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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94화 (181/359)

194화 각자의 길

선우진은 회의를 마치고 사람들에게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도록 시켰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빠져나왔다.

그가 다른 비룡십삼대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림자가 된 채 움직여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바로 이 조 조장 점창검룡 사군일의 연무장이었다.

사군일은 오늘도 홀로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압!”

쉬이이익!

그가 빛살처럼 검을 찌르자, 단 일 검에 몇 개의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 연습하고 있는 초식은 사일검법의 마지막 구 초식인 후예사구일, 극에 이르면 단 한 번의 검격에 아홉 개의 일시사일을 담아 낸다는 초식이었다.

예전에 선우진 또한 암혈향과 싸우며 다섯 개의 일시사일을 만들어 낸 적이 있었던 바로 그 초식 말이다.

“합!”

쉬이이이익!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그가 펼치는 후예사구일은 세 개의 검영 이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거기까지가 지금 그의 한계인 듯했다.

수십 번의 검격을 반복했던 사군일은 마침내 검을 멈추고는 땀방울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우.”

그의 성취는 몇 년이 지나도록 내공 팔십 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평생을 이 상태로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답답했다.

사군일은 자신이 정체 중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스승의 가르침도, 조언을 해 줄 만한 어떤 선배도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어떻게든 혼자서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군일은 점창파가 멸문당한 것을 변명으로 삼지 않겠다며 근 십 년간을 정말 최선을 다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였다.

이젠 그도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검성 어르신이 계실 때 약간의 가르침을 받긴 했었다.

하지만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의 사군일은 차마 그분께 찾아가 가르침을 조르지는 못했었다.

검성께선 너무 바쁘셨고, 그의 주변엔 늘 가르침을 구하는 동료들이 상주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는 그분께 조언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사군일은 검성 어르신마저 사라진 이 전선의 갑갑한 상황이, 어쩐지 자신의 앞날과 겹쳐 보이는 기분이었다.

암울했다.

그때였다.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운이 없어 보이십니다, 사형.”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사군일은 바로 홱 고개를 돌리며 그쪽으로 검을 겨눴다.

쉬익!

“누구냐?!”

아무리 정신을 빼놓고 있었다 해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군일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더욱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우진?!”

그는 그 사람이 선우진이란 것에 두 번 놀랐다.

한 가지는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는 선우진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또 한 가지는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선우진의 존재감이 여전히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분명히 눈에는 보이는 선우진의 기척이 자신에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또는…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수처럼 말이다.

선우진이 그에게 공손히 포권하며 인사했다.

“이제야 인사를 드리는 걸 용서하십시오, 사형.”

사군일은 그제야 선우진이 자신을 사형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사형이라고?”

그러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형이시죠. 사일검법을 배웠으니 비록 문외제자라 해도 엄연히 점창의 제자가 아닙니까?”

그 말에 사군일은 문득 자기도 모르게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선우진같이 뛰어난 자가 몰락해 버린 점창파의 제자라고 자부해 주는 모습은, 최근 웃음 지을 일이 없었던 그를 오랜만에 웃게 만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군일은 다시 엄격한 얼굴이 되어 선우진에게 말했다.

“그래, 네가 나를 사형이라 부르니 묻겠다. 너는 내게 사일검법을 배울 때 했던 약속을 기억하느냐?”

그 물음에 선우진 또한 진중하게 대답했다.

“예, 사일검법으로 혈교의 마두들을 베겠다 약속드렸습니다. 그래서 점창파의 위명을 드높이겠다고 말입니다.”

분명 그런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군일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그가 더욱 인상을 굳히며 다시 물었다.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을 텐데? 너는 분명 혈교로 쳐들어갈 때 나와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더냐?”

그제야 선우진은 사군일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이번에 애뇌산으로 갈 때 왜 자신에게 얘기하지 않았는지를 탓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유야 단순했다.

이번 원정에는 신법과 은신술이 뛰어난 사람만 함께 갔었으니까.

하지만 선우진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사군일을 바라보다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지금 사형께서… 너무 약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사군일이 순간 눈을 부릅떴다.

“내가… 약하다고?”

사군일은 오랜 기간 점창파 최고의 기재라는 호칭을 놓치지 않았던 자였다.

더구나 점창파가 몰락한 현재,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점창파 최고의 고수이기도 했다.

그러니 선우진의 말은 그에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의 사형은 혈교와 싸우기엔 지나치게 약하십니다.”

너는 약해서 자격이 없다니.

어떤 무인이라도 발끈할 수밖에 없는 도발이었다.

하지만 수양이 깊은 사군일은 바로 분노하지 않았다.

대신 무서운 눈빛으로 선우진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가 그 말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빙긋이 웃은 선우진은 바로 월하환검무를 발동했다.

월하환검무 삼 식.

현망월 발동.

화아아아악!

그 확장된 감각 속에서 선우진은 빛살처럼 검을 뽑았다.

사일검법 구 초.

후예사구일.

슈하악!

그러자 순간 일곱 개의 빛이 공간을 관통했다.

사군일로선 검이 공간을 꿰뚫은 순간이 아닌, 그 이후의 잔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극한의 쾌검이었다.

“너…!”

그 엄청난 검을 목격한 사군일의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확대됐다.

그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일곱 개의 검격 하나하나가 자신이 최선을 다한 일시사일보다도 더 빠른 쾌검이었다는 걸.

사군일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후예사구일이라고? 그것도 일곱 개의 일시사일?”

사군일은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점창파 최고의 고수였던 마유겸의 아버지 마원웅 장문인이 펼쳤던 후예사구일을.

어렸던 사군일의 앞에서, 초절정 고수였던 당시의 마원웅 장문인은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일곱 개의 일시사일을 뿜어냈었다.

그 환상적인 장면은 어렸던 사군일에게 충격으로 남아 여전히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사일검법을 배운 선우진이 그 기억 속의 후예사구일을 똑같이 재현해 냈던 것이었다.

그것도 불과 일 년 전까지 이류에 불과했던 그가 말이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사군일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그러자 선우진이 말했다.

“이젠 혈교와 싸우기엔 너무 약하다는 걸 인정하시겠습니까?”

사군일은 헛웃음을 지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먼저 담담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선우진의 눈을 마주보았다.

사군일이 그에게 사일검법을 전수해 줬던 건 그저 그가 뛰어난 인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몇 번이나 목숨을 걸고 위험에 뛰어들어 다른 이들을 구해 내곤 했던 그가, 사일검법을 제대로 된 곳에 써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협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 더 컸다.

사군일은 생각했다.

자신이 그렇게 판단했던 선우진이라면, 굳이 자신에게 모멸감을 주기 위해서 저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발전하기를 바란 것인지도 몰랐다.

마치 지금 자신이 그토록 아쉬워하는 예전 그의 스승처럼, 또는 선배들처럼 말이다.

사군일이 문득 절박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말해 주게.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어떻게 하면 혈교를 부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 있겠는가?”

그 말에 선우진은 이제야 환하게 웃음 지었다.

사실 선우진에게 있어 사군일의 위치는 좀 애매했다.

지난 삶에서도 그와 큰 접점이 없었고, 이번 삶에서도 자신을 믿고 사일검법을 전수해 준 고마운 사람이긴 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접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좀 고민이 됐었다.

그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를.

그에게도 함께 전선을 빠져나갈 것을 권유해야 하는지, 아니면 제외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지금부터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가야 할 우리에게는 보안이 생명일 터. 믿을 수 없는 이를 포함시키는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를 일부러 도발해 봤던 것이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는 하수의 성장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사군일이 보인 것은 하수에 대한 질투가 아닌 성장에 대한 갈망, 그리고 혈교를 부수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역시….’

그는 역시 담백하고 순수한 무인이었다.

자신의 사문 점창파가 저지른 일들이 부끄러워 사문을 사랑하면서도 그곳을 재건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의 순수한 무인 말이다.

그러니 그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우진은 이제야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이번에 애뇌산에 위치한 무황총에 갔었습니다. 혈교도들이 그곳에서 마인들을 생산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그곳을 부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전선에 마인들의 수는 늘어나지 않을 거란 얘기지요. 오히려 점점 줄어들어 종국엔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에 사군일의 눈이 놀라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그는 선우진의 말을 끊지 않았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저 묵묵히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선우진은 그런 그에게 회의 때 동료들에게 해 줬던 얘기들을 다시 되풀이해 줬다.

“…그래서 칠 조의 동료들은 전선을 벗어나 제 스승님께 가서 힘을 키울 생각입니다. 사형께서는 어떠십니까? 저희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갈 의향이 있으십니까?”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사군일은 이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과 싸울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겠지. 쉽지 않았을 텐데 내게 그 사실을 공유해 줘서 고맙네.”

그도 이젠 선우진이 왜 자신을 시험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일검법을 가르쳐 줬다곤 하지만 다른 접점이 없었던 자신을 이 일에 포함시키기가 부담스러웠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사군일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내 친우인 제원영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도 함께 갈 수는 없겠나?”

예전 정협방 사태 때 함께 싸웠던 점창검호 제원영에 대한 얘기였다.

그와 막역한 사이인 사군일이기에 그에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기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제원영, 제 형님 말씀이시군요.”

물론 제원영이라면 선우진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긴 했다.

그는 호방하고 진솔한, 어쩐지 나중에 검성 어르신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무인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우진이 그를 생각지 않았던 건 그가 해청연이 납치당할 때 큰 부상을 입어 지금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었다.

“제 형님이라면 저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움직일 수 없을 텐데요?”

그러자 사군일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이면 됐네. 내가 왜 떠나는지를 그에게 설명해 줄 수만 있어도 충분할 테니까. 그리고… 나중에 그의 몸이 괜찮아졌을 때 데려와도 되겠는가?”

선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거라면 저도 괜찮습니다.”

그의 시원한 대답에 사군일은 이제야 마음이 편해진 듯 후련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이제 함께 전선을 빠져나갈 사람들의 명단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

잠시 후, 모든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칠 조의 연무장에 조용히 모여들었다.

따로 길을 떠나야 하는 선우진과 설풍, 증칠은 그들 한 명, 한 명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이 이제 이별을 앞둔 비사영과 손을 굳게 맞잡으며 말했다.

“게으름 피우지 마라, 사영. 나중에 검사한다.”

그 말에 비사영이 코웃음 쳤다.

“흥, 그런 걸 받아 놓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냐? 염려 마라. 나중에 괜히 줬다고 엉엉 울게 만들어 줄 테니까.”

비사영은 애뇌산에서 돌아올 때 선우진으로부터 무황의 비급을 받고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황의 비급이라니, 그건 무인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천고의 보물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근데 선우진이 그걸 자신에게 그냥 넘겨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친구가 이상한 놈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의 어떤 무인이 아무 대가도 없이 그런 절세의 비급을 친구에게 넘겨준단 말인가?

그래서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었다.

그러자 선우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어차피 다 외워서 주는 거야. 이거라도 익히고 빨리 강해져서 내 발목 좀 잡지 마라.’

부담을 갖지 말라는 듯 장난스럽게 내뱉는 말이었다.

하지만 비사영은 그 말에 더욱 울컥했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꼭 은혜를 갚겠다는 말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마저도 그럴 수는 없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비사영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너, 그거 아냐?”

“…그거라니?”

그러자 비사영이 드물게 진중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삶에 있어 가장 큰 기연이 있다면 그건 널 만난 걸 거다. 너와 친구가 되고 너와 함께할 수 있었던 것 말이다. 그러니… 강해지마. 어떻게든 강해져서 너의 힘이 되어 줄게.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

비사영의 진지한 고백에 잠시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선우진은 이내 씨익 웃으며 그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별소리를 다 하는구먼. 친구끼리.”

그러자 비사영 또한 피식 웃으며 주먹을 부딪쳤다.

“하긴, 좀 그랬지? 친구끼리.”

둘 사이의 대화는 그걸로 충분했다.

진정 서로를 믿는 친구에게 더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았으니까.

비사영과 인사를 나눈 선우진은 배종관에게도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진짜 금강불괴가 될 수 있는 비급을 사영에게 맡겨 놨어. 너도 열심히 해야 해, 종관.”

그러자 배종관이 특유의 순박한 웃음으로 말했다.

“당연하지. 다음에 볼 때 또 함께 외공을 수련하자, 진.”

“그래, 그러자.”

선우진은 배종관의 큰 주먹과도 주먹을 맞부딪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참을 설풍과 은밀한 말들을 속삭였던 나서유가 눈물을 닦으며 서 있었다.

선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 소저, 늘 그랬듯 녀석들을 좀 챙겨 주세요. 워낙 철부지 놈들이라 좀 안심이 안 되네요.”

그러자 그녀 또한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랑 같이 가는 사람들은 걱정 마요. 저는 오히려 우리 장성한 아들 선우 공자가 더 걱정인데요? 이 어머니가 옆에서 안 챙겨 줘도 괜찮겠어요?”

“윽!”

장성한 아들.

그녀의 농담에 쓰게 웃음 지은 선우진은 문득 전음으로 그녀에게 부탁했다.

- 그리고 혈마인 소저도 잘 부탁해요. 스승님이시라면 그녀의 기억을 되돌릴 방법을 알고 계실지도 몰라요. 그리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나 소저가 잘 이끌어 주세요.

무황총에서 데려온 혈마인 여인은 묵랑에 의해 정신 금제가 깨어졌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과거는 기억하지 못했다.

물론 선우진의 지난 생에서 적의혈마녀였을 그녀의 행동을 되풀이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현재 무황총에서의 일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가 갖고 있던 혈마에 대한 충성심이 정신 금제 때문이었음을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선우진은 그녀를, 그녀가 가장 잘 따르는 나서유에게 맡기고 광검릉으로 함께 데려가도록 했다.

나중에라도 기억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혈마인인 그녀를 아군으로 만들 수 있다면 큰 전력이 될 거란 기대에서였다.

또한 선우진은 그녀의 본래 신분이 아마도 범상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저렇게 젊은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까지 오른 그녀의 신분이 평범하지는 않았을 거야. 어쩌면….’

거기까지 생각한 선우진은 그만 고개를 흔들어 그녀에 대한 생각을 털어냈다.

그러곤 이제 마지막으로 계속 달려가고 싶었던 당여은에게로 찾아갔다.

이곳에 남을 예정인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좀 떨어져 백학노검 양문헌, 제운검객 벽리중과 함께 서 있는 중이었다.

선우진은 가만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가락 끝을 만지며 말했다.

“다녀올게요, 여은.”

지금 이 순간, 선우진은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아주 오랫동안, 가능하다면 영원히….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너무도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당여은 또한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촉촉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선우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말들이 떠돌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중 가장 절실한 한마디만을 간신히 골라 전음으로 그녀에게 전했다.

그녀에게 가장 전해 주고 싶은 그런 말이었다.

- 사랑해요, 여은.

그러자 당여은의 눈이 놀라움에 크게 확대됐다.

그러곤 이내 눈물이 가득 맺힌 채 선우진을 바라보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 저도요. …사랑해요, 진.

할 수만 있다면 묵랑에게 부탁해 시간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제 모두 각자의 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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