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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65화 (152/359)

165화 인연

부스럭!

수풀을 헤치고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 순간, 나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암혈향을 만나게 된다면 내 생명은 십 할의 확률로 종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례 좀 하겠소!”

“!”

하지만 천만다행히도 수풀을 헤치고 나온 사람은 암혈향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 사람도 아니었다.

낭인으로 보이는 세 명의 무사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던 것이었다.

그중 선두에 선 무사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연기를 보고 왔소이다. 혹시 모닥불을 좀 같이… 어이쿠? 어디 다치신 모양이구려?”

정중하게 말을 걸고 있는 그의 얼굴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장 무사님?”

그는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몇 개월 전, 나를 전선에 데려다주다 효귀와의 싸움에 까지 휘말렸던 의리 있는 낭인 무사인 장 무사였던 것이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얼굴 또한 익숙했다.

“그리고 공 무사님, 종 무사님도?”

그 두 사람은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낭인을 은퇴한다고 말했던 공 무사와, 늘 과묵했던 종 무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내가 멍하니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그들의 표정 또한 묘해졌다.

그리고 잠시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살피던 그들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설마… 선우 공자?”

“오오?! 아니, 정말 선우 공자가 맞구려! 살이 완전히 쏙 빠져서 못 알아봤소! 정말 엄청난 미남이 됐구려!”

그들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는 반가운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들이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반가움을 표시할 때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황급히 소리쳤다.

“오시면 안 됩니다!”

내 다급한 외침에 그들이 깜짝 놀라 멈췄을 때 서둘러 설명했다.

“저는 지금 암혈향에게 노림을 받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야 독안괴검 서일이 함께 있었으니 오지 못했지만, 이제 그가 갔음을 알았으니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겁니다! 여러분은 어서 여기서 벗어나셔야만 합니다!”

설사 그들 모두가 절정 고수라 해도 암혈향의 상대는 될 수 없을 것이었다.

하물며 이류에 불과할 저들의 실력으로야….

저들이 지금 나와 함께 있다간 순식간에 개죽음당하고 말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때도 나를 지켜 주려 노력했던 자들,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러자 그들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아, 암혈향이라고 하셨소?! 그리고 독안괴검 서일이라고? 그럼 아까 들렸던 그 엄청난 목소리가…?”

“맞습니다! 그 목소리가 바로 독안괴검 서일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이제 자리를 비켜 줬음을 암혈향에게 알려 줬던 겁니다! 그러니 이제 곧…!”

내 말을 들은 그들은 놀란 얼굴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무려 암혈향과 서일의 이름이 나왔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 후에 그들이 보인 행동은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

장 무사가 갑자기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럼 선우 공자는 지금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겠구려?”

그러자 공 무사 또한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희가 적당한 때에 다시 만났군요. 이제야 공자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다, 형님.”

그들의 옆에 선 과묵한 종 무사 또한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그들의 반응에 그만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그들의 말뜻이야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목숨을 걸고 나를 도와주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말뜻을 알아챈 나는 더욱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상대도 아닌 암혈향이었다.

그들이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나는 다급한 표정으로 그들을 만류했다.

“장 무사님, 종 무사님, 공 무사님. 마음만으로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암혈향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힘으로는 절대 상대가…!”

그때였다.

갑자기 장 무사가 도를 뽑아 들었다.

스릉!

그리고 ‘합!’ 기합을 넣자 그의 도에서 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략 일류 초입의 무인이 뿜을 수 있는 미약한 도기였다.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이류에 불과했던 그는 그사이 드디어 일류의 경지에 올랐던 모양이었다.

다른 때 만났더라면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도기를 본 지금, 내 눈은 더 안타까워지고 말았다.

저런 수준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그를 말려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보이오, 공자? 난 꿈을 이뤘다오.”

그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예?”

그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하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내 꿈은 도기를 뿜어내는 것이었소. 죽기 전까지 일류의 경지에만 오를 수 있다면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늘 생각해 왔었지. 근데 그걸 드디어 이루게 된 거요. 바로 선우 공자가 내게 준 보원심법 덕분에 말이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공 무사가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오호! 꿈을 이루셨다니 그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으시겠습니다, 형님? 거 참 신기하시구려. 마침 나도 그런데 말입니다, 하하하하!”

그 옆에 선 과묵한 종 무사 역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들이 지금 나 때문에 죽겠다고 말하고 있다는 걸.

저렇게 아무 미련도 없는 듯 환한 웃음을 지은 채로 말이다.

문득 목이 메어 왔다.

억지로 목소리를 내 다시 한번 그들을 만류했다.

“안 됩니다, 절대 안 돼요. 공 무사님은 그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집에서 가족들과 여생을 보내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가 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하! 분명 그랬었지요. 근데 막상 일류의 경지에 도달하고 나니 도저히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가 없지 뭐요. 그때 깨달았다오. 결국 나는 칼을 휘두르다 죽을 팔자인 모양이라고 말이오.”

죽음을 말하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환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한 점의 미련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인 자만이 보일 수 있는 달관한 사람의 눈빛이었다.

나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들을 만류해야 할 것이 분명한데,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장 무사가 서둘러 말했다.

“자, 시간이 없을 테니 서둘러 말하겠소. 우리들은 예전에 강적들을 만나 누군가 한 명을 살려야 할 때가 오면 이렇게 하기로 약속했다오. 살려야 할 한 명을 숨겨 두고 나머지 사람들이 흩어져 적들을 유인하기로 말이오.”

그렇게 말한 그가 숲 뒤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공자는 이 근처에 숨어 있으시오. 우리는 지금부터 이쪽 방향으로 흩어져 도주하겠소. 마침 우리가 세 명이고 암혈향이 한 명이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몸이 좀 회복됐을 때 반대 방향으로 도주하시면 되오.”

문득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대체, 대체 왜 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그러자 장 무사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서로 마음이 통했고, 함께 사선까지 넘었으니 우리는 이미 친우가 아니오.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하겠소?”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과 헤어지던 날 웃으며 그들에게 해 줬던 말이었다.

근데 지금 이 순간, 그들이 내게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친구이니 목숨을 걸어도 상관없다며….

가슴이, 심장이 메어질 것만 같았다.

***

나는 서둘러 움직이기로 했다.

그들의 마음이 저렇게 굳건하다면 더 이상 말리느라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그거야말로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만드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이 벌어 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었다.

월하환검무 이 식.

현월 발동.

화아아아악!

월하환검무를 발동해 통증을 잠시 차단한 나는 최대한 흔적 없이 움직여 근처의 물이 있는 곳을 찾았다.

지금부터 물속에 들어가 몸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먼저 물속에서 호흡할 속이 빈 갈대를 하나 챙긴 나는, 물속에 들어가기 전 그간 아껴 놨던 생사괴의의 생사환을 섭취했다.

생사괴의 마종환이 소림의 소환단보다 낫다고 자부한 바로 그 생사환이었다.

이제 그 효과에 기대를 걸어 봐야 할 시점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마 어르신.’

마음속으로 기원한 후 그것을 빠르게 섭취했다.

그리고 물에 들어가기 전, 문득 세 명의 무사들이 가고 있을 방향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 숨을지 자신들에게 얘기해 주지 말라며 먼저 세 방향으로 흩어져 이동한 상태였다.

흙을 퍼 담은 자루를 들어 무게를 늘리고, 칼로 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내 핏자국을 남기면서 말이다.

‘부디….’

나는 그들이 제발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가 속이 빈 갈대를 입에 문 채 호흡하기 시작했다.

이제 혼원무극공을 운기할 차례였다.

“후우우우.”

깊은 호흡을 내쉬며 운기에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나머지는 하늘에 빌어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암혈향은 원래 멀리 가 있지 않았었다.

독안괴검 서일이 어떤 자인지 익히 들어왔기에 그의 용건이 끝나면 금방 가 버릴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과 달리 서일은 선우진의 옆에서 하루 이상을 머무는 모습을 보였다.

암혈향으로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살수인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좀 더 길게 보기로 하고는 거리를 더 벌려 서일의 감지 범위에는 들어가지 않되 그들의 종적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을 때, 드디어 그는 기다리던 시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서일이 자신이 간다는 걸 알려 주기라도 하듯 큰 소리로 외치며 떠나 버렸던 것이었다.

- 와하하하하! 잘 있거라, 하하하하하!

자신이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저런 짓까지 하다니 듣던 대로 비열한 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가 그냥 떠날 거라는 사실은 충분히 암혈향의 예상 안쪽에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노골적인 그의 행동에 암혈향은 오히려 약간의 의심을 갖게 되고 말았다.

‘그가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검성과의 대결이 코앞이라고 했으니 빨리 가야만 하겠지. 하지만 선우진의 옆에서 저렇게 시간을 끌었다는 건 좀 수상하군.’

약간의 수상함을 느낀 암혈향은 서일이 떠난 후에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노리고 함정을 팠을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우진과 오랜 시간 함께 있었던 것을 보면 뭔가 둘 사이의 거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서일의 모습에, 암혈향은 드디어 그가 완전히 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수들의 왕이 다시 그림자가 되어 사냥감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스스스슥!

그가 서일과 선우진이 머물렀던 모닥불가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거기서 암혈향은 그가 쫓는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찌푸려야만 했다.

‘세 명이라…. 이상하군. 분명 나중에 합류한 것 같은데 세 방향으로 나뉘어 이동하고 있어.’

그들의 흔적 외에 선우진이 이동한 흔적은 따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세 명의 흔적 모두 무언가를 들은 듯 갑자기 발자국이 깊어진 상태였다.

아마 자신을 혼란시키기 위해 무거운 것을 들고 이동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셋 모두 핏자국을 남겨 놨군. 대놓고 자신들을 따라오라고 끌어들이고 있어.’

거기까지 파악한 암혈향은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얕은수를 쓰기는 했지만 발자국의 깊이와 흔적을 보건대 모두 기껏해야 일류 정도의 실력들,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저런 수까지 쓴 것을 보면 아마도 선우진은 지금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모양이었다.

하긴 그때 입은 부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기는 했다.

결국 암혈향은 여유 있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셋을 다 잡아도 얼마 걸리지 않겠군. 그러고도 선우진이 없다면 놈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암혈향은 먼저 가장 오른쪽으로 난 흔적을 향해 다시 유령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묵한 종 무사가 향한 방향이었다.

***

같은 시각.

속이 빈 갈대로 호흡하며 물속에 숨어 있는 선우진은 월하환검무 비월의 상태에서 혼원무극공을 운기하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 아랫배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열기가 온몸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이건…?!’

선우진은 처음 느껴 보는 그 엄청난 열기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열기였건만, 몸을 파괴하는 극양의 기운은 또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몸의 기운을 보호해 주고 다친 곳을 회복시켜 주는 소양의 기운이었다.

아무래도 이게 생사환의 기운인 모양이었다.

생사괴의 마종환의 생사환이 그 엄청난 약효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엄청난 약력에 선우진은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군! 역시 괴의 어르신!’

쏴아아아아!

해일처럼 밀려든 약의 기운이 손상된 근육과 뼈를 순식간에 회복시키고 있었다.

삼분지 일이나 찢긴 허벅지와 관통당한 오른쪽 가슴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치 시간을 빨리 돌린 듯 손상된 몸이 급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생사환의 신비한 약효에 경탄하며 선우진은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괴의 어르신, 감사합니다. 하지만 더 빨라야 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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