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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28화 (215/359)

228화 요동치는 남부-1

진가장에서 이틀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은 선우진은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그는 원래 바로 출발하려 했었지만 진가장주 진공무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이틀간 머물렀던 참이었다.

선우진은 함께 진가장에서 머물던 유운취객 손대수와 그의 손녀 손이랑과 함께 진가장의 정문 앞까지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 진가장주 진공무를 비롯한 진가장의 사람들과 무사들이 잔뜩 뒤따르고 있었다.

마침내 정문 앞에 선 선우진은 진공무에게 정중히 포권하며 인사했다.

“신세가 많았습니다. 진가장주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손대수와 손녀 손이랑 또한 포권하며 인사했다.

“진가장의 무공만큼이나 술도 훌륭하더구려. 감사했소이다.”

“너무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들의 인사를 받은 진가장주 진공무는 문득 자신의 뒤에 선 진가장의 무인들을 스윽 둘러보고는 선우진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하며 소리쳤다.

“진가장은 은인께 입은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선 백 명도 훨씬 넘는 무인들이 역시 포권하며 한목소리로 우렁차게 소리쳤다.

“진가장은 은인께 입은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광동성의 최강 세력인 진가장의 무인들이 한목소리로 선우진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하는 장면이란 무척 가슴 뜨거워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선우진은 뜨거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진공무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

“진가장의 의기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진공무 역시 뜨거운 눈빛으로 그의 손을 꽉 붙잡고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염려 마시오. 절대 인 공자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소.”

선우진은 그에게 이후의 계획에 필요한 몇 가지 일들을 부탁한 상태였다.

원래는 하오문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진가장 정도의 거대한 세력이 도와준다면 훨씬 더 쉽고 확실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들이 드디어 인사를 끝마치고 길을 막 떠나려고 할 때였다.

진가장 사람들 중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앞으로 뛰어나왔다.

“자, 잠시만요!”

그 목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진소은이었다.

그녀는 주변의 시선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선우진을 향해 포권하며 크게 소리쳤다.

“인 공자님, 저도 데려가 주세요! 공자님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예?”

선우진은 약간 당황해 그녀의 모습을 살펴봤다.

여전히 사내처럼 짧은 머리에 허름한 옷을 입은 그녀는 이미 작정한 듯 목봉과 등짐까지 챙긴 상태였다.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

“저는 인 공자님을 처음 뵌 날부터 공자님을 깊이 존경하게 됐습니다! 가슴이 막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올 만큼이요! 공자님과 꼭 함께 가고 싶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꼭 공자님의 일에 도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선우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뒤에 있는 진가장의 사람들이야 뒷모습밖에 안 보이겠지만, 앞에서 본 그녀는 허름한 옷차림, 짧은 머리와는 전혀 다른 예쁜 얼굴을 빨갛게 상기시킨 채 간절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상기된 표정과 절절한 눈빛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었다.

선우진의 옆쪽에 서 있던 손이랑이 문득 중얼거렸다.

“그거 존경 아닌 것 같은데.”

선우진은 난감한 얼굴로 그녀의 뒤에 선 진공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째서인지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묵랑이 흥미로운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귀엽군. 아주 귀여운 소저야. 어쩔 생각인가?

선우진은 그 말에 동의하며 살짝 고민했다.

사실 선우진은 처음 그녀를 봤을 때부터 영입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녀가 재능과 달리 진가장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 정도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이라면 굳이 배려해 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데려가려고 영약도 제공해 줬던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더란 말이지.’

진가장에서 이틀을 묵는 동안 선우진은 자연곤을 부활시킨 그녀가 진가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 존재인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진 아니었던 것 같지만, 지금 그녀의 위상은 소장주라는 진계군은 물론 진공무의 정부인보다도 훨씬 더 높은 위치였던 것이다.

정확히는 진공무, 진사몽 다음가는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 그런 그녀를 자신의 복수행에 데리고 가다니, 그건 이제 맹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진가장에게 너무도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한 선우진은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그녀에게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진 소저의 마음만큼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진가장의 금지옥엽인 진 소저를 그런 위험한 일에….”

그때였다.

진공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진가장의 무인이라면 은인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어야지! 훌륭하구나! 잘 다녀오거라, 소은아! 인 공자, 부디 우리 부족한 딸을 잘 부탁드리오!”

그 말에 진소은이 환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진공무가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진가장 사람들의 호쾌함에 적응하지 못한 쪽은 오히려 선우진과 일행들이었다.

그들은 벙찐 얼굴로 두 부녀를 바라보았다.

다 큰 딸이 홀로 외간 남자를, 그것도 위험한 복수행을 따라가겠다는데 저렇게 시원하게 허락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묵랑만큼은 진공무의 속셈을 짐작했지만 그저 웃을 뿐 굳이 선우진에게 얘기해 주지는 않았다.

- 후후후, 귀엽군. 딸도 귀엽지만 아비도 귀여워.

아무튼 그녀 정도의 인재가 합류하겠다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선우진은 진공무에게 감사하며 그녀의 합류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또 선우진의 일행은 한 명이 더 늘어난 것이었다.

그들이 마침내 진가장을 떠나고, 한참 동안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진공무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바로 향한 곳은 아버지 진사몽이 계시는 의방이었다.

자리에 누워 있던 진사몽이 들어오는 아들을 보며 말했다.

“갔느냐?”

진공무가 그의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예, 방금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소은이도 따라갔습니다.”

그러자 진사몽이 클클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클클클클! 잘했구나. 돌아올 땐 아이라도 하나 안고 왔으면 좋겠구나. 해남인가 최고의 기재와 진가장 최고의 기재 사이에서 나온 아이라니, 대체 얼마나 뛰어난 아이가 나올꼬.”

진사몽과 진공무는 사실 그녀가 인파랑에게 연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그녀를 그와 함께 보내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자연곤을 익힌 그녀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건 좀 마음에 걸리지만, 그럼에도 저 젊은 기재를 사위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자연곤의 실마리 또한 이미 얻은 상태이기에 그녀가 옆에 없더라도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으리란 판단을 마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공무는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는 문득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근데… 그게 되겠습니까?”

그 말에 진사몽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무슨 소리냐? 그게 되겠냐니?”

“그… 인 공자는 엄청난 기재인 동시에 외모 또한 엄청난 그야말로 미공자이지 않습니까? 그에 비해 우리 소은이는….”

진공무의 자조적인 말에 진사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애비란 놈이 무슨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 게냐?! 우리 소은이가 어디가 어때서?! 그렇게 착하고! 무공도 뛰어나고! 어?! 그리고….”

“…그리고요?”

“…….”

진사몽은 결국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고슴도치라도 없는 것을 자랑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꽤 예쁘장한 거야 사실이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이지, 사내 같은 차림과 꾸밀 줄 모르는 성격 탓에 인파랑 같은 미공자 앞에 내세울 정도는 절대 되지 못한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진사몽은 약간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 인 공자가 부탁한 건 잘 처리했느냐?”

그러자 한숨을 내쉰 진공무가 대답했다.

“후우, 뭐 이제부터 해야겠죠. 그거라도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실망해 힘없는 모습까지도 똑같은 두 부자였다.

***

‘광동성의 이인자로 성장했던 백교방이 진가장을 침략했다가 오히려 패배하고는 그대로 멸망해 버렸다.’

이 소식은 언제나 소문에 목말랐던 무림의 호사가들을 오랜만에 들뜨게 만든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간 실질적으로 주강의 물길을 장악했던 백교방의 행보와, 그에 비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진가장의 방만한 태도는 언젠가 둘 사이의 충돌이 있을 것이란 걸 충분히 예상케 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호사가들은 은근히 백교방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욱일승천하는 백교방의 기세에 비해 진가장에서 들리는 소문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장주 진계군의 방탕한 생활과 심성에 관한 소문이라든가, 진가장주인 광마곤 진공무가 사실은 초절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들을 봤을 때 진가장의 앞날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대포까지 동원하며 쳐들어갔던 백교방이 일패도지하고는 그대로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이제 무림의 호사가들은 진가장은 역시 진가장이었다며 흥분해 떠들어 댔다.

그런데 그 이틀 후, 호사가들 사이에 새로운 소식이 퍼졌다.

이틀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소식이었다.

무림의 호사가들은 이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백교방의 방주는 그간 죽은 줄 알았던 혈해마도 윤삭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엄청난 소식이었다.

남해삼마의 일인인 그가 살아 있었고, 심지어 백교방의 방주로 화해 있었다니.

그리고 그 남해삼마인 혈해마도를 진가장이 물리칠 수 있었다니, 무엇 하나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놀라운 소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뒤이어 들려온 소식은 호사가들을 완전히 열광시키고 말았다.

‘혈해마도 윤삭은 사실 해남마검 진태도의 수하였다. 그리고 백교방 또한 진태도가 만든 괴뢰 단체였다. 또한 진가장이 그들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건 바로 해남인가의 후계자인 인파랑이 진가장을 도왔기 때문이었다.’

호사가들은 행복해했다.

무려 얼마 전 합산파를 무너뜨리고 종적이 묘연했던 인파랑의 재등장이 아닌가.

게다가 혈해마도 윤삭이 사실은 진태도의 부하였고, 인파랑이 복수를 위해 윤삭과 백교방을 처리했다니, 호사가들을 흥분시킬 만한 요소는 모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뒤이어 들려온 소문은 호사가들을 아예 혼미하게 만들고 말았다.

해남인가의 후계자 인파랑이 백교방을 멸문시키고는 이렇게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해남파가 아버지의 원수 진태도에게 장악당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해남파 또한 나의 원수일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남해마경 만학숭의 힘을 빌리도록 하겠다!’

그것은 그야말로 폭탄과도 같은 선언이었다.

해남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해남인가의 후계자가 무려 해남파의 주적인 남해마경 만학숭에게 손을 내밀겠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지만 해남인가의 후계자와 남해마경이라니….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구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언한 인파랑은 실제로 남해마경이 있는 대남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호사가들은 이제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의 행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앞으로 그를 중심으로 일어날 바람이 결코 미풍은 아닐 거라는 것만큼은 말이다.

***

복건성 대남도.

그곳은 오래전부터 천하사마의 일인이자 남동해의 지배자인 남해마경 만학숭의 본거지였다.

그리고 사실 만학숭은 근 몇 년간 그곳에 갇혀 있다 시피 한 상태였다.

사자 갈기같이 뻗친 하얀 머리와 텁수룩하게 기른 뻣뻣한 흰 수염, 그리고 맹수같이 번뜩이는 눈빛을 가진 거구의 노인 만학숭은 오랜만에 흥미롭게 눈을 번뜩이며 부하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가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부하에게 물었다.

“해남인가의 후계자가 내게 힘을 빌리겠다? 크흐흐흐.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구나. 그래서 그 말이 진심이라더냐?”

그러자 그의 앞에 부복한 부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실제로 놈이 광동성 광주에서 동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소문입니다.”

“흐음, 그래?”

만학숭이 그 말에 흥미를 보이자 그의 옆에 서 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효치곤이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두목?”

만학숭은 나른한 사자처럼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새끼 호랑이가 몸을 의탁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느냐? 혹시 아느냐? 잘 키우면 개처럼 집을 지켜 줄지.”

사실상 인파랑의 요청을 받아들이겠다는 소리였다.

그러자 만학숭의 부하인 대남사흉의 일인이며 청포(푸른 돌고래)라고 불리는 효치곤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놈이 원수로 지목한 자는 진태도만이 아닙니다. 형산파 또한 자신의 원수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놈이 형산파와 적대한다면 우리의 입장이 좀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그의 물음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얼마 전 형산파의 사자가 마경 만학숭에게 다녀갔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만학숭에게 동맹을 제안했고, 만약 동맹을 수락한다면 그가 대남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든 원인인 복건용가를 처리해 주겠다고 제안했었다.

그러니 만약 형산파에 적대하는 인파랑을 받아들인다면 형산파와의 동맹도 깨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말에도 만학숭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그놈들에게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할 수 있으면 한번 해 보라고. 그럴 능력이 된다면 그때 동맹을 수락해 주겠다고 말이다. 그럴 능력도 안 된다면 당연히 동맹은 결렬이고, 만약 능력을 보인다면 별수 있겠느냐? 그땐 동맹 선물로 새끼 호랑이를 줄 수밖에.”

그 말에 효치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만학숭의 안색을 슬쩍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혹시 대두목께선 놈들이 용가를 처리할 수 없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러자 만학숭이 코웃음 쳤다.

“용가를 처리하는 것이야 가능할지도 모르지. 근데 어디 우리가 용가 때문에 이러고 있다더냐? 용가에 똬리를 튼 그년을 제외하고 용가만 처리한다? 그게 무슨 개소리란 말이냐? 그게 가능하다면 나도 한번 배워 보고 싶구나.”

복건성의 무림 세가인 복건용가는 그 무공보다도 의협심으로 전 무림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유명한 세가였다.

오죽하면 무림인들 중 천하제일의 협객이 검성 해운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있어도, 천하제일의 협객 집단이 복건용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삼백 년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불의를 외면한 적이 없었다.

늘 약자와 의인의 편에 서서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싸웠고, 그 결과 몇 번이나 가문이 무너질 뻔한 위기에 처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조금만 더 이기적이었다면 천하 오대세가에는 당연히 복건용가의 이름이 올라 있었을 것이라는 게 세인들의 중론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가문의 영화 대신 의를 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천하제일의 의협 집단이라는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과거 천하제일인이자 고금제일일지도 모른다는 검신마저도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 정도의 의협집단 말이다.

만학숭이 말했다.

“게다가 용가, 그 지독한 놈들의 저력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사람들은 성녀가 용가에 있어 내가 용가를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뭘 모르는 소리지. 만약 성녀가 오지 않았다면 용가가 그대로 무너졌을 것 같으냐? 천만에. 성녀가 오지 않았다면 다른 누구라도 왔을 것이다.”

만학숭은 성녀를 떠올리듯 눈을 가늘게 뜨고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놈들의 무서운 점은 놈들 자체가 아니라 놈들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거든. 협의 중심지라는 상징성 말이다. 근데 그런 용가를 처리하겠다고? 크흐흐흐, 멍청한 놈들. 놈들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아마 검제가 산에서 내려오는 광경도 볼 수 있을 게다.”

그 말에 효치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용가가 진짜 위기에 처하면 천하제일인인 혈랑검제도 참전할 수 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효치곤은 굳은 얼굴로 만학숭에게 물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영영 이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 않습니까?”

현재 마경 만학숭이 대남도에서 나올 수 없는 이유는 그에게 대항하는 복건용가와 그 용가에서 머물고 있는 천하삼성의 일인 남해성녀 시서우 때문이었다.

예전 만학숭과 시서우는 각각 만학숭의 함대와 용가의 함대에 탄 채 바다 위에서 서로 겨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바다 위에서 싸운다면 서로 공멸할 뿐이라는 것을.

어떤 배도 그들의 무위를 버텨 낼 수 없었다.

진정한 힘을 다 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함선들이 모두 박살 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어느 쪽이든 육지에 선 채 바다에 있는 상대와 싸울 수 있다면 그쪽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만학숭과 시서우 두 사람이 함부로 바다에 나가지 못한 채 서로의 위치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효치곤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을 처리해야 여기서 나갈 텐데, 그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계속 여기서 이렇게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 말에 만학숭이 클클 웃음 지으며 되물었다.

“처박혀 있긴 왜 처박혀 있느냐? 나가면 될 것 아니냐?”

“…예?”

효치곤은 만학숭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껏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했던 것도, 혹시 만학숭이 대남도를 비웠다는 정보를 얻고 놈들이 그사이 이곳을 정벌해 버릴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성녀 시서우 또한 그래서 용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가면 된다니.

그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만학숭이 다시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클클클클, 해남도 정도면 어떻겠느냐? 우리의 새로운 집으로 꽤 괜찮지 않겠느냐?”

그러자 효치곤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해남도? 새로운 집이라고?

효치곤은 그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럼 인파랑이라는 아이를 이용해서….”

만학숭은 사자처럼 섬뜩하고 늑대처럼 탐욕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새끼 호랑이의 복수를 도와주고 그 대가로 호랑이굴을 받는다. 어떠냐? 아주 공평한 거래가 아니더냐?”

근 몇 년간 바다로 나갈 수 없었던 거대한 고래가 이제 서서히 몸을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선우진이 깔아 놓은 판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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