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광동 진가장-3
가장 먼저 적들을 향해 뛰어든 사람은 진가장의 장주 진공무였다.
들소와 같은 기세로 적들을 향해 돌진한 진공무는 백교방의 무사들에게 닿기 전, 하늘로 높이 뛰어올랐다 떨어져 내리며 엄청난 기세로 철곤을 내리찍었다.
광마십팔곤 십이 초.
약마강습.
부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철곤이 바닥을 찍는 순간, 지면이 들고 일어나 부채꼴 모양의 해일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지면의 해일에 휩쓸린 백교방 무사 일곱 명의 몸이 그대로 찢겨 나갔다.
“크아아악!”
“끄아아아악!”
백교방의 선두가 순식간에 와해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진공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약마강습을 쓰며 바닥에 바짝 숙였던 몸을 그대로 튕기듯 일으키며 몸을 휘돌렸다.
그러자 회전하는 몸을 따라 바닥에 박혔던 철곤이 돌가루를 흩뿌리며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철곤이 한순간 대나무처럼 휘어진 듯 보일 만큼 강력한 기세였다.
부아아앙!
“!”
“허억!”
“크윽!”
그 철곤이 향한 곳은 몰살된 무사들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백교방 무사들 삼 인이었다.
그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황급히 도를 들어 그 철곤을 막아 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챠챠챵!
철곤의 강력한 경력이 백교방 무사들의 도를 유리처럼 산산이 깨트려 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산산이 깨져 버린 건 그것을 들고 있던 무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빠가각!
“끄어억!”
“끄아아악!”
“끼아악!”
뒤로 밀어내는 것도 아닌 그 자리에서 도를 깨트려 버릴 정도의 위력이 바로 무사들의 몸을 후려치자, 강타당한 삼 인의 몸이 동작 불가능한 각도로 접혀 버리고 말았다.
입에서 쏟아 낸 내장과 바깥으로 튀어나온 안구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를 여실히 말해 주고 있었다.
“저, 저럴 수가!”
“허억!”
그 끔찍한 광경에 기세 좋게 달려오던 백교방의 무사들은 질린 얼굴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의 무위가 백교방 전체의 기세를 꺾은 것이었다.
광마곤 진공무는 자신이 왜 광마곤이라고 불리는지를 마음껏 보여 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말처럼 날뛰며 백교방의 무인들을 박살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대로 분노한 그의 기세는 초절정의 고수라 해도 충분히 믿겨질 정도였다.
게다가 진가장에는 진공무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공무가 백교방의 선두를 완전히 박살 내는 사이, 그 뒤로 따라온 진가장의 고수들이 백교방의 무사들을 들이받았다.
“감히 진가장에 도전하다니!”
“가루로 만들어 주마!”
“하아아압!”
푸화악!
“크아아악!”
“으아아악!”
그들은 진가장의 장로인 진가칠수. 역시 진가장의 비기인 노호삼십육곤을 익힌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모두 내공 칠십 년 이상을 넘어선 일곱 명의 고수들이 휘두르는 철곤 앞에서 백교방의 무리들은 그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기세를 잡았던 백교방의 무인들이 지리멸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대로 반 시진쯤 지난다면 어렵지 않게 전멸당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흐흠.”
혈해마도 윤삭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배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하들이 학살당하고 있건만 그의 입가엔 옅은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측근들이 보기에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측근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방주. 이대로라면 부하들이….”
그때였다.
윤삭이 아무 말도 없이 배 위에서 훌쩍 몸을 날렸다.
슈욱!
남해삼마의 일인인 혈해마도 윤삭, 그가 드디어 행동을 개시한 것이었다.
윤삭은 출렁이는 파도 위를 가볍게 두 번 밟더니만 바로 백교방의 무인들을 학살하고 있는 자들에게로 날아갔다.
진가칠수의 두 사람인 초채언과 손안당이 있는 곳이었다.
“죽어랏!”
빠각!
“꺼져!”
퍼석!
“크아악!”
“깨애액!”
두 사람은 진가칠수 중에서도 이, 삼 위의 무위를 차지하는, 모두 내공 팔십 년을 넘어선 고수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적들을 학살하면서도 주위를 경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야에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윤삭의 모습이 바로 들어왔다.
초채언이 바로 소리쳤다.
“손 형! 적이요! 고수인 것 같소!”
“흥! 아무리 고수라도 적과 싸우며 몸을 띄우다니 멍청하구려!”
초채언과 손안당은 공중에서부터 그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는 윤삭을 향해 동시에 철곤을 찔러 넣었다.
“가랏!”
“하아압!”
츄하악!
그들의 철곤이 대포가 쏘아지는 듯한 기세로 윤삭을 향해 쏘아져 갔다.
상대가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이상 자신들의 철곤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그의 허리에 찬 왜도보다 철곤의 길이가 더 기니 무조건 자신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비릿한 웃음을 지은 윤삭의 손이 문득 허리에 찬 왜도의 도파를 잡았다.
그러자 그 순간, 세상에 빛나는 선이 그어졌다.
샤아아악!
그것은 세상 자체가 수평으로 나뉘어 약간 어긋나게 된 것이 아닌가 느껴지는 그런 선이었다.
마치 선우진의 개천을 수평으로 그은 듯 느껴지는 그런 선.
그러자 그 선에 걸려 있던 사람들의 위와 아래가 어긋났다.
철곤을 찌르던 초채언과 손안당은 물론 그들과 싸우고 있던 백교방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몸을 날리고 있던 초채언과 손안당은 허공에서 자연스럽게 몸이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들의 갈라진 단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푸화악!
“?!”
“크어억!”
그들은 자신들의 몸이 갈라지는 것을 스스로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숨이 끊어진 건 바로 그다음, 그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죽어 가고 말았다.
지면에 발을 붙이고 있던 백교방 무인들은 그보다 한 박자가 더 느렸다.
그들은 초채언과 손안당의 몸이 갈라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다 뒤늦게 자신의 몸에도 붉은 선이 그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자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갔다.
푸화아악!
“끄아아악!”
“바, 방주…?!”
“왜 우리까지…!”
진가장 장주 진공무와 다른 진가칠수의 다섯 명도 모두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엄청난 참격이었다.
그들은 바로 깨달았다.
상대가 한순간 보여 준 저 ‘발도’가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의 어떤 것이라는 걸….
특히 진가장주인 진공무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보여 준 발도가 얼마나 고절한 경지인지는 초절정의 벽에 막혀 한참을 헤매던 그가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럴 수가….”
저것은 그가 추구하던 초절정, 혹은 그 이상의 어떤 경지임에 분명했다.
그러자 단 한 번의 발도만으로 모든 절정 고수를 얼어붙게 만든 혈해마도 윤삭은 이제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진공무를 바라봤다.
그가 누구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파박!
그가 진공무에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진공무는 뱀 앞에 선 쥐와 같은 심정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자신에게 집중된 압도적인 고수의 기세에 몸이 굳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자 진가칠수 중 그와 가까이 있던 두 사람, 과주동과 조목이 황급히 윤삭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윤삭이 진공무에게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멈춰라!”
“이놈!”
부아아앙!
두 사람의 철곤이 바위도 으깨 버릴 듯한 강력한 기세로 윤삭을 향해 휘둘러졌다.
하지만 윤삭의 눈은 여전히 그들을 보지 않았다.
팅!
쳐다보지도 않고 휘두른 윤삭의 도가 과주동이 휘두른 철곤을 가볍게 튕겨 내고는 그대로 그의 몸을 그었다.
샤아악!
과주동의 가슴이 한 박자 늦게 쩌억 갈라지며 피를 뿜어냈다.
푸화악!
그 뒤로 날아들고 있는 조목의 철곤도 마찬가지였다.
팅! 쉬이익!
푸화악!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위였다.
진가장 최고의 고수들인 진가칠수의 두 명을 죽이는 데 고작 네 번의 칼질밖에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걸 바라보는 진공무의 눈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고수, 사신이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진공무는 독기로 유명한 진가장에서도 장주를 맡고 있는 자였다.
절대 넋을 놓은 채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으득!
진공무는 이를 악물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발악은 해 볼 생각이었다.
“으아아아압!”
필사적으로 기합을 질러 굳어진 몸을 일깨운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해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초식을 펼쳤다.
광마십팔곤 십팔 초.
광마요세.
미친 말이 세상을 흔든다는 이름을 가진 광파십팔곤의 최종 식이었다.
“우아아아아압!”
진공무는 왼손으로 곤의 중동을 가볍게 잡고는 오른손을 미친 듯이 휘젓고 쏘아 냈다.
그러자 지렛대의 축이 된 그의 왼손에서부터 곤이 난무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푸화아아아악!
마치 철곤이 분화해 원뿔 모양으로 확대되며 윤삭을 덮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직접 당하는 윤삭에게는 마치 강풍과 소나기가 한꺼번에 몰아쳐 오는 듯한 환상을 보게 만드는 초식이었다.
그러자 윤삭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좋군.”
그와 동시에 그의 왜도 또한 수십 개로 분열했다.
쉬쉬쉬쉬쉬쉭!
티티티티티팅!
윤삭은 도를 가볍게 휘둘러 쏟아지는 소나기와 몰아치는 강풍을 일일이 쳐 냈다.
그리고 한 걸음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치 연어가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듯 조금씩 조금씩 진공무의 맹공을 비켜 내고 있었다.
티티티티티팅!
그리고 마침내 진공무의 몸이 도의 간격 안으로 들어왔을 때, 윤삭은 진공무를 향해 하얗게 웃어 주었다.
마치 꽤 재밌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동시에 그의 왜도가 그어졌다.
샤아악!
진공무는 자신을 향해 그어지는 도를 보며 이제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미 온 힘을 쏟은 초식을 완전히 파훼당한 그로서는 막을 방법도, 막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득 머릿속에 아버지 진사몽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도….
‘사실은 보고 싶었다고, 말해 볼 것을….’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
그때였다.
마지막을 예감하고 눈을 감은 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터엉!
그리고 누군가 그의 바로 옆에서 고함을 질렀다.
“멍청한 놈! 정신 차리지 못하겠느냐?!”
환청인가?
진공무는 당황한 나머지 번쩍 눈을 떴다.
이 상황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것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까지 아버지의 꾸중 소리가 들렸다는 황당한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하지만 눈을 뜬 진공무는 자신이 들은 목소리가 환청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까완 달리 붉은 혈색이 도는 얼굴의 아버지가, 도저히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놈의 왜도를 환상처럼 쳐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터터터텅! 터텅! 텅!
“…아버지?”
진공무는 다시 한번 멍한 얼굴로 아버지를 불렀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진사몽이 들고 있는 봉은 철곤도 아닌 부실해 보이는 목봉이었다.
마치 어딘가의 깃대를 잘라 온 듯 보이는 나무 봉.
그런데 그 목봉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하지만 몰아치는 질풍처럼 예리하게 휘돌며 빛줄기처럼 쳐 오는 왜도의 옆면을 정확하게 쳐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터터터터터텅!
“호오?”
윤삭은 목봉을 든 노인이 자신의 날카로운 공세를 다 막아 내자 제법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뒤로 훌쩍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병환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던 노인 진사몽이, 순식간에 진가칠수의 네 명을 죽이고 장주 진공무까지도 단 일 초식으로 죽일 뻔했던 혈해마도 윤삭을 물러나게 했던 것이었다.
진공무는 너무 놀라 입을 떡 벌린 채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
방금 전 그의 아버지처럼 싸웠다고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던 선조의 별호였다.
“…자연곤?”
그러자 여전히 윤삭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진사몽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흥! 이따위 것이 자연곤일 리가 있겠느냐? 그저 흉내 내기일 뿐이다!”
“하, 하지만 아버지! 방금 전의 그 곤법은…!”
상대가 검강을 쓰든 도강을 쓰든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아닌, 그 흐름을 끊어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자연곤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이상했다.
아버지 진사몽이 자연곤을 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팔방곤법만을 수련해야 익힐 수 있다는 자연곤을 이미 광마십팔곤과 노호삼십육곤을 익혔던 아버지 진사몽이 어떻게 익힌단 말인가?
진공무는 혼란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진사몽이 빠르게 말했다.
“가능성을 봤다 하지 않았더냐?! 중요한 건 팔방곤법이 아니었다.”
“예?”
“중요한 건 평정심이었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평정심! 곤과 합일하기 위한 평정심! 분노를 증폭시키는 광마곤, 노호곤이 문제였던 거다! 초절정 역시 그게…!”
진사몽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그 순간 뒤로 물러섰던 윤삭이 다시 몰아쳐 왔다.
챠라라라라락!
다시 휘둘러 온 윤삭의 도는 아까보다 더 빨라져 있었다.
마치 햇살이 부서져 파편화된 빛무리들이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진사몽은 이를 악물고는 목봉을 휘돌렸다.
터터터터터텅!
진사몽이 정신없이 윤삭의 왜도를 쳐 내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기엔 마치 진사몽의 몸을 감싼 회오리가 흩뿌려져 오는 빛무리들을 튕겨 내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아까와 비슷한 광경,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진사몽의 표정이 아까보다 훨씬 힘겨워 보인다는 점뿐이었다.
하지만 진공무는 아버지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버지가 방금 했던 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팔방곤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평정심이 중요한 거였다고? 분노가 문제였어?’
그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었다.
진가장은 이제껏 분노를 이용해 위력을 증폭시키는 광마십팔곤과 노호삼십육곤으로 무림에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진가장 무인들은 한번 분노하면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았고, 동귀어진조차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독기는 진가장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분노가 문제였다니.
게다가 진사몽이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내용도 진공무는 어쩐지 유추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초절정. 그 경지를 가로막고 있는 것 또한 분노라고 말씀하시려 했던 것 같지 않은가.
너무도 충격적인 말.
하지만 동시에 드디어 답을 찾은 듯한 시원함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진공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 보통 감정의 증폭을 이용해 무위를 높이는 방법은 주로 마공들이 쓰는 방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진가장의 무공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어 왔었다.
분노를 증폭시켜 실력 이상의 무위를 발휘하는 것이 마공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진가장의 무인들은 당당했다.
진가장의 무공은 비록 마공처럼 분노를 증폭시켜 무위를 높이기는 하지만, 마인들처럼 이성을 잃게 되거나 주화입마에 취약하지는 않았으니까.
여타 마공들과 달리 선을 넘지 않도록 자제심을 유지시키는 것이 진가장 무공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말은 결국 진가장의 무공은 감정이 극에 이르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지. 보통 마공을 익힌 자들이 감정의 극한에 이르러 그것을 극복하면 초절정에 이르고 극복하지 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두웅!
갑자기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머릿속을 꽉 틀어막고 있던 돌벽을 한순간 무너뜨리며 진공무의 사고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듯한 청량한 종소리였다.
진공무는 자기도 모르게 육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랬구나. 그거였어. 낮은 경지에서 우리를 강화시켰던 분노가 높은 경지에선 우리 발목을 잡은 거였어. 그래서…!”
원인을 깨달은 진공무는 바로 해결책을 떠올렸다.
‘분노가 문제라면….’
꼭 팔방곤법을 익힐 필요는 없었다.
그보단 오히려 광마십팔곤과 노호삼십육곤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다 버릴 필요도 없었다.
분노를 증폭시키는 심법 부분만 수정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분노의 제한을 풀어 아예 극한까지 가서 초절정에 도전해 보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정말로 마공과 다를 바가 없게 될 테니까 말이다.
‘결국 내가 초절정에 이르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는 얘기로구나.’
분노를 버려야만 했다.
그간 진가장의 무인들에게 가장 훌륭한 무기가 되어 주었던 분노를 말이다.
그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일 것이었다.
오히려 당장은 진가장 전력의 약화를 가져오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생각을 떠올린 진공무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나도….’
가슴이 설레었다.
어쩌면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강요로 광마곤을 익히며 할 수 없이 접어야만 했던 자연곤의 꿈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공무의 심장은 오랜만에 터질 듯 두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혈해마도 윤삭과 싸우고 있는 아버지 진사몽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쉬리리리리릭!
티티티티티팅!
부서지는 햇살처럼 난무하는 윤삭의 도를, 진사몽이 목봉을 휘돌리며 환상적으로 막아 내고 있다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막아 내며 진사몽은 점점 뒷걸음치고 있었다.
“크윽!”
진사몽은 확신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상대의 공세를 막아 낼 수 있을지를.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져 버릴지 몰랐다.
으득!
진사몽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몸, 여기서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자 현 진가장주인 진공무만큼은 살려야 했다.
쉬리리리릭!
티티티티팅!
그때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윤삭의 공세가 잠시 멈칫 주춤했다.
진사몽은 그 순간 눈을 번뜩이며 아들 진공무에게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이유로 윤삭이 도를 거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공무야! 어서 물러서라!”
“예, 예?!”
아버지의 고함에 진공무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순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와 싸우다 갑자기 도를 도집에 납도해 버린 윤삭의 분위기가 갑자기 일변한 것을.
잔뜩 움츠린 그의 모습이 마치 납작 엎드린 호랑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먹이를 덮치기 위해 몸을 낮춘 호랑이 말이다.
그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에 진공무가 황급히 소리쳤다.
“아버지! 피하…!”
그 순간 윤삭이 발도했다.
샤아악!
진공무는 볼 수 있었다.
세상을 위와 아래, 두 개로 나눈 빛나는 선을.
그 선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의 세상이 묘하게 어긋난 것만 같은 광경을 말이다.
아까 진가칠수의 두 명을 한꺼번에 참했던 그 엄청 난 참격이 다시 한번 펼쳐지고 있었다.
진공무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다음 말을 중얼거렸다.
“…셔야….”
문득 아까 놈의 발도에 의해 초채언과 손안당이 두 쪽으로 갈라졌던 광경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자신의 아버지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음 순간 여지없이 진사몽의 몸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푸하악!
“크으으윽!”
“아버지!”
진공무가 절박하게 아버지를 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윤삭이 감탄한 듯 작게 탄성을 토했다.
“호오!”
진공무는 황급히 진사몽에게로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아버지!”
다행히도 진사몽은 그 경이로운 도격에 즉사하지는 않았다.
자연곤을 연상시키는 그의 곤법으로 버텨 낸 것인지 가슴이 쩌억 갈라지기는 했으나 그 상처가 얕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 번을 버텨 낸 것뿐이었다.
그의 목봉은 삼분지 일이 날아갔고 그의 가슴에 난 상처도 계속 싸움을 이어 갈 수 있을 정도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진사몽은 혈도를 점해 출혈을 막으며 필사적으로 아들에게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 물러나라고 하지 않았더냐?!”
하지만 성격 괄괄하기로는 아버지에게 절대 지지 않는 진공무 또한 버럭 소리쳤다.
“뭘 자꾸 물러나란 겁니까?! 나도 아버지처럼 버리고 떠나란 겁니까?!”
“이, 이놈이?!”
그때였다.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윤삭이 다시 한번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함께.”
그가 작게 중얼거린 소리는 아마도 함께 보내 주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진사몽은 창백해진 얼굴로 거의 반이 날아간 목봉을 들어 올렸다.
진공무 또한 이를 악물고는 철곤을 앞으로 내밀었다.
챠라라라랑!
윤삭의 도는 다시 한번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이 되었다. 마치 흩어지는 빛무리와 같은 가볍고 빠른 도격이었다.
티팅! 샤악!
그가 진공무의 철곤을 튕겨 내고 진사몽의 목봉을 다시 두 동강 내는 데는 딱 네 번의 칼질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두 부자의 표정은 망연자실해져 버리고 말았다.
윤삭은 이제 자신의 공격을 막지 못할 그들을 향해 도를 휘두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끝.”
이것으로 끝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윤삭이 그들을 반으로 갈라 버리려 할 때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삐이이이익!
그것은 연보라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봉황이었다.
은은한 빛을 내는 봉황이 날개를 펄럭이며 엄청난 속도로 그에게 돌진해 왔던 것이었다.
“!”
난데없는 봉황의 공격에 놀란 윤삭은, 진씨 부자를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채 도를 회수해 봉황을 향해 내리칠 수밖에 없었다.
샤아아악!
파스스스슥!
그의 도에 갈라진 봉황이 기운으로 화해 소멸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이상한 상황에 윤삭은 안개처럼 흩어지는 기운을 멍하니 둘러봤다.
그 때문이었다.
그가 봉황 뒤에서 덮쳐 오는 사람의 존재를 아주 잠깐 놓쳐야만 했던 것은.
쉬이이익!
“!”
윤삭이 상대의 존재를 눈치챘을 땐 그가 이미 자신의 지척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윤삭의 눈에 아직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얼굴의 남자가 씨익 웃음 짓는 모습이 들어왔다.
다음 순간, 윤삭의 눈앞에 커다란 열십자가 그어졌다.
촤아아아악!
해남인가의 남십자검.
선우진이 도착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