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다가오는 살수들
선우진 일행은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마경의 본거지인 대남도가 광동성의 북동쪽 복건성 앞바다에 있기에, 일단 복건성까지 건너간 뒤 배를 탈 계획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동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 전혀 서둘지 않고 천천히 쉬어 가며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따라와 주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도 그랬다.
선우진은 지금 진소은과 대련을 하며 그녀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조언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쉬이이익!
터터터텅!
“진 소저, 소저의 자연곤은 공격보다 방어에 압도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소. 그 이유는 진 소저가 공격 시 강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오. 적절히 상대의 틈을 노릴 때 강기를 쓴다면 공격도 훨씬 더 강화될 것이오.”
“아, 네! 감사합니다!”
“진 소저, 소저는 여인의 몸이고 체격도 크지 않기에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대에게는 곤란해질 수가 있소. 보법과 신법을 좀 더 강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인 공자님!”
선우진은 진소은과 대련을 하고는 몇 가지 조언과 함께 쓸 수 있는 괜찮은 수법, 신법들까지 가르쳐 줬다.
진소은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런 선우진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그의 모습을 통째로 눈 안에 넣기라도 하겠다는 듯 열렬한 눈빛이었다.
유운취객 손대수와 그의 손녀 손이랑, 두 조손은 풀밭에 앉은 채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손대수는 어쩐지 어두운 표정이었고, 손이랑은 조금 심통이 난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선우진의 지도가 끝나고 진소은이 그에게 배운 것을 연습하기 시작하자 손대수가 문득 선우진을 불렀다.
“인 공자, 잠시 얘기를 좀 할 수 있겠소?”
선우진은 선선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시지요.”
두 사람은 잠시 옆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손대수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인 공자, 혹시라도 내 얘기를….”
그때 선우진이 먼저 웃음 지으며 물었다.
“혹시 저희 이동 속도 때문에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느려서 말입니다.”
그 말에 손대수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맞소! 역시 인 공자도 생각하고 계셨구려! 공자도 알다시피 형산파의 살수들이 쫓아오고 있는 중이고, 공자의 말대로라면 진태도도 우리를 노리고 있을 것이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느리게 움직여서야….”
그의 말에 선우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예,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신 바가 맞습니다. 이렇게 움직인다면 곧 적들에게 따라잡히게 되겠지요.”
그 말을 들은 손대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느리게 가고 있다는 얘기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잠시 그 말에 대해 고민했던 손대수는 곧 뭔가를 떠올리고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럼 설마?”
“예, 생각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일부러 저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에 손대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손대수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이 젊은 공자는 상대의 전력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무려 형산파와 해남파를 상대로 말이다.
물론 이제껏 그가 보여 준 실력을 생각하면 상대가 누구든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은 했다.
이 인파랑이라는 젊은 공자는 그가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재이자 젊은 고수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상대라면 몰라도 해남파와 형산파는 아니었다.
그들은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도 꼽힐 만한 강력한 세력들이 아닌가.
아무리 인파랑이 몇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재라 해도 그들을 상대로는 힘들 것이라는 게 손대수의 판단이었다.
구대문파의 하나인, 그리고 그와 대등한 전력을 가진 형산파와 해남파의 저력은 결코 이 젊은 공자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손대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자. 내 생각엔….”
하지만 이번에도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지금 손 노사께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는 우리 쪽 전력이 실제 전력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가 그들을 기다리는 이유는 제 계획상 이번에는 반드시 저희가 그들을 물리쳐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요.”
“…우리가 그들을 물리쳐야 한다?”
“예, 그래야 머리가 밖으로 나올 테니까요.”
손대수가 선우진과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손녀인 손이랑은 슬쩍 그들을 보더니만 한참 선우진에게 배운 보법을 연습하고 있는 진소은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진소은에게 말을 걸었다.
“소은 언니.”
그녀의 부름에 한참 집중하고 있던 진소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왜?”
그러자 손이랑이 앙큼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인 공자님 좋아하죠?”
무척이나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진소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다 멍하니 대답했다.
“응, 당연히 좋아하지.”
“오!”
손이랑은 살짝 놀랐다.
진소은의 성격상 그게 사실이라 해도 엄청 부끄러워하며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런 화끈한 인정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이어진 진소은의 말에 손이랑은 그만 인상을 팍 찌푸리고 말았다.
“근데 그건 당연한 거 아냐? 우리 진가장의 은인이신 데다 내게 이렇게 잘해 주시는 인 공자님을 싫어할 리가 없잖아?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그렇게 묻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순수함 그 자체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순수하기 그지없는 표정과 대답에 손이랑은 잠시 이를 악물고는 심호흡을 내뱉었다.
“후우우우.”
그리고 천천히 다시 물었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남자로서 좋아하냐는 말이었어요. 언니가 남자로서 인 공자님을 좋아하고 있냐고요?”
하지만 그 말에도 진소은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남자로서? 어어, 인 공자님은 남자시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남자로서 좋아하는….”
그러자 손이랑은 더 참지 못하고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진소은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손이랑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기가 뭘 잘못한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이랑은 영문도 모르면서 자기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소은을 보며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애써 설명해 보려 했다.
“그러니까 언니, ‘연모’라는 감정이 있잖아요?”
“?”
“아니, 그 남자와 여자가 서로….”
“?”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
“아아아악! 진짜!”
아무래도 십오 년의 산 생활이 진소은에게서 빼앗아 간 상식을 주입해 주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
같은 시각, 선우진이 이동할 진로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는 갑작스러운 피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쉬이익!
“아아악!”
“사, 살려 주, 아아악!”
“왜, 왜? 꺄아악!”
“제발 우리 아이만이라도, 안 돼애!”
“어, 엄마! 아아악!”
그곳은 늘 부족하지만 그래도 평화롭게 살아가던 작은 화전민 촌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갑작스레 나타난 흑의인들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들을 마구 죽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표정도, 감정도 없었다.
그저 들판에 있는 잡초를 베듯 기계적인 학살이었다.
화전민 촌의 사람들이 모두 몰살당하기까지는 고작 반 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흑의인들은 마을을 샅샅이 뒤져 살아남은 자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마을 중앙에 유령처럼 모여들었다.
스스스슥!
그러자 그들 중 가장 중심에 위치한 흑의인이 말했다.
“마을을 정비한다. 시체를 치우고 좀 더 깔끔하게 청소하도록. 중심에 객잔을 만드는 걸 잊지 마라.”
그의 말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흑의인들이 사사삭 흩어져 마을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속의 지저분했던 화전민 촌은 보다 커다란 규모와 깔끔한 외관을 지닌 제법 번화한 마을로 재탄생하기 시작했다.
흑의인들의 옷차림 또한 일반 백성들의 옷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각각 농사꾼, 장사꾼, 객잔 주인, 아이들로 화했고, 마을은 어느새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돌아다니고,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떠들며 장난을 치는 활기찬 곳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무림 최고의 살수 단체라는 혈우련의 살수행은 이렇듯 사전 작업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
같은 시각, 혈우련이 화전민 촌을 점거한 곳보다 더 동쪽에서는 피풍의를 입은 칠 인의 죽립인이 서쪽을 향해 경공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 서서 폭풍처럼 질주하고 있는 죽립인은 아이나 여인인 듯 체구가 작고 가녀려 보였고, 그의 과격한 질주에 뒤에 선 육 인의 죽립인은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간신히 뒤따라오고 있었다.
다다다다다다!
“하아! 하아! 하아!”
그러던 중이었다.
결국 더 견디지 못한 죽립인 한 명이 죽어 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바, 방주님!”
그러자 선두에서 달리던 작은 체격의 죽립인이 문득 멈춰서 뒤를 돌아보며 죽립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 밑에서 나온 얼굴은 눈부신 하얀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부른 죽립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아주? 내가 평소에 수련 좀 열심히 하라고 했냐, 안 했냐? 그렇게 내 말 안 듣고 농땡이를 치더니만 결국 내 발목을 잡아?!”
그녀의 호통에 부하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 수련을 농땡이 치다니요! 절대 아닙니다! 이건 그저 방주님이 너무 빠르셔서 그런 겁니다! 보십시오! 저 말고도 다들 힘들어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대표로…!”
“닥쳐!”
뻐억!
“끄억!”
벼락같은 그녀의 발길질에 죽립인은 말을 하다 말고 뒤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 동료를 바라보며 다른 죽립인들은 마음속으로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전했다.
그가 먼저 나서서 구타당해 준 덕분에 모두가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는 방주 하원달기 연태진은 성질이 더럽긴 하지만 부하를 아낄 줄 모르는 방주는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부하들이 힘든 것을 알았으니 뭔가 조치를 취해 줄 것임에 틀림없다고, 모두는 생각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부하를 걷어차 약간 화를 푼 그녀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다른 이들을 스윽 둘러봤다.
그 순간 하원방도들은 눈을 빛내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지금이다!’
‘이때가 중요해!’
그들은 모두 연태진의 눈을 피하며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흠, 흠.”
“으흐흠.”
그것은 무척이나 고난이도의 연기였다.
사실은 엄청 힘들지만 겉으로 전혀 안 힘든 척을 하고 있는 듯한 연기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자 인상을 팍 찌푸린 연태진이 말을 씹어뱉었다.
“이런, 모자란 놈들.”
연태진은 자신을 못 따라오는 부하들을 욕하며 문득 뒤를 돌아 서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꼭 그 인파랑이라는 자와 싸워 보고 싶었다.
과거 정말 싸워 보고 싶었지만 죽지 않을 자신이 없어 망설이다 어느새 사라져 버렸던 혈해마도 윤삭, 합공이라곤 하지만 그를 패퇴시켰다는 그 남자와 꼭 붙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싸워 보고 싶냐 하면 그걸 위해서라면 하원방주의 자리도 때려치울 수 있을 것 같을 정도였다.
‘물론 그건 원래부터 때려치우고 싶긴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서쪽을 바라보던 하원달기 연태진은 문득 다시 부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쪽으로 가면 진짜 그 인파랑이란 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 말에 부하 중 한 명이 급히 대답했다.
“예! 하오문의 정보에 따르면 그자는 남곤산 아래쪽 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도는 여기뿐입니다!”
“그래?”
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연태진은 씨익 웃음 짓고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럼 나 먼저 갈 테니 너희는 천천히 따라와라.”
그 말에 당황한 부하들이 되물었다.
“예, 예?!”
“어차피 그와 싸우는데 너희랑 같이 싸울 것도 아니잖아? 그럼 굳이 너희랑 같이 갈 필요가 없지. 그러니까 너희는 천천히 따라와. 내가 먼저 갈게.”
“아, 아니, 바, 방주님, 그건…!”
그들은 당황해 그녀를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하원달기 연태진은 원래 말보다 행동이 좀 더 앞서는 성격이었다.
그들에게 그렇게 말한 연태진은 이미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파바바박!
“바, 방주님!”
“방주님, 안 됩니다!”
하원방도들은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지는 연태진을 바라보며 울부짖으며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으허허허헝!”
“방주님!”
“방주님, 같이 가요!”
비록 성격이 더럽고 말보다 행동이 빠른 방주이지만 혹시라도 그녀 혼자 가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옆을 지켰던 하원방도들은 모두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
같은 시각, 좀 더 북서쪽에선 각각 여섯 명씩 두 무리, 모두 열두 명의 죽립인들이 빠르게 남하하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그들은 하원방도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마치 두 무리의 기러기 떼처럼 정교한 대형을 짜고 있었고, 동작 또한 마치 한 명이 움직이듯 통일된 움직임이었다.
그러던 중 한 무리의 선두에 서서 달리던 죽립인이 다른 무리의 선두에 선 죽립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 여기서 잠깐 쉬지.
그리고 자신이 먼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그의 뒤를 따르던 다섯 명의 죽립인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탁!
마치 한 명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을 정도의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먼저 한 무리의 죽립인들이 멈추자 다른 한 무리의 죽립인들도 곧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탁!
그들 또한 한 명처럼 통일된 움직임이었다.
나중에 멈춘 죽립인들의 우두머리가 죽립을 살짝 들어 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무슨 휴식을 취하자는 말인가, 운당?”
그러자 운당이라 불린 죽립인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조원들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시켜 주는 것이 조장의 역할이 아니겠나? 혹시 조원들이 말을 못 해 그렇지, 힘들어할 수도 있으니까 말일세.”
그의 대답에 형산파 파산 칠 조의 조장인 운경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료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하지만 더 말하지 않고 자신의 조원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앉아서 운기하도록.”
그의 명령에 다섯 명의 파산 칠 조원들은 동시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운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운경 또한 그들 가운데 주저앉았다.
운경은 운기에 들어가기 전 파산 사 조의 조장인 동료 운당을 노려보았다.
그는 동료인 운당이 무엇을 위해 휴식하자고 말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전부터 여인인 운영이 속해 있는 그의 파산 사 조를 부러워했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은 놈 같으니.’
그러고는 눈을 감고 운기에 들어갔다.
눈으로 보고 있어 봐야 배만 아플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산 사 조의 조장 운당은 비릿하게 웃으며 그런 운경을 슬쩍 바라보고는 자신의 조원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운기에 들어가라.”
그러자 다섯 명의 조원 모두가 동시에 땅에 털썩 주저앉아 운기에 들어갔다.
기계처럼 똑같은 동작이었다.
하지만 운당은 앉지 않고 그대로 선 채로 그들 중 한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운영, 파산 사 조는 물론 전체 육합검수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여자 조원이었다.
운당은 탐욕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혀로 입술을 핥고는 그녀에게 명령했다.
“운영은 운기를 멈추고 내게 오도록.”
그러자 무표정한 얼굴의 운영이 눈을 뜨고는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으흐흐흐!”
운당은 탐욕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거침없는 손길에도 운영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미 인성이 말살된 그녀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손길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운당은 그녀의 몸을 주무르며 자신의 행운을 다시 한번 만끽했다.
처음 육합검수에 들어가란 명령을 받았을 때 얼마나 걱정을 했던가.
하지만 역시 그의 장문인인 위정국은 자신의 사람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형산파가 아닌 장문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신을 육합검진의 조장으로 임명해 줬던 것이었다.
그로써 이제 초절정 고수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력, 귀멸육합검진을 지휘하는 중책을 맡게 된 자신의 앞날에는 꽃길만이 펼쳐질 것이 틀림없었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