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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36화 (223/359)

236화 그와 그녀들의 시간-1

사천성 덕창 광검릉.

오십여 년 전의 절대자 광협검괴 정명강의 유진이 잠들어 있는 그곳은, 선우진과 당여은이 들어가기 전까지 무려 사십여 년 동안이나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숨겨져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광검 정명강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홀로 머물며 사십여 년의 세월을, 그 짙은 고독을 견뎌 내야만 했다.

그것은 모두 다 그가 후인들에게 월하환검무를 전수해 주기 위해 죽어서도 안식을 포기하기로 했던 결정의 대가였다.

솔직히 힘들었다.

너무도 힘겨운 시간이었다.

살아서 이미 절대자의 경지에 올라섰었고 죽어서도 의식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사십여 년의 고독은 견디기 힘든 고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시간 속에서 몇 번이나 그만 포기하고 안식에 들 것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랬었다.

얼마 전 열 명도 넘는 인원들이 한꺼번에 광검릉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쫌 가르쳐 줘요!”

“가르쳐 주긴 뭘 가르쳐 줘! 입문도 안 할 거면서 남의 문파 비전을 가르쳐 달라 그래?!”

“우리 주군께는 그냥 가르쳐 줬으면서?!”

“그 녀석이랑 너랑 같냐?! 아, 쫌 저리 가! 나도 수련 좀 하게!”

“아, 치사해! 진짜! 그렇게 치사하게 굴면 내가 포기할까 봐?! 절대 포기 안 해야지!”

“에이, 씨! 진짜! 거머리냐?!”

광검은 자신의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신 사나운 말다툼에 귀가 따갑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실제의 귀가 있을 리 없는데도 말이다.

지금 그의 바로 옆에선 사천살문의 살수였던 적마혁의 여동생 적하연이 비사영을 쫓아다니며 천풍신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비사영은 비종문의 문도가 아닌 자에게 더 이상 천풍신법을 가르쳐 줄 수 없다며 철벽을 쳤지만, 적하연은 쌍둥이 형제인 적하군과 함께 동경 가득한 시선으로 비사영을 졸졸 쫓아다니곤 했다.

광검은 내심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들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최근 보여 주는 그의 모습은 나도 놀랄 정도니까.’

아닌 게 아니라 비사영의 최근 성장은 정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원래도 압도적이었던 신법의 재능은 무공 경지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빛을 발하고 있었고, 숙식도 잊은 채 매달리고 있는 황룡무상강기의 경지는 나날이 깊이를 더해 가고 있었다.

물론 광검의 조언과 가르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황룡무상강기의 난이도는 절대 뛰어난 스승 없이 혼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그의 노력과 발전은 매 순간 광검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노력은 이미 결실을 맺고 있었다.

비사영의 무위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뛰어났으니까 말이다.

이젠 비룡십삼대의 최고 인재 중 하나였다는 점창검룡 사군일도, 사파의 젊은 고수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라는 혈편서시 야운향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광검이 비사영에 대해 가장 높이 평가하는 점은 그 실력이 아니었다.

‘실력과 발전 속도보다도 더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노력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성실성이지. 저쯤 됐으면 조금 거만해질 만도 할 텐데 말이야.’

현재 충분히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비사영은 전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듯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더욱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광검릉 안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광검 정명강은 무엇이 비사영을 그렇게 열성적으로 만드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광검이 들여다본 그의 마음속에선 딱 한 가지 마음밖에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인 선우진의 힘이 되어 주겠다는 일념. 은혜를 입은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념으로 저렇게까지 뜨거워질 수가 있을까.’

광검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본 비사영은 실력도 성품도 모두 아주 훌륭한 최고의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점에선 전에 지도했던 선우진보다도 낫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다른 누구보다 뛰어나면서도 한시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를, 처음 본 적하연, 적하군 두 남매가 감탄하며 따라다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비사영이 계속 상대해 주지 않자 적하연은 광검에게 쪼르르 달려와 그를 일렀다.

“광검 스승님! 비사영 오라버니가 저한테 거머리라고 했어요! 어떻게 저처럼 예쁘고 귀여운 여인한테 거머리라는 말을 쓸 수가 있어요?! 스승님이 혼 좀 내 주세요!”

그러자 옆에서 팔짱을 낀 채 한심스럽게 보고 있던 그의 쌍둥이 형제 적하군이 중얼거렸다.

“진짜 예쁘고 귀여웠으면 사영 형님도 그런 말을 안 쓰셨겠지.”

“뭐라고 했냐, 너?!”

“응? 아름다우신 건 야운향 누님이고, 귀여우신 건 천주은 누님이라고 했는데?”

“이게 진짜!”

광검은 늘 그렇듯 또 싸우기 시작한 두 쌍둥이 남매를 문득 푸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애교가 많은 천주은과 저 두 아이들은 광검에게 있어 제자라기보다는 손주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광검이 살아 있을 때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손주 말이다.

그리고 그가 죽어서야 얻게 된 그의 손주들은 그저 귀여운 모습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도 뛰어난 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광검릉에 왔을 때 이류에 불과했던 그들이 어느새 일류 상급의 무인이 된 것을 바라보며, 광검은 마치 쑥쑥 자라나는 새싹을 키우고 있는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광검은 잠시 귀여운 두 남매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이 닿는 곳에서 여섯 명의 사람들이 각각 둘씩 대련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사천살문의 이 살이었던 견중과 비룡십삼대 이 조 조장이었던 점창검룡 사군일, 역시 사천살문의 칠 살이자 선우진의 직속 수하인 적마혁과 십삼 조 조원 쾌도묘랑 천주은, 그리고 십삼 조 부조장인 나서유와 사파 오대미녀 중 한 명이라는 혈편서시 야운향이었다.

광검의 눈은 그들 중 가장 과격하게 대련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로 향했다.

바로 견중과 사군일 두 사람의 대련이었다.

사일검법 구 초.

후예사구일.

쉬이이이익!

사군일의 검이 한 번의 검격에 무려 여섯 개의 일시사일을 뿜어냈다.

그가 최근 몇 년 동안이나 다섯 개의 일시사일에 정체되어 있던 벽을 드디어 깨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자 견중은 그 위협적인 검격을 바라보며 오히려 환희에 찬 웃음을 지었다.

“으흐흐흐흐!”

그러고는 무모하게도 여섯 개의 일시사일을 향해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후우웁!”

티티티팅!

칼끝처럼 집중한 그의 도가 네 개의 일시사일을 비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두 개의 일시사일은 아니었다.

그는 미처 방어하지 못한 두 개의 찌르기를 그의 몸으로 받아 내야만 했다.

푸푹!

그 모습을 본 광검은 눈을 찌푸리며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저런….”

하지만 그는 견중이 결코 방어에 실패했기 때문에 검을 맞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군일의 치명적인 공격만을 방어하고, 남은 여력으론 자신이 공격을 하기 위해 일부러 사군일의 공격을 무시했던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선 자신의 실력으로 사군일의 사일검법을 방어만 하다 대련이 끝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생사결을 벌이듯 자신의 몸을 희생함으로써 상대를 공격할 틈을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왼쪽 팔과 배가 꿰뚫린 견중이 이를 악물고는 바로 도를 휘둘러 그가 찾아낸 사군일의 빈틈, 어깨를 향해 그어 내렸다.

살을 주고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한 수였다.

샤아악!

한순간, 견중의 치명적인 반격이 빛살처럼 사군일을 덮쳤다.

바로 얼마 전까지의 사군일이라면 절대 받을 수 없었을 한 수였다.

하지만 견중에겐 불행하게도 사군일 또한 얼마 전의 그가 아니었다.

한번 벽을 깬 후 계속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덕분에 후예사구일이라는 절초를 사용한 후에도 사군일의 방어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그의 검이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견중의 도를 방어해 내고 있었다.

휘리리리리릭!

따당!

그것은 최근 광검의 조언에 따라 그가 집중적으로 연마하고 있는 점창 최고의 방어 검법인 회풍무류사십팔검이었다.

결국 견중의 몸을 희생한 회심의 반격은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사군일은 바로 뒤로 물러섰고, 그럼으로써 승부 역시 거기서 끝났다.

견중의 부상으로는 더 대련을 이어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견중이 자신의 혈도를 점해 출혈을 멈추고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쳇, 아쉽군. 이번에는 한 방 먹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자 사군일이 진중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모한 수법이었소. 하지만… 위협적이긴 하더구려.”

광검은 그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그가 보기에 저 둘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았다.

고작 대련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승부를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다는 과격함이 그랬고, 누구보다 광검의 조언을 바라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먼저 나서서 가르침을 청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랬다.

광검은 순식간에 그들의 옆에 나타나 말했다.

“또 다쳤구나. 아무리 이곳에서 상처가 빨리 낫는다고 해도 항상 몸을 아끼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그러자 두 사람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스승님.”

광검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죄송스러워하는 마음도, 자신에게 보내는 극도의 공경도 모두 두 사람의 진심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래 놓고 다시 붙으면 또 무모하게 자신의 몸을 불태우겠지.’

그것은 모두 다 두 사람이 닮은꼴이기 때문이었다.

순간의 승부에 모든 것을 거는 행위를, 다른 무엇보다 행복해하는 승부사들이기 때문에 말이다.

지금도 보라.

저렇게 다친 상태에서도 두 사람 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고 있지 않은가.

좋은 상대와 멋진 대결을 펼쳤다는 사실 하나가 저들을 저렇게 행복하게 만든 것이었다.

광검이 보기에 이곳에 와서 수련하며 가장 행복해하고 있는 이들은 아마 저 두 명이 아닐까 싶었다.

그 마음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던 광검은 결국 그들을 꾸짖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한결 풀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앉아서 운기를 하며 듣거라.”

“네! 스승님!”

“네! 스승님!”

두 사람은 지체 없이 털썩 주저앉아 바로 운기에 들어갔다.

그러자 자신에게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해하는 두 사람의 마음에, 광검은 결국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 더 정이 가게 만드는 제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군일이는 그간 베기와 방어에 집중함으로써 몸의 균형을 잡았다는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간 찌르기에만 치우쳐 정체되어 있던 성장이 다시 시작되었으니 앞으로는 지금의 균형을 유지하는 감각을 익혀야만 할 것이다. 중이는….”

광검은 사군일에 이어 견중에게도 조언을 건네며 다른 아이들 역시 눈으로 살폈다.

그러자 경쟁심을 불태우며 서로 성장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나서유와 야운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최근 절정의 경지에 올랐지만, 성장에 매달리기보단 지금 이 순간 자체를 즐기기 시작한 천주은도, 생사괴의의 아들인 마맹운으로부터 일정 이상의 경지에 오르면 엉망이 되어 버린 자신의 얼굴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후 희망을 품고 절실하게 수련 중인 적마혁의 모습도 보였다.

황룡무상강기에서 금강불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만 매달리고 있는 배종관 역시 조금 답답하지만, 그 성실함이 기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보며 광검은 문득 따뜻하게 웃음 지었다.

저들 모두가 광검의 소중한 제자들이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월하환검무를 가르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인성과 재능을 동시에 갖춘 인재들.

심지어 아직 실력이 모자라는 마맹운이나 도문승도 인성만큼은 광검의 생전에 봐 왔던 어떤 젊은이들보다 훌륭하지 않은가.

광검은 문득 생각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군. 살아 있을 땐 그렇게 찾아도 발견할 수 없었던 후계자감들이 죽은 후에 이렇게 한꺼번에 나타나다니 말이야.’

광검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오랜 시간 괴롭혔던 고독과 후회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것을.

죽은 후에도 의식을 유지한 채 후계자를 찾겠다는 자신의 결정이 결국 옳은 것이었음을 말이다.

광검은 문득 이곳에 없는 두 사람을 생각했다.

자신에게 이런 행복을 가져다준 두 사람의 후계자, 선우진과 당여은을….

이곳보다 훨씬 위험한 곳에서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을 두 사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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