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소식-1
암혈향이 죽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세 명의 낭인 무사를 찾는 것이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었고, 엄청난 싸움으로 기력이 쭉 빠진 상태였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그들을 찾아 나섰다.
‘제발, 제발!’
현실적으로 그들이 살아 있기는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암혈향이 보여 준 실력이라면 나와 다시 만나기 전까지 충분히 세 명 모두를 죽일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 판단 따위는 다 던져 버렸다.
그저 그들이 부디 살아 있기만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장 무사님! 종 무사님! 공 무사님!
내공을 실어 소리치며 그들을 찾아다녔을 때 제일 먼저 화답해 준 것은 공 무사였다.
“선우 공자?! 정말 공자시오?”
그는 아직 암혈향과 조우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완전히 무사한 모습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의 무사함을 확인하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공 무사님! 무사하셨군요!”
“선우 공자! 왜 여기로 오신 거요?! 몸은 어떻게…?!”
“괜찮습니다! 이제 다 괜찮아요!”
그가 살아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눈물이 왈칵 솟구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그와 편안히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장 무사와 종 무사도 찾아내야만 했다.
나는 공 무사를 업고 그가 알려 준 방향으로 질풍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장 무사와 종 무사가 도주했다는 방향 쪽이었다.
하지만 방향을 아는 것만으로 사람을 찾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간신히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슴이 관통당한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장 무사를 말이다.
“장 무사님!”
“형님!”
그는 이미 죽은 것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맥을 짚어 본 나는 아직 그의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공 무사를 향해 소리쳤다.
“살았어! 살아 있어요! 아직 맥이 뛰고 있습니다!”
“오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무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를 얼싸안았다.
내 예상으론 아마 암혈향이 일부러 죽이지 않고 숨을 붙여 놨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세 방향 모두에서 나를 찾지 못할 경우 다시 심문해 볼 생각으로 말이다.
천만다행이었다.
그의 의도야 불순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죽은 그를 다시 깨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최대한 빨리 장 무사를 지혈하고는 갖고 있던 영약을 짓이겨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공 무사에게 말했다.
“공 무사님, 저는 종 무사님이 간 쪽을 찾아보겠습니다! 장 무사님을 돌봐 주세요!”
“알겠소! 종우 그 녀석도 꼭 찾아주시오!”
만약 암혈향이 진짜 그런 생각으로 장 무사를 죽이지 않은 거라면 아마 종 무사도 살아 있을 것이었다.
그 역시 어딘가에서 장 무사와 비슷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 그를 빨리 찾아내야만 했다.
방향을 보건대 그가 가장 먼저 암혈향에게 당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쯤 과다 출혈로 위험한 상태일 확률이 높았으니까.
잠시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간 방향만 추적해 그를 찾아내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종 무사님!”
내가 간신히 그를 찾아냈을 땐 그도 역시 예상대로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이미 바닥에 흐른 피의 양이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종 무사님!”
달려가 그의 몸을 확인해 봤다.
하지만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그의 몸에선 맥박이 뛰지 않고 있었다.
체온도 점점 차가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절박한 목소리로 그를 깨우려 해 봤다.
“종 무사님! 종 무사님! 정신 차리세요! 종 무사님!”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늘 과묵한 표정으로 순박한 미소를 지어 주던 그가 지금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익!”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심장에 공력을 주입해 볼 생각이었다.
심장만 다시 뛰게 할 수 있다면 죽었던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를 책에서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묵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만두게. 그 방법은 충격으로 심장이 멈췄을 때나 쓰는 방법이지, 과다 출혈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방법이라네.
‘예?! 하,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다니, 그의 말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때 그가 다시 말했다.
- 내 말을 믿게. 내 스승님께선 의술에도 뛰어나셨기에 나 역시 의술을 어느 정도 익혔었네. 그래서 하는 얘길세. 그를 구하려면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되네.
그의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지금 분명 종 무사를 구하려면 그 방법으론 안 된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는 건 다른 방법은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황급히 그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러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일단 지혈부터 하게. 그리고…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방법이 있다면 그에게 모자란 피를 공급해 주는 수밖에 없네.
그가 말한 방법은 내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요상한 방법이었다.
‘피를… 공급해 준다고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피를 먹이기라도 하란 말인가?
하지만 피를 먹었다고 해서 피의 양이 늘어난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러자 그가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 그렇네. 인위적으로 그의 혈관을 통해 몸속에 피를 주입해 주는 방법일세. 이곳에서 갑자기 행하기는 쉽지 않은 방법이고 그걸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네. 피는 사람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피가 있고 그렇지 않은 피가 있거든. 지금은 자네 피를 줄 수밖에 없을 텐데, 만약 자네의 피가 그에게 맞지 않는 피라면 그는 자네가 준 피 때문에라도 반드시 죽게 되고 말 걸세.
피를 혈관에 공급해 준다.
그 말은 그래도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적어도 직접 혈관에 피를 넣어 주면 모자란 피를 채울 수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더구나 맞는 피와 그렇지 않은 피가 있다는 말이 오히려 그의 말에 더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피를 넣어 주되 그 피가 그에게 맞아야만 살 수 있다는 말이지?’
잠시 그의 말을 되새긴 나는 바로 되물었다.
‘피를 안 주면 그는 어차피 죽는 것이 아닙니까?’
- 그렇지. 그러니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긴 하네.
‘그럼 더 말할 것도 없겠군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나는 묵랑의 지시에 따라 종 무사의 상처를 지혈한 후, 가지고 있던 금자의 금을 약간 떼어 내공을 이용해 아주 얇고 길쭉하게 만들었다.
그러곤 검강을 아주 가늘게 뽑아 그 금침의 안에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피를 주입할 관이었다.
묵랑이 계속 말했다.
- 그의 체온이 이제 막 식고 있는 걸 보면 혈행이 멈춘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걸세. 그러니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일세. 그 금관을 불로 지져 소독한 후 먼저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자네의 피를 채우게. 혈관에 공기가 들어가면 죽게 되거든. 그리고 그것을 그의 팔에 보이는 푸른 핏줄에 정확히 꽂아야 하네. 그런 후 내공으로 자네의 피를 그 안으로 밀어 넣게.
나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가 말한 것을 완벽히 수행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손가락의 피를 금관을 통해 그에게 밀어 넣기를 잠시, 묵랑이 다시 말했다.
- 이제 그만. 잠시 상태를 지켜보세. 이제부터는 자네 피가 그에게 적합하기만을 빌 수밖에 없네. 이제 심장에 공력을 주입해 혈행을 재개하도록 해 보게.
간절한 마음으로 묵랑이 시키는 것을 수행했다.
‘제발, 제발. 종 무사님, 제발.’
그렇게 간절히 빌며 잠시 시간을 보냈을 때였다.
나는 마침내 종 무사의 얼굴에 천천히 핏기가 돌아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맥박 또한 안정적으로 뛰기 시작한 상태였다.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되, 됩니다! 됐어요! 검신 어르신! 정말 됐습니다!”
- 하하하하! 정말 다행이로군! 확인도 해 보지 않고 공급한 피가 사람을 살리다니, 자네들이 정말 인연은 인연인 모양일세! 하하하하!
그 또한 무척 뿌듯한 모양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웃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두 손을 꼭 모으고 하늘에 감사했다.
나에게 삶을 한 번 더 되돌려 준, 그리고 묵랑을 만나게 해 준 하늘에게 말이다.
잠시 묵랑과 함께 잠시 기쁨을 나누던 나는 다시 종 무사에게 피를 공급해 주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으니 충분한 양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결국 종 무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암혈향을 해치우고 살아남은 것보다 훨씬 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공 무사와 나는 각각 들것을 만들어 장 무사와 종 무사를 싣고는, 인근 금사에 위치한 의원으로 두 사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름 명의로 소문났다는 의원에게서 요양만 잘하면 두 사람 다 건강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답도 얻을 수 있었다.
정말 너무나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이것 참, 어떻게 빚을 좀 갚을까 했더니 오히려 더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의원의 방에 누워 있는 장 무사가 기운 없는 얼굴로 웃으며 내게 한 말이었다.
그 옆에는 그보다 좀 더 상태가 안 좋은 종 무사가 아직 창백한 얼굴로 역시 미안한 듯 웃음 짓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의원의 후원에 있는 별채 하나를 통째로 빌려 두 사람만 그곳에서 치료받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금 방 안엔 나와 세 낭인들밖에 없었다.
돈이 꽤 들었지만, 예전에 흑상방을 털며 부자가 된 내게는 전혀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얼마 전 사천살문의 문주가 숨겨 놓은 재산까지도 몽땅 털었지 않았던가.
피식 웃으며 대꾸해 줬다.
“꿈도 크십니다. 제게 빚을 갚으실 꿈을 꾸셨다니. 이번 기회에 아예 그런 헛된 꿈은 꿀 수조차 없게 해 드려야겠습니다.”
내가 이들을 위해 돈을 쓴 곳은 별채를 빌리는 데만이 아니었다.
가지고 다니던 영약을 이번에 다 써 버렸기에 이들에게 줄 영약을 또 왕창 구입했던 것이다.
거의 금사 인근에 나와 있는 영약을 몽땅 싹쓸이 한 수준이었다.
물론 비룡십삼대로 돌아가면 칠 조의 창고에 영약이 엄청 쌓여 있긴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서 가져올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소환단급의 영약이 아닌 다음에야 별로 부담이 되는 가격도 아니고 말이다.
남아나는 게 돈인데 굳이 아낄 필요는 없었다.
그것들을 몽땅 의원에 맡겨 이들의 치료에 써 달라고 부탁해 놨으니, 이들이 회복되고 나면 아마 예전보다 훨씬 건강한 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뿌듯했다.
‘음, 돈 쓰는 재미가 이런 거로군.’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만족해하고 있을 때, 장 무사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공자,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잠깐 간단한 치료만 받았어도 금세 나았을 텐데요.”
그는 무척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일부러 부담 갖지 말라고 장난치듯 대꾸해 줬는데도 여전히 저렇게 미안해하는 것을 보면, 그는 천상 남에게 빚지고는 못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대답해 줬다.
“장 무사님, 모르시겠습니까? 빚을 진 건 오히려 제 쪽입니다. 세 분께서 목숨을 걸고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제 삶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니 세 분은 세 분의 가장 값진 것을 걸고 제 가장 값진 것을 구해 주신 게 되는 거지요. 근데 어찌 고작 이런 재물 따위로 빚을 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문득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저를 구할 때 말씀해 주셨듯이 우리는 이미 친우가 아닙니까? 장 무사님께선 저를 친우를 구할 때조차 돈을 아까워하는 파렴치한 놈으로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때론 여러 마디의 말보다 한 점 체온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더 마음을 잘 전할 때가 있었다.
아마도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었다.
내가 그의 손을 잡자 그는 대답 대신 내 손을 꼭 쥐며 그의 마음을 전했다.
깊은 호감과 감사의 마음이 체온을 타고 전달되고 있었다.
그 후, 우리는 한결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전선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간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무척 궁금해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번 암혈향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무척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렇게 됐던 겁니다.”
“하아, 세상에는 정말 기인이사가 많구려. 살수들의 왕이라는 암혈향을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기인이 있었다니 말이오.”
차마 묵랑의 비밀에 대해 얘기를 할 수는 없었던 나는, 그들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인이 나타나 암혈향을 죽이고 나를 구해 줬다고 말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내 몸으로 했던 일들을 마치 옆에서 지켜본 양 얘기해 줬는데 그게 좀 묘한 기분이었다.
그때 공 무사가 문득 내게 물었다.
“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고인이 독안괴검 서일은 아닐까요?”
“…예? 누구라고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나는 그만 표정 관리도 못 한 채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공 무사가 다시 말했다.
“아니, 암혈향을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자가 흔할 리는 없잖소? 분명 절대자 십오 인 중 한 명일 텐데 그렇다면 얼마 전까지 근처에 있었던 독안괴검이 아니겠냐는 말이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줬다.
“절대 그자일 리가 없습니다. 제가 같이 있어 봤기에 장담할 수 있는데, 그자는 그럴 능력이 된다 해도 절대 그런 행동을 한 인물이 아닙니다.”
“흠, 그렇소?”
공 무사가 미심쩍은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자 누워 있던 장 무사가 말을 보탰다.
“그래, 나도 선우 공자의 말이 맞을 것 같군. 공자가 함께 있어 봤으니 잘 알지 않겠나? 게다가 서일 그자는 곧 검성 어르신과 대결을 해야 하지 않는가? 아마도 바로 그곳으로 갔을 걸세.”
“아, 하긴 그도 그렇겠군요.”
장 무사의 말에 공 무사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이해가 안 된 것은 내 쪽이었다.
“…예? 장 무사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서일이 누구와 대결을 한다고요?”
그러자 그가 오히려 놀란 눈빛으로 내게 되물었다.
“설마 못 들으셨소? 지금 무림에 퍼진 가장 유명한 얘기인데 말이오? 독안괴검 서일이 얼마 전 천의검성 해운백 대협께 도전을 했다오. 그래서 비룡대 본부에서 대결을 한다고 했었는데 그날이… 아! 그날이 바로 오늘이구려!”
“아, 그러고 보니 정말 오늘이 맞습니다! 벌써 날이 그렇게 됐군요! 캬아, 내가 그 광경을 직접 가서….”
“나도 꼭 그 광경을….”
그들이 뭐라고 뭐라고 말을 했지만 그 뒷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에 바로 생각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괴검이 검성 어르신께 도전을 했다고?’
그런 중요한 소문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너무 선우세가의 일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소문들에 소홀했던 모양이었다.
‘서일이 검성 어르신께 도전을?’
이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괴검 서일이 검성 어르신께 도전하다니, 그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을 직접 만나 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서일 그자는 절대 검성 어르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서일도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었다.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고, 혹시 진 상대가 나중에 보복할까 봐 모두 죽여 버리곤 했던 그 겁쟁이가 패배할 것이 뻔한 도전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가 검성 어르신께 도전을 했다는 건 그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의 계획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 다른 이 또한 내가 알고 있는 그자일 것이 분명했다.
주먹을 불끈 쥐며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제갈지강!’
무림맹의 군사이자 현재 천하제일의 지자라고 불리고 있는 인물.
심지어 그자는 검성 어르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가 아니던가?
그런 제갈지강이 실패할 것이 뻔할 계획을 짰을 리가 없었다.
서일 또한 질 것이 뻔할 싸움을 절대 할 리가 없고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일이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놨을 것이 뻔했다.
‘이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검성 어르신은 청연 소저의 아버님이란 점을 떠나 내가 처음으로 만난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셨다.
아버지보다도 먼저 내게 아버지 같은 느낌을 주셨던 진짜 어른 말이다.
그러니 만약 그분이 제갈지강의 함정에 빠지신 것이 맞다면 절대 이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세 무사들에게 급히 사과했다.
“세 분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가 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의아한 눈빛으로 시선을 교환했던 세 사람은 바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아무래도 이 일과도 뭔가 연관이 있으신 모양이구려. 어서 가 보시오, 공자.”
“맞소. 우리 걱정은 절대 하지 않으셔도 되오. 이미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다오.”
“…고맙소.”
그들의 이해에 마음 편히 떠나려던 나는 문득 세 사람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 내 짐에서 서신을 꺼냈다.
아버지가 써 주신 당 가주에게 보여 줄 서신이었다.
이것만큼은 직접 전해 주고 싶었었다.
그간 선우세가에 있는 동안 깨닫게 된 내 마음을 제대로 얘기해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세 분께 부탁드릴 것이 좀 있습니다. 몸이 회복되신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