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혈해마도 윤삭-3
윤삭은 시간을 오래 끌지 않기로 했다.
몸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결판을 내야만 했다.
그는 물밑을 돌고래처럼 움직이며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시신들을 찾았다.
그러곤 그들에게서 무거운 걸 떼어낸 후 공력을 주입해 위로 힘껏 던지기 시작했다.
‘훕!’
하나.
‘훕!’
둘.
그리고 마지막엔 세 구의 시신을 거의 시간 차이 없이 동시에 쏘아 보냈다.
‘훕!’
슈아악!
아까 윤삭은 놈이 물 밑을 정확히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 위에 올라가고 나서야 그것이 시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그러니 설사 미끼라는 걸 알고 있다 해도 놈은 이 시신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물론 아까처럼 기척을 남기지 않도록 조심하긴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을 거다.’
수면 위를 향해 솟구쳐 올라가는 시신들을 바라보며 윤삭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윤삭은 위로 올려 보낸 네 번째 시신의 뒤로 따라붙었다.
놈이 거듭되는 미끼를 확인하고 있을 때, 그래서 네 번째도 미끼라고 판단했을 때 그 뒤에서 칠 생각이었다.
그 순간 첫 번째 시신이 수면 위로 튀어 올라갔다.
푸학!
‘첫 번째.’
시신이 수면 위로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완 달리 놈의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그리고 바로 두 번째 시신이 솟구쳤다.
푸학!
‘두 번째.’
이번에도 역시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윤삭은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한 대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마 세 번째부터는….’
그 순간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시신이 거의 시간차 없이 수면 위로 솟구쳤다.
그러자 드디어 반응이 왔다.
‘찾았다!’
네 번째 시신의 뒤에 숨어 수면 위로 올라온 윤삭은 시신 너머로 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놈이 다섯 번째 시신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드디어 틈을 만든 것이었다.
윤삭은 수면 위의 공기를 들이마실 시간도 없이 바로 온 힘을 다해 발도했다.
‘훕!’
샤아아아아악!
그의 도가 한순간 세상을 수평으로 갈랐다.
그러자 윤삭은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을 가른 빛의 선이 미처 뒤돌아보지 못한 놈의 허리 또한 갈랐음을.
샤아아아악!
“!”
윤삭은 왼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놈을 잡은 것이었다.
‘됐…!’
하지만 그 순간 윤삭의 눈이 그대로 굳어졌다.
자신의 발도에 의해 두 동강 난 놈의 몸이 갑자기 유령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스르륵!
“!?”
윤삭은 알 수 없었지만, 선우진은 방금 전 천풍신법의 비기 천풍화엽을 극한까지 전개해 실제와 구분할 수 없는 단 하나의 환영을 만들어 놨었다.
움직일 수도 있고 기척도 있는 환영에 윤삭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윤삭이 처음으로 물 위로 쏘아 보냈던 시신이 공중으로 높이 솟구쳤다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선우진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스으윽!
공간을 찢는 검과 함께.
묵랑검법 일 초.
개천.
촤아아아아악!
“!”
자신의 눈앞에서 갈라지는 공간을 보며 윤삭의 눈이 아득해졌다.
수 싸움에서 또 패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윤삭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앞으로 왜도를 내밀어 개천을 막아 보려 했다.
까드득!
하지만 공간 자체를 찢어 버리는 선우진의 검격에 왜도가 버텨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윤삭의 왜도는 그대로 바스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의 몸 또한….
푸하악!
“끄윽!”
선우진의 검격에 윤삭의 왼쪽 어깨부터 다리까지가 몸통째 뜯겨 나갔다.
그나마 머리부터 갈라지지 않은 건 그가 왜도를 희생해 간신히 살짝 몸을 비켜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퍼엉!
개천을 맞은 반발력에 윤삭이 강물 속으로 튕겨 나갔다. 몸의 사분지 일을 잃은 채였다.
***
푸화악!
선우진은 놈의 몸통에 개천을 명중시키며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남해삼마이자 천하삼십육성급 고수인 혈해마도 윤삭을 드디어 잡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몸이 찢긴 윤삭이 물속으로 튕겨 나가는 순간 그의 표정은 다시 확 굳어지고 말았다.
‘?!’
선우진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서 독기로 가득 차 번뜩이는 놈의 눈빛을.
순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결코 포기한 자의 눈빛이 아니라는 걸.
선우진은 부유물 위에 내려서서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망설였다.
놈이 그렇게 넝마가 된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니, 혹시라도 놈이 여기서 싸움을 끝내고 도주한다면 그게 더 문제일지도 몰랐다.
그런 독한 자가 여기서 살아난다면 앞으로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었으니까.
어떻게든 놈을 여기서 끝내야만 했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던 선우진은 마음속으로 묵랑에게 외치며 결국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만약 제가 죽으면 묵랑 어르신 탓입니다!’
퍼엉!
순간 차가운 물의 감촉이 선우진의 전신을 때리며 바깥보다 더한 암흑이 그의 시야를 덮쳤다.
처음 겪어 보는 어두운 밤의 물속이었다.
그간 선우진은 꿈속에서 남십자검을 배우며 수공 역시 수련해 왔었다.
해남파와의 일전 덕분에 수공을 아예 모르고서는 바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과 흡사하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꿈속의 일. 실제로 물에 들어가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후웁!’
선우진은 꿈속에서와 달리 순간 덮쳐온 짙은 암흑에 살짝 당황했다.
물속은 지나치게 어두웠다.
물 밖에서 보이던 약간의 빛도 수면 아래에선 마치 물에 의해 잡아먹힌 듯 암흑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만약 선우진이 눈에 의존하는 무인이었다면 이 암흑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공기의 흐름으로 눈보다도 정확히 주변을 인식할 수 있는 심안을 수련한 상태였고.
그것이 결국 그의 목숨을 살렸다.
“!”
화악!
물의 흐름을 느낀 선우진은 몸을 확 뒤집어 바로 놈의 팔을 막아 냈다.
턱!
놈의 부러진 왜도가 선우진의 목 바로 앞까지 온 상태였다.
방금 거의 죽을 뻔했던 것이었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역시 마도!’
예상대로 윤삭은 도망가지 않았었다.
수면 바로 밑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선우진이 물 밑으로 뛰어드는 순간, 갑작스러운 물의 감촉에 혼란을 느낄 때를 노려 덮쳐 왔던 것이었다.
정말 너무도 지독하고 끈질긴 자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밖에 안 남은 팔을 붙잡힌 이상 놈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아 보였다.
선우진은 한 팔로 놈의 팔을 잡은 채 반대 팔의 검을 놈의 배에 찔러 넣었다.
슈욱!
물속이지만 일시사일의 무리로 찔러진 빛살 같은 검격이었다.
선우진은 이 거리에서 놈이 일시사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놈은 해내고야 말았다.
스스슥!
“!”
윤삭은 마치 물 그 자체가 된 듯 옆으로 흐르며 검을 비켜 내고 있었다.
엄청난 수공이었다.
으득!
선우진은 이를 악물고는 다시 한번 놈을 향해 검을 찔렀다.
‘흡!’
슈욱!
하지만 놈은 다시 흐르듯이 검을 비켜 내고는 이제 하나 남은 손의 왜도를 놓아 버리곤 그 손으로 선우진의 팔을 꽉 붙잡았다.
“?!”
선우진은 자신과 팔을 맞잡은 놈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속에서 하나 남은 발로 퇴법을 쓸 것도 아닐 테고 왜도를 놓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선우진의 예상은 빗나갔다.
놈은 하나 남은 팔로 무기를 버리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훅!
“?!”
선우진은 한순간 확 끌어당겨져 강 아래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선우진은 놈이 뭘 하려는 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자! 나를 물 아래쪽으로 데려가 수장시킬 셈이로구나!’
놈은 압도적으로 뛰어난 자신의 수공에 승부를 걸어 볼 생각인 모양이었다.
‘대단하군!’
선우진은 생각지도 못한 놈의 기지에 감탄했다.
정말 엄청난 집념과 끈기였다.
하지만 놈이 대단하다고 얌전히 죽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선우진은 조금 다급하게 다시 검을 찌르기 시작했다.
슉! 슉! 슉!
하지만 놈의 수공은 가히 엄청났다.
한 팔로 선우진을 끌고 가면서도 그것을 모두 물 흐르듯 피해 냈던 것이었다.
‘하!’
선우진은 속으로 감탄의 탄성을 내뱉고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놈의 팔을 바라봤다.
그걸 잘라 버릴 생각이었다.
몸을 피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붙잡고 있는 팔은 피할 수 없을 테고, 그것을 베어 버린다면 강 밑으로 끌고 가 수장시키겠다는 놈의 의도 또한 좌절될 테니까.
하지만 잠깐 놈의 팔을 바라봤던 선우진은 이내 이를 악물고는 다시 놈의 몸을 향해 검을 찌르기 시작했다.
슉! 슉! 슉!
마음속으로 묵랑에게 배웠던 수공의 요체를 되뇌었다.
묵랑은 선우진에게 수공을 가르쳐 주며 이렇게 말했었다.
‘수공의 가장 중요한 요체는 물의 흐름을 읽고 그것에 동화되는 것일세. 그런 점에서 천풍신법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난 자네가 수공도 매우 빠르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네.’
그랬다.
선우진은 물속이라는 공간에 매우 빠르게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슉! 슉! 슉!
앞으로 찌르는 일시사일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호흡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지만, 선우진은 그에 상관하지 않고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계속해서 일시사일을 뻗어 냈다.
슈슈슉!
이젠 윤삭을 찌르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물의 흐름과 동화되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슈슈슈슉!
그러던 한순간이었다.
선우진의 검이 문득 단 한 번의 검격에 여덟 개의 일시사일을 뿜어냈다.
슈하아아아악!
그것은 사일검법의 최종 초식인 후예사구일이었다.
이제껏 일곱 개의 벽에 막혀 있던 후예사구일이 이 순간 한 단계 더 올라간 것이었다.
‘됐다!’
선우진의 마음속에 벽을 깼다는 환희의 감정이 차올랐다.
이제 한 번의 벽만 더 깰 수 있다면 전설의 후예사구일을 완벽하게 구사하게 되는 것이었다.
선우진은 환희에 찬 얼굴로 윤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덟 개의 일시사일에 배가 꿰뚫린 그가 경악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에서 빠르게 빛이 사라져 갔다.
꾸루루룩!
마침내 입에서 남은 공기를 뱉어 내며 윤삭의 몸이 축 늘어졌다.
남해삼마인 혈해마도 윤삭이 드디어 죽은 것이었다.
촤악!
“푸하!”
선우진은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와 크게 호흡을 하고는 그대로 강에 누워 둥둥 뜬 채 잠시 휴식했다.
격전이었음을 증명하듯 그의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선우진은 방금의 싸움을 떠올리며 문득 헛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하하하!”
정말 간신히 살아남았다.
종이 한 장 차이.
아마도 그 정도의 간격으로 생사가 갈린 게 아닌가 싶었다.
“하아아!”
잠시 동안 그대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던 선우진은 문득 고개를 돌려 불타오르고 있는 백교방 쪽을 바라봤다.
이제 백교방으로 가 그의 의형들을 만나러 가 볼 시간이었다.
***
“뭐라고?!”
해남파의 장문인인 해남마검 진태도는 부하가 가져온 소식에 극도로 분노해 소리쳤다.
“백교방이… 뭐가 어쨌다고?!”
그러자 그의 부하는 진태도의 살기에 눌려 벌벌 떨며 대답했다.
“과, 광동 진가장을 습격했다 오히려 패주했다고 합니다. 그 후 백교방의 본방까지 무너져 버렸다고….”
“본방이? 진가장에 의해서 말이냐?!”
“그,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가장을 습격한 이후 바로 불탄 것을 보면 정황상 아마도 진가장이 아닐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진태도는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광동 진가장이 무림의 명문이라고는 하나, 혈해마도 윤삭을 물리칠 정도로 강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급히 다시 물었다.
“그럼 윤삭은? 혈해마도 윤삭은 어떻게 되었느냐? 또 그의 어린 자식은?”
“모르겠습니다. 진가장에서 패주한 후 그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백교방 본방이 무너질 때 함께 죽지 않았을까….”
진태도는 이제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고야 말았다.
아는 이는 측근들 몇몇밖에 되지 않지만, 혈해마도 윤삭은 진태도와 어려서부터 함께 수련해 온 의형제이자 사제 같은 존재였다.
진태도는 그의 아버지가 처음 그 깡마르고 더러운 해적 소년을 데려왔을 때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비쩍 마르고 검게 탄 보잘것없는 얼굴에 독기만 줄기줄기 뿜어내던 그의 눈빛을.
그 후, 둘은 비밀리에 함께 수련하며 성장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 진태도의 아버지는 윤삭을 바다로 내보냈었다.
해적이 되어 나중에 진태도의 힘이 되어 주라며.
그러자 그는 아버지의 지시를 아주 훌륭히 이행했다.
마침내 남해의 마도로 성장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런 그를 몇 년 전에야 다시 만나 함께 남해의 지배자가 되기로 약속했었는데….
진태도는 문득 중얼거렸다.
“그놈이 죽었다고? 그럴 리가.”
그 독한 놈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 리가 없었다.
진태도는 놈이 어디선가 반드시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아서 진가장에게 복수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결론 낸 진태도는 약간의 냉정을 되찾았다.
백교방의 전력은 너무나도 아까웠지만 윤삭만 살아 있다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다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부하에게 물었다.
“윤삭의 아들에 대한 소식은 없느냐?”
이거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윤삭의 아들은 사실 진태도의 자식이었다.
윤삭에게 여인을 보내며 진태도가 먼저 씨를 뿌렸던 것이었다.
윤삭에게 특별한 선물도 해 줄 겸 그가 자신의 핏줄을 애지중지 키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했던 일이었다.
그러니 설사 키운 적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핏줄에게 관심이 안 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돌아온 부하의 대답은 이번에도 명확하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정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일단 백교방이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흐음.”
진태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부하가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저, 그리고 또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음?”
부하는 진태도의 반응이 두려운 듯 목을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번 진가장과의 싸움에도 그 인파랑이라는 놈이 끼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가장의 사람들과 합세해 윤삭을 패배시켰다고….”
“…뭐라고?!”
그 말은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혔던 진태도를 다시 분노케 하고 말았다.
게다가 부하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 그리고 놈이 백교방도 장문인의 것이라고 무림에 선언을….”
“이노옴!”
진태도는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인파랑이라는 미꾸라지 같은 놈이 계속해서 자신을 방해하고 있었다.
합산파에 이어 백교방까지.
정황상 백교방이 진가장에 의해 무너진 것도 놈이 끼어들었기 때문인 것 같지 않은가.
놈을 반드시 없애 버려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진태도는 예전에 인파랑을 처리해 줄 칼로 꼽아 놨던 자들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암혈향은 어떻게 됐느냐?! 아직도 그와 접선하지 못했느냐?!”
“예, 예. 이상하게도 얼마 전부터 종적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진태도는 일전에 인파랑의 암살을 의뢰하기 위해 암혈향과 접선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상태였다.
진태도가 생각한 칼 중 그가 가장 저렴하면서도 확실한 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암혈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찾는다는 소문이 들리면 귀신같이 접선해 온다던 그자가 말이다.
진태도는 이를 갈며 다시 소리쳤다.
“이제 더 기다릴 수 없다! 혈우련에 의뢰를 넣어라! 조금 비싸기는 해도 놈들이라면 확실히 그놈을 치워 주겠지! 그리고 형산파에도 서신을 넣어라! 놈을 없애지 않고 뭘 하고 있냐고!”
“예, 예! 알겠습니다!”
무림 최고의 살수가 암혈향이라면, 무림 최고의 살수 단체는 혈우련이었다.
의뢰비가 비싸고 절차가 복잡해 그들을 후순위로 미뤄 놨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태도는 문득 한 명의 이름을 더 말했다.
“하원의 달기에게도 의뢰를 넣어 봐라. 그년도 아마 흥미를 보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진태도는 이를 갈며 생각했다.
이 세 개의 칼 중 하나는 반드시 놈의 목숨을 끊어 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