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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37화 (224/359)

237화 그와 그녀들의 시간-2

운남성 곡정의 남쪽, 비룡십삼대.

마인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더 이상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게 된 비룡십삼대의 무인들은, 요즘 좀 다른 종류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똑바로 못 하나?! 지금 그따위로 무기를 휘두르다 나중에 저승에 가서 후회할 셈인가?!”

“아닙니다!”

“각자의 병장기를 전력으로 휘두른다! 천 회 실시!”

“실시!”

이미 몇천 번이나 각자의 병장기를 휘둘렀던 비룡십삼대의 대원들은 찢어질 것 같은 몸을 움직여 다시 자신의 병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식하게 수련하다간 적을 만나기도 전에 이미 저승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아무도 그 말을 실제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오늘의 훈련 교관이 성질 더럽기로 유명하고, 뒤끝 사납기로는 더 유명한 오 조 조장 독수광이기 때문이었다.

무인들은 그간 반복된 훈련을 통해 아무 말도 안 하고 묵묵히 훈련하는 것이 그나마 훈련량을 줄이는 길임을 잘 알게 된 상태였다.

그때 이를 갈며 훈련을 따라가고 있던 무인 한 명이 문득 바로 옆의 무인에게 속삭여 물었다.

“하아, 하아, 내일은, 누가, 교관이지? 하아, 하아.”

그러자 역시 거의 쓰러져 가던 옆 무인이 대답했다.

“헉! 헉! 내일은, 당여은, 당 조장이야, 하아, 하아!”

그 사실은 남자 대원들에게 무척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 운남제일미인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는 당여은은 비룡십삼대의 여신 같은 존재였고, 남자 무인들 중 당여은을 좋아하지 않는 대원들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여은의 이름을 들은 무인은 숨을 헐떡거리는 것조차 잊고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안 돼…. 독사 다음엔 얼음 마녀라니, 난 탈영해 버리고 말 거야.”

“참아. 하아, 하아, 탈영하다, 걸리면, 하아, 하아, 그 얼음 마녀, 옆에서, 함께 수련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아, 하아.”

“어어억! 그건 절대 안 돼!”

그랬다.

비룡십삼대 대원들은 최근 공동 수련을 시작한 후 당여은을 연모의 대상이 아닌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상태였다.

이건 모두 그녀의 수련이 너무 지나치게 혹독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들에게 혹독하고 자기 자신에겐 훨씬 더 혹독한 교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혹독한 수련에 불만을 제기한 조원들에겐 그녀 자신과 함께 수련하는 기회를 주곤 했는데, 그 경험을 한 번 해 본 이들은 그 후 당여은의 얼굴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곤 했다.

요즘 비룡십삼대 무인들 사이에선 이런 말까지 떠돌 정도였다.

‘당여은 조장처럼 수련하느니 차라리 그냥 적에게 죽어 주는 게 편한 삶일 수도 있다.’

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비룡십삼대 무인들의 공동 수련을 처음 제안한 사람도 바로 당여은이었다.

비록 마인들의 수는 줄었지만 이미 선우진이 예고한 대로 제갈지강의 수하들로부터 습격이 있었고, 최악의 경우 제갈지강이 혈교에게 습격을 부탁할 수도 있다는 말을 기억했던 그녀는 조장 회의에서 대원들의 공동 수련을 강력하게 건의했었던 것이었다.

‘마인들의 수가 줄었다는 것이 혈교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미래의 더 큰 위협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러니 저희는 지금 생긴 이 여유를 살려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위협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척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늘 수동적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조장으로서도 주어진 일만을 해 왔던 그녀가, 이제 적극적으로 비룡십삼대의 운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도 그녀는 영향력이 작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천당가의 직계였고, 비룡십삼대의 젊은 기재들 중에서도 세 번째라고 인정받은 절정 고수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이젠 심지어 백학노검 양문헌의 의손녀까지 되어 본격적으로 비룡십삼대의 운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그녀의 영향력은 십삼 대주인 풍양에 비해서도 결코 작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당여은은 그런 것들에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늘 그렇듯 시간을 쪼개 한계까지 수련에 매진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휘리리리릭!

선녀가 춤을 추듯 너울거리는 당여은의 검에서 붉은 강기가 환상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마치 붉은 달무리가 너울거리며 퍼져 나가 온 세상을 잠식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오오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운검객 벽리중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백학노검 양문헌의 백학검법이 그녀의 손에서 완벽하게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떤 면에선 양문헌이 펼칠 때보다도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다.

벽리중은 문득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껏 후계자를 키우는 데는 관심도 없으면서 늘 느긋하기만 했던 그의 의형 때문에 그 혼자서만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그런데 어떻게 인연이 닿아 저런 훌륭한 후계자를 키우게 되다니, 양문헌의 의제로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감격스러워하는 벽리중과는 달리 당여은은 자신의 검에 조금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월하환검무 삼 식 현망월의 경지에서 펼쳐 낸 자신의 백학검법을 의조부인 양문헌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막아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챙! 쨍! 챙! 챙!

양문헌이 가볍게 휘두르는 검에 당여은이 펼쳐 낸 붉은 강기가 유리가 깨지듯 산산이 깨져 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그녀의 검을 받아 내며 여유롭게 말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허허허! 너의 강기가 이리 붉으니 네가 펼치는 백학검법은 백학이 아닌 홍학검법이라 칭해야 마땅하겠구나.”

당여은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의조부가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이며 최근에는 거기서 더 발전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은 최대한 빨리 강해져야만 했다.

사랑하는 그의 힘이 되어 주기 위해서.

다시는 그를 홀로 보내고 뒤에 남아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그녀가 펼친 붉은 강기들은 모두 덧없이 사그라졌다.

그리고 양문헌의 검은 어느새 당여은의 목 앞에 놓여 있는 상태였다.

“하아아.”

허탈한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는 그녀에게 양문헌이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여은아, 벽은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억지로 밀면 그것이 부서지겠느냐? 치열함이 지나치면 조급함이 되기 마련이니, 몸은 최선을 다하면서도 마음속에선 항상 여유를 가져야만 할 것이니라.”

그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당여은은 갑자기 둔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간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그 말 한마디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자신은 치열한 것이 아니라 조급해진 상태였다.

무인에게 있어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크나큰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펼치는 검법은 다른 검법도 아닌 백학검법이 아니던가.

춤을 추듯 가볍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검초를 펼쳐야 하는 백학검법 말이다.

그런 검법을 펼치며 마음에 조급함을 담았으니 검초에 위력이 담길 리 없었다.

당여은은 생각했다.

‘백학검법을 펼치기 위해선 마음이 좀 더….’

그녀는 문득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려봤다.

그녀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기억들을….

그것들은 대부분 선우진의 모습과 함께 있는 기억들이었다.

선우진과 함께 청홍쌍검이란 괴인들로 화해, 세상에서 강요받았던 틀을 모두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활개 치던 기억들, 광검릉에서 월하환검무를 배우며 함께 웃고 얘기하던 기억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입을 맞추던 기억까지.

당여은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녀의 눈은 자연스럽게 감기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자 그녀를 바라보던 백학노검 양문헌의 입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방금의 그 말을 하기 위해 당여은의 조급함이 극에 이르렀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기다림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충격을 받은 당여은이 저렇게 무아지경으로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잠시 후, 눈을 감은 당여은의 검이 천천히 올라가더니 다시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까도 아름다웠지만 지금의 검무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춤을 추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녀의 백학검법이 방금 전과 또 달라졌음을 눈치챈 벽리중이 놀란 눈으로 양문헌을 불렀다.

“형님!”

그러자 양문헌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은이가 또 한 번 벽을 넘었구나.”

선우진의 옆에 있지 않아도.

광검릉으로 가지 않았어도 당여은의 성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

이 시대의 절대자인 천하사마의 일인이자, 하원달기 연태진이 우상으로 떠받들고 있는 여령색마 손은상은, 지금 새하얀 백의를 입은 청초한 모습으로 생사괴의 마종환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마종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좀 더 벌리시오.”

그러자 손은상이 그녀의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구멍을 벌렸다.

마종환은 그곳을 노려보며 손은상에게 말했다.

“이제 빼겠소. 반드시 지금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만 하오.”

그러자 그의 지시에 이미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던 손은상은 차마 입은 열지 못한 채 고개를 살짝 끄덕여 그의 말을 이해했음을 표시했다.

그러자 마종환은 이제 침을 꿀꺽 삼키고는 환자의 가슴에 박혀 있던 검을 천천히 뽑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생사괴의라고 불리고 있는 그로서도 이런 작업은 처음이기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검이 심장을 관통했는데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니,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 역시도 믿지 못했을 것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됐다!”

마종환이 마침내 뽑아낸 검을 들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손은상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의 엄청난 공력으로 환자의 출혈을 모두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혈행만을 막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유지하고 있던 생기 또한 계속 보존해야 하기에, 그녀 정도의 엄청난 고수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시도조차 못 했을 섬세하고도 무지막지한 난이도를 지닌 작업이었다.

마종환은 아무 말도 없이 환자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손은상을 보며 문득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참아 주시오. 최대한 빨리하리다.”

그러자 손은상이 그를 향해 생긋 웃음 지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가 아닐 수 없었다.

마종환은 심혈을 기울여 안쪽의 심장부터 봉합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뻥 뚫린 상태인데도 출혈이 없다니 새삼 환자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손은상의 능력에 경이감이 솟아났다.

그리고 조금 다른 마음도….

마종환은 자꾸 손은상의 얼굴로 향하려는 시선을 애써 제어하고는 다시 환자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환자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건 정말 엄청난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이 환자가 엄청난 고수가 아니었고 검에 찔리기 전부터 귀식대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또한 검을 찌른 자에게 죽일 마음이 없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니 마종환이 예상하는 상황은 이랬다.

‘아마도 검을 찌른 자가 미리 이 사람에게 말해 준 것이겠지. 자신은 심장을 찌를 것이되 활검의 묘로 심장에 기막을 씌워 주겠다고. 그러니 살고 싶다면 미리 귀식대법을 사용해 몸을 가사 상태로 만들라고. 거의 가능성이 없는 말일 테지만 이 사람으로선 그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테지.’

게다가 환자의 행운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들 마맹운의 서신을 받고 자신이 바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또한 때마침 돌아온 손은상의 도움을 받아 속도를 높일 수 없었다면 자신은 결코 제때 도착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환자가 유지하고 있던 한 줌의 생기도 이미 다 흩어져 버렸을 것이었다.

결론은 그 모든 상황들이 제때 이루어져 이 사람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간 검을 뽑을 수 있을 만큼 환자의 생기를 증폭시키기 위해 침과 보약으로 꾸준히 기를 보해 왔던 자신의 노력과, 그것으로도 모자라 엄청난 공력을 퍼부어 환자를 계속 운기시켰던 손은상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고 말이다.

잠시 후, 마침내 심장과 가슴, 등까지 모두 봉합한 마종환이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후우우! 이제 됐소, 은상.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사람의 혈행을 재개시켜 주시오.”

이제 마종환과 손은상으로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상태였다.

남은 것은 천운이 여전히 이 사람의 편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환자를 치료하며 부쩍 가까워진 마종환과 손은상은 서로 손을 꼭 잡고는 긴장된 눈으로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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