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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29화 (216/359)

229화 요동치는 남부-2

호남성 형산.

천하의 수많은 산들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남악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 수려한 산에는 호남성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 문파 형산파가 존재하고 있었다.

형산파의 성장은 매우 놀라웠다.

예전엔 그저 호남성의 한 지역인 남악 인근에만 영향을 끼치고 있던 문파였던 형산파가 불과 십여 년 만에 구대문파의 일원이 되는 것도 모자라서 호남성 전체의 지배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십 년 전의 형산파는 구대문파의 말석에 있었지만, 앞으로 십 년 후의 형산파는 구대문파의 수장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형산파가 이렇게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누가 뭐래도 현 장문인인 호남제일검 위정국이 장문인의 자리에 오른 뒤부터였다.

그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리고 있었다.

형산파 역대 최고의 장문인이라고.

그 위정국은 지금 집무실에 앉아 외당 당주인 좌가균에게서 보고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후 그 인파랑이라는 자는 실제로 대남도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냉막한 얼굴로 보고를 듣고 있던 위정국은 문득 좌가균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마경의 반응은 어떤가?”

그러자 좌가균이 그의 눈을 피하며 어렵게 대답했다.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제안에 대한 더 이상의 반응도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가 찾아오면 만나 주겠다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위정국의 냉막한 얼굴에 잠시 비릿한 웃음이 맺혔다.

그가 말했다.

“섬에 갇혀 늙어 가고 있는 고래 주제에… 건방지군.”

좌가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와의 동맹을 포기할까요?”

그러자 위정국은 비릿한 웃음을 유지한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성녀와 마경을 상잔시킬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나? 놈이 복건용가를 먼저 처리하면 동맹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고 했던가? 일단 놈의 말에 따라 주도록 하지. 복건용가부터 친다. 그리고 인파랑이라는 놈도 정리하겠다. 어차피 진태도도 징징거리는 것 같으니 미리 없애 놓는 게 낫겠지.”

그렇게 말한 위정국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가균에게 물었다.

“육합검수들은 다 준비가 됐나?”

그의 물음에 좌가균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모두 준비됐습니다. 세 개의 파천조와 열 개의 파산조가 모두 언제라도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그들의 실력은?”

“장문인께서 직접 시험해 보셨듯 한 개의 파천조면 천하삼십육성급 고수 한 명을 잡을 수 있고, 한 개의 파산조면 두 명 이상의 초절정 고수를 잡을 수 있습니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육합검수들은 위정국이 칠팔 년 전부터 준비해 왔던 형산파의 비밀 무력대였다.

젊은 날, 위정국은 질투심을 참지 못하고 다음 대 장문인으로 유력했던 그의 사형을 살해했었다.

그런 후 실수를 깨닫고 도주하던 그는 우연히 숨어 들어갔던 동굴에서 선대의 기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실전됐던 형산파 최강의 검법 오로검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절기들이었다.

위정국은 그때 오로검법을 제외한 절기들을 사문에 모두 되돌려 줌으로써 사형을 죽였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후일 혼자만 익힌 오로검법으로 결국 형산파 최고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 후, 결국 형산파의 장문인이 된 위정국은 그때 발견한 절기들 중 귀멸육합검진이라는 검진에 주목했었다.

그것은 여섯 명의 검수가 하나의 심상을 공유함으로써 그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고수들도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무서운 검진이었다.

위정국은 탐욕스러운 맹수와도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오래 걸렸군.”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그들을 출격시킨다. 일단 간단히 전력을 시험해 보도록 하지. 파천조와 파산조 모두를 백운방으로 이동시키되 파산조 두 개조는 인파랑이라는 놈에게로, 세 개조는 반형회 놈들을 먼저 처리하게 하도록!”

백운방은 호남성의 동쪽 강서성에 위치한 형산파의 괴뢰 문파였다.

복건용가가 위치한 복건성으로 가기 위해선 먼저 강서성을 지날 수밖에 없었기에 먼저 그쪽으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의 명령에 외당주 좌가균이 문득 반문했다.

“인파랑이라는 자에게 굳이 파산조가 둘이나 필요하겠습니까? 그만한 전력이라면 초절정 고수 서너 명은 처리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러자 위정국이 눈동자만 돌려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난 확실한 것을 좋아하네, 외당주. 적을 우습게 보다 만에 하나 귀한 육합검수들을 잃기라도 하면 자네가 책임질 텐가?”

그의 차가운 눈빛에 좌가균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청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장문인! 말씀하신 대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정국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좌가균을 냉랭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말에 토를 달았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능력은 별로여도 충성심 하나로 외당주에 임명했던 자였는데 최근 너무 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집무실 문밖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위정국 정도의 고수나 느낄 수 있는 미약한 기척이었다.

“음?”

그가 문 쪽을 바라보며 뭔가 행동을 취하려 할 때였다.

문득 문이 스르륵 열리며 그 밖에서 한 여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하늘하늘한 백의에 맨발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마치 안개가 흐르듯 소리 없이 들어온 그녀가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걸리나요? 기다리다 지쳐 와 봤어요.”

그녀는 마치 새벽안개처럼 신비롭고, 한 떨기 수선화처럼 청초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방 안에 꽃향기가 확 퍼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녀를 본 위정국은 조금 전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조차 까맣게 잊고는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 끝났소, 우희. 이제 곧 가겠소.”

그러자 그녀가 잠시 위정국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정원에 가 있을게요. 나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아요.”

그녀가 밖으로 나간 후에도 방 안에는 여전히 꽃향기가 머무는 듯했다.

그 신비한 분위기에 위정국은 잠시 그녀가 나간 문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좌가균을 힐끗 바라보았다.

좌가균은 처음 위정국과 같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중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다른 남자가 그녀에게 눈길을 주는 것을 위정국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로선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그의 목숨을 살리고 말았다.

그 모습에 만족한 위정국이 아까 그에게 가졌던 살심을 접고는 다시 업무 얘기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반형회의 움직임은 어떤가? 그들의 본거지는 파악이 됐나?”

“아, 그들은 요즘….”

사파 오대미녀 중 한 명이며 맨발로 안개처럼 움직이는 그녀의 청초함이 마치 초나라 우희의 재림과도 같다 하여 선무우희라 불리는 우난설은, 바로 정원으로 가지 않고 잠시 위정국의 집무실 밖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벽에 손을 댄 채 안쪽의 진동에 집중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정원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가 흘러가듯 은은하고 기척 없는 움직임이었다.

정원으로 온 그녀는 천천히 화원 구석에 있는 연못 주변을 거닐었다.

그저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신비로운 안개가 화원을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 그림 같은 모습에, 주변을 경계하던 형산파의 무사들은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하지만 애써 시선을 돌렸기에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우난설이 거닐고 있던 연못의 갈대 하나가 슬그머니 물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그리고 연못 안쪽에 난 구멍을 통해 사람 하나가 형산파의 바깥으로 헤엄쳐 나가는 것을 말이다.

***

삐이이이이!

맑은 하늘, 갈색 매 한 마리가 유유히 창공을 날고 있었다.

매는 빠른 속도로 날면서도 사냥감을 찾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던 한순간, 무언가를 발견한 듯 매가 순식간에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엄청난 속도였다.

만약 매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토끼를 향해 내리꽂힌다면, 토끼의 머리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댕강 떨어져 나갔을 만큼이나 빠른 급강하였다.

하지만 놈의 목표는 토끼가 아니었다.

사람, 그것도 풍채가 좋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푸드드득!

노인을 향해 급강하하던 녀석은 한순간 날개를 푸득거리며 속도를 늦췄다.

그러자 호리병의 술을 꿀꺽꿀꺽 마시던 노인은 매 쪽은 보지도 않은 채 한 팔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다음 순간 매가 그의 팔에 내려앉았다.

푸드드득! 탁!

화살처럼 내리꽂히다 우아하게 팔에 착지한 매의 오연한 모습도, 한 손으로 술을 마시며 매를 보지도 않고 다른 손으로 받아 준 노인의 모습도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걸 본 짧은 머리의 여인 진소은이 감탄한 얼굴로 소리쳤다.

“우와아아아! 너무 멋있어요, 손 노사님!”

그러자 풍채 좋은 노인 유운취객 손대수는 익숙하게 매의 발에 묶인 전서를 풀며 허허로운 웃음으로 말했다.

“허허허! 뭘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시오.”

그 모습을 본 손녀 손이랑이 혀를 살짝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응 할아버지가 키운 매로 할아버지가 뽐내시네요?”

손녀의 말에 손대수는 헛기침을 하며 전서를 읽기 시작했다.

“흠, 흠, 내가 언제 뽐냈다고 그러느냐?”

하지만 장난스럽던 그의 표정은 전서를 읽으며 점점 굳어졌다.

그러곤 묵묵히 자신을 지켜보던 선우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인 공자, 공자가 아셔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소.”

그의 말에 선우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손대수가 말했다.

“형산파가 움직였다는구려. 그들의 비밀 무력대를 공자에게 보낸 모양이오.”

선우진은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손대수가 세인들의 말처럼 그저 술 좋아하는 떠돌이 협객의 신분만은 아닐 거라는 건 선우진도 이미 눈치채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아마도 상상 이상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형산파의 내부 사정을 전해 주다니, 그건 설사 정보 단체인 하오문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손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잠시 앉아서 얘기하시겠소?”

일행들은 숲의 공터 풀밭에 모여 앉았다.

손대수는 물론 손녀 손이랑의 표정도 평소와 달리 무척 진중해져 있었고, 그런 그들의 표정에 영문을 모르는 진소은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손대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먼저 인 공자에게 우리의 진정한 정체를 숨기고 접근했던 것을 사죄드리겠소. 노부는 사실 반형회라는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외다. 정식으로 소개드리겠소. 반형회의 십이 호 유운 손대수가 인 공자께 인사드리오.”

그러자 진소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반형회요?”

그녀는 무척 의아한 표정이었다.

반형회라는 이름은 적어도 진소은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단체의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척 이상한 일이었다.

절정 고수인 손대수가 소속된 단체가 이름도 듣지 못한 삼류 문파일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사실을 생각한 진소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때 선우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산파에 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인가 보군요. 비밀 결사일 테고요.”

그의 말에 내심 감탄하며 손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우리는 형산파에게 가족, 친지, 사문을 잃었든가, 또는 그들의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확장에 반대하는 이들이 모인 단체요.”

그러자 선우진의 머릿속에서 묵랑이 감탄한 듯 말했다.

- 정말로 나타났군. 자네 계획대로야.

원래 처음 선우진은 인파랑으로서 화하고자 했을 때 설풍과 증칠에게 이렇게 설명했었다.

자신이 인파랑이라는 이름으로 진태도와 형산파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면, 분명 진태도에 반하는 해남파의 세력과 형산파에 대항하는 세력들이 접선해 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예상대로 이렇게 형산파의 반대 세력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었다.

그것도 아직 형산파와 제대로 얽히기도 전에 말이다.

아무리 선우진의 예상이었다고 해도 놀라운 적중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음에도 선우진은 멋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진태도에 반하는 해남파 사람들이야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형산파에 반하는 세력이 나타날 가능성은 사실 반반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이들이 해남파 사람들보다 먼저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군요.’

그 말대로였다.

특히나 형산파가 움직이기도 전에 이들과 먼저 접선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이번에 백교방을 치면서 형산파가 아닌 진태도에 대한 사실만을 퍼트렸던 것도 먼저 진태도부터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들은 심지어 그 백교방을 치기도 전에 먼저 자신에게 따라붙었으니 아마도 거기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선우진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손대수에게 말했다.

“반형회는 아마도 형산파 내에, 그것도 상당히 고위층에 첩자를 침투시켜 둔 모양이로군요. 그래서 이번 일이나 합산파가 그들의 괴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거고요. 손 노사께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합산파에 매복하고 계셨던 게 아닙니까?”

그러자 손대수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선우진이 몇 가지 사실만으로 너무도 정확하게 반형회의 가장 중요한 비밀, 형산파 내부에 심어 놓은 첩자의 존재를 유추해 냈기 때문이었다.

그가 무공의 기재라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의 통찰력까지 갖추고 있다니 정녕 무서운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허어, 그가 앞으로 무사히 십 년, 이십 년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천하삼십육성의 자리는, 아니지. 어쩌면 십오 인의 절대자 자리마저 위험할지도 모르겠구나.’

마음속으로 상대에게 완전히 승복한 손대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인 공자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려. 정확하게 보셨소. 혹시 공자께선 내가 반형회의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게요?”

그의 물음에 선우진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반형회라는 곳의 존재는 지금 노사께 들은 것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형산파에 반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존재할 것이고, 제가 형산파에 대항하다 보면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만나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요.”

손대수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구려. 후우우. 공자의 생각대로요. 만약 우리가 합산파에서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한참 후에야 공자의 존재를 알게 됐겠지요. 이게 아마 인연, 어쩌면 하늘의 도우심이 아닌가 싶구려.”

그 말에 선우진은 희미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럼 이제 형산파의 얘기를 좀 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손대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겠소. 형산파는 지난 칠팔 년간 비밀리에 육합검수라는 자들을 양성해 왔다고 하오.”

선우진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말을 되뇌었다.

“육합검수라.”

그것은 좀 이상한 말이었다.

육합검수라는 이름만 들으면 육합검법을 익힌 검수라는 뜻인데, 육합검법은 저잣거리의 책방에만 나가도 살 수 있는 삼류검법이 아니던가.

그러니 형산파가 그런 육합검법을 익힌 자들을 칠팔 년 동안이나, 그것도 비밀리에 양성해 왔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선우진은 손대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그가 육합검수의 정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육합검수라는 건 형산파의 실전됐던 비전 중 귀멸육합검진이라는 진법을 익힌 검수들을 말하오.”

“귀멸육합검진이요?”

“그렇소. 그 검진은 여섯 명의 검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검진을 펼쳐, 만약 일류 무인이 검진을 펼치면 절정 고수를, 절정 고수가 검진을 펼치면 초절정 고수를 이길 수 있는 무서운 검진이라고 하더구려.”

그것은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일류와 절정의 차이는 살쾡이와 호랑이, 절정과 초절정의 차이는 고양이와 호랑이만큼이나 격차가 있기 때문이었다.

근데 고양이 여섯 마리가 호랑이를 이길 수 있게 만드는 검진이라니, 실로 엄청난 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선우진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중얼거렸다.

“일류 여섯 명이 절정, 절정 여섯 명이 초절정을 이길 수 있다라…. 놀랍군요. 아마도 그런 놀라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이유가 있겠지요? 어쩌면 그게 그 검진을 비밀리에 익혀야 하는 이유와도 같을 테고요.”

선우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자 손대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도무지…. 정확하오, 공자. 그 검진은 서로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기 위해 여섯 명의 의지를 한 명에게 맡겨야만 한다고 들었소.”

“여섯 명의 의지를 한 명에게…. 설마?”

선우진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손대수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검진을 지휘하는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의 인성을 말살시켜야 한다고 했소.”

그 말을 듣자 이번에는 선우진이 헛웃음을 지었다.

선우진의 속에 있는 묵랑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

- 허, 정파라는 놈들이… 그딴 짓을 한다고?

뛰어난 전투력을 위해 사람의 인성을 말살시킨다.

그야말로 혈교도 놈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을 전투 병기로 쓰기 위해 마인으로 만드는 혈교도나, 인성을 말살시켜 검진의 부속품으로 삼는 형산파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

선우진은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손대수에게 물었다.

“형산파의 방식이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까?”

손대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의 눈빛이 말보다 더 강한 긍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우진은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육합검수들이 제게 오고 있다는 얘기로군요.”

“그렇소. 초절정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육합검수들을 파천조, 절정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자들을 파산조라고 하는데 공자 쪽으로 파산조 두 개 조, 우리 반형회 쪽을 처리하기 위해 파산조 세 개 조를 파견했다고 하더구려.”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를 초절정 고수 두 명 이상이라고 평가해 줬다는 얘기로군요.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습니다.”

비꼬는 말이었지만 손대수는 그의 농담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이제 어쩔 셈이오, 공자? 아무리 공자라도….”

손대수는 벌써 그들을 선우진이 감당하기에 무리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괜찮습니다. 그 정도라면 우리 쪽 전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제가 걱정되는 건 우리에게 손을 쓴 자가 그들만이 아닐 거라는 점이로군요.”

그 말에 손대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손을 쓴 자가 그들만이 아니라면?”

그러자 선우진이 문득 남쪽 하늘을 향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해남마검 진태도. 제 생각엔 아마 그자의 칼이 먼저 우리에게 닿을 겁니다. 어쩌면 벌써 근처까지 왔을지도 모르겠군요.”

남쪽 하늘을 바라보는 선우진의 눈을 따라 일행들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은 짙은 걱정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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