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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11화 (198/359)

211화 합산파-3

선우진은 슬쩍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합산파의 본전으로 향했다.

저 정도 인원들이 들었다면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가는 건 시간 문제일 것 같았다.

‘일 단계 계획은 간단히 성공이군.’

선우진은 달려드는 합산파 무사들을 간단히 베어 버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주일 전, 두 형님들 앞에서 설명했던 대로 계획이 아주 잘 풀려 가고 있었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쉽군.’

선우진은 어렵지 않게 합산파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자신의 무위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월하환검무를 쓸 경우 초절정 이상의 무위를 발휘할 수 있는 그에게 있어 합산파 따위는 이제 별로 어렵지 않은 상대였던 것이다.

문득 묵랑이 말을 걸었다.

- 단신으로 거대 방파 하나를 박살 내고 있는 기분이 어떤가? 내 옛 기억으론 고수가 된 후 가장 짜릿했을 때가 바로 이런 때더군.

그 말에 선우진도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아주 짜릿합니다.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한 보람이 막 느껴지는군요.’

확실히 묵랑의 말이 맞았다.

홀로 광서성 최강의 문파 하나를 부수고 있는 이 기분이란,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고수들이 된 듯한 짜릿함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문득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예전에 정협방에서 소면마군 사원양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가.

이제 그 소면마군의 역할을 자신이 하게 된 것이었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묵랑이 다시 물었다.

- 남십자검은 어떻던가? 쓸 만하던가?

‘아, 네. 좋은 검법인 것 같습니다. 한 번에 여러 명을 상대하기 수월하다는 점에 있어선 사일검법보다 훨씬 더 낫더군요. ‘개천’을 섞어 쓰기에도 좋고요.’

***

선우진은 결국 해남인가의 남십자검을 일주일 만에 익히는 데 성공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흘 만에 성공했었다.

‘풋, 그게 말이나 되느냐? 비급만 보고 며칠 만에 익힐 수 있으면 그게 절기냐? 삼재검법이지?’

그렇게 비웃으며 선우진과 내기를 했던 증칠은 그가 사흘 만에 남십자검을 익혀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악을 썼다.

‘마,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절기를 비급만 보고 사흘 만에! 나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막내, 네 녀석이 원래 이 검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고서야…!’

하지만 선우진이 아무 말 없이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자, 증칠은 결국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내가… 졌다.’

그러곤 앞으로 다시는 선우진의 계획에 대해 반대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내가 다시 막내랑 내기를 하면 사람이 아니다!’

그런 증칠의 모습을 보며 선우진은 득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역사상 가장 존경스러운 인물은 검신이 맞는 것 같다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 감사하기는, 저 건방진 녀석이 좌절하는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상쾌하네.

사실 지금 선우진이 들고 있는 백호검도 꿈속에서 묵랑의 지도를 받은 후 만든 것이었다.

덕분에 선우진은 이번에 대장장이 기술까지도 전수받아 익힐 수 있었다.

남십자검을 익히는 데는 고작 사흘로 충분했지만, 일주일이나 여유를 가졌던 이유가 백호검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모든 일들은 다 묵랑의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묵랑이 있다 해도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묵랑 또한 이번에 선우진에게 남십자검을 가르치며 다시 한번 감탄해야 했다.

- 대단하군. 사실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단 일주일 만에 남십자검을 이 정도까지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다니. 자네 재능은 확실히 대단하네.

그러고는 살짝 웃음기를 띤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이런 얘기는 좀 그렇지만, 내가 살아 있을 때 재능으로 나를 놀라게 했던 사람은 내 조카 한 명밖에 없었다네. 그 외엔 내 형님조차도 솔직히 재능으로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었지. 그런 면에서 자네 재능은 꽤 괜찮은 편이네. 정말 망아공을 익힐 수도 있지 않을까 무척 기대가 되는군.

선우진은 그의 칭찬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검신에게 재능으로 인정받는 것도 홀로 방파를 부수는 것만큼이나 짜릿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빙긋이 웃으며 묵랑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정도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의문에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조카라는 분이 그렇게 재능이 대단하셨다면 왜 망아공을 그분께 전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묵랑이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네.

그다지 대답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선우진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었다.

***

선우진이 그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이제 그는 합산파의 본전 앞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아까까지 계속해서 달려들던 합산파의 무사들도 이젠 더 이상 달려들고 있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직 합산파의 무인들이 전멸당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절정 고수들이 이미 모두 죽었기에 남은 무인들은 차마 덤벼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선우진은 문득 무심한 눈빛으로 아직 남아 있는 합산파의 무인들을 주욱 둘러봤다.

그러자 안 그래도 멀찍이 떨어져 선우진을 지켜보고 있던 그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으으으!”

“괴, 괴물! 괴물이다!”

“문주님! 문주님만 오신다면…. 문주님은 대체 왜 안 오시는 거지?”

“하, 하지만 문주님이 오신다 해도 저런 자의 상대가 될까?”

이미 그들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무기력한 모습에 피식 웃음 지은 선우진은 본전을 향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여기 해남인가의 인파랑이 왔다! 아버지의 원수! 합산파 문주 어정기는 어디 있느냐?! 내가 무서워서 숨기라도 한 것이냐?!”

하지만 그렇게 도발했음에도 본전 안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잠시 기다리던 선우진은 마침내 정문을 부수며 성큼성큼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콰아아앙!

하지만 본전에 들어간 선우진의 눈에 바로 보인 광경은 이미 엉망이 된 내부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합산파 무인들의 시신들이었다.

본전은 이미 누군가에게 습격당한 상태였던 것이다.

아직 자신이 건드리지도 않았건만 이미 초토화된 본전 내부를 바라보며, 선우진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빙긋이 웃음 지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계속 본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이 조용한 걸 보니 형님들도 이미 다 끝내 놓으신 모양이군요.’

- 당연한 일이겠지. 초절정의 무인 두 명이 건물 하나를 습격했으니 별수 있었겠나?

그랬다.

사실 선우진이 본전 앞에서 합산파 문주 어정기의 이름을 계속 불렀던 건 속임수였다.

선우진이 앞에서 소란을 끄는 사이 설풍과 증칠이 본전을 습격하기로 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눈앞에서야 인파랑 혼자만 나서야 하지만, 눈앞이 아니라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선우진은 그의 두 의형들이 만들어 놓은 난장판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본전 가장 내부에 위치한 합산파 장문인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들어가자마자 고통스러운 얼굴로 사시나무 떨듯이 푸들푸들 떨고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끄으으으으!”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보이는데도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작은 신음만 흘리고 있는 모습, 그것은 선우진에게 아주 익숙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분근착골술을 쓰고 계신 모양이로군요. 몇 단계까지 갔습니까?”

그러자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설풍이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칠 단계라네.”

“네? 칠 단계요?”

그의 말에 선우진은 조금 놀랐다.

십 단계 중 칠 단계라면 굉장히 높게 올라온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오 단계까지만 가도 눈물을 흘리며 다 털어놓곤 하는데 무척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새삼스러운 눈으로 어정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칠 단계라니, 이자가 그래도 꽤 근성이 있는 자였나 봅니다?”

하지만 설풍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실 아까 불 수 있는 건 다 불었다네. 근데 형님께서 한번 십 단계까지 시험해 보고 싶다고 하셔서 말일세.”

“…아아.”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증칠을 바라보니 그가 개구쟁이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어정기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웬 고문술을 익혔냐고 뭐라고 하더니만, 사실은 자기도 무척 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증칠이 두 손을 슥슥 비비고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으흐흐, 자아 이제 팔 단계로 가 볼까?”

그러자 어정기의 눈빛이 절박하게 흔들리며 필사적으로 신음 소리를 뱉어 냈다.

“끄으으으으으!”

굳이 의지를 읽는 훈련을 하지 않아도 지금 그의 간절한 의지는 아주 쉽게 읽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간절한 의지를 증칠은 읽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읽지 않았던가.

그는 망설임 없이 분근착골술을 팔 단계로 올렸다.

“끄으으으으으으!”

어정기의 눈이 하얗게 까뒤집어지고 있었다.

선우진은 이제 설풍과 비슷한 느낌의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어정기에게 완전히 집중해 있는 증칠은 놔두고 다시 설풍에게 물었다.

“뭔가 새로운 사실들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설풍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주실에 위치한 금고에서 꺼낸 문서들을 보여 주며 대답했다.

“이것 보게. 역시 자네 예상대로 합산파는 해남파의 진태도와 형산파가 서로 합자해서 만든 문파였더군. 광서성 전체를 차지한 후 서로 세력을 반반으로 나눌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네. 게다가 괴뢰로 만든 건 여기 합산파뿐만이 아니었어. 해남파는 광동성, 형산파는 강서성 쪽에도….”

선우진은 설풍이 건네준 문서를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정도면 합산파가 형산파와 해남파 진태도의 괴뢰라는 걸 증명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설풍이 선우진에게 말했다.

“이게 세상에 공개되면 두 문파는 아주 난리가 나겠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걸 바로 다 공개할 건가?”

세 사람이 지난 일주일 동안 했던 일 중에는 해남파의 무공을 익히는 것 외에도 합산 인근의 하오문 지부 한 곳을 점거한 일도 있었다.

보통 하오문 지부는 그 지역의 지배 세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기에, 하오문 합산 지부 또한 합산파와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선우진은 예전에 선우세가가 있는 귀양 지부의 노삼룡에게 그랬듯 협박과 회유를 통해 그곳을 자신에게 협조적인 곳으로 만들 수 있었다.

분근착골술과 사천살문에서 가져온 고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하오문의 합산 지부는 선우진에게 무척이나 협조적인 곳으로 변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그곳을 이용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이 자료들을 무림 곳곳에 전파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 생각엔….”

그가 설명을 시작하자 설풍은 물론 분근착골술을 시험해 보느라 여념이 없었던 증칠도 집중해서 그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곤 곧 ‘역시!’라는 표정으로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해남인가의 후계자 인파랑의 등장에 관한 소문은 며칠 만에 남해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합산파의 뒤에 형산파와 해남파 진태도가 있었고, 그들이 과거 해남인가의 가주 인계운을 암살했었다는 소문도 말이다.

하지만 그 소문의 효과는 형산파와 해남파에서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먼저, 형산파에선 그 소문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소문에 대한 형산파의 대처가 매우 단호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절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며 그건 모함에 불과하다고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오히려 그런 헛소문으로 형산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자들은 철저히 응징할 것이라며 세인들을 협박했고, 적어도 밖에서 볼 땐 아주 약간의 흔들림도 보여 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형산파 장문인인 호남제일검 위정국을 중심으로 문파가 강하게 결속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반면 해남파는 그렇지 못했다.

가뜩이나 반대파가 많았던 해남마검 진태도는 회의 시간을 이 주일 후로 미뤘던 것이 무색하게도,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다시 해남십이가의 가주들과 마주해야만 했다.

해남파의 회의실. 해남오가의 가주 일도살경 오익덕이 원탁을 강하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콰앙!

“진태도! 역시 당신 짓이었군! 당신이 인계운, 인가 가주님을 살해했던 것이었어!”

초절정 고수의 기세가 실린 과격한 언사였다.

하지만 진태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차갑게 대답했다.

“헛소리요. 나는 그런 적이 없소. 오히려 본인은 여러 가주님들께 너무도 서운하구려. 어떻게 그따위 헛소문을 믿고 내게 따질 수가 있단 말이오?”

그의 연기는 무척이나 대담했다.

너무나도 당당한 그의 모습에 오익덕이 오히려 움찔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러자 오익덕이 약간 수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따졌다.

“그게 헛소문이란 말이오? 그 인파랑이라는 청년이 백호검을 들고 남십자검을 썼다는데도?”

그 물음에 진태도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게 진짜 백호검이고 남십자검이라는 증거가 있소? 아니, 애초에 해남파의 문도도 아닌 자들이 그게 백호검이고 남십자검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본단 말이오? 그리고 그가 진짜 인파랑이 맞다면 왜 해남파로 바로 오지 않고 합산파로 갔단 말이오? 나도 한번 그를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구려.”

그 말에 오익덕은 바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러자 진태도의 옆에 앉아 있던 축가의 가주가 얼른 끼어들어 동조했다.

“장문인의 말씀이 맞소! 어떻게 확인되지도 않은 헛소문을 가지고 장문인을 의심할 수가 있단 말이오?! 오 가주는 당장 사과하시오!”

그가 물꼬를 트자 그를 시작으로 미가, 해가, 술가의 가주들도 벌떼같이 일어나 오익덕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렇소! 세상에 이런 무례가 또 어디 있단 말이오?!”

“당장 사과하시오, 오 가주!”

“어딜 의심할 사람이 없어서…!”

그때였다.

묵묵히 앉아 있던 유가 가주 유해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용한 음성임에도 바위 같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존재감 있는 목소리였다.

“나도 그 말에 동감이오. 검증되지도 않은 소문으로 사람을 의심하고 비난해서야 되겠소? 이미 예전에 그런 식으로 한 명을 억울하게 몰아붙였던 경험이 있는데도 말이오. 그렇지 않소, 진 가주?”

유해응은 그렇게 물으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태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진태도는 물론 오익덕을 성토하던 다른 가주들도 헛기침을 하며 그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흠, 흠.”

그들은 유해응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유해응은 과거 그들이 했던 행동을 성토하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 인가주 인계운과 진태도가 해남파의 장문인 자리를 놓고 경쟁했을 때, 인계운은 갑자기 터진 구설수들로 무척 큰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다른 가문 부인과의 불륜, 공금의 사적인 유용, 살인 청부까지.

무엇 하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었지만 그런 소문이 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해남파의 장문인이 되기 위한 경쟁에서 큰 타격을 입어야만 했다.

특히 그때 진태도는 그렇게 주장했었다.

‘인가주에게 그런 소문이 났다는 것 자체가 장문인 후보의 자격이 없다는 증거요! 저런 소문이 달린 자를 어떻게 믿고 해남파의 미래를 맡길 수 있단 말이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졌을 땐 이미 진태도가 장문인이 된 후, 인계운이 실종된 지 한참 후였다.

유해응은 지금 그때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로 인가주를 가장 비난했던 자가 바로 진태도가 아니었냐고 말이다.

그에 진태도는 결국 오익덕을 더 몰아붙이지 못하고 그쯤에서 다른 가주들을 자제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일을 끄집어내면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뿐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진태도가 자기 주변의 가주들을 자제시키며 말을 돌렸다.

“자, 자, 그런 얘기들은 이제 그만하기로 하고, 좀 더 중요한 얘기를 해 봅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 인파랑이라고 주장하는 자의 정체가 아니겠소? 그에 대해 조사를 해 봐야겠소. 그가 누구인지, 무슨 목적으로 그런 헛소문을 내고 다니는지를 말이오.”

그 말에 진태도 주변에 있던 가주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맞습니다! 그자를 조사해 봐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자의 배후에 누가 있기에 그런 헛소문을 내는 것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교묘하게 헛소문이라는 얘기를 강조하는 말들이었다.

그러자 진태도가 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를 만나 볼 생각이오. 그를 직접 찾아가….”

그때 유해응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오. 만약 그의 주장이 맞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러자 진태도가 기세를 확 내뿜고는 사나운 눈빛으로 유해응을 노려보며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 유 가주? 설마 아직도 그런 헛소문을 믿고…!”

하지만 유해응은 천하삼십육성인 진태도의 기세에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바위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구려, 진 가주. 그 말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은 그게 헛소문이라는 뜻이 아니오. 단지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지. 그런데 그 말이 만약 사실이라면 진 가주가 그를 찾아간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 되지 않겠소? 부친의 원수가 아들까지 직접 찾아가는 상황이 될 테니 말이오.”

그러자 진태도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무슨 그런…!”

하지만 유해응은 아까와 똑같이 바위 같은 표정과 말투로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진 가주가 만약 결백하다면 다른 이들의 조사를 기다리시면 되오. 진 가주가 직접 나서면 나설수록 더 의심스러워지니 말이오.”

그러자 진태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주변을 힐끗 둘러봤다.

유해응의 말에 다른 가주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지지하는 가주들도 차마 반박하지 못한 채 시선을 피하는 중이었다.

진태도는 드디어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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