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195화 (182/359)

195화 형제-1

한낮의 숲속.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검초를 펼쳐 냈다.

묵랑검법 일 초.

개천.

촤아아아아악!

그것은 그야말로 극한에 이른 베기였다.

이걸 쓸 때마다 공간이 갈라지며 심연의 틈이 드러나는 듯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완전히 습득한 ‘개천’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이 어마어마한 초식을 썼음에도 눈앞의 상대방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앞의 상대가 물 흐르듯 움직이며 가볍게 내 검을 흘려 내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안 놓칩니다!”

나는 그를 추격하며 아직까지 완전하지 않은 묵랑검법의 이 초를 전개했다.

묵랑검법 이 초.

비상.

슈하아아악!

아직 내 본신의 능력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월하환검무 삼 식 현망월을 발동한 상태이기에 내 검은 훌륭히 묵랑검법의 이 초식을 펼쳐 낼 수 있었다.

내 선우십삼검과도 조금은 닮아 있는, 그래서 그나마 익히는 것이 가능했던 극한의 환검이었다.

화아아아아악!

검을 휘둘러 가는 내 주변으로 거대한 진보랏빛 날개가 세상을 덮을 듯 활짝 펼쳐지고 있었다.

환상인 동시에 현실에 한없이 가까운 환검의 정수.

그 치명적인 초식이 상대방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듯 덮쳐 가자, 상대가 문득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법이군.”

그리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아직 멀었네.”

동시에 그의 검이 나를 향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환검경.”

화아아아악!

그의 말과 동시에 그의 검에서 태양처럼 찬란한 검영들이 뿜어져 나갔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읊조렸다.

“공즉시색.”

촤아아아아악!

태양과도 같았던 그의 환검들이 한순간 실검이 되어 내 묵랑검법과 충돌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정!

내가 펼친 묵랑검법 이 초식 비상이 소멸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공이라는 천마신공에서 탄생한 묵랑검법이, 선우십삼검의 최후 초식에 막히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즉시색으로 비상을 막았다는 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비상을 사용하고도 고작 공즉시색에 막힌 제 실력을 한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한탄까지 하고 그러는가? 자네 수준이라면 사실 삼재검법만 사용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네.”

윽, 삼재검법.

전혀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아 더 뼈아팠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내게 비교하려 하지 말게. 남과 비교하는 것은 그저 자신을 남이라는 한계에 가둘 뿐이니,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위로에 나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래야 하는 게 맞는데, 어째 알고 있어도 너무 격차가 크니 그런 생각이 잘 안 드는군요.”

그러자 그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라면 왜 그것이 훌륭한 일이겠는가. 정진하시게.”

유쾌한 목소리, 하지만 심혼을 자극하는 그의 가르침에 허리를 숙이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네, 검신 어르신.”

“어허!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

“아, 네. 죄송합니다, 묵랑 어르신.”

나는 그에게 사과하며 그의 청수한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본 그는 무척이나 잘생긴 중년인이었다.

나도 잘생겼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 봤지만 그가 젊었다면 나와는 비교도 안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지난번에 죽은 혈마의 후계자 백옥지룡 구유상? 아마 그자와도 충분히 비견할 만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내 감탄 섞인 시선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른 얘기를 꺼냈다.

“자, 이제 그만 구파의 검법을 좀 익혀 보세. 이제 청성의 청풍검법을 익혀 볼 차례였지?”

“예, 맞습니다. 저야 적하검법을 더 익히고 싶긴 하지만요.”

“하하하! 자네 형님인 적하신검 화영빈의 검법이라고 더 끌리는 모양이군. 하지만 친한 사람의 검법이라고 차별하진 마시게. 청풍검법과 적하검법은 누가 낫다고 말할 수 없는 검법인 데다, 청풍검법을 먼저 익혀야만 적하검법을 좀 더 쉽게 익힐 수 있을 테니 말일세.”

나는 요즘 묵랑 어르신께 구파의 무공들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말해 주길, 그의 진신절기는 존재하는 모든 문파의 무공을 배운 후에야 익힐 수 있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였다.

아무리 묵랑 어르신이라고 해도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알지는 못하실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구대문파의 무공만큼은 다 익혀야 한다는 게 묵랑 어르신의 설명이었다.

- 어차피 내 진신절기인 망아공은 그것이 봉인된 장소에 간 이후에만 익힐 수 있도록 해 놨네. 다섯 개 검에 담은 무공들을 검을 얻은 이후에만 익힐 수 있도록 한 것처럼 말일세. 하지만 구파의 무공에는 그런 제약을 걸어놓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매일매일 익혀 가도록 하게.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내게 익숙한 점창의 무공들, 이미 익힌 사일검법을 제외한 회풍무류사십팔검, 분광십팔수검, 육맥신검 등을 모두 배웠었다.

그리고 이제 막 청성의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청풍검법을 수련했을까. 문득 내가 있는 공간 전체가 울리듯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뭔 놈의 애새끼가 이렇게 잠이 많아?!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놈이 이렇게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니 개죽음당하기 딱 좋겠구나!

그 목소리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묵랑 어르신께 말했다.

“증 선배가 일어난 모양입니다, 어르신.”

그러자 그 또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 어느새 날이 밝을 때가 된 모양이네. 이제 그만 나가 보시게.”

나는 그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그럼 내일 꿈에서 또 뵙겠습니다, 어르신.”

그러자 그가 청수한 얼굴로 빙긋이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곤 막 여명이 밝아 오는 숲속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눈앞에 보이는 나무 위에는 흑표가 방만하게 늘어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흑표는 무황총을 부순 후에도 계속해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 괜찮으니 새끼들에게 돌아가도 된다고 의사를 전달해 봤지만 녀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묵랑의 말로는 아직 은혜를 다 갚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눈빛으로 잘 잤냐고 인사를 해 주고는, 몸을 일으키며 증칠에게 말했다.

“이제 일어났습니다, 증 선배님. 혹시 시장하셔서 그러십니까?”

그러자 그가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무슨 배고파서 너희 괴롭히고 그런 사람인 줄 아느냐?! 아침은 짐승 녀석이 벌써 차리러 갔다! 기생오라비, 네 녀석이 하도 게을러 한심해 보여서 그러는 게 아니더냐?! 대체 초절정이라는 놈이 어째 그렇게 잠이 많은 게냐?!”

사실 내가 초절정의 무위를 발휘할 수 있는 건 월하환검무 덕분이긴 했다.

하지만 그가 이미 나를 초절정이라고 단정 지은 이상 굳이 그것을 고쳐 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아무튼 설풍 조장이 이미 아침을 차리러 갔다는 걸 보면 그가 배고파서 그러는 건 분명히 맞는 것 같았다.

그는 지난 원정 때도 아침에 배가 고프면 먼저 일어나 다른 사람들을 툭툭 건드리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빙긋이 웃으며 되받아쳐 줬다.

“초절정이시지만 늘 남들에게 사냥을 시키시는 노선배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시장하시면 직접 잡아 오셔도 될 텐데 거참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내 웃으며 비꼬는 말에도 그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절대 자신이 배고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며 계속 내 잠에 관해서만 타박했다.

“배, 배고파서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네놈은 대체 왜 그렇게 잠을 못 깨는 게냐? 진짜 불침번이라도 세워야 하는 거 아니냐?”

우리는 현재 잘 때 불침번을 서지 않고 그냥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사실 잘 때도 항상 감각이 곤두서 있는 절정 이상의 고수들에게 불침번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흑표까지 있으니 더더욱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걸 잘 아는 그가 저런 소리를 하는 건 시비를 걸고 싶다는 뜻, 나는 뭐라고 대답해 줄까 잠깐 생각하다가 문득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제가 꿈에서 신선을 뵙곤 하거든요. 그래서 자는 시간을 좀 중요시하곤 합니다. 신선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좀 많아야지요. 그래도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으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그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황급히 물었다.

“시, 신선이라고? 그러고 보니 네 녀석 전에 꿈에서 신선을 보고 위험을 막아 낸 적이 있다더니만, 그 거짓말이 진짜였던 거냐?”

겉으론 맨날 구시렁거려도 지난 원정 이후 그 또한 내 말을 대단히 신뢰하게 된 모양이었다.

이런 헛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말이다.

예전 같으면 웃기지 말라고 타박했을 텐데, 이젠 이런 말까지도 믿고 있었다.

나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말을 돌렸다.

“글쎄요. 함부로 말하기 힘든 얘기라…. 아, 저기 조장이 오는군요.”

그러자 그가 안달 난 듯 나를 졸랐다.

“아, 왜? 진짜 신선을 만나는 게냐? 막 꿈에서 앞일을 알려 주시고 그러는 거야? 그, 신선께서 혹시 나에 대해서는 무슨 얘기 안 하시던?”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이런 얘기를 해 주는 건 천기누설일 수 있는데….”

말해 줄 듯 말 듯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가 내게 확 달라붙었다.

“조, 조금만 해 주는 건 괜찮지 않겠느냐? 아주 쪼금만 말이다!”

“그… 신선께서….”

“신선께서?”

“노선배에게….”

“그래, 내게! 뭐? 뭐라고 하시던?!”

씨익 웃으며 놀리듯 말해 줬다.

“남 좀 그만 시키고 스스로 아침 좀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뭐, 뭐, 인마?! 너 그거 다 헛소리지?! 꿈에서 신선을 본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지?!”

길길이 날뛰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피식 웃음 지었다.

엄밀히 말해 신선은 아니지만, 신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매일 밤 꿈속에서 묵랑 어르신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몽혼대법이라는 수련 방법이었다.

꿈속에 현실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수련하는 방법으로, 묵랑 어르신은 그곳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나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 주시곤 했다.

현실에선 제대로 수련해 볼 기회도 없는 묵랑검법을 벌써 이 초식 비상까지 익힐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또한 현실에선 배워 본 적이 없는 점창파의 무공들을 모두 익힐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증칠의 말을 무시하고는 설풍 조장을 향해 물었다.

“조장! 뭐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꿩이 있길래 세 마리 잡아 왔다네! 바로 구워 드리겠습니다, 증 선배!”

그러자 증칠은 내게 놀림을 받은 것에 삐진 것인지, 아니면 사냥물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인지 금세 인상을 팍 찌푸리며 소리쳤다.

“아, 이놈아! 꿩고기는 퍽퍽하단 말이다! 아침부터 그런 퍽퍽한 고기를 잡아 오다니 그렇게 요리에 대한 감이 없느냐?!”

아침부터 일어나 음식을 마련해 왔음에도 오히려 타박하는 저 뻔뻔한 모습.

역시 언제나와 같은 증칠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장은 그의 행태가 기가 막히지도 않는지 그저 기분 좋게 웃으며 대꾸해 줬다.

“아, 꿩고기는 안 좋아하셨군요. 다음부터는 다른 걸 잡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의 투정에도 맞받아치지 않고 그저 웃는 얼굴로 대하는 조장의 반응에 김이 샜는지, 증칠이 또 재미없다는 듯 구시렁거렸다.

“에잉! 뭔 사내놈이 저렇게 맥아리가 없어서야….”

그러다 문득 비사영의 얘기를 꺼냈다.

“또라이, 그놈이 음식 선정은 참 잘했었는데 말이다. 말하는 재미도 있었고.”

말이야 음식 선정에 대한 얘기였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비사영이 좀 그리운 것 같았다.

허구한 날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서로 다투더니, 그게 그에겐 나름의 즐거움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나름 그에게 되받아쳐 주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비사영 녀석처럼 똑같은 수준에서 쏴 주지는 않아서 그런지 흥이 덜해 보였다.

문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러게 그때 사영과 함께 가시지 그랬습니까?”

그러자 그가 코웃음을 쳤다.

“흥! 음식 좀 얻어먹자고 그 건방진 놈이랑 함께 가겠느냐? 그쪽으로 갔으면 계속 수련만 할 텐데 그게 뭐가 재미있다고.”

“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그가 왜 우리를 따라오겠다고 했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예전에 무황총에 안 가려고 했던 걸 보면 귀찮은 것도 싫어하는 것 같았고, 또 지금 얘기대로라면 우리보단 비사영이 더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걸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묵랑이 말을 걸었다.

- 저 녀석은 아마 자네들과 무황총으로 원정을 갔던 일이 무척 즐거웠던 모양일세. 오랜만에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야. 그래서 자네들과 함께 있으면 또 재밌는 일들을 겪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군. 수련은 하기 싫고, 새로운 사건은 겪고 싶으니 당연히 자네들 쪽을 따라온 거지.

‘아아, 그렇군요.’

역시 묵랑 어르신과 있으면 이런 게 참 편했다.

그저 의지만으로 상대방의 의사를 읽어 내 주시니.

저런 기술은 나도 꼭 배워 보고 싶을 정도였다.

묵랑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 게다가 저 녀석, 말은 저렇게 해도 자네들을 무척 높이 평가하고 있군. 아마 무림의 전설이 될지도 모를 인물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일세. 그래서 그 전설의 탄생을 옆에서 직접 지켜보고 싶은 모양이야.

무림의 전설이라니.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건 참 당황스러운 이유로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까지 읽으실 수 있다니 놀랍네요.’

그러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 나는 저렇게 생각이 겉으로 다 드러나는, 알기 쉬운 인간의 속마음도 못 알아보는 자네들이 더 놀랍다네.

잠시 후, 우리는 잘 익은 꿩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때, 입으로는 너무 퍽퍽해 먹기 싫다고 투덜대면서도 우리 중 가장 잘 뜯어 먹고 있던 증칠이 문득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곧 광서성인데 어디로 갈 생각이냐? 이대로 동쪽으로 가다 조금만 남하하면 남해가 나올 텐데, 바다 구경을 좀 해 보는 건 어떠냐?”

“아, 진로 말씀이시군요.”

우리는 현재 운남성의 북쪽이었던 비룡십삼대 쪽에서 운남성 외곽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와 광서성과의 경계쯤에 도착한 상태였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이 동쪽이기도 하고, 북쪽인 귀주성으로 갈 경우 혹시 제갈지강의 시선을 끌게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니 이대로 계속 동쪽으로 가게 된다면 증칠의 말대로 광서성 동남쪽에서 남해를 보게 될 수도 있었다.

내가 두 번의 삶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바다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증칠에게 대답해 줬다.

“제가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쪽으로 가 보고 싶긴 한데, 그쪽은 해남파의 영약이어서요. 괜히 문제가 생길 위험을 무릅쓰느니 바다가 나오기 전까진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북쪽의 호남성까지 간 후 다시 동쪽으로 향할 생각입니다.”

그러자 어쩐지 조마조마해 보였던 증칠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호, 호남성 말이냐?!”

“예, 형산파의 영역인 호남성 쪽이라면 별문제 없이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선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증칠은 지금 누가 봐도 무척이나 문제가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에 펄쩍 뛰며 격렬히 부정했다.

“무, 문제라니!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이냐?! 그런 것 없다!”

그렇게 소리친 그는 매우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열심히 먹던 꿩고기도 입에 대지 않은 채였다.

나와 설풍 조장은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분명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묵랑 어르신께 여쭤봤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르신?’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 아까 형산파 얘기가 나올 때 무척 크게 동요하더군. 그쪽과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던데? 그나저나 아까 해남파 때문에 바다 쪽으로 갈 수 없다는 건 무슨 얘기인가? 해남파는 정파가 아니었나?

‘아, 예전엔 그랬었는데 요즘은 아닙니다. 요즘의 해남파는 사파에 속하죠. 그것도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해적 집단입니다.’

- 해적 집단이라고? 해남파가 말인가? 그들은 원래 해적들과 싸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만든 곳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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