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180화 (167/359)

180화 혈마인

그때, 해청연이 혈마와 알 수 없는 내기를 했다며 자신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구유음마 지기음은 부하를 시켜 나서유와 삭무흔을 데리고 숲 멀리까지 나온 후 그들의 점혈을 풀어 줬었다.

그리고 그 부하는 이렇게 말했었다.

‘지존께서 명하셨으니 감히 너희를 공격하는 혈교도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경고하신 대로 빨리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이성이 없는 마인들에겐 지존의 명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또한 다시 돌아올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말거라. 검성의 딸이 너희를 위해 했던 희생을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런 후 그는 다시 유령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삭무흔과 나서유는 함께 비룡대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었다.

적어도 한 시진 정도까지는 그랬었다.

하지만 한 시진쯤 지났을 때, 삭무흔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는 나서유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 소저, 여기서부터는 혼자 돌아가시오.’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을 통해 그의 결심을 눈치챈 나서유가 그를 만류했다.

‘삭 오라버니, 그러지 마세요. 저도 청연이를 구하고 싶지만 혈마와 함께 있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니 차라리 돌아가서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삭무흔의 결심은 굳건했다.

‘나는 돌아가신 스승님께 목숨을 걸고 청연이를 지키겠다고 맹세했소. 그러니 설사 내가 죽는다 해도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소. 부디 이해해 주시오.’

‘삭 오라버니….’

그들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숲에서 누군가가 웃으며 튀어나왔다.

‘켈켈켈켈! 사정이 딱하구나!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니 이 두당 어르신께서 너희를 좀 도와주마!’

그렇게 나타난 이는 왜소한 체격에 추레하게 생긴 외팔이 남자, 바로 지금 나서유의 눈앞에 있는 두당이었다.

갑작스러운 두당의 등장에 깜짝 놀란 삭무흔과 나서유는 바로 검을 뽑아 그에게로 겨눴다.

하지만 그의 눈을 본 순간 나서유는 문득 정신이 어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서야 기억할 수 있었다.

흑혈환마 두당이 혈교 제일의 섭혼술을 가진 자라는 것을 말이다.

나서유의 기억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하지만 두당의 표정을 보건대 아마도 이야기의 끝은 거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나서유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두당에게 물었다.

“당신 설마 우리에게 섭혼술을 걸어서…?”

그러자 두당이 너무 신이 난다는 듯 환한 표정으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헤헤헤헤헤! 제법 눈치가 빠르구나! 아까도 말했지 않느냐? 너희는 너희 발로 되돌아왔다고 말이다.”

“그, 그런….”

나서유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할 때 두당은 음흉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너라면 그런 것보단 좀 더 발전적인 쪽에 관심을 갖겠구나. 예를 들면 이제부터 너희가 어떻게 될 거라든가 하는 그런 것들에 말이다.”

그 말에 나서유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릴… 어떻게 할 거죠?”

그러자 두당이 기다렸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는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우리는 너희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마인의 육체를 가진 절정 고수로 말이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혈마인이라고 부르기로 했지.”

“…혈마인이라고요?”

“그래, 혈마인. 이제까지의 마인들은 모두 혈마인을 만들기 위한 실험체에 불과했었다. 오래 걸린 실험이었지. 무려 십여 년의 연구 끝에 우리는 드디어 그 완벽한 마인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만 것이다!”

나서유는 이제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완벽하니 어쩌니 해도 결국 자신들을 마인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아닌가.

마인이 되어 동료들을 공격할 자신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해 견딜 수가 없었다.

두당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창백하게 질린 나서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수백 수천 번의 실패를 통해 혈마인을 만들기 위해선 젊은 절정의 무인이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었다. 그래, 바로 너 같은, 그리고 저 녀석 같은 젊은 절정 무인 말이다. 크흐흐흐흐흐! 그러니 내가 너희를 어떻게 놓칠 수가 있었겠느냐? 으흐흐흐흐! 으하하하하하!”

광소를 터트리는 두당을 보며 나서유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짙은 공포에 잠식되어 소리쳤다.

“안 돼! 살려 줘! 제발 누가 좀 살려 주세요!”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아무리 크게 소리 질러 봐도 아무도 오지 않았고, 두당 또한 전혀 상관없다는 듯 계속 크게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웃음을 멈춘 두당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시체 놈이 돌아오는 대로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를 좀 해 볼까? 거기 사내놈아, 너도 이미 정신을 차렸다는 걸 알고 있다. 마혈을 풀어 줄 테니 둘이 심심하지 않게 대화나 하고 있거라.”

그렇게 말한 두당은 순식간에 방에서 나가 버리고 말았다.

나서유는 그가 나가고 나서도 크게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누구 없나요?! 제발 우리를 좀…!”

그때였다.

문득 삭무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용없는 일이오, 나 소저.”

“삭 오라버니!”

아까 두당이 말했듯 그도 진작에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삭무흔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아무래도 혈교의 소굴인 것 같소. 그러니 소저가 소리를 질러도 도와줄 사람은 오지 않을 것이오. 오히려 아까 두당의 경고대로….”

그때였다.

밖에서부터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흐흐흐! 여자 소리다! 여자 비명 소리!”

“으하하하! 싱싱한 여자의 비명 소리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하지만 저 안의 여자는 환마께서 데려오신 여자인데?”

“헹! 무슨 상관인가? 환마께선 방금 창고로 내려가셨는데! 어차피 재료로 쓸 여자에게 손을 좀 댄다고 무슨 일이야 생기겠어?”

“으흐흐흐, 그렇겠지?”

바로 방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들이었다.

나서유는 자신이 지른 비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깨닫고는 깜짝 놀라 바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까 비명 소리를 듣고 짐승이 될 자들만 가득하다고 했던 두당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제 입을 다물었다고 해서 그들이 그냥 가 버리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으흐흐흐흐! 저기 있구나!”

“오오오! 예쁘다! 예쁜 여자야!”

“크하하하하! 이게 얼마 만에 본 여자냐!”

“드디어 오늘 몇 개월 만의 한을 풀겠구나!”

“내가 먼저다! 내가 먼저!”

한 무리의 마두들이 서로 앞을 다퉈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나서유 자신을 노리고.

나서유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져 버리고 말았다.

“아, 안 돼.”

나서유의 머릿속에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전선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두에게 납치당해 당할 뻔했던 기억이.

그땐 다행히도 설풍이 그녀를 구해 줬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설풍은 없었다.

그가 이곳까지 올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이제 고개를 움직일 수 없는 그녀의 시야 안에 다섯 명의 마두들이 들어왔다.

나서유를 빙 둘러싼 그들은 모두가 똑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탐욕에 가득 찬 짐승의 눈빛이었다.

나서유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안 돼! 저리 가! 도와줘요!”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그들을 더 흥분시킬 뿐이었다.

마두들이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히히히히, 비명 소리가 너무 좋구나!”

“아주 짜릿해! 너무 좋아!”

“으하하하하! 지금도 좋은데 이제 얼마나 더 좋아질까?”

옆에 있던 삭무흔 또한 나서유를 위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멈춰라! 마두 놈들아! 우리는 흑혈환마 두당이 데려온 사람들이다! 너희가 이런 짓을 하면 나중에 두당에게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그 얘기에도 마두들은 그저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크헤헤헤헤! 걱정도 팔자로구나! 환마 어르신께선 이런 거 하나하나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맞다! 시마 어르신이라면 모를까!”

“근데 시마 어르신은 아까 아예 무황총에서 나가신 것 같더란 말이지!”

“크헤헤헤헤! 그럼 거리낄 것이 없겠구나!”

“잔치로다!”

그들은 이제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나서유에게로 다가왔다.

나서유의 운명은 이제 풍전등화와도 같은 상태였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설풍! 살려 줘요! 설풍!”

하지만 설풍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나타난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문득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뭐 하는 거죠?”

젊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들려온 그 목소리에 마두들은 모두 행동을 멈추고는 화들짝 놀라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 화난 듯한 목소리가 마두들에게 물었다.

“뭐 하는 거냐고 묻잖아요? 설마 지난번에 나한테 하려던 나쁜 짓을 또 하려는 건가요?”

그러자 마두들이 찔끔한 표정으로 서둘러 변명했다.

“아, 아니. 우리는 그저 잠시 살펴보려 한 것뿐이다.”

“그, 그래! 그리고 너한테 하려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이것들은 우리 적이란 말이다!”

“맞다! 너한테 하려는 것도 아닌데 왜 참견하는 거냐?!”

하지만 목소리의 여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버지께선 그들이 내 친구가 될 사람들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당신들은 지금 내 친구에게 나쁜 짓을 하려는 거예요.”

“아, 아니! 그건 나중 얘기지. 지금은 아직…!”

그때였다.

여인이 순식간에 나서유의 옆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내 친구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했으니 내가 당신들을 죽여도 아버지께서 칭찬해 주시겠죠?”

갑자기 시야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나서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신의 여인이기 때문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의 아름다운 여인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는 듯 당당히 마두들을 바라보며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자 마두들이 화들짝 놀라 반대편으로 우르르 몰리고 말았다.

그들은 여인의 나신을 정신없이 훑으며 침을 줄줄 흘리면서도 입으론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어, 어쩌지? 그, 그냥 가야 하나?”

“아니, 그건 좀. 그냥 두세 명이 저년을 제압하고 나머지는 즐기면 안 되나?”

“큰일 날 소릴. 저년을 건드리면 환마 어르신께서 진짜 분노하실 걸 몰라서 하는 소리냐?”

“맞아. 게다가 점혈은커녕 강기도 안 통하는 년을 어떻게 제압한다는 거야?”

“제길, 그럼 설마 이대로 물러나야 한다고?”

그들이 그렇게 입으로만 의견을 교환하고 있을 때였다. 여인이 문득 두 손에서 백색 강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그것은 그녀의 나신만큼이나 눈부신 순백의 강기였다.

그러자 그걸 본 마두들이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소리쳤다.

“자, 잠깐! 간다! 간다고!”

“그래! 바로 가겠다!”

“아무 짓도 안 할 테니 멈추거라!”

“나간다! 지금 나간다!”

마두들은 순식간에 그녀를 멀찍이 돌아 방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질풍 같은 움직임들이었다.

그 움직임을 본 나서유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모두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초고수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초절정의 고수들이 아닌가 싶었다.

잠시 후, 마두들이 모두 방에서 나가 버리자 나신의 여인은 생긋 웃으며 손에서 강기를 풀어 버렸다.

그러고는 나서유를 향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반가워! 이제 곧 내 친구가 생길 거란 말을 듣고 너무 좋아서 바로 보러 왔어. 덕분에 나쁜 짓을 막을 수 있었네.”

친구가 생긴다고?

무슨 소리지?

나서유는 그녀의 말에 의문을 느꼈지만 일단 감사의 인사부터 하기로 했다.

“고마워요. 소저 덕분에 나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러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전에 저들은 나한테도 그런 짓을 하려고 했었어. 그래서 그때 내가 둘을 찢어 버렸었지. 둘이 줄어 이제 다섯이 됐는데도 아직까지 저러고 있네. 너무 걱정 마. 너도 내 친구가 되면 저들 정도는 간단히 찢어 버릴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더니 문득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삭무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근데 저 친구는 왜 눈을 꼭 감고 있는 거지? 눈을 다치기라도 한 거야?”

그러자 삭무흔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아니오. 그, 그런 게 아니라 소저가 옷을….”

아마 삭무흔이 눈을 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서유는 삭무흔이 그녀의 나신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감아 버렸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신의 여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옷? 옷이 왜? 아버지는 내 몸이 너무 예쁘다고 하셨는데? 네가 보기엔 안 예뻐? 보기 흉해서 그렇게 눈을 꼭 감고 있는 거야?”

그녀의 물음에 삭무흔은 오히려 더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소! 그러니까 그건….”

하지만 그는 마땅한 얘기를 찾기 힘든 듯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나서유는 그 모습을 보고 여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자유분방한 혈교의 여인이라고 해도 좀 이상했다.

저 여인에게는 기본적인 상식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서유가 문득 그녀에게 물었다.

“아까 우리가 당신의 친구가 된다고 했잖아요.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러자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게 궁금했구나? 그건 바로 너희가 혈마인이 된다는 뜻이야.”

“…혈마인이라고요?”

혈마인이라면 아까 두당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분명 마인의 육체를 가진 절정 고수라고 말했던….

나서유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 그럼 당신은?”

그러자 그녀가 너무나도 해맑게 대답했다.

“응, 난 혈마인이야. 첫 번째 혈마인이지. 지존을 보좌해 혈교천하를 만들 도구이기도 하고 말이야.”

나서유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자신과 삭무흔은 아마 저 여인처럼 된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옷을 홀딱 벗고 다녀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혈교천하를 위한 도구라고 말하는 저런 사람이 말이다.

나서유와 삭무흔의 마음속이 점점 절망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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