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요동치는 남부-3
백산철검 공한성은 광동성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협객이었다.
절정고수인 그는 절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일단 들이받고 보는 강골로 유명했다.
최근 광동성 북부의 대형 방파인 갈수방과 충돌해 억울한 이들의 복수를 해 줬던 그는 개운한 마음으로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남마검 진태도와 형산파를 원수로 지목하고 복수행을 벌이고 있다는 인파랑이라는 자에게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한참 외딴 숲길을 걸어갈 때였다.
문득 전방에 객잔 하나가 나타났다.
공한성은 눈에 이채를 띤 채 중얼거렸다.
“음? 이런 곳에 객잔이 있었던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그는 마침 한참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이기에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끼익!
그러자 바로 씩씩한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옵쇼!”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싹싹한 목소리에 공한성은 빙긋이 웃음을 지으며 객잔 안을 둘러봤다.
의외였다.
이런 외딴곳에 자리한 객잔 안이 예상과 달리 이미 반쯤 선객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사꾼으로 보이는 봇짐을 든 무리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이동하는 듯한 부부, 게다가 낭인들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들까지.
아마도 이쪽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런 외진 곳에 객잔이 자리할 수 있었나 싶기도 했다.
그때 다시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무사님이시네? 혼자 오셨습니까, 무사님?! 뭘 드릴깝쇼?!”
젊은 점소이의 싹싹한 인사에 공한성은 부부와 장사치들 사이에 있는 빈 탁자로 향하며 말했다.
“간단히 만두와 소면, 그리고 죽엽청을 부탁하겠네.”
“예이! 만두, 소면, 죽엽청 하나요!”
공한성은 탁자에 앉아 문득 주변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러자 어린 두 아이들이 객잔 안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공한성 근처까지 와서 우당탕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어미로 보이는 여인이 죄송한 표정으로 서둘러 와서는 아이들을 데려가며 그에게 인사했다.
“너희 어서 이리 오지 못해?! 여기가 어디라고 장난질이야?! 아이고, 대협. 죄송합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공한성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해 줬다.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요.”
하지만 엄마에게 끌려간 아이들은 다시 몇 번이고 장난을 치다 공한성의 자리 뒤쪽까지 오곤 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점소이가 바로 음식을 가져왔다.
미리 만들어 놨던 것인지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점소이가 능숙하게 쟁반에서 음식을 옮겨 놓으며 소리쳤다.
“맛있게 드십시오, 대협!”
“훗, 고맙네.”
친근하게 웃으며 점소이의 인사를 받아 준 공한성은 음식을 먹기 전에 늘 그랬듯 먼저 품속에서 은침을 꺼냈다.
어디서든 음식을 먹기 전 독이 들었는지 은침으로 확인하는 게 그의 오랜 습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은침을 막 음식에 꽂아 확인해 보려고 할 때였다.
문득 낭인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내들 중 한 명이 취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형씨! 칼 좀 쓰시오?”
무례한 말투, 딱 봐도 시비를 거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마도 낭인이 취해서 힘자랑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공한성은 그를 슬쩍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냥 웃어넘기기로 했다.
일개 낭인들을 일일이 상대해 주기엔 절정 고수인 자신의 급이 아깝기 때문이었다.
그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잘 쓰기야 하겠나. 그냥 대충 쓴다네.”
그러자 낭인이 사납게 웃더니 문득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 근데 왜 반말이지? 왜? 나 정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냐? 내가 우습냐고?! 엉?!”
그의 고함에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옆 탁자에서 먹고 있던 장사치들도 긴장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고, 아이들의 모친도 서둘러 애들을 단속했다.
“얘들아! 어서 이리 와!”
“네? 왜요?!”
“어서 이리 오지 못해?!”
공한성은 그런 주변 분위기를 슬쩍 살피고는 점점 나빠지려는 기분을 억눌렀다.
좋게 좋게 넘겨 주려고 했는데 상대가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
공한성은 이제 인상을 굳히고는 낭인에게 말했다.
“술이 좀 과한 듯하군.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데 그만하는 것이…!”
그때였다.
낭인이 갑자기 확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며 외쳤다.
“난 네가 더 불편해, 이 새끼야!”
부아앙!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다.
하지만 술 취한 낭인의 공격이 공한성에게 위협이 될 리 없었다.
공한성은 어이없는 헛웃음을 지으며 간단히 낭인의 주먹을 막고는 반대 손으로 그의 배를 살짝 밀어 버렸다.
투욱!
“억!”
그러자 낭인이 공중에 붕 떴다가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쿠당탕!
술에 취했기 때문인지 전혀 낙법을 하지 못한 채 뒤통수를 땅에 부딪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동료 낭인들이 깜짝 놀라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왕가야!”
“왕가야, 괜찮으냐?!”
공한성은 문득 혀를 찼다.
생각보다 상대가 크게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기분이 안 좋아 힘을 좀 과하게 썼던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에 그가 낭인의 상태를 확인해 보려고 그가 쓰러진 곳으로 다가갈 때였다.
갑자기 동료 낭인들이 소리치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주, 죽었다! 숨을 안 쉬어!”
“왕가야! 왕가야!”
“왕가야, 정신 차려!”
공한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힘이 좀 과했다 해도 사람이 죽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옆 탁자에 앉아 있던 장사치들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 사람이 죽었다고?!”
“사, 살인! 살인이다! 저 사람이 살인을!”
공한성은 곤란한 눈빛으로 장사치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서둘러 쓰러진 낭인에게로 다가갔다.
“비켜 보시오! 내가 한번 보겠소!”
그가 낭인들을 밀치고 들어가 쓰러져 있는 낭인의 상태를 보려고 할 때였다.
문득 섬뜩한 느낌이 그의 뒷덜미를 자극했다.
“!”
깜짝 놀란 그는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파박!
그러자 그가 있던 자리에 낭인들의 도가 박혀 들었다.
쉬이익!
퍼버벅!
공한성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자칫 잘못했으면 잠깐 사이에 저런 삼류 낭인들의 도에 죽을 뻔했던 것이었다.
아마도 동료의 복수를 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공한성이 분노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
하지만 그때였다.
푸욱!
“크윽!”
그의 등에 갑자기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누군가 그의 등을 찌른 것이었다.
깜짝 놀란 공한성이 뒤를 돌아 확인해 보려 했다.
그의 뒤에는 그를 공격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누가…?!’
하지만 그는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앞에서 낭인들이 다시 도를 휘둘러 왔기 때문이었다.
쉬이익!
‘빠르다!’
공한성은 깜짝 놀랐다.
지나치게 예리한 공격이었다.
삼류 낭인들의 공격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의 등에서부터 화끈한 통증이 점점 전신으로 퍼져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독이 퍼지는 것 같았다.
공한성은 일단 내공으로 독을 억누르며 낭인들의 공격을 방어하기보단 옆으로 몸을 날리기로 했다.
뒤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파박!
쉬이익!
그가 아이들의 부모와 장사치들이 앉은 쪽 중 장사치들 쪽으로 몸을 날렸을 때였다.
몸을 날리며 자신의 후방을 공격했던 자를 눈으로 확인한 공한성은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
그곳엔 자신의 근처에서 놀던 두 아이들이 음험한 웃음을 지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그때 아이들의 손에 잡혀 있는 피 묻은 단검이 바로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공한성은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이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수…?’
그랬다.
저런 어린아이들이 익숙하게 자신의 등을 찔렀다면 저건 절대 일반인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순간, 그의 등에 세 개의 검이 박혔다.
푸푸푹!
“커헉!”
이번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의 짓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쪽엔 세 명의 장사치들밖에 없었으니까.
공한성은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문득 예전에 들었던 얘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목표를 처리하기 위해 건물을 짓거나 심하면 마을을 하나 만들기도 한다는 무림 최고의 살수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그가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혈우… 련.”
그리고 결국 숨을 거뒀다.
털썩!
객잔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객잔 주인, 점소이, 장사치들, 아이들과 부모들, 낭인들까지 모두 다였다.
그중 점소이가 아까와 전혀 다른 냉정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그냥 음식을 먹었으면 조용히 죽었을 것을. 괜히 독을 확인하려고 해서 험한 꼴을 봤지 않은가.”
공한성의 탁자에는 그가 독을 확인하려고 꺼냈던 은침이 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점소이, 사실은 혈우련의 특급 살수인 십칠 호는 자신의 조원들을 향해 말했다.
“빠르게 객잔을 정리하도록. 다음 의뢰 대상을 처리하려면 빨리 이동해야 하니까.”
그러자 공한성을 단검으로 찔렀던 남자아이, 사실은 혈우련의 일 급 살수인 삼십사 호가 물었다.
“이번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의 물음에 십칠 호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해남인가의 후계자 인파랑. 아직 초절정은 아닌 것 같지만 합산파를 홀로 무너뜨리고 진가장과 함께 혈해마도를 물리친 실력자다.”
그 말에 혈우련의 살수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다시 물었다.
“그런 실력자를 우리 조만으로 작업합니까?”
그러자 점소이, 십칠 호가 입꼬리만 올려 웃는 표정을 짓고는 대답했다.
“그럴 리가. 이번엔 마을 급으로 간다. 목표를 처리하기 위해 마을을 만드는 건 사 년만이라더군.”
그 말에 다른 살수들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능숙하게 움직여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후, 공한성이 죽음을 맞이했던 객잔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객잔의 건물은 물론, 그 건물이 있었던 흔적까지도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마치 도깨비 놀음과도 같은 상황.
이것이 바로 천하제일의 살수 단체 혈우련이 목표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
광동성 동쪽의 하원.
수많은 강들이 모여 마치 바다처럼 보이는 커다란 호수 품청호를 형성하는 이곳은 벌써 몇 대째 하원방이라는 방파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하원방은 오랫동안 하원에서 제왕처럼 군림해 왔지만 의외로 그들의 평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사파였지만 하원에 사는 일반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았고, 오히려 외부에서 침입해 오는 세력들을 막아 주며 이곳 사람들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품청호를 잘 관리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하원의 일반 백성들은 모두 하원방을 좋아하고 그들의 말을 잘 따르곤 했다.
그런 하원방의 현 방주는 여인이었다.
전 하원방주의 딸이자 다른 손 위의 남자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마침내 방주의 자리에 오른 여장부인 그녀 연태진을 사람들은 재림달기, 또는 하원달기라고 부르곤 했다.
달기라는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삼십 대의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녀는 사파 오대미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기도 했다.
그 하원달기 연태진은 지금 잠이 덜 깬 나른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앉아 도전자의 접견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잠이 덜 깬 듯 하품을 하며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하아암, 그러니까 네가 누구라고?”
그러자 옷 위로 보기에도 무척이나 단단한 근육질의 육체를 가진 듯한 대머리 장한이 흐흐 웃으며 대답했다.
“동신철권 육주강이오. 강서성에서 활동하는 승부사들 중 내 이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소.”
그는 그렇게 대답하며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연태진의 전신을 훑어봤다.
그녀는 치마의 갈라진 부분이 허벅지까지 드러나고, 상의는 흘러내려 어깨까지 드러나는 방만한 옷차림으로 커다란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있었다.
하얗게 드러난 그녀의 매끈한 몸에 육주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그녀가 왜 사파 오대미녀에 꼽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매혹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육주강은 탐욕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소만 정말 연 방주께서 만족할 만한 대결을 할 수 있다면….”
그러자 그의 탐욕스러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른하게 웃은 연태진이 그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만족할 만한 화끈한 대결을 해 준다면 너는 분명 나와 잘 수 있을 거야. 어때? 도전하겠어?”
동신철권 육주강은 자신의 두 주먹을 쾅! 부딪치며 대답했다.
“난 언제나 화끈하오! 싸울 때도 화끈하고, 침대 위에선 더 화끈하지!”
그의 말에 환하게 웃은 연태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 기대할게.”
그리고 곧 대전 안에서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됐다.
여전히 어깨까지 상의가 흘러내린 방만한 옷차림의 연태진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자, 간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파앙!
다음 순간, 순식간에 짓쳐 든 연태진의 정권이 육주강에게 쏘아졌다.
그러자 육주강은 황급히 두 팔을 겹쳐 그녀의 정권을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빠가각!
“끄억!”
단 일 격에 육주강의 두꺼운 두 팔이 으스러지고 말았다.
가녀린 몸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연태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권에 이은 그녀의 하단 발차기가 육주강의 허벅지에 작렬하는 순간,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빠각!
“끄아아악!”
육주강은 괴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허벅지 뼈가 통째로 으스러진 듯한 고통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려 했다.
하지만 연태진은 그가 쓰러지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녀는 불꽃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뜨거운 눈빛으로 육주강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빠가각! 뿌악! 뻐억! 푸칵!
그 엄청난 고통에 육주강이 울부짖었다.
“끄어어어어어어!”
연태진은 그를 다진 고기로 만들려는 듯 끊임없이 두들겨 패며 소리쳤다.
“그 얘긴 못 들었나 보지?! 나를 화끈하게 해 주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게 될 거라고?!”
“사, 살려 주세요!”
잠시 후, 다진 고기가 된 채 꿈틀거리는 육주강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본 연태진은 몸을 휙 돌려 의자로 돌아가며 말했다.
“죽일 가치도 없는 놈이로군. 대충 치료해서 갖다 버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바로 대답하고 몸을 움직였다.
“예! 방주!”
하지만 아무리 잘 치료한다 해도 육주강이 앞으로 무인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온몸의 뼈가 부스러진 듯한 그는 이미 무인으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연태진은 다시 의자에 나른하게 앉아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괜히 잠만 깼네. 화끈한 싸움을 해 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 역시 여령색마 손 선배님처럼 색마행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화끈한 승부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태진의 우상은 바로 여령색마 손은상이었다.
무림 역사상 최초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색마가 된 그녀의 행보는 연태진이 꿈꾸는 이상향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를 악물고 그렇게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그녀의 부관이 살짝 울상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방주님, 또 그런 말씀을…. 만약 방주님이 색마행을 벌이셔서 무림 공적이 되시면 방주님은 몰라도 하원방의 식솔들은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
그러자 연태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아, 알아! 안다고! 그냥 해 본 말이잖아!”
연태진은 심통이 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요즘 그녀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그녀의 형제들을 다 죽이고 하원방의 방주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여자라고 무시하며 거들먹거리는 형제들이 눈에 거슬려 밟아 줬더니, 비겁하게 암수를 써 그녀를 죽이려고 하기에 수틀려 모두 죽여 버린 거였는데….
그 일 때문에 이렇게 하원방에 묶여 버릴 줄 알았다면 그때 조금만 참았을 것을.
“차라리 집을 나갔어야 했어.”
이를 갈며 그렇게 중얼거린 연태진이 한숨을 내쉬고는 부관에게 물었다.
“손 선배님의 행방은 아직도 못 찾았어?”
그러자 부관이 다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 선우세가에 가셨다가 광서성의 괴의 마종환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셨던 건 확실한데, 그 후 괴의와 그의 딸까지도 함께 종적이 묘연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방주님.”
그의 말에 연태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때릴 테니까 그 불쌍한 표정 좀 그만 지어. 하아아, 한 번만이라도 그분을 직접 뵐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건만. 역시 꿈은 이루어지기 힘든 거로구나.”
그때였다.
연태진의 표정을 슬쩍 살핀 부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방주님. 해남마검 진태도로부터 전서가 날아왔습니다.”
그 말에 연태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진태도? 그 뱀 같은 놈이 내게 왜? 다 늙어서 나랑 자고 싶대?”
그러자 부관이 잔뜩 몸을 움츠리고는 대답했다.
“그, 그게 처, 청부를 넣겠다고….”
아니나 다를까 연태진은 바로 폭발했다.
“뭐라고?! 감히 그 지렁이 같은 놈이 내게 청부를 넣겠다고?! 내가 무슨 더러운 살수인 줄 알아?! 앙?!”
부관은 눈을 질끈 감고는 얼른 소리쳤다.
더 화가 나면 또 맞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맞는 건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연태진이 수틀려 해남파와 싸우겠다고 선언하기라도 하면 하원방의 식구들은 끝장이었다.
“처, 청부 대상이 인파랑입니다!”
“인파랑이라는 놈이 누군데?!”
“그, 그 해, 해남인가의 후계자라는…. 왜 얼마 전 합산파를 홀로 무너뜨렸다는 그자 말입니다! 진가장과 함께 백교방을 무너뜨리며 혈해마도와도 싸웠다는….”
그 순간 연태진이 조용해졌다.
그러자 겁에 질려 있던 부관은 잠시 후 슬쩍 눈을 떠봤다.
그러자 그는 바로 볼 수 있었다.
연태진의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가 어려 있는 것을.
“호오, 합산파를 홀로 무너뜨렸다고? 혈해마도와도 싸웠어?”
누가 봐도 흥미가 동한 모습이었다.
부관은 얼른 소리쳤다.
“예, 예! 맞습니다! 게다가 아직 이십 대밖에 안 된 엄청난 미남자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연태진의 눈이 꿈틀거렸다.
“아직 이십 대밖에 안 됐다고? 근데 나도 못 싸워 본 혈해마도와 싸웠어? 으흠, 아무래도 절대 가만 놔둘 수 없겠군. 이건 나를 무시하는 처사잖아, 안 그래?”
인파랑이 혈해마도와 싸운 것이 왜 연태진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는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관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태도의 해남파와 싸우는 것보단 인파랑과 싸우는 게 백배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 예! 그럼요! 그건 방주님을 무시하는 처사가 틀림없습니다! 그럼요!”
그러자 연태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좋아! 가자!”
진태도가 섭외한 칼들이 서서히 선우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