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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83화 (170/359)

183화 무황총 진입

절벽의 무너진 틈으로 들어간 무황총 내부는 빛 한 점 없는 완전한 암흑이었다.

예전에 선우진이 들어가 봤던 광협검괴의 광검릉과는 달리 무황총 내부에는 어떤 광원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완전한 암흑 속에서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설풍과 선우진 둘,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해서 선우진에게 딱 붙어 따라오고 있는 흑표밖에 없었다.

비사영 또한 심안의 수련을 상당히 쌓은 상태이긴 했지만, 이 정도 암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엔 아직 수준이 모자란 상태였다.

그러니 증칠이나 야운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쿵!

증칠이 돌벽에 머리를 살짝 부딪치고는 작게 투덜거렸다.

“윽! 이런 곳에서 불도 안 켜고 어떻게 움직이란 말이냐?!”

저런 투덜거림이야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이지만 그의 말이 분명 맞는 말이긴 했다.

문제는 앞이 안 보인다고 해서 횃불을 켤 수도 없다는 데 있었다.

이 캄캄한 동굴 안에서 횃불을 켜게 되면 빛이 지나치게 밝아질 것이었다.

암흑 속에서의 한 줄기 빛이 얼마나 명확한 표시가 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적들에게 발각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횃불을 켤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난감한 일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무황총을 목표로 할 때부터 이미 이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등짐을 열어 혹시 필요할까 싶어 미리 챙겨 왔던 물품을 꺼냈다.

바로 야명주였다.

우우웅!

곧 야명주의 은은한 녹광이 주변을 희미하게 밝히자 사람들은 감탄성을 내뱉었다.

“오오오! 이건?”

“야명주? 네놈, 이 비싼 건 또 어디서 구했느냐?”

이 야명주는 예전 선우진이 광협검괴를 만나기 전, 광검릉의 무너진 천장에서 빠진 것을 하나 챙겨 뒀던 것이었다.

어차피 무황총을 목표로 했기에 혹시나 싶어 가지고 왔던 것이었는데 역시 현명한 선택이었던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작은 목소리로 일행들에게 말했다.

“야명주의 빛은 매우 희미하지만 이 정도보다 밝다면 적들에게 들킬 위험이 높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주변을 판별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야명주의 녹광은 매우 희미했기에 일반인들이라면 이것을 이용해 길을 찾는 것이 무리였겠지만, 지금 일행들에겐 이 정도면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자신의 옆에 있는 흑표의 목을 쓰다듬어 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선두에서 이걸 들고 가다가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지면 바로 다시 집어넣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의사 전달도 다시 전음으로 합니다. 혹시 질문 있으시면 지금 받겠습니다.”

야명주를 준비해 온 선우진의 준비성에 감탄했던 것인지, 이번만큼은 증칠조차도 아무런 질문이 없었다.

일행들은 곧 소리 없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캄캄한 통로 안으론 오직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통로 안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제외하면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

하지만 사실 선우진은 지금 전혀 고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묵랑이 통로를 보며 그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정말 최악이로군. 이따위 건축물에 무황총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그 무황이 내가 아는 무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곳을 본다면 지옥에서도 서글퍼 눈물을 흘리겠어.

묵랑은 무공, 의술뿐 아니라 건축, 진법에도 상당한 전문가적 소양을 갖춘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못하는 게 있기는 한지가 더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이 무황총은 매우 엉망진창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내내 그는 신랄한 말투로 비판을 쏟아 내고 있었다.

-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엉망진창이로군. 재료, 측량, 미적 감각, 내구성.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어. 그저 어떻게든 사람을 죽이려는 악의만 가지고 급히 날림으로 만든 건축물이야. 그야말로 혈교 놈들 같은 곳이로군.

선우진은 건축에 대해 잘 모르기에 그의 경멸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만 조용히 해 달라고 말해야 하나 속으로 고민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건축에 대해 떠들고 있는 묵랑의 식견이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묵랑이 갑자기 말했다.

- 진, 일행들을 멈추게 하게. 기관이로군.

‘네? 기관이요?’

그의 말에 깜짝 놀란 선우진이 바로 손바닥을 들어 올려 일행들을 멈추게 했다.

흑표는 그저 녀석의 목덜미를 만지며 의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바로 알아듣고 있었다.

그러자 묵랑이 희미하게 보이는 전방의 돌벽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일 장 앞, 양쪽 벽을 자세히 보게. 벽돌들 사이로 홈이 일정하게 나 있는 것이 보이는가? 그곳이 암기 발사구라네. 그리고 격발 장치는… 저것이로군. 암기 발사구와 같은 선상에 있는 바닥 돌 중 가장 큰 저것 말이네. 저걸 밟으면 암기가 발사되는 구조인 것 같네. 그리고 저 뒤로도 세 발자국 간격으로 같은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 보이는가? 저 다섯 줄이 모두 같은 기관이라네.

선우진은 그의 말에 따라 벽의 홈들을 살펴보며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묵랑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쩔 뻔했단 말인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원래도 존경스러웠지만 이젠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대라고 해도 자신 있게 검신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우진이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럼 일행들에게 저기만 피해서 가라고 하면 되겠군요.’

그러자 묵랑이 대답했다.

- 아니, 그러지 말고 그걸 밟을 때 일어나는 일을 일행들에게 보여 주게. 특히 저 증칠이란 녀석에겐 꼭 보여 줘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그래야 앞으로도 자네 말에 더 잘 따라 주지 않겠나?

그 뜻밖의 말에 선우진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괜히 소란을 피우게 되는 건 아닐까요?’

- 괜찮을 걸세. 근처에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는 데다, 기관 규모를 봤을 때 그저 일차원적인 독립 기관으로 보이거든. 다른 곳에 연계된 기관이 아니니 큰 소란으로 이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걸세. 또 발사구를 봤을 때 암기의 크기도 아주 미세할 거야. 아마 아주 작은 소음만 나겠는데?

그 설명을 들은 선우진은 묵랑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이제 와서 묵랑의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뒤에 의아한 표정으로 멈춰 있는 설풍과 비사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묵랑의 설명과 똑같은 말이었다.

- 일 장 앞에 기관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큰 바닥 돌을 밟으면 좌우에서 암기가 발사되는 구조인 것 같군요.

그러자 일행들이 놀란 표정으로 일단 엄지손가락을 들어 수신했음을 전하고는 선우진이 말한 곳을 살펴봤다.

하지만 비전문가가 보이엔 다 똑같아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참지 못한 증칠이 인상을 찌푸리며 또다시 선우진에게 전음을 보내려 할 때였다.

선우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이 웃으며 발밑에서 굴러다니는 제법 큰 돌을 하나 주워 큰 바닥 돌 위로 던졌다.

그러자 공중에 가볍게 떠올랐던 돌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 돌 위로 묵직하게 떨어졌다.

쿠웅!

푸슈슈슉!

증칠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닥 돌에 충격이 가자마자 바로 좌우 벽에서 암기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너무 미세하고 빠른 속도의 암기라 이 암흑 속에서라면 절정급 이상의 고수들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을 것 같았다.

그러자 눈으로 직접 암기를 본 증칠은 벌리려던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놀란 그의 눈이 쉴 새 없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선우진은 그의 표정을 보고 싱긋 웃으며 다시 일행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 저 뒤로 네 줄이 같은 기관입니다. 모두 제가 밟은 곳을 그대로 밟으며 한 줄로 따라오시지요.

그렇게 말한 선우진은 옆의 흑표를 데리고 천천히 암기 지대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행들 중 그의 지시를 의심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었다.

증칠을 포함한 일행들은 마치 어미 오리를 따르는 아기 오리처럼 얌전히 선우진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됐다.

- 흠, 저것도 기관이로군. 저건 밟으면 좀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밟지 말게.

- 하아, 저따위 것도 함정이라고 만들어 놓다니. 정말 내 생애 최악의 건축물이로군. 아니, 생애는 아니긴 하지만 말일세.

- 저건 그냥 부수고 가게. 꼴도 보기 싫군.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좀 시끄럽긴 했지만 말이다.

***

다섯 사람은 거의 반나절이란 시간 동안 계속해서 통로 안을 돌아다녔다.

그동안 선우진의 머릿속은 계속해서 무황총 내의 지도를 그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외곽의 지도를 완성한 선우진은 마침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여긴 정말 사람들을 가두고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함정에 불과했군요.’

- 음, 그런 것 같네.

선우진이 머릿속으로 그려 낸 지도에 따르면 이 무황총은 마치 계란 흰자와 노른자처럼 외측과 내측이 분리된 상태였다.

그런데 외측에서 내측으로 갈 수 있는 생로가 딱 한 군데밖에 없었다.

바로 처음 발견했던 귀소곡 쪽으로 이어진 통로, 그곳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외측의 거대한 공간은 모두 사람들을 헤매게 하고, 가두고, 죽이기 위한 출구 없는 미로에 불과했다.

너무나도 악의적인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무황총이란 건 없었던 거군요. 그저 혈교 놈들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구조물에 불과했어요.’

- 흐음, 그럴지도 모르겠군.

또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무황총의 원래 입구로 만든 곳이 귀소곡 쪽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원래의 입구는 그 반대쪽인 산 바깥쪽 방향에 위치해 있었는데 현재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하긴 사람들은 무황총이 무너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깔려 죽었다고 알고 있었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라도 입구를 무너뜨린 것은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현재 일행들은 어두운 통로 안에 은신해 숨은 채, 유일한 내측의 출입구인 귀소곡 쪽 통로와 이어진 곳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쪽에서부터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통로를 지키고 있는 마두들의 목소리였다.

“흐아아암! 시간 진짜 안 가네. 누가 경계 근무 때마다 여자 한 명씩만 공급해 줬으면 딱 좋겠군.”

“으흐흐흐! 난 술이 더 좋은데?”

“이 술에 미친 새끼 같으니, 지난번처럼 구석에 짱박혀 술 마시다 걸리기만 해 봐라. 아마 시마께서 네놈을 친히 생시로 만들어 주실 거다.”

“크히히히히! 이놈은 생시가 돼서도 술을 찾을걸?”

“크흐흐흐, 그도 그렇군. 피보다 술을 밝히는 생시라니, 진짜 웃기겠군, 크흐흐흐!”

아까 외부 입구를 지키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내부 통로를 지키고 있는 자들 역시 절정 고수 여섯 명이었다.

바깥에 여섯 명, 여기 여섯 명이니 벌써 열두 명의 절정 고수들이 고작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었다.

증칠이 전음으로 물었다.

- 어떻게 할 거냐? 보초를 서고 있는 자들조차 저 정도면 저 안쪽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절정의 마두들이 있을 것 같은데. 초절정도 분명히 몇 있을 거고 말이다.

무려 열두 명의 절정 고수를 고작 보초로 돌리고 있는 적들의 모습에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던 증칠마저도 조금 기가 죽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해답이 없기는 선우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황총 내부에도 샛길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결국 저들 쪽을 뚫고 갈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침투하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었던 것이다.

선우진은 입술을 깨물며 고민에 잠겼다.

‘내부 정보라도 좀 얻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고민하며 혹시 뭔가 방법이 없을까 주변을 둘러보던 선우진의 눈은 잠시 후 문득 뭔가에 고정됐다.

바로 증칠 쪽이었다.

그러자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 뭐, 뭐냐? 네놈 왜 갑자기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게냐?

그러자 선우진이 문득 씨익 웃음 지었다.

어쩐지 증칠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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