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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06화 (193/359)

206화 계획

광서성의 외딴 산에 위치한 동굴 앞.

인파랑이 숨을 거둔 그곳에서 증칠 형님과 설풍 형님은 잠시 괴상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 표정의 원인은 바로 방금 내가 말한 계획 때문이었다.

설풍 형님이 문득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 그러니까…. 진 아우, 자네가 인파랑이 되어 주겠다고?”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예, 정확히는 인파랑인 척을 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증칠 형님이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아니, 막내가 그자와 엄청 닮았으니까 그렇게 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왜? 그렇게 해서 뭘 하려고?”

좋은 질문이었다.

내가 인파랑이 되어 줌으로써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일단 나는 이유보다 먼저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기로 했다.

“자, 들어 보십시오. 저는 앞으로 인파랑이라는 이름을 걸고 홀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복수행을 벌일 겁니다.”

그러자 증칠 형님이 놀란 눈빛으로 황급히 물었다.

“아니, 잠깐! 홀로 복수행을 벌이겠다고? 막내, 너 혼자서만 말이냐?”

어쩐지 증칠 형님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마 형님은 내가 혼자서만 움직인다는 게 좀 걱정되시는 모양이었다.

문득 친 형제들에게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걱정을 이제 와서 의형제들에게 받는다는 생각이 들자, 뭔가 찡했다.

나는 증칠 형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여유 있게 웃으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예, 형님. 하지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하지만 그때였다.

증칠 형님이 인상을 팍 쓰며 소리쳤다.

“이 괘씸한 녀석! 형님들을 쏙 빼고 너 혼자서만 재미를 보겠다는 거냐?!”

쿨럭!

나는 순간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아마 방금 전의 감동이 깨지는 소리인 모양이었다.

아니, 감동은 둘째 치고 어떻게 저런 식으로 사고가 전개될 수 있는지가 놀라웠다.

나 혼자 복수행을 벌이는 게 혼자 재미 보고 싶어서라고?

막막함에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 줘야 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때 설풍 형님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전혀 관계없는 우리가 인파랑의 복수를 해 주는 것보단, 인파랑이 직접 다시 등장해 복수행을 벌이는 것이 훨씬 파장이 크긴 하겠군. 그가 직접 해남파와 형산파가 원수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믿어 줄 테고 말일세.”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역시 설풍 형님이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거기까지 생각해 주시다니, 그에 비하면 증칠 형님은….

나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증칠 형님을 바라봤다.

그러자 형님이 찔끔한 표정으로 황급히 반박했다.

“아니! 내가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한 건 아니지 않느냐?! 그저 막내가 혼자서 움직이겠다고 하니까….”

그 말을 듣자 설풍 형님도 문득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굳이 혼자 움직일 이유가 있느냐? 우리도 변장을 하고 함께 움직이면 되지 않느냐?”

그러자 증칠 형님이 신이 난 얼굴로 소리쳤다.

“그래!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별로 그 말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유를 설명해 줬다.

“저들을 방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저들?”

“방심?”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형님들에게 이유를 소상히 풀어 줬다.

“예, 제가 복수행을 벌인다면 해남파와 형산파에서 움직일 겁니다. 물론 형산파가 배후에 있는 것이 맞다면 말이지요. 그리고 지난번 경험해 봤듯 해남파는 그리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증칠 형님이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흥, 그야 우리가 물에서 싸웠으니까….”

하지만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곧 조용해지셨다.

“그냥 혼잣말이었다. 계속 하거라. 흠, 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형산파 또한 만만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저들에게 제 실력을 낮춰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형님들의 존재 또한 숨길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내 설명에 형님들은 이제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증칠 형님이 감탄하며 말했다.

“한마디로 너를 얕보고 덤빌 때 뒤통수를 치겠다는 것이로구나. 역시 우리 막내로다!”

그러자 설풍 형님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인파랑인 척하려면 무공도 해남파의 무공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남해의 사람들이 해남인가의 무공을 못 알아볼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건 그야말로 당연한 얘기였다.

씨익 웃으며 대답해 줬다.

“그래서 지금부터 익히려고 합니다. 마침 비급도 있지 않습니까?”

형님들은 내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인파랑이 남긴 비급을 멍하니 바라봤다.

인파랑이 남긴 책에 인파랑의 일지는 물론 해남인가와 해남사가의 무공이 다 남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증칠 형님이 괴상한 표정이 되어 내게 물었다.

“저걸… 지금부터 익히겠다고?”

“예,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글쎄요. 한 일주일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증칠 형님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예끼, 이놈아! 아무리 자기 재능을 믿어도 그렇지, 해남인가의 무공이 무슨 삼재검법인 줄 아느냐?! 저 무공은 무려 과거 천하제일인이었던 남해검왕 인증호의 무공이란 말이다! 그걸 스승도 없이 비급만 보고 익히겠다고?! 그것도 일주일?! 예끼!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거라!”

그의 호통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당황하기보다는 빙긋이 웃음 지었다.

증칠 형님의 말이 분명히 정론이기 때문이었다.

무공은 그 수준이 높아질수록 익히기가 힘들었다.

또한 책만 보고 무공을 익힌다는 것 역시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한때 천하제일인이었던 사람의 무공을 비급만 보고 익히겠다는 내 말은 분명 불가능에 가까운 말임에 틀림없었다.

근데 나는 심지어 그걸 일주일이면 된다고 말했으니.

증칠 형님이 저렇게 황당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던 것이었다.

하긴, 오죽하면 설풍 형님 또한 이번만큼은 차마 내 편을 들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시지 않은가.

나는 빙그레 웃으며 증칠 형님께 말했다.

“그럼 저와 내기 한번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형님?”

그러자 술과 내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증칠 형님의 귀가 쫑긋 섰다.

“내기라고?”

“예, 제가 일주일 안에 해남인가의 비급을 익힐 수 있는지 없는지로 내기를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증칠 형님의 표정이 점점 혹하기 시작했다.

“호오, 그런 내기를 말이냐? 내가 너무 유리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망설이실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이제 완전히 빠져든 증칠 형님이 손바닥을 비비며 내게 물었다.

“흐음, 내기라면 당연히 판돈이 있어야겠지? 뭘 걸고 내기를 하자는 거냐?”

“흠, 글쎄요. 지는 사람이 이긴 사람의 요구를 세 번 들어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게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말입니다.”

그 말에 증칠 형님이 드디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으흐흐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흐흐흐흐, 남아 일언은?”

나 또한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치며 말했다.

“중천금이죠.”

우리 둘의 내기가 성립되자 증칠 형님은 무척 기분이 좋아진 듯 환하게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것 참, 막내에게 무리한 걸 시킬 수도 없고. 뭘 시켜야 할지 고민이로구나, 으헤헤헤헤!”

마치 벌써 내기에서 이긴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고는, 마음속으로 묵랑 어르신께 물었다.

‘어르신, 혹시 해남인가의 무공도 좀 아십니까?’

그러자 묵랑 어르신께서 코웃음을 치시며 대답하셨다.

- 하, 나보고 해남인가의 무공을 아느냐고? 그 천둥벌거숭이가 그걸 만들 때 옆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날세. 사실 칠 할은 내가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지. 자, 언제 시작할 건가? 지금 바로 하겠나?

나는 증칠 형님을 보며 씨익 웃음 지었다.

형님껜 죄송하지만 나는 절대 스승 없이 비급만 보고 혼자 익히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증칠 형님께 뭘 시킬지는 차차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설풍 형님이 문득 내게 물었다.

“해남인가의 무공을 익히는 건 그렇다 치고, 혹시 진 아우가 인파랑으로 화하고자 하는 이유가 더 있는가?”

그의 질문에 빙긋이 웃으며 대답해 줬다.

“물론입니다. 지난번 사건을 통해 봤을 때, 해남파의 내부에는 무척 큰 갈등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해남마검 진태도의 세력과 그에 반하는 세력들의 갈등이겠죠.”

내 말에 설풍 형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형님 또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으셨던 모양이었다.

“지금 세력이 큰 쪽은 물론 해남파의 장문인인 진태도 쪽 세력일 겁니다. 용왕지궁 유해응과 일도살경 오익덕이 비록 초절정의 고수라곤 하나, 해남파의 장문인이면서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진태도의 세력에는 미치지는 못할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해남파 장문인으로서 진태도의 정통성이 부정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자 설풍 형님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반짝이며 내게 되물으셨다.

“진태도의 정통성이 부정된다라…. 예를 들면 그가 비겁하게 해남인가의 가주를 살해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 아들이 복수를 천명한다든가 하는 그런 일로 말인가?”

그 명쾌한 예시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렇죠. 바로 그런 겁니다.”

설풍 형님은 지금 무척이나 악동 같은 표정으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 또한 동경을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란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주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았다.

***

해남도 북쪽에 위치한 해구.

수십 척의 배가 정박되어 있는 이곳은 해남도 남쪽의 삼평과 함께 해남도의 대표적인 두 항구 중 하나였다.

맑은 하늘, 잔잔한 파도, 깊은 바닥까지 투명하게 비치는 연하늘빛 바닷물이 출렁이는 아름다운 항구.

그런 해구에 지금 막 열 척의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해남유가의 가주이자 최고수인 용왕지궁 유해응과, 해남오가의 가주이자 최고수인 일도살경 오익덕의 함대였다.

두 사람은 배가 항구 근처에 다다르자 완전히 정박하기도 전에 몸을 날려 각각 항구에 내려섰다.

타닥!

그러자 검은 무복에 하얀 새가 그려진 해남유가의 무인들과 빨간 무복에 검은 말이 그려진 해남오가의 사람들이 도열해 있다가 그들을 향해 포권했다.

“돌아오셨습니까, 가주님!”

“돌아오셨습니까, 가주님!”

한목소리 같은 그들의 인사에 거대한 철탑 같은 사내 유해응은 그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관운장처럼 멋진 수염을 기른 오익덕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나오느라 수고 많았다. 별일은 없었느냐?”

그러자 무사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얼마 전 마경의 함대와 부딪쳐 해전대의 배 몇 척이 당했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오익덕은 물론 유해응의 얼굴도 미미하게 굳어졌다.

“또 말이냐?”

“예, 이번 달 들어 벌써 세 번째입니다.”

그러자 오익덕이 유해응을 보며 말했다.

“회의에 가면 진태도가 또 난리를 치겠습니다. 세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말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유해응은 짧게 말했다.

“가자.”

그러자 해남유가의 무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마차를 준비시켜 놨습니다, 가주님!”

그 말에 유해응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고, 오익덕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숙인 무사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수고했네. 마차를 준비한 것도, 저런 돌덩어리 같은 양반을 모시는 것도 말일세.”

두 사람은 지금 해남십이가의 가주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해남도로 돌아온 참이었다.

해남파는 예전부터 모든 중요한 일들을 이 가주 회의를 통해 결정하곤 했었다.

해남파의 장문인을 뽑는 것도 가주 회의를 통해서였고, 설사 장문인이 뽑혔다 해도 가주 회의의 인가를 받지 않고는 자기 마음대로 일 처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가주 회의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아졌고, 회의의 인가를 거치지 않고 해남마검 진태도의 독단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났던 것이었다.

문득 유해응과 함께 마차를 타고 가던 오익덕이 물었다.

“해전대에 대해 따지실 생각이십니까, 형님?”

그의 말에 유해응은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번에 해전대가 일반 백성들의 마을을 습격한 일에 대해 진태도에게 제대로 따질 생각이었다.

해적들을 흡수해 만든 해전대가 패악질을 부리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실 가주 회의의 권위가 약해진 이유에는 해전대의 세가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도 있었다.

말로야 해남파 전체의 무력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사실 진태도 개인의 무력대와도 같음을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유해응은 그래서 예전부터 해전대의 축소 또는 폐지를 주장해 왔었다.

하지만 오익덕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쉽지 않으실 겁니다. 오히려 마경과의 충돌을 언급하며 확장을 주장하겠지요.”

유해응은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해남파가 남서해의 제해권을 차지한 이후로 남동해 쪽 대남도에 위치한 남해마경 만학숭과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한 바다에 두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세인들은 해남파와 만학숭의 전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함대 전력으로 봤을 땐 해남파의 우위, 개인의 무력은 천하사마의 일인인 만학숭의 우위라고 말이다.

하지만 해남파의 수뇌부들은 잘 알고 있었다.

무림에서 그 개인의 무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더더군다나 화경을 넘어선 절대자의 무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말이다.

오익덕이 말했다.

“진태도는 또 그러겠지요. 만약 천하사마의 일인인 마경이 해남도에 발을 딛기만 한다면 우리들로서는 절대 그를 당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 그가 절대 해남도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해전대의 세를 더 키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해남파 장문인인 해남마검 진태도가 비록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이긴 하지만, 천하삼십육성과 십오 인의 절대자 사이에 얼마나 엄청난 간격이 있는지는 초절정 고수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마경 만학숭이 현재 복건용가와 남해성녀에게 발이 묶여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이기에 서로 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그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해남파는 당장이라도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몰랐다.

오익덕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아시지 않습니까? 가주들은 또 놈의 손을 들어줄 겁니다.”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유해응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묘가를 설득해 보겠다. 만약 또다시 진태도를 지지한다면 우리 유가는 해남파에서 이탈할지도 모른다고 말해 볼 생각이다.”

그러자 오익덕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예에?! 이탈이요?!”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겠지.”

“아….”

진태도의 개인 세력이 지나치게 강해진 이유는 물론 해전대의 지나친 확장 때문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단 해남십이가 자체가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인 것이 더 컸다.

현재 해남십이가 중 해남인가와 해남사가는 멸문된 상태였다.

해남인가의 가주 인계운이 실종될 때 두 가문의 가주들은 물론 그들의 적손들까지도 같이 실종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은 열 개의 가문 중 네 개의 가문은 현재 독립적인 가문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축가와 미가, 술가와 해가가 진태도의 해남진가에 복속됐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가문의 세가 어느 순간 너무 기울어져 스스로 진가에 의탁한 곳도 있었고, 단독으로 진가와 부딪치다가 흡수되어 버린 가문도 있었다.

그러니 현재 십이가의 가주 회의에서 진가를 포함한 다섯 개 가문은 이미 한편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다섯 개 가문의 의견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의결이 가능할 리도 없었다.

남은 가문들 중 한 가문만 진태도의 손을 들어줘도 모든 안건이 무사통과 됐던 것이었다.

오익덕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묘가라…. 잘 모르겠군요. 그들이 중립을 지킨다곤 하지만, 소제가 볼 땐 그들도 거의 진가의 편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해남묘가는 대대로 해남파의 꾀주머니 역할을 해 왔던 지혜로운 가문이었다.

그들은 진태도가 해남파의 지도자가 된 뒤에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때론 진태도의, 때론 다른 가문들의 손을 들어주며 균형을 맞춰 왔었다.

하지만 실리를 중시하는 그들은 해남파의 세력을 강화하는 부분에 있어선 항상 진태도의 손을 들어주곤 했었다.

그 결과 진태도의 세력이 비대하게 커졌던 것이고 말이다.

그러자 유해응이 여전히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믿어야겠지. 지혜로운 그들이니 현명하게 판단해 주기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유해응의 표정 역시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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