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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19화 (206/359)

219화 광동 진가장-1

광동성 광주의 패자이자 광동성 전체에서도 가장 강력한 문파라고 알려져 있는 진가장.

그곳의 장주인 광마곤 진공무는 무척 오만하기로 유명한 자였다.

자신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자와는 말조차 섞기 싫어하고, 혹시라도 자신이나 진가장을 모욕했다는 생각이 들면 불같이 화를 내며 어떻게든 몇 배로 복수를 하고 마는 집요함까지 갖춘 그런 자 말이다.

광동성의 사람들은 그런 진공무를 어려워하고 혹시라도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매우 두려워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스스로는 물론 가족과 사문까지도 모두 보복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같은 편에겐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아군이지만, 적이 되면 그야말로 악몽이 되는 그런 자였다.

하지만 세인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 광마곤 진공무는, 지금 진가장의 뒤뜰에 있는 외딴 별채 앞에서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늘 냉정하고 독선적인 모습만을 보여 줬던 그로선 매우 보기 드문 우유부단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후우우.”

진공무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건지, 가고 싶지 않은 건지를 확실히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별채 안엔 그의 평생을 좌지우지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를 지금처럼 밖에 살지 못하게 만들었던 사람.

진공무는 늘 그를 원망하고 증오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늘 걱정하고 그리워하기도 했다.

근데 그런 그가 드디어 돌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늙고 쇠약해진 모습으로….

진공무는 자신이 그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를 계속 망설이게 하는 이유였다.

그때였다.

별채 안에서 카랑카랑한, 하지만 어딘가 기운이 없는 듯 느껴지는 노인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게냐?! 진가장의 장주라는 놈이 뭐 마려운 똥강아지처럼 서성거리고 있는 꼴하고는!”

그 목소리에 진공무는 흠칫 놀랐다.

안에 있는 그가 자신의 기척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동안 표정이 여러 번 바뀌었던 그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쓰고는 별채의 방문을 열었다.

덜컥!

그가 안으로 들어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산에 들어간 성취가 있긴 하셨던 모양입니다. 제 기척을 다 느끼시고.”

그러자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흥! 짐승들이 많다 보니 귀가 밝아졌을 뿐이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던 진공무는 순간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약 냄새가 코로 훅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방 안이 온통 진한 약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냄새에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던 진공무는 이내 불퉁한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아주 기운이 넘치시는구려. 한 십 년은 더 산에서 계셔도 됐겠습니다. 너무 일찍 돌아오신 거 아닙니까?”

그러자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자리에 누워 있던 완고한 인상의 노인이 다시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흥! 네놈이 장주가 되긴 된 모양이로구나. 이젠 애비가 집에 돌아왔다고 괄시할 줄도 알고. 염려 말거라. 몸만 좀 회복되면 소은이를 데리고 바로 다시 산으로 돌아갈 테니.”

그 말에 진공무는 순간 움찔했다.

그러곤 이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또 산으로…. 가시려면 아버지 혼자서나 가시지 소은이는 왜 또 데려가신다는 겁니까?! 그 애가 무슨 죄라도 졌습니까!?”

그러자 노인 진사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죄라니! 자연곤을 부활시킬 막중한 책임을 진 것이 어찌 죄란 말이냐?! 그게 진가장의 장주라는 놈이 할 소리냐?!”

병색이 완연한 노인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우렁찬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진공무 또한 목소리 크기로는 아버지에게 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막중한 책임을 제가 진다고 할 땐 그렇게 두들겨 패서 못 하게 하시던 분이 왜 이제 와서 그러시냐는 겁니다! 뭐, 갑자기 자연곤 진지인 고조부께서 꿈에 나와 부탁하기라도 하셨습니까?!”

그 말에 노인 진사몽은 차마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들 진공무가 젊었을 때, 자연곤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며 강제로 두들겨 패 못 하게 했던 사람이 분명 진사몽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말에 대꾸하지 못하자 진공무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자기도 모르게 울컥해 속에 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절대 자연곤의 ‘자’ 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시던 분이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어느 날 갑자기 어린 손녀 하나 데리고 말도 없이 산으로 들어가시더니, 십오 년 만에 나타나 하시는 말씀이 또 산에 들어가실 거라고요?! 그게 지금 십오 년 만에 그 몸으로 돌아오셔서 만난 아들한테 할 소립니까?!”

진가장의 전대 장주였던 진사몽은 어느 날 갑자기 아들 진공무에게 장주 자리를 떠넘기듯 물려주고는 훌쩍 산으로 들어가 버렸었다.

그래서 진공무는 영문도 모르고 준비도 안 된 채로 진가장의 장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이, 옆에서 조언을 해 줘야 할 아버지도 없이 말이다.

그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공무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스스로가 진가장의 장주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진가장주가 되어야만 했고, 자신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아도 남들까지 그것을 알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얕보이게 되면 그것은 그대로 진가장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테니까.

그래서 진공무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되도록 두진 않겠다.’

그는 남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독기를 품었고, 차갑고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감췄다.

외부인들에게도, 진가장 문도들에게도,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말이다.

그것은 무척이나 힘든 세월이었다.

진가장주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속이 곪아 터져도 견뎌 냈어야만 했던 세월.

그렇게 십오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진공무는 여전히 차갑고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감춘 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런 진공무는 만약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한번 묻고 싶었다.

대체 왜 그러셔야 했는지.

왜 도망치듯 자신과 진가장을 떠나야 했는지 말이다.

늘 엄격했고 무서웠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자신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아버지는 예전과 똑같았다.

예전과 똑같이 완고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을 했다.

그래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했었는데….

“으음….”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한 맺힌 큰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아 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계셨다.

진공무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를 당황시키는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 진사몽이 잠시 후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우린… 자연곤을 부활시켜야만 한다. 광마십팔곤으로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를 수 없어.”

뭐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진공무는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광마십팔곤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그게 사실? 아니, 그걸 왜 지금에서야….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러자 진사몽이 힘없이 아까의 말을 반복했다.

“광마십팔곤으로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초절정의 길이 막혀 있어. 나도 십오 년 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진공무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동안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었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초절정의 경지는 그에게 길을 열어 주지 않았었다.

진공무는 이제껏 그게 자기 재능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재능이 부족해서 초절정에 오르지 못하는 거라고.

진공무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허!”

어느 날 아버지가 딸 진소은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버리고, 갑자기 장주의 자리에 오르게 돼 버린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초절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광동성 최강의 문파 진가장의 장주가 초절정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른 문파들에게 얕보이고 도전받게 될 것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초절정 고수가 없는 광동성의 제일세.

그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언제라도 꺾을 수 있는, 오히려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만만한 일인자라는 의미일 테니까.

그래서 진공무가 했던 선택은 연기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초절정인 척 연기했다.

격에 맞지 않는 사람과 만나기 싫다며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했고, 혹시라도 쉽게 보이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자존심을 내세우고 약간의 손해에도 처절하게 보복하며 다른 이들이 감히 자신을 넘보지 못하게 했었다.

그랬다.

이 모든 건 그의 약함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의 열등감도 말이다.

그랬는데….

진공무가 떨리는 눈빛으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게… 광마십팔곤의 한계였다는 겁니까?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초절정에 오르지 못했던 게?”

진공무의 질문에 진사몽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보던 진공무가 한순간 분노를 폭발시키며 소리쳤다.

“그걸 왜! 왜 이제야 말해 주는 겁니까?! 왜 그때 말하지 않고! 내가 얼마나! 그 사실도 모르고 내가 얼마나…!”

진공무는 설움이 북받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간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초절정이 되기 위해 했던 많은 노력들.

그리고 그 노력을 위해 외면했던 많은 것들, 가족과 가문과 자기 자신이….

그러자 진사몽이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늘 엄했고 고집불통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사과를 한 것이었다.

진공무는 다시 헛웃음을 지었다.

“하!”

늘 무뚝뚝하고 엄했던 아버지를 그는 어려서부터 무척 두려워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 두려운 아버지의 강요에 젊은 시절의 꿈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과를 하고 계셨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믿기지 않는 사실에 어째서인지 더 화가 났다.

진공무가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그때 도망가신 겁니까? 초절정에 이르지 못하는 가주의 역할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서 그 역할을 나한테 넘겨 버린 겁니까?”

아들의 질문에 진사몽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목소리에 맺힌 한이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다.

진공무가 웃음을 터트렸다.

분노가 줄기줄기 묻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그랬구려. 그것도 모르고 난 아버지가 진짜 자연곤이라도 부활시키러 가신 줄 알았지 뭐요? 이번에도 나만 또 꿈을 꾸고 있었구려! 하하하! 하하하하하!”

아들의 다 포기한 듯한 허탈한 웃음에 진사몽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난 분명히 가능성을 봤어. 소은이, 소은이 그 아이라면…. 윽!”

말을 하던 진사몽은 갑자기 심장을 덮친 격통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분노한 진공무에겐 그 모습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울분에 차 소리쳤다.

“소은이! 지금 소은이라고 하셨소! 그 단아하고 여성스럽던 아이를 그 꼴로 만들어 놓고 아직도 부족하신 거요?! 또 그 아이가 필요하시오?! 왜?! 그 아이도 나처럼 망치려고?! 그래 놓고 또 혼자 도망치려고 말이오?!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내 아이들이!”

진공무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가슴에서 솟구치는 분노에 가슴이 꽉 막혀 버린 것만 같았다.

잠시 이를 악물고 있던 진공무는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붉게 충혈된 눈으로 씹어뱉듯 말했다.

“아버지가 다시 나가시든 말든 이제 상관하지 않겠소. 하지만! 내 아이들은 절대 안 되오! 또 나처럼 망치도록 놔두지는 않겠소! 절대로!”

그렇게 소리친 진공무는 문을 꽝 닫으며 방에서 나와 버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는, 문득 힘없이 걸음을 멈추고는 하늘을 향해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눈을 뜨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진공무는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진가장의 좋은 가주도, 자식들의 좋은 아버지도, 심지어는 좋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초절정의 경지에만 오를 수 있다면.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떳떳한 진가장의 가주가 되고 나면 그땐 아이들에게도 떳떳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이제껏 어떻게 크고 있는지 관심조차 주지 못했던 것들도 한 번에 모두 갚아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문의 일에도, 가족들의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수련에만 힘써 왔었다.

자신은 이제 거의 도착해 있을 거라고.

산 하나만 더 넘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세월이 모두 헛것이었다.

너무도.

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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