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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41화 (228/359)

241화 조우-2

광동성의 내륙 관도를 따라 해남파의 사람들 육십여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걷는 방향은 동쪽의 광동성 용천에서 서쪽의 광주 쪽으로 향하는 방향, 즉 선우진 일행이 걷는 방향과 반대 방향이었다.

일행 중 문득 대대로 해남파의 군사 역할을 해 왔던 해남묘가의 가주 묘청주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정말 그들이 아직 용천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오?”

그러자 거상을 운영하며 해남파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해남자가의 가주 자개추가 대답했다.

“하오문의 정보에 따르면 그렇다고 하더구려. 내 예상에 아마 조금만 더 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해남술가의 가주 술모생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인파랑 공자를 사칭한다는 그놈을 만날 수 있겠구려.”

그 말을 들은 자가주 자개추와 묘가주 묘청주는 그를 힐끗 바라봤다.

그는 장문인인 해남마검 진태도의 심복답게 벌써 인파랑이 진짜가 아니라고 결론지은 모양이었다.

그때 묘가주 묘청주의 옆에서 걸어가던 그의 막내딸 묘아란이 슬쩍 작은 목소리로 묘청주에게 물었다.

“그들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묘청주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래서야 마치 누군가가 따라오기를 기다려 주기라도 하는 것 같지 않느냐? 해남파, 형산파 두 거대 문파에 시비를 건 자가 이렇게 위기의식이 없어서야….”

그러자 묘아란이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진짜 누군가 따라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음?”

두 부녀가 그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자가주 자개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인 것 같구려.”

“응?”

“저들이라고 하셨소?”

자개추의 목소리에 모두가 그의 시선을 따라 전방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발견할 수 있었다.

남녀노소로 이루어진 네 명의 일행들, 그중에서도 백의를 입고 백색의 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잘생긴 청년의 모습을….

그러자 그의 윤곽을 본 묘아란의 가슴이 빠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인 오라버니. 정말로?’

아직 먼 거리였지만 이미 절정의 경지를 넘어선 묘아란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십 년 전 봤던 그녀의 정혼자 인파랑의 얼굴과 매우 흡사했다.

그가 그동안 잘 자랐으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얼굴….

늘 사람들에게 차분하고 단아한 모습만을 보여 주곤 했던 묘아란의 얼굴이 조금씩 상기되고 있었다.

***

육십여 명의 해남파 사람들이 서둘러 다가오는 동안 선우진은 가만히 팔짱을 낀 채 그들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들을 기다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오는 동안 손대수가 해 주는 설명을 열심히 듣고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대수가 전음을 이용해 빠르게 말하고 있었다.

- 저들은 각각 이십여 명씩 모두 세 무리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구려. 저 중 가장 오른쪽 무리의 선두로 오고 있는 사람이 해남자가의 가주 자개추라오. 무척 대단한 사람이지요. 그 자체가 초절정에 달한 고수이기도 하지만 해남상단이라는 상단을 운영하고 있고, 또 거기서 얻은 수익으로 해남파의 모든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상계의 거물이기도 하니 말이오.

그는 그런 식으로 해남묘가의 가주 묘청주와 해남술가의 가주 술모생에 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줬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손대수가 엄청난 양의 견문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우진이 정확히 손대수에게 기대하고 있던 종류의 조력이기도 했다.

선우진이 문득 물었다.

- 묘가 가주의 옆에서 오고 있는 아름다운 소저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묘가주의 옆에 있다는 점도 그렇고 신분도 무공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군요.

그러자 손대수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해 줬다.

- 나도 본 적은 없소만, 아마 그녀가 해남파 제일미인이라는 묘가주의 막내딸 신묘검봉 묘아란이 아닐까 싶소. 만약 그녀가 맞다면 대단한 재녀라는 소문이 있더구려. 젊은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공도 대단하지만, 그 지혜는 무공보다도 좀 더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었소.

하지만 그런 손대수도 그녀가 어린 시절 인파랑의 정혼자였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해남파의 일행들은 모두 선우진 일행의 앞에 도착했다.

선우진은 차가운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를 보는 해남파 가주들의 표정은 매우 복잡해진 상태였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해남자가의 가주 자개추였다.

그가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선우진에게 말했다.

“저, 정녕 인파랑, 인 공자가 맞았구려! 오오, 아버지를 꼭 닮은 눈매에, 어린 시절의 모습도 그대로고…!”

그는 선우진이 인파랑이라는 사실을 이미 확신한 듯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선우진은 손바닥을 들어 그를 멈추게 하며 차갑게 말했다.

“거기 멈추시지요, 자가주님. 제가 해남파 전체에게 복수하겠다고 선언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하신 겁니까?”

그 말에 자개추는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 하지만 인 공자! 우리 해남파는…!”

그때 해남술가의 가주 술모생이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해남파 전체를 적대하겠다고? 어린놈이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자가주님! 어찌 저런 놈을 인파랑 공자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저놈은 분명…!”

그때였다.

선우진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술모생! 네놈이 감히 내 앞에 나타나다니, 배짱도 대단하구나! 아니면 머리가 나쁜 것인가?!”

그 말에 술모생이 분노해 소리쳤다.

“뭐, 뭐라고?! 감히 네놈이…!”

그때 선우진이 벼락같이 검을 뽑아 그를 향해 가리키며 소리쳤다.

챵!

“술모생! 네놈이 그때 진태도와 함께 우리를 습격했던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러자 술모생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뭐, 뭐라고?!”

“그런 허접한 복면을 썼다고 네놈인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머리가 나쁜 것이 맞는 모양이로구나!”

술모생은 너무 당황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실제로 복면을 쓴 채 진태도를 따라 인파랑의 아버지 인계운을 습격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혀 모를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날의 일을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인파랑은 거기 있었던 이들의 체형과 무공으로 모두를 파악해 일지에 기록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자 자개추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술모생을 보며 물었다.

“술가주! 정말 자네가 인계운 인가주님을 습격했었단 말인가?!”

그 질문에 술모생은 순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 억지로 입을 열어 소리쳤다.

“아, 아니오! 그건 그저 저놈의 거짓말일 뿐이오! 나는 결코…!”

하지만 그의 당황한 표정과 잠깐의 망설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노회한 자개추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자개추가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술모생, 네놈이 정녕!”

“자, 자가주님! 저는…!”

자개추가 참지 못하고 술모생을 향해 달려들려 할 때였다.

선우진이 문득 차갑게 말했다.

“이래도 해남파가 나의 원수가 아니란 말입니까? 어찌 생각하십니까, 자가주님.”

그 말에 자개추가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오, 인 공자! 그건 어디까지나 진태도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의 수작이었을 뿐이오! 해남파엔 여전히 인 공자를 기다리는 이들이…!”

그러자 선우진이 비릿하게 웃으며 묘청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태도와 그 추종자들의 수작일 뿐이라…. 그럼 묘가주는 어떻습니까? 그도 진태도의 추종자입니까?”

묘청주는 침중한 표정으로 일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그저 관망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래도 인파랑이 진짜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갑자기 인파랑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 무슨 소리요, 인 공자? 나는 진태도의 추종자가 아니오. 나는 중립적인 입장으로 이 자리에….”

그러자 선우진이 다시 냉소를 지으며 씹어뱉듯 말했다.

“중립적이라…. 당신이 아버지께 형산파를 추천해 줬을 때도 중립적인 입장이었나 보지? 형산파와 진태도가 사전에 이미 모의를 하고 있음을 몰랐다고 한번 말해 보시지 그러시오.”

“그, 그건!”

그 말에 묘청주는 차마 거짓을 대답하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옆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딸의 시선에 차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선우진의 말대로였다.

진태도의 여론 공작으로 힘겨워하던 인계운이 어찌해야 할지를 상담했을 때, 그에게 형산파의 조력을 얻으라는 조언을 해 줬던 자가 바로 묘청주였다.

그리고 그때 묘청주의 조언에는 분명 진태도의 입김이 들어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눈을 뜬 묘청주가 지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설마 일이 그리될 줄은….”

그러자 충격받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자개추가 소리쳤다.

“묘가주! 당신마저?!”

묘청주는 그간 진태도와 그에 대항하는 다른 가주들의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며, 때에 따라 각각 다른 이들의 손을 들어 주곤 했던 이였다.

그리고 남아 있는 열 명의 가주 중 네 명이 이미 진태도의 편에 서 있기에 마지막 한 명인 묘청주의 의견에 따라 대부분의 안건이 결정되곤 했었다.

그러니 결국 해남파의 회의는 대부분 그의 뜻에 따라 결정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실 진태도의 편에 서 있었다니….

또한 생각해 보면 진태도가 인계운을 죽였다는 세간의 소문을 가차 없이 일축했던 이도 바로 그가 아니었던가.

그건 그저 음모론에 불과할 뿐이라며 말이다.

해남파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그의 명성 때문에 차마 그에 반박하지 못했었는데, 그런 그가 사실은 그때 일의 가장 큰 관계자였다는 것이었다.

자개추는 충격과 배신감에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저 분노로 덜덜 떨며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폭음이 들려왔다.

퍼어어엉!

그 갑작스러운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붉은 연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바로 술가 가주 술모생이 쏘아 올린 폭죽이었다.

그가 경박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묘가주님! 저들 중 누구도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자개추는 그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폭죽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술모생이 무엇을 준비했는지도….

자개추가 씹어 먹을 듯한 눈빛으로 술모생을 노려보며 노호성을 터트렸다.

“술모생, 이노옴!”

그때 돌아가는 상황을 정신없이 지켜보던 손이랑이 그의 조부 손대수에게 속삭여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예요, 할아버지? 저 폭죽은 또 뭐고요?”

그러자 대답은 선우진에게서 돌아왔다.

선우진이 비릿하게 웃으며 술모생에게 물었다.

“병력을 끌고 온 모양이로군. 내가 인파랑이 맞거든 깨끗이 사라지게 만들라고 진태도가 지시했었나 보지?”

그 물음에 술모생이 큭큭거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크크크크, 잘 아는구나. 하지만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자가주님께도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 죽어 주셔야겠습니다.”

그 말이 끝났을 때였다.

파도가 밀려오듯 사방에서 검을 든 흑의 무사들이 나타나 그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이백 명은 족히 될 법한 인원들이었다.

그들은 일행들의 온 사방을 포위한 채 검을 들어 중심의 인파랑을 가리켰다.

자개추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들은 설마…?”

그러자 술모생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해전대의 최정예인 흑룡함의 무사들이지요. 진 장문인께서 이번에 이들까지 흔쾌히 보내 주셨지 뭡니까?.”

“흑룡함의 무사들이라고?!”

흑룡함은 대부분 전직 해적들로 이루어진 해전대에서도 몇 안 되는 순수한 해남진가의 무사들만을 태우고 있는 배였다.

그야말로 해남파의 최정예들, 해전대엔 모두 열 척의 흑룡함이 있었는데 이백여 명의 인원이라면 그중 세 개 함의 무사들이 총출동한 것 같았다.

그러자 옆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손대수의 얼굴도 급격히 어두워졌다.

저들이 흑룡함의 무사들이라면 상황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흑룡함이라니….”

흑룡함의 무사들은 모두가 일류 이상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해남파의 최정예들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각 흑룡함의 함장은 모두가 내공 팔구십 년 이상의 절정 무인들이었고, 절정 초입이나 칠십 년 이상의 내공을 지닌 절정 고수들도 상당수 섞여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런 자들이 무려 이백여 명, 게다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초절정의 벽에 걸려 있다고 알려진 술가 가주 술모생이나 확실한 초절정 고수인 묘가 가주 묘청주 또한 자신들의 적이라는 것 같지 않은가.

그에 비해 우리 쪽은 초절정이긴 하지만 노쇠한 자개추와 아직 너무 젊은 인파랑 공자, 거기에 이런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은 진소은과 자신, 그리고 손녀 손이랑 뿐이었다.

당연히 극도로 불리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불안한 목소리로 선우진에게 속삭여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오, 공자?”

그때 선우진의 시선은 어째서인지 흑룡함 무사들이 아닌 자개추 쪽을 향해 있었다.

그의 표정을 잠시 살피던 선우진은 문득 피식 웃으며 손대수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런 급박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제 생각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될 것 같군요.”

“음?”

손대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우진의 얼굴을 바라볼 때였다.

술가 가주 술모생이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크하하하하! 혹시 남길 말은 없느냐?! 물론 남겨도 들어주진 않을 테지만 말이다! 크하하하하!”

그의 개운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묘청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딸에게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아란아. 너에게도 미리 말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건….”

그때 묘아란은 선우진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문득 중얼거렸다.

“많이 변하신 것 같네요.”

그 말에 묘청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우,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애비는 변한 것이 아니란다.”

그러자 묘아란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묘청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말고요. 파랑 오라버니가 많이 변하셨다고요. 아버지께서 인가주님의 실종과 연관이 있다는 건 예전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요.”

“뭐, 뭐라고?”

그 일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그녀의 말에,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딸의 차가운 시선에 묘청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납득했다.

생각해 보면 언젠가부터 이 영특한 딸은 자신이 해남파의 운영에 관한 얘기를 할 때마다 의미심장한 눈빛과 질문을 던지곤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묘청주 자신도 믿고 싶지 않았을 뿐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인지도 몰랐다.

딸이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런 생각에 묘청주가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의 막내딸을 바라볼 때였다.

묘아란은 선우진의 시선을 따라 자개추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직 일이 끝난 게 아닌지도 모르겠네요.”

그때였다.

차가운 시선으로 술모생을 노려보던 자가주 자개추가 문득 오른팔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쳐라!”

술모생은 혀를 차며 그런 자개추의 모습을 그저 지켜봤다.

“쯧쯧.”

자개추가 데리고 온 수행 인원은 고작해야 스무 명.

그 정도로는 주변을 포위한 이백 명의 흑룡함 무사들은커녕 자신과 묘가의 수행 인원들조차 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개추가 과감히 공격을 명령한 순간, 술모생으로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피피피피피피핑!

푸푸푹! 푸푹! 푸푸푹!

“크아아아악!”

“아아악!”

“스, 습격이다!”

공격이 시작된 곳은 자개추의 수행원들 쪽이 아니었다. 바로 흑룡함 무사들의 포위망 바깥쪽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수백 명의 무사들이 포위망의 바깥에서 흑룡함 무사들의 뒤를 습격했던 것이었다.

피피피피피핑!

“가, 강전이다! 끄아아아악!”

“피해! 아아아악!”

흑룡함 무사들을 향해 쏘아지고 있는 활은 일반 활이 아닌 해남신가에서 제작된 강전이었다.

대무림인용으로 제작된 강전의 가공할 위력, 게다가 전혀 방비하지 못했던 후방을 기습당한 상황에 흑룡함의 정예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버리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피해!”

“피, 피할 곳이, 으아아아악!”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중심부에 있던 인물들은 저마다 당황한 채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그들 중 당황하지 않은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바로 이 공격을 지시한 자개추와 그런 그를 보고 있었던 선우진, 두 사람 말이다.

손대수가 문득 선우진을 향해 물었다.

“공자는 설마 이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던 거요?”

그의 질문에 선우진은 그저 빙긋이 웃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원래 인가의 후계자 인파랑이 나타나면 가장 필사적이 될 사람들이 진태도에 반대하고 있는 해남파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장문인인 진태도에게 밀리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항할 정당한 명분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들은 형산파의 육합검수들이 도착할 때까지도 선우진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생각보다 매우 늦은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해상 세력인 해남파에서 선우진 자신에게 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선우진은 한 가지만큼은 확신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진태도의 부하들보다 늦을 리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해남파의 인원들이 도착했을 때부터 선우진은 인파랑의 일지에 언급되지 않은 자가의 가주 자개추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 그의 예상대로였다.

챵!

선우진은 백호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곤 당황한 채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술모생을 향해 소리쳤다.

“술모생! 해남인가! 그리고 그날 함께 희생되신 해남사가 분들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술모생은 자신에게 겨눠진 해남파의 신물, 순백의 백호검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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