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인파랑-1
우리는 유해응을 만난 후 다시 북동쪽, 그러니까 내륙 쪽으로 올라갔다.
증칠 형님이야 불만이 많은 것 같았지만 해남파와 바다에서 부딪치는 일이 위험하다는 걸 그 또한 인정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밀림 속을 달리며 묵랑과 대화를 나눴다.
‘그럼 그 백랑검개라는 자가 가지고 있는 검이 어르신께서 만든 설랑검이 확실하다는 말씀이시로군요?’
- 그렇지. 하얀 늑대가 새겨진 검이야 또 있을 수 있겠지만, 바다를 얼리는 빙공까지 사용했다면 다른 검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것 같군.
나는 해안가 마을에서 백랑검개라는 자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봤었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은 그저 거지꼴을 한 남자 한 명이 최근 들어 새하얀 순백의 검을 들고 해남파 무리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까지야 특별할 것도 없었다.
거지꼴이라는 말이야 그의 행색이 추레하다는 뜻이니 결국 정체를 짐작할 수 없다는 뜻이었고, 새하얀 순백의 검이야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선우진이 청연에게 선물했던 백연검도 순백의 검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가 썼다는 무공만큼은 좀 특별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백랑검개가 바다를 얼린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무려 이 뜨거운 남해에서 바다를 얼리고는 그 위를 달리며 바다에 있는 해적들과 싸운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묵랑은 깊이 탄식하며 말했었다.
- 설랑검법! 내가 만든 설랑검이 확실하군!
묵랑의 말에 따르면 설랑검에 남긴 무공은 바로 전설의 문파 북해빙궁의 빙백신공, 빙백검법을 참고해 만든 설랑검법과 설랑심법이었다.
그러니 그 백랑검개라는 자가 들고 있는 검은 분명 검신의 유산인 설랑검이고, 심지어 그자는 나처럼 검신의 시험을 통과하기까지 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확신한 묵랑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 허어, 설랑검이 그 모습을 드러내다니 이상한 일이로군. 확실히 해남파가 엉망이긴 한 모양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설랑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해남파가 엉망인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해 줬다.
- 예전에 설랑검은 인증호 그 녀석이 가져갔었거든. 늑대 장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호랑이로 바꿔주면 자기 가문의 증표로 삼겠다고 했었네. 그래서 내가 직접 늑대 문양 위에 백호 문양을 덧씌워줬었지. 그런데 그게 해남파에서 나와 백랑검개라는 자의 손에 들어갔다니, 또 원래의 늑대 장식이 드러났다니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않았겠나?
호랑이 장식을 한 하얀 검이라고?
그 말을 듣자 나는 뭔가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그럼 그게 바로 백호검이로군요?’
- 응? 백호검이라고?
‘예, 백호검은 해남검왕 인증호가 사용했던 검으로 그때부터 대대로 해남파 장문인들의 신물로 사용돼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정황상 그게 아마 설랑검일 것 같군요. 그리고 그 백랑검개라는 자가 설랑검을 들고 해남파와 싸우는 걸 보면….’
-으음, 어쩌면 그가 예전에 실종됐다던 해남인가의 후계자일지도 모르겠군.
‘예,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알면 알수록 해남파의 상황은 복잡해 보였다.
패도를 추구해 사파처럼 힘을 불려 가는 지도자와 정파의 도리를 지키고자 하는 문도들, 그리고 다시 제 모습이 드러난 설랑검으로 해남파와 싸우는 해남인가의 후계자까지.
물론 그가 해남인가의 후계자라는 게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복잡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때 문득 묵랑 어르신께서 어이없는 듯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 그것도 그렇지만, 백 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던 내 시험을 동시대에 세 명이나 통과했다니 그것도 참 묘한 일이로군.
‘아, 그도 그렇군요.’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혈랑검제 반중양과 나, 그리고 백랑검개라는 자까지, 검신께서 안배하신 ‘협심’의 시험을 세 명이나 통과했다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그의 말을 들으니 나는 문득 그 백랑검개라는 자가 무척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검신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건 어쨌든 그가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의 협심을 지닌 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자 묵랑이 문득 웃으며 말했다.
- 그렇게 여유 있게 생각해선 안 될 것 같은데? 달리 말하면 내 진신절기를 이을 경쟁자가 두 명이나 더 있다는 뜻이 아닌가? 좀 더 서둘러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을 듣고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그런 점도 있긴 했던 것이다.
애써 절강성까지 갔는데 검신의 진신절기를 다른 사람이 이었다면 그것도 대단히 허탈한 일일 것이었다.
문득 묵랑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 혈랑검제 반중양이 어르신의 시험을 통과한 지 오래됐으니, 그가 벌써 어르신의 진신절기를 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묵랑은 거기에 대해서만큼은 부정적이었다.
-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걸세. 내 검의 시험은 협심에 대한 것이었지만, 망아공을 잇기 위해선 압도적인 재능이 필요하니까 말일세.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내 평생에 그것을 이을 후인을 발견하지 못해 결국 이런 방법까지 써야만 했다고. 근데 지난번 괴검이라는 자의 말에 따르면 그 검제라는 자의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던데?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미 검신의 절기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잊기로 했다.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지금, 이건 결국 쓸데없는 고민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곤 다른 의문에 대해 질문했다.
‘묵랑검이 천마신공, 설랑검이 빙백신공을 참고하셨다면 다른 검들은 무슨 무공을 참고하신 겁니까?’
그러자 그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그래, 궁금하지? 다른 것들도 만만치 않다네. 일단 벽랑검법엔 무당의 태극혜검을 참고한 무공을 담았었지. 내가 본 구파의 무공 중엔 그게 최고였거든.
‘태극혜검이요?!’
기가 막히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태극혜검이라면 명실공히 정파 최고라는 검공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 수준이 어찌나 높던지 최근 무당파에서도 익힌 사람이 없은 지 한참 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근데 그런 절기가 든 벽랑검을 독안검괴 서일 같은 자가 가지고 있다니….
그와 너무도 안 어울렸다.
하지만 태극혜검이란 말을 듣고 생긴 놀라움도 혈랑검의 무공 앞에서는 별것이 아니었다.
묵랑이 혈랑검에 담은 무공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혈랑검엔 혈교의 구천혈룡마공을 참고한 무공을 담았다네.
혈교의 구천혈룡마공이라고?!
깜짝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혈교의 무공이라고요?!’
- 그래. 혈교 놈들의 무공도 심성을 망쳐서 그렇지 그것만 보완하면 꽤 괜찮은 것들이 많다네. 구천혈룡마공 같은 경우는 특히 아주 괜찮은 무공이었지. 아마 검제라는 아이는 혈교와 많이 부딪치지 않았을 걸세. 내가 아마 그렇게 얘기해 줬을 거거든. 최대한 달리 보이게 만들기는 했는데 그래도 익힌 놈들이 보기엔 비슷한 게 보일 테니 말일세.
‘아아….’
그렇게 듣고 보니 확실히 협객으로 유명한 검제가 유독 혈교의 마두들과 부딪친 적이 별로 없긴 했다.
그 이유가 아마 그가 익힌 무공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묵랑이 문득 웃으며 내게 경고했다.
- 그러니 자네도 조심하게. 다른 놈들은 몰라도 천마가 묵랑검법을 보게 되면 눈에 불을 켜고 자네를 죽이려 할 테니 말일세.
‘…….’
그건 참… 무서운 말이었다.
천마가 나를 보게 되면 눈에 불을 켜고 죽이려 할 거라니, 그러면 천마가 문제가 아니라 천하에서 가장 강한 세력인 천마신교의 노림을 받게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자 묵랑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 그러니 그 전에 천마보다 강해지면 될 것이 아닌가? 하하하하!
‘…….’
말은 참 쉬웠다.
천마보다 강해지면 된다니,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혈마도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런 말을 마치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는 듯 쉽게 내뱉는 묵랑 어르신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인상을 팍 찌푸렸던 나는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는 다시 물었다.
‘그럼 황랑검엔 무엇을 담으셨습니까?’
그러자 이번엔 묵랑이 확 기분이 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황랑검 말인가? 거기엔 내 가전검법인 칠성검법을 참고한 무공을 담았다네. 내가 가장 오래 사용했던 검법이라 애정을 가지고 창안했었는데, 그놈이 그 귀한 걸 부숴 버리다니….
묵랑은 자신의 안배가 담긴 검을 부순 괴검에게 영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기분이 상쾌했다.
묵랑이 말했다.
- …자네 기분은 다 느껴진다네.
‘아, 죄송합니다.’
사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고소했다.
묵랑이 중얼거렸다.
- 자넬 후인으로 삼은 게 처음으로 후회되는군.
***
우리는 하루를 꼬박 달려 밀림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놈의 광서성도 서부 쪽 절반은 운남성과 같은 밀림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드디어 밀림을 벗어나 도착한 곳은 광서성 서남부 삼분지 일쯤 되는 곳에 위치한 남녕,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곳 성곽 안으로 들어가며 증칠 형님이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크아! 드디어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숙소다운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겠구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남녕 안으로 들어가려는 형님을 붙잡았다.
턱!
“잉? 또 왜? 왜 붙잡는데?”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그러냐는 얼굴로 항의하는 형님에게 나는 엄격한 얼굴로 말해 줬다.
“형님,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광서성은 합산파라는 문파가 최근 위세를 떨치고 있고, 이곳 남녕 또한 합산파의 영역입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그러자 그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 알았다! 알았다고! 시비 안 걸면 될 것 아니냐?! 무슨 일이 생기든 아예 나서지도 않으마! 아니, 쳐다보지도 않으마! 됐냐?!”
그의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절규를 들으며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의 잔소리가 잘 먹혀들어 간 것 같았다.
“예, 그 정도면 됐습니다.”
그러자 그가 성문 안으로 들어가며 구시렁거렸다.
“내가 왜 저놈이랑 의형제를 맺어 가지곤. 저게 막내인지, 형님인지, 마누라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다 들립니다, 형님.”
“아, 말도 못 하냐?!”
사실 명확히 말하면 그와는 의형제를 맺은 적이 없긴 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자연스럽게 삼 형제로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 친형제들과는 달리 난 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둘째 형님도, 성격도 급하고 생각도 좀 모자라지만 본성은 착한 큰 형님도 말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객잔에 들어가 음식을 시킬 수 있었다.
증칠 형님은 금세 신이 난 얼굴로 소리쳤다.
“여기서 잘하는 거 다 하나씩 가져오게! 술도 제일 좋은 걸로 가져오고!”
잔뜩 신이 난 그를 보며 설풍 형님이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너무 많이 시키시는 거 아닙니까, 형님?”
“괜찮다, 괜찮다! 가끔 특별한 날에는 남기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아우들에게 처음 식사를 사는 기념으로 오늘 이 형님이 다 쏘마!”
하지만 그렇게 신나 하던 그는 막상 음식이 나오니 바로 먹지 못하고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영춘이는 잘 먹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혹시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소영춘은 바닷가 마을에서 만났던 여자아이의 이름이었다.
증칠 형님은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아이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저러다 제자로 삼겠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막내야, 우리가 그 마을 놈들에게 좀 더 제대로 경고를 해 줬어야 했던 게 아닐까? 거기 놈들이 영춘이에게 앙심을 품고 해코지를 하기라도 하면 어떡하느냐?”
우리는 마을을 떠나기 전 음식에 수면 약을 넣는 것을 주도했던 촌장을 마을 사람들 앞에서 본보기로 죽여 버렸었다.
선의를 가지고 도와주려 했던 이를 해하려 한 대가라고 말하며 말이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영춘이가 우리에게 알려 줬다는 얘기를 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유해응이 보낸 무사들도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짓을 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자 그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난 그놈들도 불안하다. 그놈들도 결국 해남파의 해적 놈들 아니냐? 우리가 없을 때 갑자기 돌변할지 누가 알겠느냐?”
그의 걱정도 물론 일리는 있었다.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묵랑 어르신께선 그들을 보고 그 대장에 그 부하라고 평하셨으니까 말이다.
유해응 그자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부하라면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웃으며 말해 줬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이번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영춘이를 데려가시지요. 가족들과 함께 가도 된다고 하면 그 아이도 따라올 겁니다.”
그러자 그가 혹한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럴까?”
“예, 영춘이같이 귀여운 아이가 사질이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네요.”
설풍 형님 또한 웃으며 동조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형님. 그런 귀여운 사질을 얻을 수 있다면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 그래? 아우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제자 같은 게 생기는 거야 좀 귀찮긴 한데, 그래도 아우들이 그렇게까지 바란다면야….”
“네, 정말 바라고 있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형님.”
“그래, 그럼 한번 생각해 보겠네.”
그렇게 말한 증칠 형님은 이제 신이 나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한참 기분 좋게 음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나는 문득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객잔 구석에서 어린 점소이 한 명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니만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고는 뭔가 다른 일이 있는 듯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흐음.”
그가 들어간 주방 쪽을 찝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설풍 형님이 내게 물었다.
“왜 그러나, 진 아우?”
“방금 무공도 익히지 않은 점소이 하나가 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음식을 우걱우걱 씹으며 증칠 형님이 말했다.
“응? 점소이가 손님을 살피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그렇긴 한데, 어쩐지 손님을 보는 눈빛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찝찝했다.
점소이들 중에는 그 지역의 하오문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도 많았다.
그러니 만약 그가 나에게서 뭔가를 보고 하오문에 그 사실을 전달하는 거라면 좀 귀찮아질 수도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가봤다.
하지만 주방 안에는 이미 그 점소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방 안쪽에 난 쪽문으로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 쪽으로 나갔으니 추적해도 잡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흐음.”
자리에 돌아온 나는 형님들에게 말했다.
“이미 빠져나갔군요. 아무래도 좀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설풍 형님이 내게 말했다.
“이상한 일이로군. 그가 뭘 가지고 진이 자네를 알아봤단 말인가? 묵랑검도 천으로 감싸 놨는데 말일세.”
나도 그게 이상했다.
게다가 점소이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던 걸 생각하면 검이 아닌 얼굴을 알아봤다는 얘긴데, 내 얼굴이 그렇게 유명한 얼굴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결국 음식을 다 먹으면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바로 여기서 떠나기로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굳이 사고가 생기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증칠 형님이 투덜거렸다.
“에잉, 간만에 안락한 잠자리에서 잠 좀 자 보나 했더니만 이상한 점소이 하나 때문에 그것도 못 하게 생겼구나.”
나 또한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마도 음식을 다 먹기 전에 바로 떠났어야 했던 모양이었다.
음식을 먹던 나와 설풍 형님은 문득 무언가를 느끼고 주변을 둘러봤다.
설풍 형님이 말했다.
“포위당했군.”
“예, 수가 많습니다.”
그러자 증칠 형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객잔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잉? 무슨 소리냐? 포위라고? 아무것도 없는데?”
“객잔 밖입니다. 한 백여 명의 무인들이 이 객잔을 주욱 둘러쌌군요.”
“엥? 그게 정말이냐?”
우리 감각이 맞다는 건 바로 증명됐다.
밖으로 나가려던 손님들이 두려운 얼굴로 다시 밀려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이, 이게 무슨 일이래?!”
“합산파 무사들이다! 그들이 밖에 온통 쫙 깔렸어!”
합산파 무사들?
그 말에 설풍 형님과 나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합산파라면 분명 근 몇 년 사이에 광서성 최강의 문파로 욱일승천하고 있는 문파였다.
이곳 남녕 쪽이 아닌 북동쪽의 합산 쪽에 위치한 문파이지만 최근 이곳저곳으로 세력을 확장해 광서성의 사분지 일이 그들의 세력권에 편입됐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우리를?
전혀 연관점이 없는데?
그때였다.
객잔의 문으로 십여 명의 무사들이 당당히 걸어 들어왔다.
앞에 서 있는 세 명 정도가 절정 고수, 나머지는 일류로 보이는 무사들이었다.
객잔 주인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그의 이마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고, 무사님들. 누추한 제 가게엔 어쩐 일로…!”
하지만 주인에게 돌아온 건 싸늘한 눈빛과 말뿐이었다.
“닥쳐라.”
그의 말에 객잔 주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위압적인 분위기에 객잔의 손님들도 두려운 눈빛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다.
선두에 선 무사는 한 손에 펼쳐진 종이를 들고는 객잔 안을 주욱 훑어봤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이 내게 멎었다.
그는 종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만 이내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찾았구나, 인파랑.”
…응?
누구라고?
나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당황했을 때, 그가 천에 싸인 내 묵랑검을 보며 또 말했다.
“그건 백호검이겠지? 크크크, 확실한 인파랑이로군.”
…아닌데?
전혀 아닌데?
매우 당황스러운 전개가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