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합산파-2
노인은 당황했다.
일주일간을 숨어 있어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자신들을, 백의 청년이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정확히 바라봤던 것이었다.
노인은 순간 도주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랑이를 안고 저자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하지만 노인의 고민은 결국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청년이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합산파의 정문을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인이 있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그저 정문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갔다.
그러곤 손바닥을 천천히 정문에 갖다 댔다.
그러자 다음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정문이 터져 나갔다.
콰아아아앙!
사람들은 완전히 경악하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청년의 행보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정말 합산파를 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고작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단신으로, 그것도 광서성 최강의 세력인 합산파에 정면으로 쳐들어간 것이었다.
소녀가 완전히 흥분해 조부에게 소리쳤다.
“저것 봐요, 할아버지! 저 사람, 진짜 합산파의 정문을 부쉈어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죠?!”
하지만 노인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중얼거릴 뿐이었다.
“해남인가의 후계자가… 살아 있었던가? 근데 그가 왜 합산파를?”
그러고는 황급히 손녀에게 말했다.
“이랑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이 할애비는 저 청년을 따라가 봐야겠다!”
“네? 안 돼요, 할아버지! 저도 같이 가야죠!”
“뭐? 안 돼, 이 녀석아! 위험할 수도 있다!”
“싸움은 저 사람이 할 텐데 뭐가 위험해요! 저는 반드시 갈 거예요! 말리지 마세요!”
그러고는 조부보다도 먼저 합산파의 담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박!
“이, 이랑아! 이것아!”
노인 유운취객 손대수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손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합산파의 담장에 매달려 안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담장 안쪽에선 이미 수많은 무사들이 막 충돌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담장에 매달린 소녀가 옆으로 따라와 매달린 조부를 향해 물었다.
“저것 봐요, 할아버지. 저들은 흑리대죠?”
그녀가 말한 자들은 검은 무복을 입은 이백여 명 정도의 무력대였다.
그들이 백의 청년을 향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조부인 유운취객 손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음하듯 대답했다.
“그래, 흑리대. 검은 승냥이들이로구나. 광서성 최강을 자랑하는 무력대 이백여 명이 모두 몰려나왔어.”
그의 말처럼 흑리대는 근 몇 년간 광서성에서 적수를 찾지 못한 광서성 최강의 무력대였다.
합산파 이전에 합산 최강의 문파였던 준가장도 이들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하루 만에 무너져 버렸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 이백여 명이 지금 흑리대주인 내공 팔십 년의 절정 고수 호조영을 앞세워 청년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호조영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청년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누군데 감히 합산파의 정문을 부순 것이냐?!”
하지만 이백여 명의 흑리대 앞에서도 청년은 그저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네놈 따위에게 알려 줄 이름이 아니다. 문주 어정기를 불러와라.”
그 오만한 대답에 호조영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감히! 네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정녕 벌주를 마시고서야…!”
그때였다.
호조영의 말을 끊으며 청년이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참 시끄럽게 짖는구나. 흑리대란 이름은 승냥이처럼 잘 짖어서 붙인 이름인가?”
그 말에 호조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격분한 호조영이 소리쳤다.
“감히! 모두 저놈을 쳐라!”
흑리대의 무사들은 모두 피에 굶주린 자들이었다.
마치 둑에 가둬진 물처럼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피를 보고 싶은 살귀들.
그런 그들에게 호조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한순간 터져 나간 격류처럼 백의 청년을 향해 휘몰아쳐 가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이야아아아압!”
“죽어라아아아!”
그 기세는 가히 해일과도 같았다.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순식간에 쓸어버릴 것만 같은 과격한 격류.
그 앞에 선 백의 청년의 모습은 해일 앞에 선 조약돌처럼 너무나도 무력하고 위태로워 보이고 있었다.
숨어서 보고 있던 소녀가 자기도 모르게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어떡해!”
하지만 곧 쓸려 나가 버릴 것만 같은 청년이 보인 반응은 두려움이 아닌 비웃음이었다.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음 지은 청년은 곧 흑리대 무사들의 격류를 향해 돌진을 감행했다.
“하아아압!”
그것은 마치 밀려오는 해일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듯 무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노인 손대수와 손녀 손이랑은 입을 떡 벌린 채 다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청년의 검이 흑리대 무사들의 해일을 갈라 내 버렸기 때문이었다.
촤아아아악!
수평으로 그은 청년의 검이 앞의 공간을 갈라 냈다.
그랬다.
그건 마치 공간이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
한순간 세상 자체에 균열이 일어나 그 틈으로 심연이 보이는 듯한 불가해한 광경.
그것에 비하면 달려들던 흑리대 무사들의 허리가 모두 갈라져 버린 건 그저 부수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노인 손대수가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해 중얼거렸다.
“저, 저게 무슨…!”
다음 순간, 전열 무사들을 와해시키고 뛰어든 백의 청년은 이제 토끼 떼 사이로 뛰어든 맹수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슈하아악!
“끄아아악!”
“아아아악!”
이제 그것은 그저 학살이었다.
누가 승냥이이고 누가 초식 동물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슈하아아악!
청년의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열십자 검영들이 그려졌다가 사라졌다.
그때마다 흑리대 무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속절없이 무너져 갈 뿐이었다.
“크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흑리대주 호조영이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부하들이 학살당하고 있었다.
이미 진형이 무너졌기에 저 기세를 막지 못한다면 정말 저 한 명에게 흑리대가 전체가 무너져 버릴지도 몰랐다.
이를 악문 호조영은 도를 뽑아 들고 청년에게로 뛰어들었다.
“멈춰라, 이놈!”
내공 팔십 년 이상의 고수인 그의 도 위로 커다란 녹색 도강이 진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온힘을 다해 백의 청년의 등 뒤를 내리쳤다.
슈하악!
하지만 호조영의 도가 청년의 등 뒤를 그을 때까지도 그의 시선은 호조영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마치 호조영이 덮쳐 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깜짝 놀란 소녀 손이랑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위험해요!”
동시에 호조영의 도가 청년의 등을 그었다.
샤아아악!
‘잡았다!’
호조영이 득의한 웃음을 지었다.
저런 실력을 가지고도 자신이 덮쳐 오는 것을 모르다니 어지간히 감각이 둔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도가 막 청년의 등을 그은 순간 호조영의 얼굴은 확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청년의 몸이 마치 공기처럼 부드럽게 움직여 도의 사정권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살짝 벗어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정확한 회피였다.
“?!”
그리고 그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청년이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슈하악!
호조영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도 못 한 벼락같은 검격이었다.
“크윽!”
호조영은 황급히 도를 들어 자신의 앞을 막았다.
그러자 간신히 청년의 검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쩌엉!
아니, 막았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도가 옆으로 밀려나며 동시에 청년의 검이 수직으로 찍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열십자로 그어진 검격.
오래전 천하제일검이었던 남해검왕 인증호의 남십자검이었다.
슈하악!
마치 벼락처럼 내리찍어 오는 청년의 검격에 호조영은 그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촤아악!
흑리대 대원들은 싸움 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저럴 수가….”
“대, 대주님이… 단 일격에?”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늘 선두에 서서 적들에게 압도적인 무위를 선사하곤 했던 그들의 대주가 단 이 검 만에 두 쪽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항상 두려움 없이 상대를 찢어발기던 검은 승냥이 떼 흑리대가 완전히 전의를 잃어버리는 순간이었다.
흑리대 무사들은 이제 검과 발을 멈추고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두 쪽으로 쪼개진 대주의 시체와, 그를 그렇게 만든 청년을 바라봤다.
하지만 청년은 그들이 전의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검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다시 한 발을 내디딘 순간, 마치 공간을 이동한 것처럼 흑리대 무사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검을 그었다.
샤아악!
“!”
푸하아악!
그 후론 그저 학살에 불과했다.
촤아아악!
“끄아아아악!”
“사, 살려 줘!”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던 손이랑이 문득 조부 손대수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대체 얼마나 강하면 저렇게 할 수 있어요? 저 오라버니는 초절정 고수인가요?”
“…….”
손대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공 팔십 년이 넘은 그로서도 감히 측량하기 힘든 무위였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기에 초절정의 경지는 넘지 않은 것 같기도 했지만, 문득 가끔씩 보여 주는 한 수는 초절정이라 해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런 무위를 보여 주고 있는 그의 나이가 고작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는 것이 손대수로 하여금 도저히 입을 열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단신으로 마침내 흑리단을 전멸시키고 만 백의 청년이 내공을 실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형산파와 해남파의 하수인, 합산파 문주 어정기는 어디 있느냐?! 해남인가의 후계자 나 인파랑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러 왔다!”
그 말은 합산파 문도들뿐만이 아니라 몰래 숨어서 보고 있던 손대수, 손이랑, 그리고 문밖에서 조심스럽게 훔쳐보고 있던 무인들에게도 아주 명확하게 전달됐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무인들은 연이어 충격받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 사람이 뭐라고 했지?”
“해, 해남인가의 후계자?”
“아버지의 복수라고?”
“그, 그럼 예전에 해남인가의 가주가 갑자기 실종됐던 게…?”
“게다가 지금 형산파와 해남파의 하수인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 말이 맞다면 해남인가의 가주를 해한 것이 바로…!”
지켜보고 있던 무인들이 웅성웅성 놀라 떠들어댈 때,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유운취객 손대수의 머리도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추리는 다른 무인들이 떠들고 있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내용이었다.
‘합산파가 형산파의 하부 조직일 거란 정보야 우리도 이미 입수했던 것이었지. 하지만 해남파라고? 그럼 해남마검 진태도가?’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순식간에 이야기를 짜 맞췄다.
‘그래! 따지고 보면 당시 해남인가의 가주 인계운이 실종되고 진태도가 해남파 장문인이 된 후, 해남파가 갑자기 정파임을 포기하는 행보를 보이는 바람에 형산파가 쉽게 구대문파에 오를 수 있었지. 어쩌면 그게 다 서로 합의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건가? 해남인가를 처리해 주는 조건으로? 그리고 지금까지도 서로 비밀리에 소통하며 괴뢰 문파를 만들어 광서성을 차지하고 있었던 거고?’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손대수는 순간 머리가 시원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갑자기 딱딱 맞게 짜 맞춰진 기분이었다.
손대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지금도 합산파 무사들을 참살하며 전진하고 있는 백의 청년, 그리고 그가 휘두르고 있는 순백의 검을 바라봤다.
손대수는 젊었을 때 먼발치에서 해남파의 신물인 백호검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 남해검왕 인증호 때부터 내려온 신물이지만, 해남인가의 가주 인계운이 실종되며 함께 사라져 버렸었다.
하지만 이 순간 손대수는 청년의 하얀 검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저 검은 분명히 백호검이야.’
가물가물한 옛날의 기억이지만 손대수는 청년이 들고 있는 검이 분명 기억 속 백호검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백호검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 검이 그때 사라진 백호검이 맞다면 최소한 저 청년이 해남인가의 후계자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인가의 후계자가 맞다면, 그가 말한 인가 가주의 실종에 관한 비사 또한 사실일 확률이 높을 것이고 말이다.
‘역시 합산파의 뒤에는 형산파가 있었던 것이었군! 그리고 형산파 놈들이 해남마검 진태도와도 협력하고 있었어!’
그때였다.
그의 손녀 손이랑이 넋이 나간 듯 청년을 바라보다 연신 감탄성을 흘리며 말했다.
“와아아! 할아버지, 저 오라버니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는 거 아세요? 아! 보세요! 절정 고수인 것 같아요! 절정 고수 세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어요!”
손대수 역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셋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절정 고수들은 합산파의 유명한 절정 고수 합산삼검이 분명했다.
비록 세 명 다 내공 팔십 년의 벽을 넘지 못한 자들이지만 신기에 가까운 합격술로 초절정 고수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알려진 고수들.
하지만 손대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상대는 단신으로 흑리대를 전멸시킨 청년이었다.
진짜 초절정 고수가 아니고서는 그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이 정확했음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의 검이 허공에 몇 개의 열십자 검영을 그려 내는 순간, 합산삼검 세 명 모두가 피를 뿜으며 쓰러져 갔기 때문이었다.
촤아아악!
“크아아악!”
“끄아아악!”
“아, 아우들이! 안 돼! 아아아악!”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손녀 손이랑이 탄성을 터트리며 말했다.
“와아아! 저 검법 정말 대단하네요! 저게 무슨 검법이라고 하셨죠?!”
그러자 손대수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해줬다.
“남십자검이다. 과거 천하제일검이자 천하제일인이었던 남해검왕 인증호가 사용하던 검법이지.”
그랬다.
청년이 사용하고 있는 검법은 분명한 남십자검이었다.
해남인가의 가주 인계운이 실종된 이후 맥이 끊겼다고 알려졌던 바로 그 검법.
그러니 무려 백호검으로 남십자검을 사용하는 청년이 인가의 후계자가 아닐 리가 없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었군.’
손대수는 이번 정찰에서 기대를 아득히 넘어선 성과를 얻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빨리 이 사실을 다른 동지들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마음이 급해진 손대수가 손녀 손이랑에게 말했다.
“어서 돌아가자꾸나, 이랑아. 여기서 알아낸 정보들을 빨리 동지들에게 전해야겠다.”
그러자 손이랑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 소식을 전하신다고요? 음…, 하지만 굳이 직접 전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전하지 않으셔도 알아서 다 전해질 것 같은데요. 저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들었잖아요? 차라리 저희가 저 오라버니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손대수는 손녀가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아 변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손대수는 문득 손이랑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합산파에 항의하러 몰려왔었던 무인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손대수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손녀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소문은 아마 순식간에 광서성은 물론 해남파가 있는 광동성과 형산파가 있는 호남성까지 퍼져 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아마 커다란 파랑을 일으키겠지.’
대놓고 두 거대 문파를 합산파의 배후이자 해남인가 가주 인계운의 살인자로 지목했으니 그곳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저 인파랑이라는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마도 저 청년을 죽여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홀로 합산파를 무너뜨리고 있는 저 청년도 그 두 문파만큼은 홀로 상대할 수 없을 것이었다.
구대문파와, 또 그와 대등한 힘을 가진 거대 문파를 동시에 홀로 상대하는 건 무림의 절대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래, 분명 저 청년 혼자서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을 테지. 하지만… 만약 저 청년이 혼자가 아니라면? 그에게 조력자가 있어 준다면?’
어떤 가능성을 떠올린 손대수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기대감과 웃음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