 상처를 소독해 줬다.
마지막으로 금창약을 바른 후 갖고 있던 천으로 부상 부위를 묶어 주기까지 했다.
그런 후 다시 짜증 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처를 이 정도 건드렸으면 죽도록 아플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아무래도 진짜 거의 죽기 직전인 모양이군. 이젠 영약까지 먹여 줘야 하나?”
서일은 잠시 망설였다.
자신도 가지고 다니는 영약이 있기는 하지만 이놈을 살리기 위해서 쓰기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서일은 문득 선우진의 봇짐을 뒤져 보다 표정이 좀 밝아졌다.
“호오, 영약을 몇 개씩이나 갖고 다닌다고? 꽤 잘 사는 놈이었나 보군.”
그러고는 선우진의 짐에 있던 영약 두 개를 무작위로 골라 허공섭물로 띄운 뒤 으깨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곤 물과 섞어 선우진의 입으로 흘려보내 줬다.
전설의 경지라는 허공섭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손처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까지 마무리 지은 서일은 이제 귀찮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도 죽는다면 시신도 아주 가루로 만들어 주마.”
하지만 잠시 후 창백한 얼굴의 선우진은 덜덜 떨기 시작했다.
피가 모자라 체온이 내려간 모양이었다.
그러자 서일은 이를 갈며 선우진의 옆에다 모닥불을 피워 주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짜증이 날 수가 없었다.
***
정신을 잃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 들린 소리는 누군가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제야 눈을 떴구나. 감히 본좌를 꼬박 하루 동안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너는 반드시 내게 제대로 된 얘기를 들려줘야만 할 것이다.”
반쯤 뜬 눈동자만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독안의 무사 한 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암혈향과 독안괴검 서일.
엄청난 통증과 출혈.
문득 내 몸 상태를 관조해 봤다.
그러자 여전히 좋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정신을 잃기 전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옷이 벗겨져 있고, 환부가 천으로 감겨 있었다.
느낌 상 금창약도 발라져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내부를 관조했을 때 낯선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면 영약도 먹은 것 같았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독안괴검 서일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나를 살린 것이었다.
나는 일단 입을 벌려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과 목이 바싹 말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으으으….”
내 목에서 잔뜩 쉰 신음 소리가 나오자, 그는 기가 막히다는 듯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하!”
그러자 그 순간 그의 옆에 있던 수통이 갑자기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러고는 휙 흔들리며 내게 물을 뿌려 버렸다.
촤아악!
그가 짜증 난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그의 짜증 난 목소리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매우 신기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허공섭물로 수통을 들어 뿌린 것도 놀라웠지만, 대충 뿌린 듯했던 물이 신기하게도 허공에서 한 줄기로 모이며 내 입속으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꿀꺽, 꿀꺽!
생명수처럼 시원하게 느껴지는 물이었다.
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걸 마시는 동안 주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 봤다.
지금 상황, 그리고 그의 목적과 내가 취해야 할 태도 같은 것들을….
‘아까 분명히 묵랑검에 대해 내게 물었었지. 그 대답을 듣기 위해 굳이 날 살린 건가?’
내 묵랑은 현재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서일의 손에 들려 있는 상태였다.
‘묵랑을 탐내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하지만 그것만으론 저렇게 귀찮아하면서까지 나를 살린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