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203화 (190/359)

203화 인파랑-3

합산파 남녕 지부를 무너뜨리고, 들고 나온 것들을 적당한 곳에 숨긴 우리는 그곳에서 북쪽에 위치한 숲으로 향했다.

애석하게도 합산파의 남녕 지부장도 해남인가의 후계자 인파랑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했었다.

그저 합산파 본파로부터 용모파기를 받고 곧 이 근처를 지나갈 테니 반드시 척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만 했었다.

그리고 북쪽 숲 쪽에서 매복해 있던 무사들로부터 그자를 발견해 습격하는 데 성공했으며, 지금 추격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으로 가 인파랑이라는 자를 직접 만나 볼 생각이었다.

“삭월!”

숲으로 들어가 흑표 삭월의 이름을 크게 소리치자,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듯 삭월이 나무 위를 달려 우리에게로 합류했다.

삭월은 우리가 남녕으로 들어가며 숲에 숨어 있던 중이었다.

삭월과 합류한 우리는 이제 북쪽 숲을 향해 질풍처럼 내달렸다.

달리는 도중 설풍 형님이 소리치듯 내게 물었다.

“진 아우!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짐작이 좀 가는가?!”

남녕 지부장으로부터 들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은 꽤 많았다.

일단 내 머릿속에 정리된 내용들을 형님들께 들려드렸다.

“일단 십여 년 전에 실종됐던 해남인가의 사람들 중 인가의 후계자는 살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시 무림으로 나왔고 합산파는 그를 죽이려 하고 있지요! 그런데 합산파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해남파와 직접적으로 세력이 맞닿아 있지도 않은 그들이 말입니다!”

그러자 설풍 형님이 바로 정답을 말했다.

“합산파가 해남파, 그중에서도 해남마검 진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렇다는 건 어쩌면 과거 해남인가의 가주 인계운의 실종 역시 합산파와 깊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게다가 더 의미심장한 건 따로 있었다.

“놈들은 인파랑의 용모와 행적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초상화를 나눠 주며 이 근처를 지나갈 테니 반드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건…!”

“설마 인파랑의 주변에 첩자가 있다는 뜻인가?!”

“그럴 수도 있겠죠! 그게 아니라면 인파랑이 스스로 자신의 행적을 알렸든가요!”

“…인파랑이 스스로 알렸다고?! 어째서 말인가?!”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문득 증칠 형님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인파랑이란 녀석을 굳이 구해 줄 필요가 있을까?! 우리랑 아무 상관도 없는 녀석이잖아?!”

그 물음에 우리가 증칠 형님을 바라보자 형님이 바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난 그냥 물어본 거야! 아우들이 급한 거 아닌가 해서! 흠흠! 물론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지! 그래야 영춘이도 좋아할 테고!”

그때였다.

선두에서 우리를 이끌고 있던 흑표 삭월이 문득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더욱 속도를 높였다.

묵랑 어르신이 녀석의 의도를 해석해 줬다.

- 피 냄새가 난다는군.

나 또한 두 분 형님께 소리쳤다.

“삭월이 피 냄새를 맡은 모양입니다!”

증칠 형님이 감탄하며 소리쳤다.

“거 개 코로구만!”

윽, 표범에게 개 코라니.

삭월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삭월이 우리를 이끈 곳은 이미 죽어 있는 시체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시체의 정체가 심상치 않았다.

설풍 형님이 놀란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약초꾼들?”

그랬다.

그들은 그저 약초꾼들이었다.

무림인도 아닌 숲이라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약초꾼들, 그들이 병장기에 몸이 갈라져 처참하게 죽어 있었던 것이다.

고통스러운 표정과 감지 못한 눈이 죽기 전 그들의 심경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는 삭월의 안내에 따라 계속해서 죽어 있는 평범한 약초꾼들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설풍 형님이 중얼거렸다.

“무림인도 아닌 일반인들을 이렇게 학살하다니. 이게 모두 합산파 놈들의 짓이란 말인가?”

아직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 또한 거의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점점 더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파의 무인들도 일반인들을 이렇게 학살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물며 정파의 간판을 내건 놈들이 이따위 짓을 자행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는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십여 명 정도의 합산파 무사들이 세 명의 약초꾼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

“아이고, 살려 주세요, 무사님들! 저희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맞습니다! 부상당한 잘생긴 젊은 무사라니, 저희가 어디서 그런 사람을 본단 말입니까?!”

“이 숲속에선 일 년에 한 번도 사람을 만나기 힘듭니다요, 무사님들!”

그들이 말하는 부상당한 젊은 무사는 아마도 인파랑을 지칭하는 모양이었다.

약초꾼들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자 합산파 무사들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교환했다.

“모른단 말이지? 그래. 그럼 어쩔 수가 없군.”

“그러게 말이야. 알면 살려 줄까 했었는데 말이지.”

“크크크, 거짓말은. 알든 모르든 죽일 생각이었으면서?”

그렇게 농을 던지며 합산파 무사들은 망설임 없이 약초꾼들을 향해 도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약초꾼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안 돼!”

“살려 주세요!”

하지만 자비는 없었다.

합산파 무사들은 그들의 비명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도를 내리쳤다.

“죽어랏!”

쉬이익!

하지만 비명이 들려온 곳은 약초꾼들 쪽이 아니었다.

푸화악!

“끄아악?!”

“뭐, 뭐야?!”

“누구냐?!”

약초꾼들에게 도를 휘두르려던 무사들이 있던 자리엔 어느새 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흑표가 서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무사들의 몸을 순식간에 갈라 버린 채였다.

그러자 뒤에서 방만한 자세로 서 있던 합산파 무사들은 이제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병장기를 내밀었다.

“스, 습격이다!”

“누구냐?!”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감히 우리 합산파에게 시비를 걸다니!”

그들이야 합산파란 이름이 상대방을 위협해 주길 바랐던 것이겠지만, 세 초절정 고수들에겐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선우진은 한 걸음을 가볍게 내디디며 검을 휘둘렀다.

샤악!

푸화악!

합산파 무사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고작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들 앞에 나타나 소리치던 동료를 참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거의 이형환위처럼 보이는 움직임, 절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이, 이형환위라고?”

“이, 이럴 수가….”

“어디서 저런 고수들이…?”

공포에 질린 그들을 바라보며 선우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일곱 명. 지금부터 내가 너희에게 뭘 좀 물을 생각이다. 만약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 바로 죽이겠다. 물어볼 사람은 많으니 몇 명 죽어도 아깝지 않거든. 마지막에 몇 명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는 이제부터 너희의 행동에 달렸다. 알겠나?”

공포에 질린 합산파 무사들은 입을 꾹 닫은 채 황급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선우진 일행은 합산파 무사들을 심문해 그간의 상황과 주변에 깔린 무사들의 규모, 위치를 알아냈다.

그러곤 그들이 가지고 있던 호각을 불어 목표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삐이익!

그러자 주변에서 급박한 호각 소리와 함께 무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삐이익!

삐이익!

“찾았나?!”

“저쪽이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무사들의 기척과 목소리를 들으며 선우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지휘자급은 생포하되 나머지는 모두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살아 있을 가치도 없는 자들이니까요.”

그 말에 설풍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증칠은 낮은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흐흐흐, 불나방들이 불을 향해 몰려오는구먼. 역시 막내와 함께 있으면 일이 편하단 말이지. 하마터면 일일이 찾아다닐 뻔했잖아?”

잠시 후 무사들이 달려오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디냐?! 놈이 어디에…?!”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빛살 같은 암기와 차가운 검날, 벼락같은 일 권뿐이었다.

퓨퓨퓩! 샤아악! 푸화악!

“끄아아악!”

“아아악!”

“사, 살려 줘!”

주변에 깔려 있던 합산파의 무사들은 거의 백여 명에 가까웠지만, 그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모이는 걸 기다리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정도였다.

잠시 후, 선우진 일행은 합산파 무사들의 우두머리인 세 명의 절정 고수를 생포해 그들을 심문할 수 있었다.

선우진이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형산파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며 접근해 암습했단 말이지?”

“예, 예! 그,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가 저희를 경계하지 않을 거라고 들었고, 실제로도 그는 우리를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손쉽게 암습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도 그 이상의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합니다!”

이제 선우진, 설풍, 증칠은 서로 묵묵히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형산파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산파는 이곳 광서성의 북쪽 호남성에 위치한 문파로, 십여 년 전 점창파가 패망해 구대문파에서 빠지며 대신 구대문파의 자리에 올랐던, 최근 대단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거대 문파였다.

당시 구대문파의 빈자리를 채울 후보로는 형산파와 해남파의 두 개 문파가 물망에 올랐었다.

하지만 해남진가의 진태도가 해남파의 지도자가 되며 그들이 사파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자, 형산파는 어렵지 않게 구대문파의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설풍이 심각한 표정으로 선우진에게 물었다.

“진 아우, 이 일의 배후에 해남파가 아닌 형산파가 있었던 것일까?”

그러자 선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은 알 수 없지요. 그저 이름만 빌린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해남파, 형산파 둘 다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적어도 인파랑이 형산파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군요. 이들에게 지시를 내린 자는 그 사실은 물론 인파랑의 용모파기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선우진도, 듣는 설풍도 알고 있었다.

형산파와 만나기로 한 것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언제, 어디를 지나가는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면, 그건 사실 형산파와 관련 없기가 더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선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형산파라….”

만약 합산파의 배후에 해남파와 더불어 형산파까지 있다면 그것은 그리 쉽지 않은 얘기였다.

형산파는 비록 점창파가 패망해 대신 구대문파에 들어가게 된 곳이지만, 만약 지금 다시 구대문파를 뽑는다면 점창파가 패망하지 않았다고 해도 충분히 다른 세력을 밀어내고 구대문파에 뽑히고도 남을 만큼의 저력을 가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른 구대문파들이 자신의 본산이 위치한 주변 지역만을 영역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호남성 전체를 그들의 영역으로 아우르고 있었다.

게다가 만약 합산파의 배후에 형산파가 있는 것이 맞다면, 그들의 영향력은 이미 호남성을 넘어 다른 성들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형산파가 단지 세력만 큰 곳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설풍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약 배후에 형산파가 있는 것이 맞다면 곤란한 일이로군. 형산파 장문인 호남제일검 위정국이야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이니 말할 것도 없고, 그 말고도 상당히 많은 수의 초절정 고수가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그랬다.

현재 형산파는 문파 탄생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의 성세를 떨치는 중이었다.

그러니 만약 이 일의 배후에 형산파가 있는 것이 맞다면, 바다만을 세력권으로 하는 해남파보다 훨씬 위협적인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선우진이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바다에는 해남파, 육지로 올라오니 형산파라니. 문제가 심각한 곳이 전선만은 아니었군요.”

그 말에 설풍과 증칠의 얼굴도 무거워졌다.

평상시 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발산하곤 했던 증칠도 이번만큼은 입을 꾹 닫은 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선우진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자, 자! 아직까지 이 일의 배후에 형산파가 있다는 게 확실시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형산파와 대립하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일단 여기 시신들을 매장하고 인파랑을 습격했다는 곳으로 한번 가 보도록 하죠.”

합산파 무사들은 인파랑이 경계를 풀었을 때 그를 급습해서는, 그와 함께 있던 삼 인의 무인들을 죽이고 그에게도 부상을 입혔었다고 했다.

물론 삼 인의 무인들이 끈질기게 저항해 인파랑 혼자 도주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상처가 가볍지 않아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라는 게 합산파 무사들의 증언이었다.

그러자 증칠이 물었다.

“근데 그곳엔 왜 가는 거냐? 인파랑이란 놈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거기로 다시 돌아오진 않을 텐데 말이다.”

그 말에 선우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합산파 무사들은 인파랑의 뒤를 쫓지 못했지만, 저희는 가능할 것 같아서입니다, 형님.”

“잉? 어떻게?”

눈을 동그랗게 뜬 증칠의 반문에 선우진이 자신의 옆에서 이동하는 흑표 삭월의 목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우리에겐 삭월이 있지 않습니까?”

묵랑이 거의 영물에 가까운 존재라고 공언했던 삭월이라면 사람들이 발견할 수 없었던 흔적도 충분히 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선우진의 생각이었다.

그러자 증칠이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하! 개 코?”

또 표범에게 개 코라는 말을 한다며 선우진과 설풍이 쓴웃음을 지을 때, 삭월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증칠을 힐끗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삭월 역시 그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삭월은 자신의 코가 개보다 훨씬 낫다는 걸 행동으로 증명했다.

인파랑의 것으로 보이는 핏자국이 초반에 끊겨 있음에도 막힘없이 그의 흔적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마치 눈으로 흔적을 보며 따라가듯 거침없는 추적이었다.

그런 삭월의 행보에 설풍과 증칠은 탄성을 내뱉었다.

“삭월은 역시 대단하군!”

“역시 개 코!”

그 순간 삭월이 코를 찡그리며 잠깐 멈칫한 것은 선우진만이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삭월이 산속으로 한참 들어가 일행들을 이끈 곳은 산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진 동굴이었다.

어찌나 은밀한 곳에 위치했는지 삭월이 안내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 찾지 못했을 것 같았다.

삼 인이 신기한 듯 동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인 모양이군요.”

“삭월이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찾기 힘들었겠어. 그자는 이런 곳을 잘도 찾아냈군.”

선우진 일행은 망설임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코로 피 냄새가 훅 밀려들어 왔다.

동굴 안이 온통 피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신음 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냐? 으윽!”

세 사람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창백하지만 잘생긴 그의 얼굴이었다.

정말 그림으로 그리면 선우진과 똑같이 그릴 수밖에 없겠다 싶을 만큼 비슷하게 생긴 외모의 남자가 동굴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몸 주변으로 흘러나온 피였다.

배에 입은 상처를 천으로 감싸고 도망쳐 왔던 듯 배에 두꺼운 천이 둘려 있었지만, 그 천마저도 온통 피에 젖어 그가 쓰러진 주변을 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 정도의 피를 흘렸음에도 아직 살아 있다는 게 더 용할 정도였다.

선우진은 그에게 신속하게 다가가며 말했다.

“저희는 당신을 노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상시였다면 그런 말만으로 경계심을 풀기에는 무리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상태는 적들이 왔다 해도 접근을 막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선우진은 바로 그를 진맥해 몸 상태를 살펴봤다.

물론 선우진이 의술을 배운 적은 없기에 진맥은 선우진이 하되 해석하는 건 묵랑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증칠은 옆에서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우리 막내는 도대체 못 하는 게 없다니까. 이젠 진맥까지 할 줄 알다니….”

그러자 설풍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진 아우야 이 세상 최고의 기재가 아닙니까?”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선우진은 뭐라고 말도 못 한 채 쓴웃음만 지어야 했다.

그때 묵랑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 과다 출혈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내장이 다 상했군. 미안하지만 이 친구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네. 아마도 지금은 회광반조 상태인 것 같군.

회광반조, 죽기 전에 잠깐 정신이 돌아온 상태라는 얘기였다.

선우진은 입술을 깨물고는 서둘러 그에게 물었다.

시간이 없었다.

“해남인가의 인파랑 공자시죠? 혹시 남기실 말이나 부탁하실 말은 없으십니까? 제가 최대한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힘없는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던 인파랑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고맙… 소.”

그러고는 자신 옆에 있는 봇짐을 힘겹게 가리키며 말했다.

“부디… 우리 인가의 맥이 끊기지 않게만….”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손은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버렸다.

털썩!

숨을 거둔 것이었다.

세 사람은 망연한 눈빛으로 시신이 되어 버린 인파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