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181화 (168/359)

181화 애뇌산

선우진 일행이 애뇌산에 도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잠행을 시작한 이후 반나절 동안 단 한 번도 마인들과 부딪치지 않은 채 어느덧 수풀 사이로 우뚝 솟아 보이는 거대한 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밀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애뇌산은 거대하고 신비로웠다.

뾰족한 봉우리들이 수없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 봉우리 상부는 대부분 구름에 덮여 끝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저곳이 바로 운남제일산이라는 애뇌산, 십여 년 전 무황총혈사가 일어났던 바로 그곳이었다.

‘저곳이 애뇌산.’

일행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애뇌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묵랑이 말을 걸었다.

- 오랜만에 보는 애뇌산이로군. 덕분에 추억을 되짚을 수 있게 되다니, 고맙네.

‘애뇌산에 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어르신?’

- 아아, 나 때의 혈마와 싸울 때 와 봤다네. 아주 징글징글한 곳이었지. 산세는 험악한 데다 계곡도 깊고, 봉우리는 더럽게 높고 말일세. 지금 자네가 보는 저 뾰족한 봉우리들 사이사이가 대부분 천길 절벽이라네. 그야말로 혈교 마두 놈들 같은 산이었지.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했다.

내용상 추억이란 말로 통칭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기억 같았기 때문이었다.

‘추억이라 부를 만큼 좋은 기억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묵랑은 유쾌한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 아니, 추억일세. 저 징글징글한 곳에서 그 진득진득한 놈들과 싸웠을 때가 모두가 함께한 마지막 싸움이었거든. 형님, 친구들, 아이들까지. 그 이후론 굳이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할 상대가 남아 있지 않았지.

‘아….’

선우진은 문득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묵랑 역시 당시에 함께했던 가족과 동료들이 당연히 있었을 것임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기억과 이성을 갖고 여전히 남아 있는데, 백 년이 지나 아무런 지인들도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추억의 장소를 다시 오게 되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선우진으로선 차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묵랑은 여전히 유쾌한 목소리로 오히려 선우진을 위로했다.

-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네. 덕분에 자네라는 새로운 동료와 새로운 추억을 또 만들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과거가 즐겁다 한들 지금 만들고 있는 기억만큼 신날 수가 있겠는가? 하하하하!

선우진은 실소했다.

한때 천하제일인이었고, 심지어 지금은 고금제일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 받고 있는 그의 성품이 어떻게 저렇게 소탈하고 유쾌할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쩌면 저런 성격이기에 절대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검신은 유쾌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그리고… 나는 자네를 무척 높이 평가하고 있다네. 자네라면 내가 그 당시 아무에게도 전할 수 없었던 스승님의 절기를 이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자네만 한 재능에 성품까지 갖춘 이를 찾는다는 건, 당시 주변인 중 가장 오래 살았던 나로서도 불가능했던 일이었지.

그의 말을 들으며 선우진은 문득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전에 묵랑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자신의 진신절학은 모종의 장소에 숨겨 놨다고.

그리고 그것은 검의 시험을 통과한 자들만이 이을 수 있도록 안배해 놨다고 말이다.

그러니 지난번에 하늘 끝에 닿은 무학이라고 생각했던 묵랑검법조차도 그의 진신절학이 아니란 얘기였다.

그리고 그 검신의 진신절학을 이을 사람이 바로 자신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선우진은 설레는 가슴으로 묵랑에게 말했다.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됐을 때 반드시 그곳을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일단 묵랑검법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우선이겠지. 하지만 어쩐지 그곳을 좀 더 빨리 찾아가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드는군. 물론 그저 이미 죽은 자의 예감일 뿐일세, 하하하하!

그렇게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묵랑은 문득 다시 물었다.

- 그나저나 애뇌산은 무척 거대한 산이라네. 저곳 어디에 무황총이라는 곳이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그 질문에 선우진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도 그게 가장 걱정이긴 합니다. 지금으로선 마인들이 오는 곳을 역추적해 볼 생각이긴 한데 그게 잘될지는 모르겠군요.’

그러자 묵랑이 약간 신이 난 목소리로 제안했다.

- 그럼 내가 좀 도와주지. 애뇌산 산세는 지겹도록 봐 왔으니 대강 뭔가를 만들 만한 곳들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게다가 무황총이라…. 혈교 놈들이 만들었다기엔 어쩐지 좀 다른 냄새가 난단 말이지.

‘냄새라고 하셨습니까?’

- 뭐 그런 게 있다네. 이건 확실해지면 얘기해 주겠네.

그 후, 선우진은 다시 일행들을 출발시켰다.

저 멀리서도 높아 보이던 애뇌산이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무언가를 느낀 선우진이 급히 수신호를 보내 일행들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급히 전음을 보냈다.

- 최대한 기척을 줄이십시오!

원래 설풍에게 먼저 전음을 보내야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설풍은 전음을 보내기 전에 먼저 선우진과 함께 급히 멈춰서 은신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우진은 설풍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비사영과 다캄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아주 잠깐 사이 모두 엄지손가락을 들어 전음을 수신했음을 표시하고는 은신에 들어갔다.

하지만 일행 중 그 행동의 이유를 아는 이는 선우진과 설풍밖에 없었다.

그래서 답답했던 증칠이 선우진에게 전음을 보내려 할 때였다.

문득 설풍이 먼저 증칠에게 전음을 보냈다.

- 저 앞에 엄청난 고수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최소한 초절정, 진의 말로는 아마도 천하삼십육성급의 고수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증칠은 그 말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천하삼십육성급의 고수라고?

그걸 지가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그리고 진짜 천하삼십육성급의 고수가 맞다고 하면 더 문제였다.

그런 고수가 지나가는 것을 상대보다 먼저 감지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참지 못한 증칠이 선우진에게 한 소리를 하려고 할 때였다.

문득 선우진에게서 먼저 전음이 들어왔다.

- 궁금한 점이 많으실 것 같아 미리 말씀을 드리면, 저는 일전에 암혈향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와 비교했을 때 비슷한 기도를 지녔다고 판단되기에 드린 말씀입니다. 또한 저는 전선에서 적을 감지하기 위해 설풍 조장으로부터 감각으로 적을 파악하는 법을 배워 꾸준히 훈련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좀 더 감각이 예민한 것이니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증칠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에게 따지려던 내용들을 마치 이미 듣기라도 한 것처럼 미리 다 설명해 준 것이었다.

증칠은 그만 빈정이 상하고 말았다.

저 어린놈이 꼭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하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만 콕 집어 전음으로 설명해 줬다는 것도 어쩐지 기분 나빴다.

아무리 뛰어난 후기지수라고 해도 새까만 후배에 불과한 녀석의 손바닥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은, 태생이 반골인 증칠로서는 전혀 유쾌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증칠은 일부러 코웃음을 치며 빈정거렸다.

- 흥! 네놈이 암혈향을 만났었다고? 설마 암혈향의 표적이 되고도 살아남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 한번 노린 표적은 반드시 제거하고, 평생 단 한 번의 의뢰도 실패해 본 적이 없다는 암혈향에게? 믿을 수 있는 얘기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럼 네놈이 지금 어떻게 살아 있다는 거냐?! 설마 암혈향이 네놈만 봐주기라도 했다는 거냐?!

하지만 그다음에 돌아온 선우진의 대답에 증칠은 그만 육성으로 소리를 지를 뻔하고 말았다.

그가 아주 간단히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 암혈향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죽일 수가 없었죠.

증칠은 황당했다.

말조차 이을 수가 없었다.

암혈향이 죽었다고?

그 살수들의 왕이라는 암혈향이 말인가?

그것도 말만 들으면 저 녀석을 죽이다가 죽었다는 얘긴 것 같은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래서 인상을 팍 찡그리던 증칠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선우진과 눈이 마주치고는 목까지 튀어나왔던 말을 삼키고야 말았다.

선우진의 가라앉은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은 사실이니 더 이상 거기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그 눈빛이 평상시와 달리 섬뜩하게 느껴져 증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선우진은 감각을 증폭하기 위해 월하환검무 이 식 현월을 사용하고 있던 중이었다.

암혈향과의 일전 후 현월까지는 이제 무리없이 사용할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증칠이 그를 평상시와 다르게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선우진은 그 증폭된 감각으로 누군지 모를 초고수가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선우진은 설풍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사영과 다캄에게 차례로 전음을 보냈다.

- 지나갔습니다. 상황을 해제합니다.

일행은 이제 다시 애뇌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증칠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선우진과 설풍의 뒷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이제 반밖에 남지 않아 아주 조금씩 아껴 마시고 있는 소봉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꿀꺽!

저 어린놈들이 자신보다 감각이 예민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자신이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이 척척 감지해 내는 것들을 계속 봐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천하삼십육성급의 고수보다 감각이 예민하다는 건 좀 다른 얘기였다.

자신이 무림인들 중 유일하게 존경해 따라다니고 있는 백학노검 양문헌보다 더 감각이 예민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암혈향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건….

‘시간이 날 때 저놈과 깊이 얘기를 좀 나눠 봐야겠군.’

어쩌면 자신은 지금 가까운 미래에 무림의 전설이 될 놈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반골인 증칠은 바로 그 생각을 부정했다.

‘흥! 전설은 무슨! 아직 햇병아리들일 뿐인데!’

***

다시 출발한 후 반나절, 일행들은 애뇌산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춰 마인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대충 살펴보던 선우진은 익숙한 듯 일행들을 어딘가로 이끌고 가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이들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현재 묵랑의 안내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 마인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역으로 추정해 봤을 때 아무래도 귀소곡이 아닐까 싶군.

‘귀소곡이요?’

- 그때 우리가 만든 이름이었네. 천 길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계곡 쪽이었는데, 그곳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귀신의 웃음소리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붙였었지. 귀찮은 혈교 마두 놈 하나가 그 귀소곡 안에 있는 동굴로 숨어 들어가 잡느라 꽤 애먹은 적이 있었다네. 그게 백 년 전이니 어쩌면….

‘흠.’

백 년 전에 그냥 동굴이었던 곳이 지금의 무황총이 되었다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긴 했다.

하지만 선우진은 일단 그곳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확인해 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별 기대 없이 묵랑이 알려 주는 방향 쪽으로 향하던 선우진은, 자신들이 간간이 보이는 마인들의 이동 방향과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방향이 정확했던 것이었다.

선우진이 흥분한 목소리로 묵랑에게 소리쳤다.

‘어르신!’

- 그래.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군.

그리고 일각 후, 그들은 은신한 채 천 길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계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묵랑이 말했던 바로 그 귀소곡이었다.

선우진은 일행들에게 더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는 그 안쪽으로 천천히 침투해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은 곧 그 안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인들이 아닌 멀쩡한 사람임에 분명한 혈교 마두들이 지키고 있는 동굴을 말이다.

바로 저곳임에 틀림없었다.

오자마자 바로 목적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선우진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어르신! 찾았습니다! 어르신 덕분입니다!’

- 그래, 도움이 됐다니 나도 기쁘군.

선우진은 기쁜 마음을 애써 자제하며 동굴과 그 주변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자 동굴에서 늘 마인들이 나오는 것은 아닌 듯 현재는 절정 이상으로 보이는 마두 여섯 명만이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침투할 틈은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려면 어쨌든 저 여섯 명을 처리해야만 할 것 같았다.

문득 안에 붙잡혀 있을지도 모를 동료들이 떠오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바로 저놈들을 처리하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문득 그런 생각을 하던 선우진은 결국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저곳이 혈교에 있어 중요한 곳이라면 눈에 보이는 여섯 명이 문제일 리가 없었다.

아니, 보초로 모두 절정 고수를 세울 정도라면 저 안에는 반드시 초절정 고수가, 어쩌면 초절정 고수들이 있을 것이었다.

정말 운이 나쁘다면 아까 감지했던 것처럼 천하삼십육성급 고수가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아까의 그 고수야 여기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 듯했지만 다른 자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러니 검성 어르신 같은 절대자급 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정면으로 쳐들어가는 건 절대 무리다.’

아니, 어쩌면 검성이라고 해도 무리일지도 몰랐다.

선우진은 문득 묵랑에게 물었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혹시 저곳 말고 또 들어갈 수 있는 우회로 같은 곳은 없습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묵랑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 흠, 적어도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했네. 미안하군. 하지만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자네 생각은 충분히 현명한 생각일세.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시도를 하는 건 무모한 짓이지.

그러자 선우진은 어쩔 수 없이 일행들에게 수신호를 보내 모두 뒤로 물러서게 했다.

아무래도 모두의 의견을 모으고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다캄도 더 이상 데려갈 수 없을 테고 말이다.

일행들은 뒤로 충분히 후퇴한 후 외딴 바위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증칠이 육성으로 속삭이듯 물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저곳을 찾아낸 거냐?! 원래 무황총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거냐!?”

증칠은 사실 애뇌산 같은 거대한 산에서 혈교도의 소굴을 발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무황총도 지도가 풀렸기에 찾아낸 것이지 그전까진 아무도 존재조차 모르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웬걸. 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은 대충 마인들의 움직임만 좀 관찰하더니만, 너무도 익숙하게 슥슥 찾아가 바로 목적지를 찾아내고 말았던 것이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증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먼저 주변에 다른 기척이 없는지를 재빨리 살핀 선우진은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감이 좀 좋은 편입니다. 이번엔 운도 많이 좋았군요.”

상의도 없이 육성을 낸 것에 대해 주의를 좀 줄까 했지만, 이 괴팍한 노인에겐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버럭 화를 내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었다.

어차피 주변에 다른 마두들이 없다는 것도 확인한 상태고 말이다.

하지만 증칠은 그것을 따지지 않았음에도 버럭 화를 내듯 작게 소리쳤다.

“아니, 그 말을 믿으라는 얘기냐?! 그저 감이 좋아서 한 번에 찾아냈다고?! 네가 무슨 무당이라도 된다는 거냐?!”

그러자 비사영이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쯧, 사숙. 진이 놈은 예전에 꿈속에서 신선의 계시를 받고 사람을 구해 낸 적도 있다오. 그러니 그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굳이 고민하지 마시오. 그냥 저 녀석이 가자고 하면 가면 된다오.”

“뭐, 뭐?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

자기를 놀리냐고 비사영에게 화를 내려던 증칠은, 설풍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비사영은 몰라도 설풍이 없는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그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선우진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자, 지금 저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닙니다.”

그러고는 일행들에게 현재 상황과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해 줬다.

그러자 증칠이 뭐가 어렵냐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헹! 이 증 어르신과 너희 정도라면 무림의 어떤 문파든 정면으로 쳐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문제란 말이냐?!”

선우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불가합니다. 저 안에 혹시 혈마나 혈교오마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수많은 절정 이상의 마두들이 있겠지요. 정면으로 쳐들어간다면 그들과 맞서 싸우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동료들을 구하는 것이 더더욱 불가능해집니다.”

그러자 비사영이 물었다.

“예전에 사천성에서 아미파의 소저들과 함께했던 방법을 써 보면 어떨까? 혈교 놈들은 어쨌든 대부분 색마일 테니 미인계를 쓰는 거지. 지난번처럼 진이 네가 축골공으로 여장을 하고 여기 운향도 있으니까 말이야.”

“으음.”

여장을 하고 보초들을 유혹한다.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저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기에 역시 위험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지난번처럼 우회 조가 침투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말이다.

‘차라리 미인계를 이용해서 보초들을 바깥으로 유인해 낸다면? 그래서 내부의 정보를 캐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안전한 방법은 아니었다.

보초들이 없어진 걸 눈치챈다면 오히려 경계가 강화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부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면 감당해 내야 할 위험 부담일 것 같긴 했다.

선우진은 좀 찝찝하긴 하지만 결국 그 정도로 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문득 그의 감각에 뭔가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응?!”

순간 설풍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인들인 것 같군. 이쪽으로 오는데?”

“예, 그래도 저희를 노리고 오는 것 같진 않네요.”

“나도 그런 것 같네. 하지만 방향상 곧 이쪽으로 오긴 하겠군.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까?”

한 무리의 마인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소란을 피우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일행들의 존재를 노리고 오는 것 같지는 않기에 은신해 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긴 했지만, 괜한 일에 휩쓸리기 싫다면 자리를 옮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선우진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괜한 일이라….’

그러고는 바로 설풍에게 말했다.

“조장과 제가 가서 무슨 일인지 한번 확인해 보죠.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서 다캄을 좀….”

그러자 증칠이 바로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가겠다!”

그에 쓴웃음을 지은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시죠, 선배님. 그럼 바로 은신한 채 이동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그림자가 되어 유령처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세 사람의 눈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광경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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