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가장 바라는 일-2
선우진은 사흘 동안 시간을 아껴 가며 진소은에게 세 가지를 전수해 줬었다.
그것은 바로 은신술, 심안, 박투술이었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다고 이미 약속했기에 진소은은 그것들을 아주 성실하게 배우긴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었다.
‘이런 걸 왜 가르쳐 주는 거지?’
전에 가르쳐 줬던 삼환보야 힘이 약한 자신이 상대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선 속도에서 앞서야 한다는 매우 납득하기 쉬운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곤법을 사용하는 내게 박투술은 좀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게다가 살수들의 기술인 은신술?’
진소은은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원래 그녀의 성격대로 일단 성실하게 배우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천재라도 사흘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다.
그 시간 동안 주특기가 아닌 박투술과 은신술로 어떤 성과를 내기엔 당연히 무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직 몸을 사용하는 기술이 아닌 심안에서만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진소은은 선우진이 왜 자신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줬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부아아아아앙!
티티티티티팅!
전면에서 쏟아져 오는 암기들을 곤을 회전시켜 원형의 방패처럼 막아 냈다.
그러곤 바로 회전하는 장봉을 뒤로 돌려 협봉검을 찔러 오는 살수들을 후려쳤다.
퍼퍼펑!
강기를 머금은 장봉이 적들의 머리를 가볍게 부수는 순간, 진소은은 바로 삼환보를 밟으며 빠르게 위치를 이동한 후 발밑을 세게 밟았다.
퍼어억!
그러자 뭔가가 터지는 느낌과 함께 흙 속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땅 밑에 숨어 있던 살수였다.
아까부터 자신을 한쪽으로 몰고 있다는 느낌을 살짝 받았었는데, 이런 이유였던 모양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암기들이 쏟아져 날아왔다.
쐐애애애액! 휘리리리릭! 시이이익!
엄청난 속도의 강전부터 회전하며 휘어 들어오는 암기까지, 온 사방을 암기가 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흡!”
진소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 주변으로 장봉을 휘돌리며 자신의 몸 또한 회전시켰다.
휘리리리리릭!
티티티티티팅!
회전하는 장봉이 만든 철통같은 방패가 모든 암기를 튕겨 냈다.
마치 의지를 지닌 신수가 그녀의 온몸을 지키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엄청나게 위협적인 공격을 훌륭하게 방어해 낸 멋진 광경이었지만, 진소은에겐 이미 하루를 싸우는 동안 몇십 번이나 반복됐던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니 저들이 또 저런 짓을 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진소은은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전방 땅 밑에 여섯 명!’
심안으로 땅 밑에 은신 중인 살수들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었다.
그 순간.
푸화아아악!
땅이 확 일어나며 여섯 명의 살수들이 땅굴 속에 숨어있던 뱀처럼 튀어나왔다.
진소은의 장봉이 암기를 막는 사이, 하단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에겐 불행히도 그녀의 하단은 전혀 비어 있지 않았다.
“후웁!”
그들이 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진소은은 이미 삼환보를 이용해 그들 바로 앞까지 이동해 있는 상태였다.
“!”
“!”
땅에서 튀어나온 그들의 시야에 눈앞까지 다가와 있는 진소은의 발이 보이고 있었다.
퍼퍼퍽!
삼환각, 삼환보와 연계된 강력한 발차기에 세 명의 머리가 동시에 터져 나갔다.
선우진에게 사흘간 배우면서도 성공하지 못했던 삼환각을 하루 동안 싸우며 완벽히 익혀 낸 것이었다.
하지만 기뻐할 새는 없었다.
남은 세 명의 협봉검이 그녀의 다리를 번개처럼 찔러 오고 있었으니까.
쉬이익!
푸우욱!
협봉검이 그녀의 다리를 정확히 관통하려는 순간, 세 살수의 눈에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장봉으로 암기를 막고, 세 명의 기습을 발차기로 처리하며 만들어진 틈으로 결국 공격을 성공시키고 말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검이 그녀의 다리를 꿰뚫은 순간 살수들은 경악하고야 말았다.
“?!”
“?!”
검이 무언가에 박혀 들어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르륵!
다음 순간 그녀의 신형이 지워지듯 사라졌다.
살수들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잔상?!’
그와 동시에 진소은의 장봉이 그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퍼퍼퍽!
그녀는 삼환보로 잔영을 만든 후 그들의 후방으로 이동했던 상태였다.
“하아, 하아, 하아!”
진소은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머리가 부서진 세 명의 살수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먼 거리에서 자신을 포위한 채 노리고 있는 살수들을 둘러봤다.
지긋지긋했다.
밤에 습격해 온 놈들과 싸우다 해가 뜨고, 다시 졌던 해가 한 번 더 떠오른 후까지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는데도 전혀 놈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어디서 저렇게 기어 나오는지 꼭 바퀴벌레를 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문제는 놈들의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물먹은 듯 무거운 몸으로 가쁜 숨을 내쉬며 진소은은 생각했다.
‘너무 피곤해. 쓰러져 버릴 것 같아. 아니, 그만 쓰러지고 싶어.’
그녀가 느끼기에 자신의 몸은 이미 한계 상태였다.
호흡은 턱까지 차올랐고, 머리는 이미 멍해진 상태.
이러다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은 아까도 했던 것 같은데. 아니, 아까가 아니라 어제 해 질 때쯤이었던가?’
상관없었다.
시간 개념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선우진이 사라진 지는 더 오래됐으니까.
그때였다.
의식의 흐름이 문득 선우진에게로 닿자 멍해 있던 진소은의 눈이 순간 또렷해졌다.
그러곤 마음속으로 이를 갈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선우 공자!’
그가 자신에게 박투술이나 은신술 같은 것들을 가르쳐 줬던 이유는 이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직접 은신술을 쓰지는 못해도 그것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기에 이제껏 저들을 상대할 수 있었고, 바퀴벌레처럼 밀려오는 저들을 죽이기 위해선 장봉만이 아닌 온몸을 다 써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심안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선우진의 혜안은 감탄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저들 혈우련이 습격해 올 거라는 걸 미리 예측하고 자신을 준비시킨 것이었으니까.
아마 자신도 지금껏 감탄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가 자기 혼자만 쏙 빠져나가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하루 전, 시간을 쪼개 진소은에게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가르쳐 줬던 선우진은 문득 뭔가를 느꼈는지 먼 곳을 바라봤었다.
그리고 빙긋이 웃으며 진소은에게 말했다.
‘건투를 빕니다, 진 소저.’
‘…네?’
그 순간 혈우련의 살수들이 습격해 왔었다.
쐐애애애액!
휘리리리리릭!
진소은은 날아오는 암기들을 정신없이 막아 내고 덮쳐 오는 살수들을 후려쳐 죽여 버렸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옆에 선우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진소은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만 남겨 두고 혼자 빠져나갔다고?’
하지만 진소은은 그를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 후로도 두 시진 정도를 설마설마하며 그가 그럴 리 없다고 믿어 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죽인 살수들이 세 자리 숫자를 넘어섰을 때쯤 결국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그에게 버림받았다는 걸.
“선우지이이이인!”
분노로 이를 간 진소은은 다시 또렷해진 눈빛으로 또 덮쳐 오기 시작한 살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분노한 그녀의 장봉이 용권풍처럼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
진소은이 혈우련 살수들의 습격을 격파하던 시각, 그녀가 있는 곳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 동굴 앞에는 한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가 문득 인상을 찌푸리며 조용히 물었다.
“지둔을 쓴 자들이 일곱 명인 게 맞는 건가?”
그러자 노인의 뒤에서 무릎을 꿇은 흑의복면인 한 명이 유령처럼 스르르 나타나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 열여덟 명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답에 노인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랬겠지. 근데 왜 일곱 명뿐인가?”
그러자 무릎을 꿇은 흑의복면인이 더욱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건….”
청수한 인상의 백발노인, 혈우련의 련주인 혈우객 막종기는 부하가 대답하지 못하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리가 습격을 개시하자 인파랑이란 자는 바로 현장에서 사라져 버렸었다. 남은 건 저 진소은이라는 진가장의 여아뿐. 그런데 처음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저 아이가 점점 성장해 이젠 우리 정예들의 공격을 무려 하루가 넘도록 견뎌 내고 있구나.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준비했던 공격들은 묘하게도 그 규모가 축소되어 있고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 것 같으냐?”
그의 질문에 부하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저 진소은이란 아이가 우리 공격을 밑거름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혈우객 막종기는 부하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반만 맞았다. 정확히는 그 인파랑이라는 아이가 진소은이란 아이를 성장시키고 있는 것 같구나. 우리를 이용해서, 그것도 우리의 공격이 과하다 싶으면 적당히 조절하면서 말이다.”
“예?!”
막종기의 말에 부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그 말은 자신들이 완전히 인파랑의 손아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천하제일의 살수 집단인 자신들의 공격을 적당히 조절하며 이용하고 있다니, 아무리 인파랑이란 자가 보기 드문 기재라 해도 지나친 억측이 아닐 수 없었다.
부하는 조심스럽게 막종기의 말에 반박했다.
“하지만 련주, 인파랑은 아직 이십 대에 불과한 애송이가 아닙니까? 십오 인의 절대자는커녕, 천하삼십육성도 아닌 그에게 설마 그런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지만 막종기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결론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살수들 중 누구도 그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 그자의 은신술이 우리 살수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얘기겠지. 어쩌면 은신술 하나만큼은 암혈향급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 말을 듣고 있던 부하는 더욱 황당해지고 말았다.
천하삼십육성 중 유일한 살수인 암혈향이란 이름이 혈우련의 살수들에게 있어 엄청나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혈우련은 명실공히 천하제일의 살수 집단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천하제일의 살수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천하제일의 살수만큼은 배출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늘 시달려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암혈향은 언제나 목표 그 자체가 되는 이름이었다.
모든 혈우련 살수들의 목표는 암혈향을 능가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혈우련의 모두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제껏 끊임없이 노력해 왔었다.
그런데 련주인 혈우객 막종기가 지금 인파랑의 은신술이 암혈향급일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아직 이십 대에 불과한 애송이 인파랑이 말이다.
혈우련의 살수들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정은 혈우객 막종기가 하는 것이었으니까.
막종기가 마침내 부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폭뢰의 사용을 허가한다. 그리고… 삼노를 준비시켜라.”
그의 명령에 부하가 꿀꺽 침을 삼키며 반문했다.
“사, 삼노 어르신들 말씀이십니까?”
혈우삼노.
혈우련의 최고수들인 그들은 혈우객 막종기가 오랜 시간 암혈향을 잡기 위해 준비해 왔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초절정 고수들로 일노 착화습은 은신술로, 이노 곡무쌍은 암기술로, 삼노 누산투는 독공으로 각각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이 초절정 고수라는 점이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점은 그들이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후에도 오직 자신의 특기만을 끝없이 갈고닦아 온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암혈향을 목표로 지금껏 자신의 특기 하나만을 정진해 왔었다.
그래서 이제 각각 자신들의 분야에서만큼은 암혈향을 능가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자들이 된 상태였다.
그러니 혈우객 막종기는 지금 혈우련 최강의 살수들인 그들을 인파랑 하나를 잡기 위해 투입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놀란 얼굴로 반문하는 부하에게 막종기는 이렇게 말했다.
“놈이 암혈향급이라면 암혈향을 잡을 수 있는 칼을 준비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지 않느냐?”
그 말에 결국 부하는 고개를 숙였다.
인파랑이 암혈향급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이대로 계속 진소은을 성장시켜 주는 역할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존명! 바로 삼노께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
쐐애애애애액! 휘리리리리릭!
끊임없이 날아오는 암기들을 봉을 휘돌려 튕겨 냈다.
부아아아아앙! 티티티티티팅!
한 번의 총공격 후 암기가 잠깐 끊어진 틈을 타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부아아아앙! 퍼퍼퍼퍽!
진소은의 주변으로 머리가 터진 시체들이 쓰러져 갔다.
어차피 또 보충되겠지만 그럼에도 수를 계속 줄여 나가야만 했다.
진소은은 이 모든 행동들을 멍한 정신으로 기계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이게 현실인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때였다.
뭔가 이제까지와 다른 것들이 진소은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검은 공처럼 보이는 작은 구형의 물체였다.
하지만 지금 진소은의 눈에 그 차이가 구분될 리 없었다.
그녀는 그것들 또한 이제껏 하던 대로 그냥 장봉을 휘둘러 튕겨 내려고 했다.
그때 그녀의 귀에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건 부수면 안 되오, 소저! 멀리 피하시오!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진소은은 황급히 삼환보를 전개해 그것들로부터 멀어졌다.
쉬이이익!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있던 땅에 부딪친 검은 구체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그리 큰 규모의 폭발은 아니었지만 만약 봉으로 쳐서 터졌다면 당연히 피해를 입었을 것이었다.
진소은은 순간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약?!’
얼마 전 진가장이 대포로 포격을 당했었기에 그녀 또한 화약과 화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상태였다.
포탄을 날릴 때만 쓰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작게 던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걸 관찰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또다시 검은 구체가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사이사이에 암기들도 함께였다.
쐐애애애애액!
“이런!”
진소은은 당황했다.
저건 막아 낼 수 없었다.
이제까지처럼 봉을 회전시켜 암기를 막아 내려다간, 저 폭뢰들까지 폭발시키게 될 것이 뻔했다.
“이익!”
이를 악문 진소은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최대한 암기와 폭뢰를 피하기로 한 것이었다.
파박!
다행히 삼환보를 열심히 연마했던 그녀의 신법은 예전에 비해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순식간에 암기와 폭뢰의 범위에서 벗어난 진소은의 뒤로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콰콰콰콰콰쾅!
“아으으윽!”
진소은은 죽을 맛이었다.
이제까지는 제자리에서 봉만 돌리면 됐는데 이젠 사력을 다해 뛰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뛸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지만 계속 이럴 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잠시 후엔 정말 쓰러지고 말 테니까 말이다.
진소은은 쏟아지는 폭뢰와 암기를 피해 달리다 문득 자신의 경로로 날아오는 폭뢰를 향해 장봉을 갖다 댔다.
투욱!
하지만 폭뢰는 폭발하지 않았다.
그녀의 장봉이 뒤로 부드럽게 밀리며 마치 푹신한 이불처럼 그것을 받아 냈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생물 같은 자연곤의 부드러움과 그녀의 내공으로 만든 기막으로 이뤄 낸 놀라운 결과였다.
‘됐어!’
폭뢰를 받아 내는 데 성공한 진소은은 이제 자신에게 그것을 던졌던 살수를 바라봤다.
복수의 시간이었다.
“하아압!”
부아아앙!
장봉이 호쾌하게 휘둘러지며 폭뢰가 살수를 향해 날아갔다.
처음 날아왔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른 속도였다.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악!”
명중이었다.
폭뢰의 충격이 매우 컸던 모양인지 웬만하면 소리를 내지 않는 혈우련의 살수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진소은이 다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맛이 어떠냐?!”
완벽하진 않지만 또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아낸 것 같았다.
적당한 순간에 적들의 폭뢰를 다시 그들에게 날려 버리면 적들의 수도 더 빨리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해결책을 떠올려 다시 약간의 여유를 찾은 진소은의 머리에 문득 아까 그녀에게 폭뢰를 경고했던 목소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목소리는 분명….’
그때였다.
전방으로 달리고 있던 그녀의 앞에서 갑자기 땅이 솟구쳤다.
화아아아악!
“!”
진소은은 경악해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땅속에서 솟구친 것이 거대한 쇠 그물이기 때문이었다.
전방에서 튀어나온 쇠 그물이 완전히 펼쳐지자, 하늘을 까맣게 가린 채 그녀를 덮쳐 오고 있었다.
게다가 진소은의 눈은 쇠 그물 중간중간에 달려 있는 검은 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폭뢰였다.
그물에 폭뢰까지 달아 놓은 것이었다.
아까처럼 봉으로 걸어 휘둘렀다간 저 폭발을 다 눈앞에서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 순간 주변의 살수들이 암기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휘리리리릭!
사방에서 날아오는 암기들, 그리고 전방과 하늘 위를 뒤덮은 쇠 그물.
이번에야말로 피할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끝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