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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40화 (227/359)

240화 조우-1

“후우! 후우!”

길을 걸어가는 내내 진소은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일행들이 그냥 걸어가는 동안 혼자만 빠르게 몸을 움직여 보법을 밟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진소은이야 원래 항상 성실하긴 했다.

그녀는 재능과 무공을 갖추고도 조금도 자만하지 않고 늘 수련에 힘써 왔던, 그야말로 노력하는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도 좀 달라 보이는 모습이었다.

뭔가 절박함이 느껴져 보일 만큼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선우진은 슬쩍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주변 경치를 바라보는 척하며 말했다.

“여기 경치가 무척 좋군요. 잠시 쉬어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유운취객 손대수 역시 얼른 맞장구쳤다.

“노부가 보기에도 이곳 경치가 꽤 멋있구려. 안 그래도 이런 경치를 보며 여유 있게 술 한잔을 하고 싶었는데, 고맙소. 인 공자, 아니, 선우 공자.”

그 말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인파랑으로 불러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그인 채로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요. 그럼 다들 잠시 쉬시지요.”

그러자 손대수의 손녀 손이랑이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중얼거렸다.

“휴식하는 거야 좋은데…. 주변 경치가 뭐가 달라요? 내가 보기엔 산이며 나무며 계속 보던 것과 똑같은데?”

선우진과 손대수는 애써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체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진소은이 문득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물었다.

“저기, 다들 쉬시는 동안 잠시 숲에 좀 들어갔다 와도 될까요?”

그녀의 물음에 손이랑은 살짝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고, 선우진과 손대수는 서로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구려, 진 소저.”

그러자 진소은은 숲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로 가는 짧은 동안에도 보법 연습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멀어지자 선우진이 문득 입을 열었다.

“좀 과한 것 같군요. 저러다 몸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 말에 손대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오. 아무래도 그제 있었던 일 이후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같더구려.”

손대수의 말대로였다.

진소은이 저렇게 필사적으로 수련을 하기 시작한 건 그제 설풍, 증칠, 연태진과 헤어진 이후부터였었다.

선우진이 문득 그에게 물었다.

“혹시 승부욕 때문일까요?”

“흠, 아마도 그렇지 않겠소? 진 소저도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기재긴 하지만 하필 선우 공자나 설 공자, 또 하원달기 연태진 같은 기재들을 만났으니 승부욕이 생길 만도 하지요.”

두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손대수의 손녀 손이랑이 작게 중얼거렸다.

“에휴, 하여간 남자들이란….”

작은 목소리였지만 절정의 경지를 넘어선 선우진과 손대수가 못 들을 리 없었다.

그들이 손이랑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뭐라고 했느냐, 이랑아?”

하지만 손이랑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을 거부했다.

“아니에요. 잘못 들으신 거예요. 전 아무 말도 안 했는걸요.”

그렇게 대답하며 손이랑은 눈을 감아버렸다.

분명히 말을 하긴 했지만 더 이상은 말하기 싫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손녀의 심통에 손대수는 난처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봤다.

저런 표정이 되면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선우진이 문득 묵랑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 소저가 저러는 이유가 승부욕 때문이 아닌 걸까요?’

그러자 묵랑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하하하! 내가 백 년 가까이 살며 유일하게 잘 모르겠던 것이 바로 여자의 마음일세. 그걸 아는 건 불가능한 일이더군. 물론… 우리 마나님 이외의 여자를 접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일세.

결론은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해결하지 못한 답답함에 선우진이 한숨을 내쉴 때 묵랑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 하지만… 분명 승부욕은 아닌 것 같았네. 그녀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그런 도전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자괴감에 가깝게 느껴졌었거든.

‘자괴감이라고요?’

- 내가 느끼기엔 분명히 그랬네.

선우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승부욕도 과하면 좋지 않을 터인데, 그게 자괴감이라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었다.

무인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과하면 자칫 심마에 빠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주화입마에 빠지게 될 확률도 있었고 말이다.

내공을 익힌 무인에게 있어 평정심이 괜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흠….”

잠시 고민하던 선우진은 문득 손대수에게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손 노사께서 그녀와 좀 얘기를 해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마음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제가 얘기를 해서는 제대로 된 대화가 될 것 같지 않군요.”

그 말대로였다.

요즘 진소은은 선우진 앞에서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손대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공자. 내가 한번 가 보도록 하겠소.”

그리고 진소은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대수가 진소은을 발견한 곳은 숲의 약간 더 안쪽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역시나 보법에 장봉까지 휘두르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휘리리리릭!

손대수는 걸음을 멈춰서 그녀의 몸놀림을 감상하며 잠시 감탄했다.

지난번에 선우진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보법은 삼환보라는 것으로, 극에 이르면 세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약간 단순하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의 보법이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했지만 그 보법은 묵랑이 그녀에게 가르쳐 주라며 꿈속에서 전해 준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배운지 고작 며칠 만에 진소은은 벌써 두 개의 환영을 만드는 성취를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둘로 나뉜 그녀의 신형 주변에서 목봉 또한 두 개로 나뉘어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춤추듯 휘돌고 치고 있었다.

휘리리리리릭!

휘리리리리릭!

하지만 잠시 감탄하던 손대수는 이내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작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으음.”

그 이유는 저런 놀라운 성취를 보여 주고 있는 진소은의 표정이 전혀 밝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무언가에 쫓기듯 절박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손대수는 그녀의 입 모양으로 그 말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말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손대수는 역시 선우진 공자가 이번에도 제대로 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금 충분히 불안정해 보였다.

아무래도 대화를 좀 해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손대수는 그만 그녀를 멈추고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타인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건 무림인들의 불문율 같은 것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목소리를 냈다.

“흠, 흠. 힘들지는 않으시오, 진 소저?”

그러자 진소은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수련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주변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마음이 조급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진소은은 허둥거리며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에게 말했다.

“아, 소, 손 노사님! 이를 어째…. 제가 너무 오래 시간을 끌었나 보군요. 잠깐만 봉을 휘두른다는 것이. 죄송합니다. 다들 많이 기다리고 계시는 거죠?”

그녀의 당황한 말에 손대수는 푸근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진 소저. 시간은 별로 오래 지나지 않았다오. 다만… 노부가 진 소저와 얘기를 좀 해 보고 싶어 따라온 것이오.”

“예? 저와 얘기를요?”

손대수는 그녀의 옆으로 걸어가 풀밭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아이고, 늙으니 서 있기도 힘들구려. 내 잠깐 앉아도 되겠소?”

“예? 아, 예. 그럼요. 그러셔야죠.”

손대수는 아직 감을 잡지 못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진소은을 향해 지나가듯 물었다.

“그나저나, 오면서 보니 진 소저의 성취가 대단하더구려. 선우 공자가 가르쳐 준 보법을 벌써 어느 정도 체화한 것 같아 보였소.”

그러자 진소은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멀었는걸요. 그리고….”

진소은은 거기까지 말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손대수는 그 ‘그리고’ 다음의 얘기가 핵심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어이구, 목이야. 계속 올려다보면서 말하려니 목이 좀 뻐근하구려. 미안하지만 이 늙은이를 위해 잠깐 앉아 줄 수 있겠소?”

“아, 네! 죄송합니다.”

진소은은 화들짝 놀라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풀밭에 앉았다.

그러자 손대수는 빙긋이 웃으며 잠시 주변을 바라보다 문득 그녀에게 말했다.

“노부가 보기에 요즘 진 소저는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 부쩍 조급해 보이더구려. 무슨 이유라도 있소?”

그 질문에 진소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땅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힘없이 입을 열었다.

“제가 너무 한심해서요.”

그 대답에 손대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한심하다고? 자연곤을 부활시킨 진 소저가 말이오?”

그러자 진소은은 힘없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인걸요. 모두들 좋아해 주시기는 하지만 사실 제가 뭔가 대단해서 이루어 낸 일도 아니고, 다 조부님의 노력과 가르침 덕분이라….”

손대수는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손대수가 본 진짜 뛰어난 이들 중에는 이 소저처럼 생각하는 자들이 꽤 있었다.

자신의 성취를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성취에 자만하는 자들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성취가 느려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빨라지는 모습들을 보여 주곤 했었다.

그러니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자세였다.

적어도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군. 아무리 그게 바람직한 자세라 해도 이 정도면 좀 과해.’

아무래도 이 착한 아가씨는 겸손이 너무 지나쳐 자신의 진가마저 잘 알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건 손대수가 볼 때 무척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십 대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 아니던가.

실제로 엄청난 수의 무인들이 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곤 했고, 절정 초입 정도의 고수들도 작은 지역이라면 그곳의 패자가 되어 군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진소은은 이십 대에 절정의 경지를 밟은 것을 넘어 초절정인 혈해마도 윤삭의 도를 받아 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자연곤의 계승자였다.

그것도 세상에서 유일한 자연곤의 계승자 말이다.

근데 그런 그녀가 스스로를 한심해하다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손대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그녀가 정말 한심하다면 나나 다른 동지들은 이미 살아갈 가치도 없었겠지.’

손대수는 어쩐지 이 잘못된 인식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 소저, 선우 공자나 그의 의형인 설 공자와 비교한다면 세상 모든 무인들의 구 할 구 푼은 다 한심한 둔재에 지진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오. 만약 그들 때문에 진 소저가….”

그러자 진소은이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제가 어떻게 감히 그분들과 저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그런 대단하신 분들과요. 저는 단지….”

손대수는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려 줬다.

그러자 진소은이 힘없이 말을 이었다.

“그분은, 선우 공자님은 너무 대단하세요. 무공만 뛰어나신 게 아니라 지략도 대단하시고, 무엇보다 그 의기가 너무 대단하세요. 세상을 위해 혈교와 싸우셨고, 생전 처음 봤던 인파랑의 복수를 해 주기 위해 형산파, 해남파와 적대하다니…. 그런 분과 제가 비교가 안 되는 건 너무 당연한 거겠죠.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손대수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 소저를 그렇게 조급하게 만드는 게요?”

그 물음에 진소은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손대수는 그녀의 눈에 물기가 어리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땅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분께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육합검진을 보는 순간 깨달았어요. 그때 만약 연 소저가 아닌 제가 다른 하나의 육합검진을 맡았다면 저는 바로 죽고 말았을 거란 걸요. 만약 그랬다면 그분은 저를 구해 주려다 더 위기에 처하시고 말았겠죠?”

손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선우진에게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 때문이라니, 이 착한 소저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진소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런 쓸모없는 제가, 그래 놓고 감히 그분께 이상한 마음이나 품고 있는 제가 너무 한심해요. 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을 씻어 버리고 싶은데 그것도 전혀 되지 않아서….”

거기까지 말한 진소은은 결국 눈물을 쏟았다.

“흐흑! 죄, 죄송….”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진소은을, 손대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천천히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진 소저….”

“제가, 제가 왜 그분을 따라왔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또 그러고 싶지는 않고…. 어떻게든 강해져서 도움이 되고 싶은데 실력은 계속 제자리고…. 흐흐흑!”

손대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 착한 소저의 마음속에는 많은 것들이 얽혀 있는 듯했다.

선우진이라는 너무 커다란 재능을 보고 느끼게 된 열등감과, 또 그에 대한 연심, 그로 인해 더욱 작아져 버린 자존감까지.

게다가 연심을 품은 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착한 마음이 오히려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난감했다.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손대수는 잠시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그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노부가 옆에서 지켜 줄 테니 그냥 우시오. 가끔은 한번 시원하게 울고 나면 마음이 개운해지기도 한다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진소은은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마음속에 맺혔던 것들을 모두 쏟아 내기라도 하듯 한참 동안 이어졌다.

***

같은 시각, 손대수의 손녀 손이랑은 잠깐 졸다가 깜빡 눈을 뜨고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선우진에게 말했다.

“응? 제가 졸았어요?”

그러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이랑이 너도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그런가? 이상하네. 별로 그렇지는 않았는데. 왜 졸았지?”

손이랑이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을 때였다.

문득 선우진의 머릿속에서 묵랑이 말했다.

- 자네도 참 나쁜 남자로군. 대체 몇 명의 소저들을 울리는 겐가?

그 말에 선우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몇 명이라니 제가 언제 몇 명이나 울렸다는 겁니까?’

- 흠, 내가 기억하는 것만도 당여은 소저, 해청연 소저에 아미파의 정연 소저, 제갈서율 소저. 이제 진 소저까지 다섯 명이로군.

‘아니, 청연 소저가 언제 울었습니까? 아미파의 정연 소저도 울지는 않았고, 게다가 제갈서율 소저는 또 여기서 왜 나오는 겁니까?’

- 쯧, 이러니 나쁜 남자라는 거지. 그렇게나 여자의 마음을 모르겠나?

‘여, 여자의 마음은 어르신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선우진은 방금 지존신안을 이용해 손이랑을 잠깐 졸고 있도록 하고는 손대수를 따라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온 참이었다.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고 있는 다섯 명의 육합검수들에게 손이랑을 지키게 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잠시 티격태격하던 묵랑이 문득 선우진에게 물었다.

-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인가?

그의 질문에 선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야 가능성 있는 인재를 영입한다는 마음으로 데려왔던 그녀였지만, 지금 선우진은 진소은을 무척 좋아하게 된 상태였다.

그녀의 순수한 모습은 마치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여동생 연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선우진이 완벽한 여동생의 모습이라고 믿고 있던 그 모습을 진소은은 온몸과 진심으로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선우진으로선 그런 그녀를 힘들게 하는 일도,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묵랑이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 자네가 그녀를 여동생처럼 생각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그녀가 자네를 오빠로서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그녀가 너무 순수해서 자꾸 착각하게 되긴 하지만 그녀의 나이가 자네보다 한 살 더 많다네.

‘…그랬죠.’

확실히 그랬다.

지금 선우진의 나이가 스물둘, 진소은의 나이가 스물셋이니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더 연상이었던 것이다.

예전 아미파의 정연에게 했던 것처럼 냉정하게 끊을 수도 없음에 선우진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의 감각에 무언가가 감지됐다.

‘지금 그걸 생각하기엔 시기가 좋지 않은 것 같군요.’

- 그렇군. 드디어 진짜가 온 모양이군.

선우진은 바로 육합검수들에게 심어를 전달해 그들이 주변의 숲에 숨어 있도록 했다.

그러곤 손이랑에게 말했다.

“이랑아, 어서 숲으로 가 할아버지와 진 소저를 모셔 오거라. 손님들이 오시는구나.”

그 말에 손이랑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손님들이라고요?”

그러자 선우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 아마도… 해남파의 사람들이 도착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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