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진가삼대-1
이번 사태로 진가장이 입은 피해는 엄청났다.
일단 주강에 건설했던 부두, 그리고 정박되어 있던 배들이 진가장의 일부와 함께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렸고, 또한 진가장을 대표하는 고수들인 진가칠수 중 네 사람이나 죽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진가장의 이백 년 역사를 돌이켜 봐도 손에 꼽힐 만한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진가장주 진공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바로 진공무의 딸 진소은이 이제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던 자연곤의 후계자가 되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진공무 자신 또한 이번 사태에서 초절정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되지 않았던가.
그러니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전까지 한계에 갇혀 있던 진가장이 이번 일로 오히려 미래의 가능성을 얻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냉정한 판단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진공무는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아니, 너무나도 슬프고 화가 난 상태였다.
그것은 모두 광혈단을 복용한 그의 아버지 진사몽의 상태 때문이었다.
진공무가 정신을 잃은 그의 아버지를 품에 안고 절규했다.
“아버지! 아버지! 임 의원! 임 의원은 어디 있소?! 임 의워언!”
그러자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임 의원이 바로 허겁지겁 그에게 달려왔다.
“여기, 여기 있습니다, 장주님!”
“어서 오시오! 빨리 아버지를, 아버지를…!”
진공무는 임 의원의 얼굴을 보자 순간 반색했다가, 갑자기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아버지를 돌보고 있던 그가 이곳 근처에 있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가 아버지를 여기로 모시고 온 모양이었다.
게다가 병상에 누워 있던 아버지께 광혈단을 제공해 복용시킨 것도 아마 그일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산에만 계시다 내려와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무슨 수로 광혈단을 입수하실 수 있단 말인가.
문득 진공무의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가 그러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아버지는….
으득!
진공무는 임 의원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이 살기를 뿜어내려 하자 이를 악물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것이 고집불통인 아버지의 결정이었을 거란 것을….
아마도 임 의원으로선 어찌할 수 없었을 거란 걸 말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화가 났다.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했던 아버지인데, 사실 그 원망이 그리움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는데.
그걸 깨닫자마자 아버지를 보내 드려야만 하다니.
그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뿌옇게 번져 오고 있었다.
“태상장주님!”
그사이 임 의원은 서둘러 달려와 진사몽의 맥을 짚었다.
하지만 맥을 짚는 임 의원도, 그 광경을 외면하고 있던 진공무도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진가장의 사람이 광혈단을 복용하고 다시 살아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아마도 진사몽에게 더 이상 가망이 없을 거라는 걸 말이다.
‘아버지….’
아버지의 마지막을 예감한 진공무의 눈에서 마침내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문득 조금 전 방에서 자신이 아버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다시 나가시든 말든 이제 상관하지 않겠소. 하지만! 내 아이들은 절대 안 되오! 또 나처럼 망치도록 놔두지는 않겠소! 절대로!’
그게 아버지를 보내기 직전 했던 마지막 말이 된 것이었다.
처절한 후회의 감정이 심장을 저미고 있었다.
화내고 소리 지르기보단 그리웠다고 말해 볼 것을.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웃는 얼굴을 보여 드려 볼 것을.
그가 그런 생각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임 의원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는 소리쳤다.
“사, 살아 계십니다!”
그 말에 진공무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그에게 말했다.
“아직 살아 계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네!”
그러자 임 의원이 정신없이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그게 아닙니다! 상세가! 상세가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아니! 나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충분히 사실 수 있습니다! 아직 혈맥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뭐… 라고?”
진공무는 그만 정신이 멍해지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광혈단을 복용한 아버지의 혈맥이 건강하다니….
그러자 임 의원이 그에게 짜증을 내듯 소리쳤다.
“아,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시간이 많은 줄 아십니까?!”
진공무는 임 의원의 호통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그러고는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거리며 임 의원에게 물었다.
“어! 그, 그, 그래! 임 의원! 내, 내가 뭘 하면 되겠나?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빨리 태상장주님을 옮겨야 합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영약을 준비해 주십시오!”
“그, 그래! 영약! 영약을 준비해라! 아니! 그보다 먼저 아버지! 태상 장주님을 옮겨라!”
진사몽은 진공무와 진가장의 무사들에 의해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의방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꼼짝도 못 하던 장주 진공무에게 큰 소리를 치며 사력을 다했던 임 의원은 결국 진사몽을 살려 내고야 말았다.
그가 진사몽의 맥을 짚고 있던 손을 놓고는 힘이 탁 풀린 듯 뒤로 푹 드러누우며 말했다.
“됐습니다. 이제… 위급한 상황은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노심초사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진공무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기쁨과 안도감이 한데 섞여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저, 정말…?”
그가 기쁨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임 의원의 손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
“크윽! 고맙네. 고맙네! 임 의원! 정말, 정말 고맙네! 내 이 은혜는 절대, 절대 잊지 않겠네!”
그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임 의원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진사몽을 살렸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이제 은혜를 갚으려고 할 진공무의 보답이 벌써부터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원한을 절대 잊지 않기로 유명한 진가장 사람들은 은혜 또한 절대 잊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오죽하면 광동성 무림인들에겐 이런 얘기들이 격언처럼 떠돌 정도였다.
‘진가장 사람들은 은혜도, 원한도 열 배로 갚는다.’
근데 무려 그런 진가장의 장주가 자신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으니 이제 임 의원의 앞날에 근심 걱정이 있을 리 없었다.
아마도 그의 앞길에는 꽃길만이 가득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방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대자로 누워 잠시 숨을 돌리던 임 의원은 문득 생각난 듯 몸을 일으키며 진공무에게 물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군요. 태상장주님께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실 수가 있을까요? 제가 진가장 분들이 광혈단을 복용하신 것을 수없이 봐 왔지만, 이렇게 혈맥이 안정적인 분은 처음입니다. 보통 무공이 강한 분들일수록 더욱 혈맥이 심하게 망가지곤 했었는데 말입니다?”
그의 의문에 진공무 또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로서도 처음 겪는 이상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때 옆에서 조용히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던 딸 진소은이 문득 입을 열었다.
“분노를 사용하시지 않아서 그러신 게 아닐까요? 조부님께서는 이제 광마심결을 사용하지 않으시거든요.”
“응?”
그녀의 말에 진공무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구나. 분노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광혈단을 복용했다고 피해가 커질 리 없는 거였구나.”
진공무는 문득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분노를 버리면 초절정을 바라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분노를 버렸더니 무려 광혈단을 복용하고도 죽지 않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분노를 버리면 꿈에서만 그리던 자연곤의 경지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된다지 않는가.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해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랬다.
분노였다.
그것만 버리면 이 모든 것들이 다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진공무는 이제야 진가장이 얻게 된 것들을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또한 앞으로 진가장의 희망이 되어 줄 사랑스러운 딸도 이제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딸 진소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은아, 네가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러자 진소은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사내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고생은요. 저는 그저 조부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때였다.
문득 누군가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이제 알겠느냐? 이게 다 내 덕분이라는 걸?”
진공무와 진소은은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바로 진사몽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던 것이었다.
“아버지!”
“조부님!”
진공무와 진소은이 큰 소리로 외치며 그에게 확 다가가자 진사몽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말했다.
“시끄럽다, 이놈들아. 혈해마도와 광혈단에게서 살아났더니 이젠 너희가 나를 죽일 셈이냐?”
진공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의 팔을 꽉 붙잡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버지?”
그러자 진사몽이 다시 코웃음을 쳤다.
“흥! 괜찮기는, 내 꼴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내가 괜찮으면 여기 왜 누워 있겠느냐? 그것도 질문이라고, 쯧쯧.”
그러자 눈물을 글썽거리던 진공무의 얼굴이 살짝 구겨지고 말았다.
하지만 진사몽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멍청한 네놈도 이제 이 애비의 혜안과 깊은 뜻을 알겠느냐? 만약 내가 소은이를 데리고 산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찌할 뻔했느냐? 멍청한 놈이 그것도 모르고 애비보고 도망쳤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뭐? 혼자 산에 들어가는 건 상관 안 할 테니 소은이는 두고 가? 더 이상 망치게 두지 않겠다고? 에잉, 멍청한 놈, 못난 놈 같으니.”
그러자 점점 얼굴이 구겨지다 이제 완전히 일그러져 버린 진공무가 분을 참지 못하고 같이 쏴 대기 시작했다.
“흥! 혜안? 혜안은 무슨 혜안입니까? 그때 산에 따라가겠다는 아이가 소은이밖에 없어서 이 아이를 데려갔다는 거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혜안은 무슨! 그리고, 진작에 제가 자연곤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허락해 주시지 그랬습니까?! 그랬다면 이보다 훨씬 더 빨리 부활시켰을 거 아닙니까?! 그럼 이런 일도 아예 없었겠지요! 그때는 그렇게 두들겨 패면서 자연곤의 ‘자’ 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시던 분이!”
“뭐, 뭐라고?! 흥! 웃기는구나! 네가 자연곤에 도전한다고? 자연곤이 네놈 같은 멍청한 놈이 도전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경지인 줄 아느냐?!”
“당연히 얻을 수 있지요! 소은이가 누굴 닮아서 자연곤을 부활시켰겠습니까?! 다 제 재능을 물려받아서…!”
“이놈이?! 그게 날 닮아서지 어떻게 네놈을 닮아서라는 게냐?!”
“소은이를 아버지가 낳았습니까?! 제가 낳지 않았습니까?! 딸이 아비를 닮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놈아! 너는 격세유전이란 얘기도 못 들어 봤느냐?!”
사경을 헤매다 깨어나서는 바로 열을 올리며 소리를 질러 대는 진사몽과, 그런 아버지에게 지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대는 진공무의 모습에 임 의원은 당황해 그들을 말려 보려고 했다.
“아, 아니, 저….”
하지만 쉴 틈 없이 주고받는 두 부자의 공방에 도저히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진소은이 두 사람을 멍하니 보고 있다 문득 풋 웃음을 터트렸다.
“푸흡!”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진사몽과 진공무가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진소은이 두 사람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두 분은 참 많이 닮으신 것 같아요. 완전히 똑같으신데요?”
그 말에 진사몽과 진공무는 문득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자 두 사람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진사몽의 과거의 모습과, 진공무의 미래의 모습이 서로를 마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것까지도 완전히 똑같은 두 부자였다.
“흠, 으흠.”
“흠,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