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진소은-5
진소은의 눈이 그 남자에게 못 박혔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뭔가 시선을 잡아끄는 묘한 마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남자의 신형이 돛대 위에서 갑자기 지워지듯 사라져 버렸다.
스르륵!
진소은은 깜짝 놀랐다.
마치 귀신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하지만 그가 귀신이 아니었다는 건 곧 확인할 수 있었다.
돛대 위에서 사라진 그가 어느새 자신이 있는 배의 뱃전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듯 뱃전에 선 그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너희가 백교방의 해적들인가?”
그제야 그의 존재를 인식한 백교방의 사천왕들이 황급히 도를 내밀며 소리쳤다.
“누구냐?!”
“뭐냐, 너는?!”
그러자 그가 비릿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너희가 백교방의 해적들이냐고 묻지 않느냐?”
진소은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어둑해져 가는 하늘 아래 빛이 날 듯한 새하얀 백의, 그리고 그 백의보다도 더욱 빛을 뿜어내고 있는 듯한 잘생긴 외모의 남자였다.
‘백교방?’
진소은은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네 명의 절정 고수가 지금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의 남자의 말대로 그들은 백교방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백교방이라면 분명….’
바로 어제 여동생 진가인에게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최근 급성장해 광주에서 진가장 다음가는 세력을 갖게 되었다는 정사 중간의 문파.
하지만 진가인은 그들에 대해 별거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했었다.
‘꽤 강해졌다고 소문이 자자한 모양이지만, 그래 봤자야. 그들은 세력을 키우는 동안 우리와 한 번도 충돌한 적이 없었거든. 그들이 우리 진가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얘기지.’
하지만 저들이 백교방이 맞다면 진가인의 말은 완전히 잘못된 얘기일 듯했다.
그들이 진가장과 한 번도 충돌하지 않았던 건 아마도 송곳니를 감추고 몸을 낮추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니까.
호랑이가 짐승을 사냥할 때 그렇게 하듯 말이다.
네 명의 남자, 백교방의 사천왕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우리가 백교방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감히 우리 일을 방해한단 말이냐?!”
“저 배를 가라앉힌 것도 네놈의 짓이냐?!”
그러자 백의의 청년이 아름다운 얼굴로 빙긋이 웃었다.
네 명의 절정 고수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건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너희가 백교방의 놈들이라는 걸 알았기에 방해한 것이다.”
“뭐, 뭐라고?!”
“감히!”
백교방의 사천왕은 이제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바로 백의인을 덮칠 듯 자세를 낮추고 기세를 높였다.
그때 백의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진태도의 개들.”
그 순간 네 명의 절정 고수가 몸을 날리려다 말고 흠칫 얼어붙었다.
진소은으로선 어째서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매우 중요한 말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백의인의 신형이 먼저 움직였다.
파악!
그의 신법은 놀라웠다.
몸을 움직였다 싶은 순간 이미 네 명의 바로 앞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공간을 이동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진소은은 그런 신법을 뭐라고 부르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형… 환위?”
그 순간 남자의 하얀 검이 발검했다.
슈하아악!
뽑히는 동시에 공간에 새하얀 백색 잔광을 남긴 엄청난 검격이었다.
진소은의 눈에 허공에 그려진 네 개의 열십자가 들어왔다.
채채챙! 푸학!
“크으윽!”
“으윽!”
“끄아악!”
“막내야!”
진소은은 간신히 상황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세 명의 고수는 간신히 도를 들어 그의 검을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까 그녀와 싸웠던 포시함은 그렇지 못했다.
도를 든 그의 오른팔이 통째로 잘려 뱃전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진소은은 믿기지 않았다.
아까 그녀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절정 고수가 단 일 합을 버티지 못하고 팔을 잘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백의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휘리리릭!
그가 검을 가볍게 흩뿌리자 포시함의 왼팔과 두 다리도 순식간에 모두 잘리고 말았다.
마치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듯 무심한 검격이었다.
푸하악!
“으아아악! 내 팔! 내 다리!”
이제 몸통만 남아 배 위를 뒹굴게 된 포시함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자 남은 세 명이 분노해 달려들었다.
“막내야!”
“이놈! 죽어라!”
“끼야아아압!”
그들의 온 힘을 다한 공격은 흉포했다.
아까 진소은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광폭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힐끗 본 그는 아까와 똑같이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
스르르륵!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신형이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부드럽게 도격들을 흘려 내며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로 다가갔던 것이었다.
스르르륵!
“저, 저럴 수가!”
진소은이 경악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놀람이 세 명의 절정 고수에게 비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혼신의 힘을 다한 합공을 공기처럼 움직여 피해 내고는, 어느새 자신들 사이로 파고든 백의인을 눈을 부릅뜬 채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잘생긴 얼굴이 빙긋이 웃음 짓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하얀 검광이 번뜩이는 것도 말이다.
휘리리릭!
그들로선 이제 백의인의 검격을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그가 온 힘을 다한 자신들의 일격을 모두 피해 내고 사각으로 파고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막내 포시함에게 그랬듯 자신들의 팔다리를 가볍게 통과하는 그의 검격을 그저 절망적인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푸화아악!
“안 돼!”
“으아아악!”
“내 팔!”
진소은은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아까 그렇게 흉악해 보이던 네 명의 절정 고수들이 순식간에 팔다리를 모두 잃은 채 배 위를 뒹굴고 있었다.
너무 일방적인 싸움이어서 앞으로 다시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을 그들이 불쌍해지기까지 하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문득 눈을 들어 눈앞의 참상을 만든 장본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이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을 발하고 있는 것같이 화사한 얼굴로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그가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말했다.
“진가장의 소저시겠지요? 멋진 곤법이더군요. 그게 자연곤입니까?”
진소은은 자기도 모르게 멍하니 대답했다.
“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아니, 자연곤이라기엔 아직 미숙합니다. 그저 흉내 내기일 뿐인걸요.”
자신은 상대도 되지 않았던 자들을 그렇게 압도적으로 물리친 사람이 고작 자신의 곤법을 멋지다고 말하다니, 아무래도 놀리고 있는 게 분명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진소은은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다.
그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
묵랑이 선우진의 머릿속에서 감탄하며 말했다.
- 그걸 자연곤이라고 하나? 멋지군. 아름다워. 마치 뛰어난 예술품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야. 난 왜 저런 멋진 곤법을 알지 못했었지?
그의 감탄에 속으로 피식 웃음 지은 선우진이 그에게 대답해 줬다.
‘자연곤 진지인은 남해검왕 인증호와 동시대의 사람이었거든요. 그는 대기만성의 인재였다고 하니 묵랑 어르신의 생전엔 아마 자연곤을 완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근데… 그녀의 곤법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저도 멋지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어르신께서 그렇게 감탄하실 정도인지까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녀의 곤법은 확실히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기껏(?) 이런 수준의 절정 고수 네 명도 당하지 못할 정도의 곤법이 아닌가.
고금제일이라고 불리는 검신을 감탄시킬 만큼 대단한지는 좀 의문이었다.
그러자 묵랑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허, 절정 고수 네 명을 기껏이라니, 자네야말로 올챙이 적을 모르는 개구리였군. 자네가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절정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벌써 잊은 겐가?
‘아, 그… 랬던가요?’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렇긴 했다.
선우진 자신도 절정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절정 고수 네 명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건 더더욱 얼마 안 됐고 말이다.
묵랑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그때의 자네에 비한다면 지금 저 소저는 이미 다 자란 개구리라고 봐도 무방하다네. 아직 다리에 힘이 부족해 뛰질 못할 뿐이지.
‘다리에 힘이 없다? 아, 그런 문제로군요.’
선우진은 묵랑이 말한 얘기가 무슨 뜻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보여 준 경지라면 지금도 충분히 절정 이상이 될 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정에 이르지 못한 건,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경지는 높은데 내공이 부족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후기지수라니, 어쩐지 더 흥미가 동했다.
그때 묵랑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 흠, 근데 그것도 좀 이상하긴 하군. 진가장은 꽤 잘사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째 저런 인재에게 영약도 못 사 먹여 절정에도 미치지 못하게 방치한 건가?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의 눈이 문득 진소은의 사내처럼 짧은 머리와 허름한 옷을 훑었다.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진가장에서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선우진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소저, 이자들 백교방은 이곳에 있는 진가장의 자식들을 사로잡아 인질로 삼은 뒤 진가장을 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지금도 진가장 인근에 병력을 숨겨 놓고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요.”
그 말에 진소은이 깜짝 놀랐다.
“그, 그런! 그럼 지금 진가장은?!”
“아직은 괜찮을 겁니다. 여러분을 잡아가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아….”
선우진은 주강을 넘을 때 만나게 된 백교방 무리들에게서 그 계획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늦지 않게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들끼리 행동에 나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소생이 생각하기에 제일 좋은 방법은 진가장이 먼저 함정을 파 놓고 놈들을 기다리는 겁니다.”
선우진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누군가 선실에서 나오며 끼어들었다.
“그런 얘기라면 저와 하시지요, 대협. 제가 진가장의 소장주입니다.”
그는 진가장의 소장주이자 진소은의 배다른 오빠인 진계군이었다.
그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선우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게서 그다지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몸에 밴 듯한 그의 오만한 태도와 진소은과 달리 화려한 옷차림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야 천천히 나와서 그런 일이라면 자신과 얘기를 하자고? 어째 내 선우세가의 형제들이 떠오르는 기분인데?’
그때 진계군이 진소은을 힐끗 보며 말했다.
“이 아이는 산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제 여동생입니다. 가문에 그다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요.”
선우진은 그의 눈빛에서 어렵지 않게 진소은에 대한 경멸의 빛을 읽을 수 있었다.
선우세가의 배다른 형제들이 선우진을 볼 때 종종 보이곤 했던 눈빛처럼 말이다.
선우진은 이제 그라는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훑어본 선우진이 문득 그에게 물었다.
“진가장의 소장주라, 그러시군요. 그런데… 소장주께선 이분 소저께서 네 명의 절정 고수와 싸우는 동안 왜 나서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에 진계군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기색을 지우며 대답했다.
“아, 저는 안에서 적도들과 싸우느라….”
그러자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아하, 여동생이 절정 고수 네 명과 싸우는데도 도와주지 못할 정도의 적들이라니, 아마 안에 초절정 고수라도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 그건….”
선우진은 냉랭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소장주께선 일단 저 배들에 남은 잔당들부터 처리해 주시죠. 저들이 도망가 본진에 알리기라도 하면 일이 곤란해질 테니까요.”
지금 현재 남은 백교방의 무리들은 허겁지겁 진가장의 배를 빠져나가 자신들의 배로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두목인 사천왕이 너무 어이없이 당하자 싸울 의지조차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침몰한 배를 제외한 삼면을 둘러쌌던 배들도 막 출발하려 하는 중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의 시선을 따라 배들을 둘러본 진계군이 곤란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힘만으로 말이오?”
선우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당신이 좀 해 주면 안 되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자가 독기와 열정으로 무림에 소문이 자자한 진가장의 소장주라니, 놀라웠다.
그때였다.
멍하니 있던 진소은이 퍼뜩 생각난 듯 옆쪽의 배를 향해 소리쳤다.
“아! 가인이, 가인이가!”
막 진가장의 배에서 떨어지고 있는 백교방 배에는 그녀의 배다른 여동생 진가인이 꽁꽁 묶인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주변의 수적들이 무서워 소리도 못 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인아!”
진소은은 더 생각하지 않고 그 배를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자 선우진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턱!
“아?!”
진소은이 놀라 그를 뒤돌아보자 선우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구해 올 테니 운기조식부터 하시지요.”
그 말에 진소은이 당황해 물었다.
“네? 운기조식이요? 하지만 제 몸은 괜찮은데요?”
진소은은 문득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옷이 좀 넝마가 되긴 했지만 몸에 딱히 상처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내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굳이 운기조식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녀의 물음에도 아무 대답 없이 자신의 등짐을 뒤적였다.
그러고는 그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진소은에게 건네주었다.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작은 단환이었다.
그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건?”
그러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영약입니다. 최상급의 품질이니 대략 이십 년 이상의 내공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영약이군요. 어쩐지 향이…. 네에?!”
진소은은 경악했다.
영약이라니, 그가 왜 자신에게 영약을 준단 말인가?
그것도 이십 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영약이라면 그야말로 최상급의 품질일 텐데….
진소은은 산에서 내려온 후 진가장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진공무는 가족들에게 무관심했고, 진계군과 진가인의 친모인 큰어머니는 그녀를 꺼려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진계군이 소장주가 되며 실세가 된 큰어머니가, 이제는 고인이 된 진소은과 진정군의 어머니를 매우 싫어했던 게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되기는 했다.
그래서 영약은커녕 아직 그녀를 환영해 주는 따뜻한 식사 자리도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
진소은은 오늘 처음 본 그가,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 구해 준 그가 왜 자신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선우진은 그녀의 손에 단환을 꼭 쥐여 주며 말했다.
“아까의 그 멋진 자연곤이 제대로 펼쳐지는 것을 꼭 보고 싶군요. 일 갑자의 내공을 채워 절정의 경지에 오르신다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실 겁니다.”
그러고는 배 옆쪽을 향해 소리쳤다.
“손 노사님! 이분 소저의 호법을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배 난간 옆에서 코가 빨갛게 된 풍채 좋은 노인 한 명이 훌쩍 뛰어 올라오며 말했다.
“호법 말인가? 그 정도는 맡겨 두시게, 인 공자.”
그리고 그 옆에선 십 대 중반쯤 되는 소녀 하나가 함께 뛰어 올라와 새침한 표정으로 선우진에게 말했다.
“인 공자님, 저 언니한테는 무척 친절하시네요, 흥!”
그들은 합산파에서부터 선우진과 동행하기로 한 유운취객 손대수와 그의 손녀 손이랑이었다.
그들이 등장하자 진소은은 무척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제껏 배 옆면에 매달려 숨어 있다 나타난 모양인데 그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늘 산에서 산짐승들을 추격하고 사냥하며 살아가던 진소은으로서는 매우 낯선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선우진은 진소은을 손대수에게 부탁하고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파박!
저 진가장의 소장주라는 자에게 뒤처리를 하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백교방을 지울 생각이었으니 자신이 처리하는 게 낫기도 하고 말이다.
“와아!”
진소은은 너무나도 가볍게 날아오른 선우진의 신법에 탄성을 터트렸다.
여태껏 꽤 많은 신법 고수라는 자들을 봐 왔지만 저렇게 바람같이 느껴지는 신법은 처음인 것 같았다.
반면 진계군은 인상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쳤다.
“흥!”
그는 진가장의 소장주인 자신을 대접해 주지 않는 듯한 백의인이 영 못마땅했다.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기억은 이미 한쪽 구석으로 치워 버린 후였다.
진계군은 선우진이 진가인이 붙잡혀 있는 배가 아닌 다른 배 쪽으로 몸을 날리자 비웃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법은 뛰어나나 머리는 별로인 모양이군. 구해야 할 사람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던 진계군은 곧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이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다른 배 위로 날아간 선우진이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츄아아아아악!
“!”
“저, 저럴 수가!”
그것은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공중에서 일 검을 휘두른 것만으로 커다란 배 한 척이 그대로 두 동강 나 버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