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202화 (189/359)

202화 인파랑-2

일단 그에게 말을 해 봤다.

“저기,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소만, 나는 그 인파랑이라는 사람이….”

하지만 그는 코웃음을 치고는 보고 있던 종이를 우리 쪽으로 휙 내밀며 말했다.

“잘못 봤다고? 내가 말이냐?”

그가 내민 종이에는 한 남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초상화를 본 증칠 형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막내잖아?”

그랬다.

그 초상화에 그려진 남자는 정말이지 나와 꼭 닮아 있었다.

나조차 잠시 멍하니 바라봤을 정도였다.

증칠 형님이 놀란 눈으로 내게 물었다.

“막내야, 네 이름이 사실 인파랑이었던 거냐?”

헛웃음을 지으며 대꾸해 줬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고는 그 무사에게도 다시 말해 봤다.

“그 초상화가 소생과 닮은 것은 분명하지만 저는 절대 인파랑이라는 사람이….”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흐흐흐, 허가 놈이 북쪽에서 쫓고 있다고 하더니만, 그놈답게 역시 헛짓거리였군. 이곳에서 발견할 줄이야. 내게 잡혀 줘서 고맙구나, 해남인가의 후계자 인파랑이여. 덕분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구나.”

문득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인상을 굳혔다.

뭐라고?

어디의 후계자라고?

그때 그의 뒤에 선 부하들이 그에게 물었다.

“객잔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그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뭘 묻느냐? 목격자를 남길 수는 없지. 모두 죽여라.”

“예! 알겠습니다!”

잔인한 말이었다.

정파라고 알려진 합산파 무사들의 대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말.

그들의 대화를 들은 우리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지고 말았다.

합산파의 무사들은 바로 움직였다.

선두에 선 세 명의 절정 고수를 제외한 나머지 무사들이 바로 주변으로 튀어 나가며 객잔 주인과 손님들에게 병기를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죽어라!”

“하아압!”

“으아악!”

“사, 살려 주세요!”

하지만 그들은 병기를 마저 휘두를 수 없었다.

퓨퓨퓩!

“크아악!”

“으아악!”

“크학!”

갑자기 날아든 암기에 병기를 휘두르려는 자들이 모두 숨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암기를 던진 사람은 증칠 형님이었다.

순식간에 암기를 던져 세 명의 무사들을 격살한 증칠 형님이 문득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헛웃음이 나왔다.

“아닙니다. 잘하셨어요, 형님. 저런 자들을 가만히 둘 순 없죠.”

그러고는 나와 설풍 형님 또한 천천히 일어나며 놈들에게 말했다.

“감히 정파라는 놈들이 일반인들을 해치려 하다니.”

“나는 분명히 인파랑은 아니다만, 그와 상관없이 너희를 살려 두지 않겠다.”

그러자 선두에 선 무사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역시 한 수가 있었구나. 쏴라! 모두 쏴!”

쏘라고?

손에 든 게 아무것도 없는데 뭘 쏘란 거지?

설마?

그가 누구에게 뭘 쏘라고 했던 것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피피피피핑!

발로 덮어 놔 밖이 보이지 않았던 모든 창문에서 화살들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퓨퓨퓨퓨퓨퓩!

“불화살?!”

심지어 그것들은 그냥 화살도 아닌 불화살이었다.

객잔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이쪽으로 불화살을 겨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든 창문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져 들어온 불화살에 객잔에 있던 사람들은 속절없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살려 줘!”

“으아아악!”

우리는 당황해서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우리가 초절정의 고수들이라 해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할 수는 없었다.

그사이 합산파의 무사들은 문밖으로 신속하게 빠져나간 상태였다.

“이런!”

잠시 입술을 깨물었던 나는 바로 결정을 내리고는 소리쳤다.

“큰형님! 밖으로 나가 놈들을 교란해 주십시오! 둘째 형님은 저와 함께 사람들을 구하죠!”

“알았다!”

“알았네!”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지만, 계속 화살들이 쏟아진다면 그것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암기술이 뛰어난 증칠 형님이 궁수들을 휘젓는 사이 사람들을 구할 생각이었다.

객잔 안은 이미 날아온 화살들과 불타오르는 탁자들, 그로 인한 연기들로 금세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

사람들은 기침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있었다.

“쿨럭! 쿨럭!”

“살려 줘!”

“아아악! 내 다리!”

설풍 형님과 나는 먼저 화살을 맞은 사람들을 창가에서 먼 쪽으로 끌어내고는, 불타는 물건들을 한쪽으로 걷어차 모았다.

“모두 문가 쪽으로 모이십시오! 이쪽으론 화살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까 합산파의 무사들이 문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인지 정문 쪽에선 화살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피어오르는 연기에 기침을 하면서도 내 말에 따라 모두 문가 쪽으로 모였다.

“쿨럭! 쿨럭!”

“웨에엑!”

“아아악! 다리! 내 다리가!”

설풍 형님과 나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쪽으로 모은 후에야 밖으로 뛰쳐나갔다.

증 형님이 잘해 주신 덕분인지 밖에서는 이제 화살이 날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간 나와 설풍 형님은 또다시 안쪽 못지않은 아수라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이번엔 내가 아는 사람이 만든 아수라장이었다.

“크하하하하! 죽어라, 이놈들아!”

퓨슈슈슈슉!

“크아아악!”

“아아악! 살려 줘!”

“으아악!”

“도, 도망가자!”

증칠 형님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고 계셨다.

객잔 밖을 포위한 무사들은 백여 명이나 됐던 것 같았지만, 이미 그들의 반수가 목숨을 잃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초절정 고수가 일반 무사들을 만났을 때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백여 명의 무사들을 초토화시킨 증칠 형님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너희 따위가 감히 이 어르신을 공격하려 하다니! 백 년은…!”

하지만 그의 시선이 문득 내가 있는 쪽으로 향했을 때, 그는 순간 뚝 웃음을 그치고 말았다.

내가 씁쓸한 얼굴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세 명의 시체였다.

절정 고수 세 명의 시체.

처음 안으로 들어왔던 세 명의 절정 고수들이 모두 죽어 있었던 것이었다.

꼴을 보건대 증칠 형님의 암기 한 번을 피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쉬웠다.

이자들이 살아 있어야 심문해서 정보를 좀 뜯어냈을 텐데 말이다.

그러자 증 형님이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더니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놈들을 죽이면 안 됐던 거냐? 난 딱히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떻게 절정이라는 놈들이 그거 한 번을 못 피하고….”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 그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요즘 잔소리가 좀 과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계속 내 눈치를 보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좀 짠했다.

웃으며 형님에게 대답해 줬다.

“아닙니다. 이자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왕 이렇게 됐으니 합산파 지부로 찾아가 보죠.”

그러자 그가 금세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치? 거기에 가면 되는 걸 뭘 굳이 이 녀석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겠느냐? 귀찮게 말이다.”

…이 녀석들을 심문해 정보를 얻는 것보단, 거기 가는 게 훨씬 더 귀찮은 일일 텐데.

이런 손쉬운 자기합리화라니.

역시 증 형님은 좀 더 잔소리를 들으셔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내 눈빛이 싸해지자 그의 표정이 금세 또 침울해지고 있었다.

***

우리는 바람처럼 달려 합산파 남녕 지부로 향했다.

객잔을 습격했던 자들이 닿기 전에 먼저 들이칠 생각이었다.

설풍 형님이 달리며 물었다.

“정면으로 들이칠 생각인가?!”

“아니오! 일단 몰래 침투하죠! 먼저 수뇌부를 잡아 정보를 좀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곧 합산파 남녕 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의 규모는 대략 선우세가 정도, 근처까지 도착한 우리는 달리는 도중 그대로 유령처럼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스스슥!

선두는 나였다.

나는 월하환검무 현월로 증폭시킨 감각으로 일정 범위 내에서라면 담장 안쪽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훤히 파악할 수 있게 된 상태였다.

그래서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손쉽게 내부 상황을 파악해 증 형님께 전달했다.

- 정지. 네 명의 무사가 삼 장 거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았을 때 담장을 넘겠습니다.

또 한 가지 편한 점은 전음을 증 형님께만 전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설풍 형님의 감각 또한 나 못지않기에 굳이 신속하게 전음을 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담장 안쪽 인기척이 멀어지고 경계 무사들의 감시에 틈새가 생기자 바로 수신호를 보냈다.

- 지금!

스스슥!

세 명 모두 신법의 전문가들이기에 아무런 소음도, 군더더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림자 속을 유령처럼 이동해 거침없이 장원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찾는 목표는 가장 우두머리가 있으리라 예상되는 본전이었다.

보통 어떤 장원이든 본전이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심부에 위치한 가장 큰 건물을 찾으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찾았다.’

본전의 규모는 매우 거대했다.

장원 내 다른 건물에 비해서는 물론 장원의 규모에 비해서도 무척 거대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장원 주변으로 이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우리는 건물의 측면 쪽으로 움직였다.

정문 쪽에만 여덟 명의 무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기에 조용히 들어가기가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굳이 정문으로 갈 필요도 없었다.

우리 세 명의 은신술과 신법이라면 이삼 층 높이의 창문으로 들어가는 것쯤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 지금!

쉬이익!

측면을 경계하던 무사들의 시선에 사각이 생긴 순간 나는 바로 전음을 보냈고, 다음 순간 우리는 무사들 사이를 통과해 건물 벽에 붙을 수 있었다.

은신한 채 그림자가 되어 움직였기에 누구도 우리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는 그대로 유령처럼 스르륵 벽을 타고 삼 층으로 올라가 열린 창문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러고는 바로 창문 안쪽 방에 있던 무사 두 명을 덮쳤다.

샤아악!

“!”

“!”

그들이 있는 것은 물론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던 나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들의 반응 속도가 하늘과 땅 차이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눈이 놀라 크게 확대되는 순간 이미 그들은 점혈당한 상태였다.

타탁!

내가 두 형님께 시선을 보내자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기막을 만들어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차단했다.

모든 호흡이 너무도 완벽했다.

나는 이제 놀란 눈빛만 보내고 있는 두 무사에게 육성으로 얘기해 줬다.

“이제부터 너희에게 분근착골이라는 수법을 행하려고 한다. 그것은 모두 십 단계로 되어 있지. 일단 삼 단계까지만 맛을 보고 다시 얘기를 나눠 보도록 하자.”

그러고는 바로 그들의 근육과 뼈를 비틀어 줬다.

우득! 우드득!

“끄으으으으!”

“으르르르르르!”

말이 끝나자마자 다짜고짜 행한 분근착골에 두 사람의 눈이 신음과 함께 고통으로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

잠시 후 삼 단계까지의 분근착골을 맛본 그들은 아혈을 풀어 주자 경쟁적으로 정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여태껏 본 놈들 중 가장 쉬운 놈들이었다.

일단 그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합산파라는 놈들 전체가 정파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는 더러운 놈들이라는 것이었다.

주변의 경쟁 세력들을 물리쳐 온 방법, 세력을 키워 온 방법 모두가 대단히 사파스러웠다.

주요인 암살, 관련인 납치, 협박, 강탈 등등, 겉으론 정파인 척하면서 사파보다도 더 사파스러운 일들을 자행해 오고 있었다.

다만 나로 착각했던 해남인가의 후계자 인파랑이란 자에 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상부에서 그의 용모파기를 나눠 주며 곧 이 근방을 지날 것이니 반드시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만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형님들께 말했다.

“아무래도 좀 더 윗대가리를 잡아 봐야 하겠군요.”

그러곤 바로 잡았던 두 무사의 사혈을 눌러 줬다.

투툭!

“!”

“!”

그들은 그대로 즉사했다.

말하면 살려 준다는 얘기를 한 적은 없었기에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이들이 털어놓은 사실들만으로도, 합산파 남녕 지부의 놈들을 살려 둘 생각 따위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우리는 바로 방을 나가 질풍처럼 복도를 질주했다.

중간에 마주치는 무사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들이 우리를 보는 순간 바로 숨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

쉬이익!

“끅!”

그리고 막힘없이 오 층까지 도달한 우리는 그곳에서 대낮부터 여인과 질펀하게 놀고 있는 합산파 남녕 지부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쉬이익!

“컥!”

“끄윽!”

“헉!”

“욱!”

방주실 앞을 지키고 있던 네 명의 무사들을 한순간 참살하고, 문을 활짝 열며 바로 그 안으로 들이쳤다.

쉬이익!

그러자 여자와 알몸으로 한참 일을 치르고 있던 튼실한 몸매의 사내가 경악해 소리쳤다.

“웬 놈…!”

타닥!

하지만 거기까지가 그가 내뱉을 수 있었던 말의 전부였다.

대략 내공 팔십 년 정도로 보이는 그로선 초절정의 무위를 가진 세 명 앞에서, 그것도 신법을 특기로 하는 고수들의 습격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엔 아까의 과정과 동일했다.

옆에 있던 여인의 수혈을 눌러 재운 후, 두 분 형님이 기막을 쳐 소리가 새는 것을 막자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놈에게 말해 줬다.

“지금부터 좀 고통스러워질 거야. 분근착골이라는 걸 너한테 쓸 거거든. 모두 십 단계까지 있는데 일단 오 단계까지 맛을 본 후 다시 천천히 얘기해 보자고.”

그리고 오 단계 이상의 분근착골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본전에 있는 모든 무사들과 남녕 지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간부들을 모두 죽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본전에는 불을 질렀고, 그들의 재산은 물론 그들이 행했던 악행들을 증명하는 문서들도 모두 수거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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