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193화 (180/359)

193화 드러난 비사-2

“아마 당시 무림맹의 이인자였던 모용검은 맹주인 천기강을 무척 질투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혈마 전무광은 무황총혈사를 일으키기도 전에 이미 그런 모용검, 그리고 당시 사마세가에 눌려 무림맹의 군사가 되지 못했던 제갈지강과 접촉했습니다.”

혈마 전무광은 실로 지혜로운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이 무황총혈사를 일으키고 운남성을 차지하기 한참 전에, 이미 그렇게 하면 무림맹의 원정대가 올 것을 예상하고 그 안에 분란의 씨앗을 심어 놓았던 것이었다.

흑혈환마 두당은 그렇게 말했었다.

혈마 전무광은 현 맹주인 모용검과 현 군사인 제갈지강을 몰래 만났던 그때 그곳에서,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암시를 걸었었다고.

그러니 모용검과 제갈지강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혈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두당은 말했다.

혈마가 모용검에게 걸었던 암시는 ‘오만’, 그리고 제갈지강에게 걸었던 암시는 ‘야망’이었다고.

현재 모용검과 제갈지강의 행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아마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야망에 눈이 멀어 혈마와 거래를 하기로 했습니다. 정혈대전 중 혈마와 함께 맹주 천기강과 당시의 군사 사마중손을 처리하고 자신들이 무림맹의 전권을 차지하기로 말입니다.”

갑자기 듣게 된 너무도 충격적인 사실에 제운검객 벽리중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 그 말이 사실이라면 모용검이 이미 그때 혈마에게 운남성을 양보하기로 했었다는 건가? 지금 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고?”

선우진은 그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가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암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검성 모용검은 아마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천기강만 처리하면 자신의 힘만으로도 혈교 따위는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결국 그의 ‘오만’에 불과했습니다. 천기강이 죽은 후 바로 혈마를 공격했던 모용검은 혈마에게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러자 안색이 창백해진 당여은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 그럼 그 당시 함께 원정에 참여했던 저희 당문도 그 계략의 공범이었다는 건가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껏 함구하고 있었다고요?!”

선우진은 잠시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일단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 대결은 양쪽 다 소수의 참관인만이 참석했던 일이었기에 당가주님은 거기까지는 알지 못하실 겁니다. 그 당시 참관인은 무림맹 쪽에선 현 맹주인 모용검, 당시 군사인 사마중손, 그리고 현 군사인 제갈지강뿐이었죠. 혈교 쪽에선 혈교오마뿐이었고요. 그중 사마중손은 그곳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했으니 결국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맹주와 군사, 그리고 혈교오마뿐입니다.”

“하아아, 그렇군요.”

당여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가문마저 그 사건의 공범이라면 그 죄책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은 몰라도 그 이후의 일은 공범이 맞습니다.”

“…네?”

선우진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혈마에게 처참하게 패하고 새로 ‘공포’라는 암시까지 안고 돌아간 모용검과 제갈지강은 함께 원정대로 왔던 사천당문, 아미파, 청성파의 인원들을 설득했습니다. 맹주가 죽었으나 혈마도 상처를 입어 일단 자신이 그를 패퇴시켰다고. 그래서 그에게 운남성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으니 이쯤에서 그만 물러나자고 말입니다.”

그 말에 듣고 있던 모두의 얼굴이 잠시 의아해졌다가, 이내 천천히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사천당문과 청성파의 인원들은 대부분 다 무사히 돌아왔었고, 그래서 현재도 그들의 위세는 여전히 강력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미파는 한 명도 돌아오지 못하고 전멸당하고 말았었다.

그리고 그때의 일로 과거의 위세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 지금까지 계속 쇠락하는 중이고 말이다.

지금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뭔가 끔찍한 추측이 떠오르고 있었다.

당여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럼 설마?”

“예, 당시 사천당문과 청성파의 일원들은 그렇게 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아미파는 절대 물러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죠.”

혈교를 누구보다 증오했던 아미파의 장문인 결허 사태는 끝까지 그들의 멸절을 주장했었다.

그러자 당시 모용검과 제갈지강은 정 계속 싸우기를 원한다면 한번 그녀들끼리 혈마를 추격해 보라며 아미파를 부추겼었다.

이미 혈마가 큰 상처를 입었으니 잘하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서 당시 아미파의 장문인인 결허 사태는 혈교와 싸우기를 주저하는 다른 문파 사람들을 비난하며 문도들을 이끌고 단독으로 혈마를 추격했었다.

그리고 결국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

“그럼 그건 결국….”

방 안의 사람들은 잠시 동안 누구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비록 아미파를 몰살시킨 자들이 혈교라는 사실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얘기는 이제까지 알려져 있던 사실들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선우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설사 직접 손을 쓰지 않았다 해도 그들의 행동이 용납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아미파를 부추겼고 방관함으로써 결국 몰락시킨, 그야말로 공범이니까요.”

당여은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선우진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속한 사천당문은 함께 혈교와 싸우기 위해 모였던 동맹 아미파의 몰락을 방관했고, 그 후 오히려 아미파가 약해진 틈을 타 사천성에서의 세력을 넓혔었다.

무림맹의 묵인하에서, 아니 오히려 암암리에 지원을 받으며 말이다.

왜 당문과 무림맹의 관계가 그렇게 원만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당여은의 심정은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정파의 가장 큰 기둥 중 하나라고 자부하는 당문의 행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렴치한 처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벽리중이 문득 선우진에게 물었다.

“자네의 그 말을 확신할 수 있는가? 증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 말에 선우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이 얘기는 혈교도에게 들은 것이었지만 그는 이미 죽었으니까요. 제가 지금껏 말한 모든 것이 거짓말일 수도 있겠죠.”

“그럼…?”

“하지만 저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모용검이 무림맹주, 제갈지강이 군사가 된 이후 무림맹이 전선을 어떻게 유지했는지 말입니다. 그들은 이곳을 방치했습니다. 마인들에게 수많은 전선의 무사들이 죽어 가도 그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죠. 오히려 전역한 전선의 무사들을 죽여 정보를 통제해 오기까지 했습니다.”

그 말에 방 안에 있던 비룡대원들이 모두 인상을 굳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얘기였다.

선우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뿐이 아니죠. 정혈대전에서 입었던 피해로 몰락해 버린 아미파에게는 겉으로만 위해 주는 척하며 오히려 분열을 조장해 몰락을 가속화시켰고, 이번에 전선의 무사들을 위해 애써 주시던 검성 어르신은 무려 무림맹이 주관한 대결을 위해 이동하시다 혈교 마두들의 습격을 받고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증거가 없으니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우진의 말에 벽리중은 결국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백학노검 양문헌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오만’과 ‘공포’, ‘공포’와 ‘야망’이라. 어쩐지…. 나도 사실 이상함을 느끼고는 있었다네. 정혈대전 전의 모용검은 비록 대장부는 아니었어도 성실한 무사였으니까 말일세. 제갈지강 또한 명예욕이 있을망정 도리를 모르는 자는 아니었지. 나는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가 자리가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혈마는 진정 위험한 씨앗을 심어 놨었구먼. 그 씨앗이 무섭게 자라 두 사람을 삼켜 버렸어.”

양문헌의 말은 사실상 선우진의 말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가장 경험이 많고 명망이 높은 그가 선우진의 말을 인정한 지금 더 이상 그 말의 진위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제 모두가 받아들이기 힘든 무거운 진실에 망연자실해 있을 때였다.

무황총에서 돌아오며 이미 이 이야기까지는 들었었던 비사영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모두들 상황을 이해한 것 같으니 다음 얘기로 넘어가는 게 어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야. 난 그게 제일 궁금한데?”

그러자 다시 모두들 눈을 빛내며 선우진을 바라봤다.

그들이 이제껏 봐 온 선우진이라면 여기에 대한 해법 또한 가지고 있을 거란 기대감에 찬 시선들이었다.

그리고 과연 선우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막힘없이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는 우리의 적을 다시 상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껏 우리는 혈교만을 우리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무림맹의 처사가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적으로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했던 선우진은 이제 눈을 번뜩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젠 모용검과 제갈지강 또한 혈마와 똑같이 적으로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이미 혈마와 결탁했고, 혈교를 치려고 시도할 경우 적극적으로 우리를 막을 것이며, 지금 얘기한 비사를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를 죽이려고 할 테니 말입니다.”

그 말에 몇몇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으음….”

“무림맹이… 적이라고?”

그건 감정적으로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얘기였지만, 현실적으로는 더욱 막막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누가 뭐래도 무림맹은 천마신교, 사왕련과 함께 현 무림의 삼 대 세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정파 내에서 그들의 적을 무림 공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권위까지 가지고 있었다.

비사영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잘못하다간 무림 공적으로 찍혀 멸문당할 수도 있겠는걸?”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비사영이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건 절대 농담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에게 무림 공적으로 지목당한다면 평생을 정파의 협객들에게 쫓기며 살게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은 자신들의 사문까지도 위험해진다는 것이었다.

무림 공적이 된 자신들 때문에 사문이 멸문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지금 우리가 무림맹과 대놓고 적대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힘으론 무림맹은커녕 혈교의 힘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일단 음지로 숨어 들어가 힘부터 키워야 합니다.”

그의 말에 천주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음지로 숨어 들어간다고요? 혹시 전선에서 벗어나 몸을 감춘다는 뜻인가요?”

선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대답에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그것이 필요한 일이라 해도 다른 동료들이 여전히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그들을 두고 자신들만 빠져나가는 건 전선의 근무자인 그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이유를 바로 설명해 줬다.

“이번 원정에서 저희는 마인들을 생산하고 있던 무황총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 말에 일순 사람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천주은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인들을 생산하는 곳을 무너뜨렸다고요?! 그 말은, 그러니까 그 말은 설마…?”

그러자 선우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 말은 적어도 당분간은 앞으로 마인들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마인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점점 그 수가 줄어든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함께 원정을 갔던 사람들을 제외하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황급히 앞다퉈 물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마인들이 사라진다고?”

“그, 그럴 수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간 그토록 많은 동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마인들의 습격이 사라지게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지금의 현실이 변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다른 이보다 좀 더 생각을 앞서 나갔던 생사괴의 마종환의 아들 마맹운이 문득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아, 그러면 이 전선이?!”

그러자 선우진이 정확히 봤다는 듯 씨익 웃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앞으로 이 전선의 의미는 점점 무의미해질 겁니다. 물론 혈교의 마두들이야 계속 나타나겠지만, 전선의 가장 큰 의미였던 마인들이 사라진 이상 우리가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얘기죠.”

전선이 사라진다….

그 말에 전선의 근무자들은 묘한 감동을 느꼈다.

선우진은 지금 그간 그토록 많은 동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던 이 전선이 실질적으로 사라진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곳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얘기에, 그들은 아직 꿈을 꾸는 듯 멍해져 현실을 실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분과 상관없이 선우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 우리는 미련 없이 이곳을 이탈합니다. 어차피 제갈지강이 전선의 책임자로 온 이상 청연 소저와 관련된 이들을 모두 구속하거나 제거하려 할 겁니다. 작게는 칠 조의 인원들, 심할 경우엔 비룡십삼대 전체를 제거하려 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먼저 사라집시다.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밀림으로 뛰어 들어간 걸로 하죠.”

이것이 선우진이 내린 결론이었다.

아직 혈교에 붙잡혀 있는 해청연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혈마를 이길 수도 없는 데다, 이젠 진짜 어디에 갇혀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서유와 삭무흔의 말로는 혈마와 해청연이 있는 곳은 어떤 문파의 내부인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 운남성에 있을 모든 문파의 내부를 뒤질 수는 없었다.

마혈을 짚이고 정신을 잃었던 나서유와 삭무흔은 그곳의 위치는커녕 그곳까지의 거리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젠 혈마와 내기를 하기로 했다는 그녀가 부디 무사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나서유가 문득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난다 해도 우리 모두가 무림맹의 이목에서 벗어나 힘을 키울 만한 곳이 있을까요? 또 설사 그런 곳이 있다 해도 우리가 얼마나 오래 힘을 키워야 무림맹과 상대할 수 있게 될까요?”

나서유의 물음에 선우진은 문득 당여은의 얼굴을 따뜻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 또한 이미 생각해 놨습니다. 이번에 저와 당 소저가 휴가를 가는 도중에 무척 대단하신 스승님을 한 분 얻게 되었거든요. 그분이라면 천하 어디에서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여러분들을 성장시켜 주실 수 있을 겁니다.”

선우진은 수련이 필요한 모두를 광검릉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광검에게 또 누가 월하환검무를 배우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곳이니만큼 설사 그걸 배우지 못하더라도 훨씬 큰 수련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선우진은 이번에 무황총에서 얻은 무황의 황룡무상강기 비급을 이미 비사영에게 넘겨주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익히라고 말해 준 상태였다.

자신은 이미 내용을 다 외워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데다, 이제 검신의 진신절기를 찾으러 갈 테니 굳이 필요가 없는 무학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황룡무상강기가 워낙 수준이 높은 무공이니만큼 비급만 가지고 익히기는 불가능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광검의 도움을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때 문득 설풍이 물었다.

“여러분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자네는 혹시 함께 가지 않을 생각인가?”

그의 질문에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당여은과 백학노검 양문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몇 명을 제외한 사람들만 가게 될 겁니다. 먼저 당 소저는 굳이 그곳에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다 배웠으니, 차라리 지금처럼 이곳에서 양문헌 노사께 그냥 수련을 받으시는 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당여은은 요즘 백학노검 양문헌의 백학검법을 전수받고 있었다.

다른 제자가 없으니만큼 아마 백학노검의 정식 계승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선우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당 소저는 청연 소저와의 직접적인 연관점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제갈지강이라도 사천당문의 직계인 당 소저를 함부로 건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 소저와 양 노사께서 이곳을 떠나시면 그때야말로 제갈지강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양 노사께는 이곳에서 당 소저와 함께 비룡십삼대를 좀 지켜 주십사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주실 수 있겠습니까?”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양문헌이 이곳에 버티고 있는 한 제갈지강도 함부로 비룡십삼대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한 부탁이었다.

그러자 양문헌은 흔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어차피 여은이 옆에 있기 위해 온 것이 아니던가. 내가 이곳을 지켜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그의 말에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한 선우진은 다음으로 설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또한 무림맹을 상대하기 위해선 개개인의 무공이 높아지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저희도 이용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하지요. 그것도 가능하다면 무림맹과 맞상대가 가능한 강력한 세력이 말이지요. 저는 그걸 조장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이제 조장이 당당히 과거와 맞설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면 말입니다.”

그러자 잠시 놀란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던 설풍은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걸 어떻…? 하, 그래, 이젠 진 자네가 뭘 모르고 있다면 그게 더 놀라울 것 같긴 하군.”

그러곤 형형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말게. 나는 이제 내 과거와 당당히 맞설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네.”

그의 단호한 대답에 선우진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와 조장은 함께 그곳으로 가시죠. 저도 어차피 그쪽으로 가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선우진은 바로 검신의 진신절기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묵랑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숨겨져 있는 곳은 무신, 뇌신, 검신 전설의 발상지, 신지 절강성이었다.

그러니 선우진이 가야만 하는 곳은 중원의 동쪽 끝에 위치한 절강성, 설풍 또한 세력을 얻기 위해 가야 할 곳은 그 바로 위에 위치한 강소성이었다.

그러니 이번엔 설풍과 둘이서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거기까지 말한 선우진이 이제 모두를 보며 말했다.

“자, 그럼 저와 설풍 조장, 당 소저와 양 노사님, 벽리 선배님, 증 선배님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모두 아까 말한 제 스승님께…!”

그렇게 마무리를 지으려 할 때였다.

문득 증칠이 펄쩍 뛰며 이의를 제기했다.

“잠깐! 나는 여기 있지 않겠다! 나도 너희와 함께 갈 거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당황한 선우진이 되물었다.

“예? 증 선배님께서 말입니까? 대체 왜…?”

그러자 증칠이 확 짜증을 내듯 소리쳤다.

“내가 너희와 함께 가 주겠다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으냐?! 그저 ‘감사합니다!’ 하면 되지!”

그의 말에 선우진은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증칠 정도의 초절정 고수가 함께 가 준다면 큰 도움이 되긴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한 선우진은 결국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함께 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증 선배님.”

그러자 증칠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그래야지.”

이것으로써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비룡십삼대 칠 조원 모두의 목적지가 정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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