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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198화 (185/359)

198화 남해-2

물에 빠진 해적들을 모두 고혼으로 만들어 준 후 해안가로 돌아왔을 때, 선우진과 설풍이 보게 된 광경은 그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무척이나 간절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자신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행동은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선우진 일행을 향해 간곡히 부탁하고 있었다.

“협사님들! 제발 저희를 지켜 주십시오! 저놈들이 당한 걸 알았으니 이제 곧 해남파 놈들이 또 개떼처럼 몰려올 것입니다! 협사님들께서 그냥 가 버리신다면 저희 마을은 끝장입니다요!”

“저희를 지켜 주십시오!”

“협사님들, 제발!”

선우진 일행은 난감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발이 묶이는 것도, 해남파와 계속해서 충돌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들의 말대로 깨끗이 처리하지 못한 이상 놈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올 테고, 자신들이 그냥 떠나 버린다면 마을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할 것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선우진이 한숨을 내쉬며 다른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 다음 놈들이 왔을 땐 무리를 해서라도 모두 처리해 버려야 하겠네요.”

그렇게 그들은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 잠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해적들에게 당했던 약탈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고 세 사람은 이제야 평화로운 바닷가에서 풍광을 감상하고 있었다.

설풍이 투명하게 속이 비쳐 보이는 맑은 하늘빛 바다를 보며 감탄했다.

“정말 신비한 빛깔이로군요. 어떤 보석도 저런 빛깔은 못 낼 겁니다. 하늘빛보다 훨씬 더 아름답군요.”

그러자 젊은 시절 이곳저곳을 다녀 봤던 증칠이 경박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헤헤헤! 더 신기한 게 뭔지 아느냐? 기후에 따라 저 바다 빛깔이 달라진다는 거다. 따듯한 곳에선 저렇게 투명한 연하늘빛을 띠지만 날이 추운 곳에선 진한 군청색이 되지.”

“허어, 그게 정말입니까, 증 형님?”

“그렇다니까. 아마 강소성에 가면 그런 바다 빛깔을 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곳도 충분히 멋지지. 여기 바다가 예쁜 봄 풍경 같다면 그곳의 바다는 서늘한 겨울 풍경 같다고나 할까?”

“예쁜 봄 풍경과 서늘한 겨울 풍경이라. 멋진 표현입니다, 형님.”

“크헤헤헤헤! 내가 좀 시적인 면이 있지.”

하지만 두 번의 생애에 걸쳐 처음 보는 아름다운 바다의 풍광에도 선우진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마음 편하게 대화하는 증칠, 설풍 두 사람과는 달리 그는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고 계획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앞날이 그리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물론 자신들이 고작 해적들의 습격에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이미 해남파에 이곳의 위치가 공유된 상태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지금처럼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들을 계속 한 척씩 놓치는 사태가 반복되거나 말이다.

이곳이 바다라는 것, 그리고 고정된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으로 와닿고 있었다.

그때 묵랑이 문득 말했다.

- 그것뿐만이 아니네.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관심을 놓지 말게나.

그 말에 선우진이 의문을 표했다.

‘네? 마을 사람들이요?’

그러자 묵랑이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래. 자네 혹시 약자들이 생존을 위해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것이 뭔지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 바로 양심이라네.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얘기였다.

선우진이 문득 뒤를 돌아 마을 쪽을 바라봤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 마을을 정리하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주겠다며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우진이 문득 두 형들에게 말했다.

“형님들, 저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음? 그래. 다녀오게.”

“막내, 소변보러 가냐? 아님 큰 거?”

증칠의 말에 쓴웃음을 지은 선우진이 대충 대답했다.

“큰 겁니다. 좀 이따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은신술을 이용해 그림자를 따라 마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증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내가 창피한가 보구먼. 큰일 보는데 은신술까지 다 쓰고.”

선우진이 은신술을 사용해 향한 곳은 마을의 촌장이 있는 곳이었다.

촌장은 자신들에게 줄 음식을 준비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선우진의 표정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마을 아낙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작게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잠드는 약을 넣으라굽쇼?!”

“그래, 저들은 고수들인 것 같으니까 잔뜩 넣게.”

“하, 하지만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구요? 저 사람들이 화가 나서 우리를 죽이기라도 하면….”

그러자 촌장이 답답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작게 소리쳤다.

“아직도 모르겠나?! 우리는 저자들 때문에 이미 죽은 목숨일세! 이제 해남파 놈들이 오면 모두가 싸그리 몰살당할 일만 남았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자들을 잡아서 해남파 놈들에게 바치는 것뿐이라네! 혹시 저자들이 눈치채면? 그럼 빌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도 저자들은 협객인 양하는 자들이니 우릴 죽이지는 않을 거라 믿을 수밖에.”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자신들이 구해 준 저들이 자신들을 해남파에 바치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씁쓸한 얼굴로 협행의 결과가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던 검성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묵랑이 말했다.

- 너무 실망하지 말게. 저들에게 있어 어쩌면 저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네.

‘…당연한 일이라고요?’

- 아까 말하지 않았나? 약자들이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버리게 되는 것이 양심이라고. 저들에게 해남파에 대항한다는 것이 이미 몰살 그 자체라고 인식되어 있다면, 좀 더 살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양심을 버린다.

선우진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양심이란 가치를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저들은 그야말로 좀 더 살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한 걸지도 몰랐으니까.

그들의 말대로 자신들은 설사 수면 약을 발견한다 해도 저들을 몰살시키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그걸 납득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선우진이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그럼, 협이라는 건 생존 앞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란 말입니까?’

그러자 묵랑이 웃음 띤 목소리로 대답했다.

-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하는군. 자네가 예전에 살수 소녀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협이라는 것도 결국 선택이라고. 누군가 생존을 택할 때 누군가는 양심을 택하겠지. 그리고 둘 중 누가 존중받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자네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선우진의 수하로 받아들인 적마혁의 동생 적하연에게 했던 얘기였다.

묵랑은 아마 그때도 선우진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문득 부끄러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고금제일인으로 평가받는 협객 앞에서 협을 논했다는 부끄러움과 그런 그에게서 공감을 받았다는 뿌듯함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저들의 선택이 생존을 위해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라면, 자신 또한 굳이 저들을 지켜 주기 위해 여기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저들은 자신들에 대한 처우를 스스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묵랑이 다시 말했다.

- 나는 저들의 본성이 악하기에 저렇게 됐다고 생각지는 않네. 고래로 힘든 환경 속에서 수많은 약자들이 저들과 같은 선택을 했었으니까. 결국 원인을 따지자면 그 무도한 놈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 때문이겠지.

그 말에 선우진도 동의했다.

저것은 저들의 탓이라기보다는 저럴 수밖에 없도록 만든 해남파의 탓일 것이었다.

묵랑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람에겐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네. 협이란 때로 생존과 반대되는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에 짐승이 아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가치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네. 공자의 ‘인’도, 묵자의 ‘겸애’도 그 아귀다툼의 전쟁터 속이었기에 오히려 더 찬란한 빛을 발했던 거라고 말일세.

선우진은 그 말을 천천히 음미하다 다시 은신한 채 다른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그러자 선우진의 설명을 들은 설풍은 그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증칠은 헛웃음을 지었다.

“얘기해 줘서 고맙구나, 막내야. 내 또 그 꼴을 볼 뻔했군.”

평소의 그답지 않은 씁쓸한 말투에 선우진과 설풍이 물었다.

“이런 일이 또 있으셨습니까?”

그러자 그가 옛일을 생각하자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듯 인상을 팍 찡그리며 대답했다.

“무림에 나온 초창기, 내 꿈도 원래는 협객이었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을 구하겠다며 꽤 애를 썼었지. 그런데 그렇게 애써 구해 준 이들이 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도 몇 번이나 말이다. 그래서 때려치웠었지. 그 협객이라는 거 난 못 해 먹겠다고.”

하지만 화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던 그는 이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그게 이제 이해가 되긴 하는구나. 약자들이 생존을 위해 제일 먼저 버리는 것이 양심이라. 허, 이 나이 먹고 막내에게 듣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다니, 헛살았도다.”

선우진과 설풍은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증칠을 무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에게, 아마도 도움을 준 사람들의 배신은 큰 상처였을 거라고 짐작됐기 때문이었다.

그때 문득 증칠이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근데 음식은 아예 못 먹는 거냐? 배가 고픈데? 약을 안 넣은 음식이라도 내놓으라고 할까?”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증칠을 보며 선우진과 설풍이 실소하고 있을 때였다.

마을 쪽에서부터 한 사람이 보따리를 들고 그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 사람을 본 설풍이 문득 중얼거렸다.

“저 아이는?”

“…얼굴이 눈에 익는 아이로군요.”

그 사람은 어린 여자아이, 그것도 처음에 선우진이 구해 줬던 열한 살이라는 그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가 낑낑거리며 아마도 음식이 들었을 보따리를 들고 오는 것을 보자 일행들의 표정이 다시 무거워졌다.

왜 저 아이에게 음식을 나르게 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약을 넣은 것이 들켜도 설마 저 아이에게 큰 분풀이를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겠지. 그들의 말마따나 우리는 협객인 양하는 작자들이니까.’

이미 알고 있음에도 허탈함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까맣게 탄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음식 보따리를 내려놨다.

세 사람은 무거운 표정으로 그 아이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 아이가 슬쩍 뒤를 살피더니만 다급한 표정으로 작게 속삭였던 것이었다.

“협사님들! 이걸 절대로 드시면 안 돼요!”

세 사람은 당황해 되물었다.

“뭐라고?”

그러자 아이가 절박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음식에 약이 들어 있어요! 마을 어른들이 협사님들을 잠재워 나쁜 놈들에게 바치려고 해요! 그래야 살아날 수 있다고요!”

그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묵랑조차도 당황한 것 같았다.

선우진이 문득 그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를 바쳐야만 살아날 수 있다면, 너는 왜 그걸 우리에게 알려 주느냐?”

그러자 아이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만,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마을 어른들은… 항상 다른 사람이 죽어도 자기만 살아남으면 된대요. 저희 엄마가 잡혀가실 때도 그렇게 말하며 살아남았다고 좋아했었어요. 근데 그건 잘못된 거잖아요? 협사님들이 살아남는다면 또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거지만, 마을 어른들이 살아남는다면 또 다른 사람들을 해적들에게 바칠 뿐인걸요. 그건 너무 잘못된 일인 것 같아요.”

그 순수하고 올곧은 말에 세 사람은 탄식했다.

선우진은 그 아이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너는 어떠냐? 이걸 알려 줘서 우리가 그냥 떠나 버린다면 너도 해적들에게 죽게 될지도 모르잖느냐? 너는 그게 무섭지 않느냐?”

그러자 아이의 두 눈에 금세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이가 말했다.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그래도… 그건 잘못된 거잖아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잖아요.”

세 사람은 순간 가슴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설풍은 기특하다는 듯 빙그레 웃음 지었고, 증칠은 어느새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선우진이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너야말로 진짜 협사로구나.”

아이는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네? 제가 협사라고요?”

선우진이 문득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가 너만 데리고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를 따라올 생각이 있느냐?”

그 제안에 아이의 표정이 짧은 순간 몇 번이나 바뀌었다. 놀라움, 환희, 고민, 포기까지. 대답을 듣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아이는 마침내 풀 죽은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렇게 물으시는 건 다른 사람들 말고 저만 살려 주시겠다고 말하시는 거겠죠?”

선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들은 보호받을 자격을 잃었으니까.”

그러자 아이가 땅으로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협사님들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분명 죽을 것 같지만, 그리고 정말 죽고 싶지는 않지만…. 맨날 술 마시고 때리기만 해도 이곳엔 아버지가 계세요. 제가 돌봐 줘야 하는 동생들도 둘 있고. 그러니 저 혼자 살기 위해 따라가는 건 옳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그러곤 푹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협사님. 그렇게 물어봐 주셔서요.”

선우진은 빙긋이 웃음 지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가족들이 마을에 살고 있고, 자칫 잘못하면 가족들마저 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옳지 않다는 이유로 진실을 밝혔다는 것이 아닌가.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기특한 마음이 더 강해졌다.

그러자 감동한 듯 눈시울이 붉어진 증칠이 선우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막내야?”

그는 혹시라도 선우진이 그냥 가자고 말할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그에게 빙긋이 웃어 주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야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이 용감한 협사와 가족들이 다치도록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좋은 방법을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증칠은 안심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역시 그렇지? 이 형도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때였다.

설풍이 바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방법을 최대한 빨리 생각해 낼 수 없다면, 우리의 다음 할 일은 이미 정해진 것 같구나.”

선우진과 증칠은 설풍의 시선을 따라 눈을 옮겼다.

그러자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먼 수평선 밑에서 점으로 보이는 배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증칠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벌써 왔군. 제깟 놈들이 와 봤자지. 기껏 한 척 가지고…. 응? 두 척? 세 척, 네 척, 다섯 척? 뭐야? 뭐가 계속 늘어나?”

배의 수는 증칠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설풍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열한 척이로군요.”

그랬다.

열한 척의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해남파의 전선이었다.

***

배가 해안가까지 다가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열한 척의 배 중 한 척을 제외한 나머지 열 척의 배가 해안에서 십 장 거리에 멈춰 측면을 해안 쪽으로 한 채 일 열로 정렬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매우 부드러웠다.

배를 잘 모르는 선우진들이 보기에도 무척이나 숙련되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설풍이 중얼거렸다.

“한 척당 대포 다섯 문씩 이쪽을 겨누고 있군. 모두 오십 문이야.”

선우진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아까완 달리 선원들도 잘 훈련된 정예들인 것 같군요. 한 척당 삼십 명 정도가 바로 활을 쏠 수 있도록 화살을 시위에 걸치고 있어요. 모두 삼백 명 정도 되겠군요.”

그러자 증칠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그래 봐야 해적 놈들이지. 아깐 너희가 처리했으니 이번엔 이 형님이 실력을 보여 주마. 배에 숨어 있다고 안전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주지.”

아무래도 앞뒤 없는 증칠의 자신감이 또 도진 것 같았다.

선우진은 바다에서 함부로 행동하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에 증칠에게 경고를 해 주려 했다.

하지만 적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먼저였다.

강력한 내공이 실려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가 배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 본인은 해남파의 오익덕이라고 한다! 그대들이 감히 우리 해남파의 배를 침몰시켰는가?

오익덕.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가 일도살경 오익덕이 맞다면 그는 해남십이가 중 해남오가의 최고수이자 해남파 전체에서도 몇 안 되는 초절정 고수였으니까 말이다.

선우진은 월하환검무로 감각을 증폭한 후 그의 외모를 살펴봤다.

그는 큰 체격에 삼국지의 관운장처럼 수염을 길게 기르고 대도를 등에 멘 구척장신의 거한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가 분명한 일도살경 오익덕이 맞는 것 같았다.

초절정 고수가 지휘하는 열한 척의 배, 그리고 오십 문의 대포와 삼백여 명의 궁수들.

선우진의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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