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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18화 (205/359)

218화 진소은-6

장난감 배처럼 두 쪽으로 쪼개져 가라앉고 있는 배와 그 배에서 굴러떨어지며 아우성치는 수적들을 바라보며 진소은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까 그 배도 그래서….”

그러고는 옆에 있는 손대수에게 급히 물었다.

“저, 저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가요?! 저분은 대체 누구시기에?!”

그러자 벌써 몇 번째 봤음에도 여전히 입을 떡 벌린 채 보고 있던 손대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흠, 흠, 노부에게 물어도 잘 모른다네. 저분 인 공자가 쉽게 하는 걸 보면 아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긴 하더군. 그리고 저분의 신분은 직접 듣도록 하게. 내가 얘기해 주는 것은 적당치 않을 것 같네.”

“아, 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사이 선우진은 다른 배 한 척을 또 쪼개 버리고는 마지막으로 진가인이 잡혀 있는 배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아마 다른 배를 다 처리하고 진가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간 모양이었다.

그 인간 같지 않은 무위를 보며 진계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외모만 봤을 땐 분명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자였는데 어떻게 저런 무위를 가질 수 있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진계군은 그에게 가졌던 불편한 감정을 순식간에 모두 씻어 버릴 수 있었다.

질시나 모욕감 같은 감정도 어느 정도 비슷해야 가질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저런 무위를 가진 존재라니, 아무리 거만해도 무림인임에 틀림없는 진계군이 그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은 그저 두려움과 경외감뿐이었다.

그때 선우진은 진가인이 꽁꽁 묶인 채 잡혀 있는 배 위로 가볍게 날아 내리고 있었다.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 깃털 같은 움직임이었다.

사악!

그러자 갑판 위에 있던 수적들은 잠시 얼어붙었다.

무려 검으로 배를 쪼개는 사신이 자신들의 배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선우진이 주변을 스윽 둘러보자 그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바로 강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살려 줘!”

“아아아악! 용왕님, 용서하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풍덩! 풍덩! 풍덩!

잠시 후 갑판 위에는 선우진과 꽁꽁 묶여 있는 진가인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선우진이 심안으로 살펴봤지만 선실 안에도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묵랑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로군. 자넨 정말 훌륭한 후계자일세. 무려 일 갑자 넘게 살았던 내게 첫 경험을 선사해 주다니 말일세.

하지만 두 번째 살면서도 이런 경험이 처음인 건 선우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꽁꽁 묶인 진가인을 간단히 구해 내 진가장의 배로 돌아갔다.

“가인아! 괜찮아?!”

“별일 없었느냐?”

진가인을 구해 돌아가자 그녀가 걱정됐던 것인지 운공을 하지 못하고 있던 진소은이 그녀에게 달려왔다.

진계군 또한 선우진의 눈치를 보며 옆으로 와 슬쩍 그녀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진가인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라버니. 이분 공자께서 저를 구해 주셨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진가인은 선우진을 뜨거운 눈빛으로 슬쩍 바라봤다.

많은 의미가 담긴 눈빛이었다.

그녀는 선우진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백의를 입은 잘생긴 공자가 위기에 빠진 자신을 구해 주는 것은 진가인의 오랜 꿈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고강한 무위, 잘생긴 얼굴, 새하얀 백의까지….

어쩜 이렇게 자신의 꿈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아까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교과룡의 이름 따위는 이미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녀는 교태 어린 목소리로 선우진에게 말을 걸어 보려 했다.

“은공, 제 이름은 진가인이라고….”

하지만 선우진은 그녀에게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가 바로 진소은에게 말했다.

“여동생 분도 무사히 구했으니 이제 걱정 마시고 운공에 들어가시지요, 진 소저. 저희는 바로 진가장으로 가야 하니, 그곳에 가기 전까지 운공을 마치시려면 시간이 촉박할 겁니다.”

그 말에 진소은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결의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공자!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영약을 받은 것은 분명 빚이었지만, 진가장이 위험한 상황에서 이것저것 다 따질 수는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절정의 무위에 도달한 무인들이 어떤 힘을 내는지는 아까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겪어 봤지 않은가.

그러니 싸움이 시작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자신의 전력을 상승시켜야만 했다.

선우진은 그녀에게 빙긋이 웃어 주고는 옆에 있던 유운취객 손대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손대수가 호리병의 술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호법을 부탁했었지? 알겠네, 인 공자. 내게 맡겨 두시게.”

진소은과 손대수 두 사람은 곧 배의 구석진 곳을 찾아갔다.

그러자 자기 말이 무시당해 뾰로통한 표정이 되었던 진가인은, 그들이 멀어지자 다시 선우진에게 슬쩍 다가가서는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말을 걸었다.

늘 남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아 왔던 자신 있는 자세였다.

“알고 보니 인 공자셨군요? 죄송합니다, 공자. 제가 견문이 부족해 이렇게 젊고 잘생기신 고수 중 인씨 성을 가진 사람을 들어 본 적이 없네요.”

말이야 누군지 몰라서 죄송하다는 얘기였지만, 결국 이름을 알려 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차갑게 대답했다.

“나중에 어차피 알게 되실 거요.”

그러곤 진계군을 향해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시간이 없소, 진 공자. 배를 최대한 빨리 진가장 쪽으로 향하게 하시오.”

그러자 아까부터 바싹 얼어 선우진의 눈치를 보고 있던 진계군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예, 예?! 아, 알겠습니다!”

그러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모아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우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런 그들을 지켜봤다.

진가인은 그 뒤에서 입술을 깨문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가 이렇게까지 다가가 줬는데 그런 반응을 보이다니, 강력한 배경과 빼어난 미모를 지닌 그녀로서는 처음 겪어 보는 차가운 홀대가 아닐 수 없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진가인은 문득 살아남은 사람들 중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교과룡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교과룡에게 가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줄까? 질투심을 유발하게?’

하지만 그 계획은 곧 포기했다.

이제 교과룡 같은 자와는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 데다, 그런 모습을 봤다고 질투할 사람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가벼운 여자라고 경멸할 수도 있었다.

‘절대 그럴 순 없지.’

짧은 시간, 입술을 깨물며 여러 생각을 떠올렸던 진가인은 문득 아까 그가 진소은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었던 걸 떠올리고는 다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소은 언니에게 너무 잘해 주지는 마세요, 공자.”

그 말에 선우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진가인은 마치 그녀가 딱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니는 거의 십오 년을 산에서만 지내다 내려온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저렇게 꾸밀 줄도 모르고 말도 잘 못하죠. 어쩌면 자기가 여자라는 자각이 없을지도 몰라요. 뭐, 저야 그런 언니가 가여워서 잘해 주고는 있지만….”

그렇게 말하던 진가인은 마치 비밀을 알려 준다는 듯 슬쩍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사실 언니는 제 이복형제거든요. 직계가 아니란 얘기죠. 그래서 가문 내에서도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누군가 그녀에게 잘해 주면 착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니까 공자도 그녀를 대할 때는 좀 조심하셔서….”

그러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은 선우진이 그녀에게 말했다.

“소저.”

순간 진가인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가 드디어 자신에게 말을 걸어 준 것이었다.

“네, 네?”

하지만 이어서 나온 선우진의 말은 결코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

그가 냉랭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저도 진가장의 여식이라 들었소만?”

“네! 맞아요! 제가 진가장의 직계인…!”

선우진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물었다.

“그런데 진가장이 습격당할지도 모른다는데 걱정도 안 되시는 모양이오?”

“…네?”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다.

당황한 진가인이 다급하게 떠올린 생각을 내뱉었다.

“아, 그, 저희 진가장은 광주 제일의 세력이에요. 설사 저런 자들에게 습격을 받는다 해도 별일이 있지는….”

“별일이 없을 거다? 아까 소저가 그들에게 잡혔던 것처럼 말이구려.”

“…….”

진가인은 너무 당황해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추궁받은 적도 처음이었다.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추궁하는 선우진이 너무 야속해 눈물까지 차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선우진은 차가운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진가장이 진짜 그렇게 대단한 세력이라면 소저는 왜 그러고 계셨던 거요?”

“네? 제가 뭘….”

“아까 점혈을 당한 것도 아니면서 수적들에게 얌전히 잡혀 있더구려. 무인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소? 난 소저가 진짜 진가장의 여식이 맞는지 잠시 고민했다오.”

“아, 그, 그건….”

완전히 창백해져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진가인에게 선우진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아 줬다.

“소저가 진정 스스로를 높이고 싶으시다면 가문의 위세를 빌리거나 다른 이를 험담하시기보단 스스로를 갈고닦으시는 편이 좋을 거요. 지금 소저의 모습은… 좀 추해 보이는구려.”

그렇게 말한 선우진은 냉정히 뒤돌아 뱃전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진가인이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자 옆쪽에서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유운취객 손대수의 손녀 손이랑이 다가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인 공자님은 왜 저쪽에 간 진 언니에게만 상냥해요? 혹시 머리가 짧은 여인을 좋아하시나요?”

그 말에 피식 웃음 지은 선우진이 진가인에게도 다 들리도록 대답해 줬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무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진 소저밖에 없었다. 무가의 자식들이 무인의 정신을 갖지 못했는데 내가 그들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말하며 선우진은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진가인을 힐끗 차갑게 바라봤다.

그러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묵랑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오오오, 차가운 남자로군. 매력적이야. 나도 생전에 그런 말을 한번 해 봤어야 하는데, 새삼 아쉬워지는군.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어르신께선 모든 여인들에게 다 친절하셨던 모양입니다.’

묵랑은 그 말에 잠시 흠칫하는 느낌이었다.

그러곤 이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음,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 여인과도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네. 한마디라도 다른 여인과 말을 나눴다간 며칠 동안 우리 마나님의 불벼락이 떨어졌거든. 난 솔직히 그게 마신과 싸울 때보다도 훨씬 더 무서웠다네.

그 말에 선우진은 풋 웃음을 터트렸다.

아내에게 잡혀 사는 고금제일인 검신이라니, 상상만 해도 너무 웃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알고 있는 묵랑이라면 분명 그런 모습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들에게는 한없이 무섭지만, 자신의 사람들에겐 한없이 부드러운 그런 사람 말이다.

그때 묵랑이 다시 물었다.

- 그나저나 저 소저야 그냥 무시해도 됐을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있나?

그 질문에 선우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 소저를 보는데 제 여동생 연하가 떠오르더군요.’

- 아아, 그랬군. 확실히 좀 그런 면이 있긴 했지.

그 말을 끝으로 선우진은 다시 생각의 방향을 백교방에게로 돌렸다.

합산파의 자료와 하오문의 정보를 종합해 생각해 봤을 때 백교방의 전력은 대부분 남해의 해적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그런 이유로 선우진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지금 백교방의 방주가 누구인지도 추측할 수 있었다.

남해마경 만학숭과 해남마검 진태도를 제외한다면 남해에서 가장 강하고 잔인한 해적이었던 자,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사라져 버렸던 바로 그자, 남해삼마 중 마도에 해당하는 혈해마도 윤삭 말이다.

묵랑이 문득 물었다.

- 그자가 한인과 왜인의 혼혈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한인의 내공심법과 왜인의 왜도술을 익힌 자라고?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 흠, 조심하게. 우리 형님도 젊었을 때 왜도술을 쓰는 고수를 만나 죽을 뻔한 적이 있으셨지. 왜도술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면 도법 하나만큼은 다른 초절정 고수들보다 훨씬 더 위협적일 것이네. 어쩌면 천하삼십육성급 고수일지도 모르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묵랑이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선우진은 백교방이 합산파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상대 쪽에 남해삼마 중 하나인 혈해마도 윤삭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의 무위가 묵랑의 말처럼 천하삼십육성급이라고 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선우진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진가장의 자식들을 납치해 인질로 사용할 생각이라고 했으니, 그들이 아직까지 행동을 개시하지는 않았겠지? 진가장과 몰래 접촉한 후 앞뒤로 협공해 기습해야겠군.’

선우진은 문득 여전히 자신의 눈치를 보며 후기지수들을 이끌어 배를 몰고 있는 진계군을 바라봤다.

진가장과 접촉하려면 아무래도 저자가 역할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선우진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영 믿음이 안 가는군.’

문득 아까 헤어져 다른 곳에서 움직이고 있을 설풍이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증칠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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