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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47화 (234/359)

247화 혈우삼노-1

화아아아악!

진소은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을 온통 뒤덮고 떨어져 내리는 쇠 그물이 아마도 자신이 보게 될 마지막 광경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그녀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위로 똑바로 뛰어오르시오!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아까는 멍한 정신에 긴가민가했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선우진의 전음이었다.

곧 이를 악문 진소은이 그물을 향해 뛰어올랐다.

폭뢰가 가득한 그물을 향해 스스로 뛰어드는 꼴이었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익!”

그러자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머리 위를 덮쳐 오던 그물이 거짓말처럼 갈라졌다.

촤아아아악!

진소은의 눈에 그물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사이로 열린 푸른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광경이었다.

진소은은 문득 온몸에 활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 선우진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소은의 가슴속이 환희로 가득 찼다.

‘역시! 그는 나를 버린 것이 아니었어!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비단 버린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위기가 있을 때마다 몰래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감동이 밀려왔다.

방금 전까지의 배신감이 순식간에 감동으로 전환되어 버린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진소은은 잔뜩 고양된 기분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어쩐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화아아악!

문득 아래에서부터 폭발로 인해 솟구쳐 올라오는 흙먼지가 보였다.

어쩐지 물컹한 먹구름처럼 보이는 갈색의 흙먼지들.

잠시 후엔 그녀의 몸을 완전히 덮어 버릴 것 같은 흙먼지를 보며 진소은은 문득 생각했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해 보면 알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진소은은 더 고민하지 않고 솟구쳐 올라오는 흙먼지를 가볍게 밟았다.

투웅!

그러자 다음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흙먼지를 밟은 진소은이 전방을 향해 가볍게 날아올랐던 것이었다.

‘됐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물론 강력한 상승 기류를 밟은 것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공기와 먼지를 밟고 날아오를 수 있었다는 건 진소은이 다시 한번 껍질을 깼음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몸은 공중을 하늘하늘 날더니만 그녀에게 암기를 날렸던 혈우련 살수들의 위에 도달하자 갑자기 매가 급강하하듯 내리꽂혔다.

쉬이이익!

“!”

“!”

체중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었다 한순간 천근추를 펼쳐 무겁게 만든 놀라운 경신술이었다.

그녀의 놀라운 신법에 혈우련의 살수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암기와 폭뢰들을 발작적으로 투척했다.

자신들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는 진소은을 향해서였다.

쐐애애액! 휘리리리릭!

하지만 진소은의 고양된 감정은 이제 그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놈들을 향해 내리꽂히며 장봉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또 한 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티티팅! 투툭! 티티티팅!

진소은이 앞으로 간단히 휘저은 장봉에 암기들이 속절없이 튕겨져 나갔던 것이었다.

폭뢰마저 폭발하지 않고 튕겨 나가는 것을 보면, 그 짧은 순간 강도를 달리해서 하나하나씩 받아 냈던 모양이었다.

그 놀라운 기예를 본 살수들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진소은이 그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하아아아압!”

콰아아아아아앙!

진소은의 장봉이 지면을 거세게 후려쳤다.

그러자 주변의 지면이 확 솟구치며 부채꼴 모양의 해일처럼 살수들을 향해 퍼져 나갔다.

지면의 해일로 적을 찢어발기는 한 수, 진가장의 절기인 광마십팔곤의 약마강습이었다.

“으흑!”

“끄윽!”

지면의 해일에 휘말려 몸이 찢긴 살수들은 작게 신음을 흘리며 죽어 갔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무려 여섯 명의 살수들이 죽은 것이었다.

게다가 진소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정거리에 들어온 살수들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맹렬히 뛰어들어 장봉을 휘둘렀다.

부아아아앙!

퍼퍼퍼퍽!

살수들은 순식간에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수동적으로 공격을 방어하던 진소은에 익숙해 있던 그들은 갑자기 야수처럼 돌변한 그녀의 공격에 적응하지 못하고 쓰러져 가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살수들이 필사적으로 날린 암기가 사방에서 날아왔다.

콰아아앙!

그녀가 튕겨 낸 폭뢰가 땅에 부딪쳐 폭발하고 있었다.

퍼어억!

그녀의 장봉이 부순 머리에서 붉은 물결이 뿜어져 나와 시야를 덮었다.

혼란했다.

너무도 정신없고 혼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아수라장 속에서 진소은은 홀로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광경이 모두 너무나 명료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암기 날아오는 소리, 폭뢰가 폭발하는 소리가 사방에 가득하건만 진소은의 귀에는 마치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고요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은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행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있었다.

배워 본 적이 없었던 광마십팔곤의 약마강습도,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수준 높은 신법도, 심지어 사방에서 빽빽하게 날아오는 암기와 폭뢰들을 하나하나 골라내 처리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의 뒤에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비수의 존재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 뒤로 휘둘러진 장봉이 빛살처럼 날아오던 비수를 쳐 냈다.

티잉!

쉬이이이익!

어찌나 빠른지 날아오는 소리조차 나중에야 귀에 들어올 정도의 속도였다.

진소은은 살수들을 쫓는 것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암기를 날린 존재를 바라봤다.

방금 무심코 막아낸 후에야 엄청나게 위협적인 암기였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두 명의 노인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리는 십 장 밖, 상당히 먼 거리였다.

문득 침이 꿀꺽 넘어갔다.

‘저 거리에서?’

방금의 암기는 그녀가 쳐 내고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었다.

그런데 그 암기가 날아온 곳이 무려 십 장(약 삼십여 미터) 밖이었던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무서운 암기의 고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노인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암기를 날린 노인이 감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놀랍구나. 정면으로 던져도 막을 수 있는 자가 손에 꼽을 거라고 자부했었는데, 설마 등 뒤에서 던진 걸 막아 낼 줄이야. 대단한 아이로구나. 그것이 자연곤이더냐?”

진소은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장봉을 세웠다.

마치 한 그루 나무가 된 듯한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노인, 혈우삼노 중 암기의 고수인 곡무쌍은 그녀의 자세를 보고 감탄했다.

아직 이십 대밖에 되지 않은 여아가 보여 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경지였기 때문이었다.

“허어, 련주의 명령에 반신반의했었는데 과연 그가 우리를 부를 만했구나.”

그는 문득 옆의 노인 독공의 고수 누산투를 바라보며 물었다.

“삼 노, 제게 맡겨 주시겠소?”

그의 부탁에 누산투는 묵묵히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곡무쌍이 다시 진소은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일 장(약 삼 미터)씩 너에게 접근하며 암기를 던질 것이다. 네가 어디까지 받아 낼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하구나.”

그의 말에 진소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고요한 신색으로 그에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곡무쌍이 그녀를 향해 일 장을 걸어가 멈춘 후 말했다.

“가겠다.”

무척이나 느릿느릿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의 암기는 그렇지 않았다.

‘다’ 자가 끝나는 순간 번개처럼 휘두른 그의 손에서 빛살 하나가 진소은에게로 쏘아졌던 것이었다.

티잉!

쏘아졌다고 느낀 순간 장봉에서 튕겨 난 암기를 보며 진소은은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간신히 막아 내긴 했지만 눈으로 보고 막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았어.’

진소은의 입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뭐랄까.

방금의 암기는 스스로 장봉에 와서 부딪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막았다기보단 상대가 잘못 던져 장봉을 맞춘 듯한 느낌.

어쩌면 진짜 일부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감탄하며 웃음 지었다.

“호오! 막아 냈구나. 그럼 어디.”

그렇게 말한 노인이 다시 일 장을 더 다가왔다.

진소은의 마음이 급해졌다.

더 가까워진 상태에서 암기를 막아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접근하거나 도망가는 것 또한 무리였다.

더 접근할 경우 암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도망치려는 순간 그녀의 등에 명중할 것 같았다.

‘어쩌지?’

진소은이 다급하게 생각할 때 일 장을 더 접근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가겠다.”

이번에도 ‘다’ 자가 떨어지는 순간 그의 손이 휘둘러졌다.

진소은의 눈이 순간 크게 확대됐다.

티잉!

‘응? 또 막았어?!’

“호오!”

진소은은 당황했다.

다시 암기가 날아와 장봉에 스스로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놀란 표정을 보건대 그 또한 일부러 그런 것 같지도 않건만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정말 제법이로구나.”

혈우삼노의 일인 곡무쌍은 이제 상대가 기특함을 넘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절대 받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암기를 저 어린 여아가 너무나도 쉽게 받아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저런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곡무쌍은 이번엔 한꺼번에 이 장을 걸어 진소은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육 장 정도.

이번에야말로 끝을 낼 생각이었다.

곡무쌍이 굳은 얼굴로 진소은을 보며 말했다.

“이번엔 절대로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곡무쌍은 말을 하면서도 문득 얼굴이 붉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런 어린아이에게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말이 진소은의 귀에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곡무쌍이 다가오는 동안 그녀는 지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내가 어떻게 막아 낸 거지?’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 본 결과 우연히 막아 냈다고 보기엔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등 뒤에서 날아온 암기를 막을 때도, 방금 전 두 번의 암기를 막아 냈을 때도 장봉은 마치 미리 암기가 날아올 곳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 위치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암기를 막아 낸 위치가 세 번 다 달랐었다.

‘장봉이 스스로 움직였다?’

자연곤의 경지에 도달하면 봉이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듯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직접 자연곤을 사용하는 진소은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장봉은 어디까지나 진소은의 몸과 마음으로 움직여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거의 일체화되어 있기에 남들이 볼 땐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녀의 봉은 절대 그녀의 실력 이상을 보여 줄 수 없었다.

그러니 암기를 막은 것 또한 그녀의 실력이라는 얘기였다.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실력으로 막아 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진소은은 아까 암기의 궤적을 전혀 눈으로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눈으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막아 냈다? 그럼….’

그 순간 육 장 앞까지 다가온 곡무쌍이 그녀에게 말했다.

“끝이다!”

화아악!

그가 팔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진소은은 문득 눈을 감아 봤다.

‘눈으로 볼 수 없었다면 아마도….’

팅!

암기가 다시 장봉에 부딪쳐 튕겨 나자, 진소은은 순간 눈앞이 환해지는 듯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심안이었구나! 눈으로는 보지 못했어도 심안이 암기의 궤적을 파악하고 있었어!’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눈을 감은 그녀의 주변이 눈을 떴을 때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우진에게 심안을 배운 지는 나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하루 밤낮을 살수들과 싸우며 실전에서 한계까지 단련한 경험이 심안을 경지에 오르게 한 모양이었다.

아마 선우진이 여기까지 예상하고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이, 이런!”

곡무쌍은 이제 당황한 소리를 냈다.

눈을 감은 진소은이 이제까지 중 가장 안정된 자세로 자신의 공격을 막아 냈기 때문이었다.

이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넘어 위기감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으음.”

곡무쌍은 더 이상 거리를 좁히는 것을 망설였다.

현재 그녀와의 거리가 대략 육 장 정도(약 십팔 미터)라는 것이 문제였다.

여기서 더 다가간다면 물론 암기의 위력은 더 증가될 것이었다.

하지만 반면에 상대에게 반격의 여지를 줄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삼, 사 장 정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절정 고수에게 있어 고작 찰나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더 다가가 공격했다가 만약 실패한다면, 그다음엔 그녀의 근접 공격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초절정의 경지를 밟고서도 암기술만을 연마했던 곡무쌍은 근접전에 전혀 자신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곡무쌍이 진소은에게 더 다가가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본 한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혈우삼노의 일 노인 은신술의 대가 착화습이었다.

‘쯧, 이 노가 오늘 망신살이 단단히 뻗쳤구나.’

명색이 혈우련의 최고수 삼노라는 자가 저런 어린 아이 하나 처리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란 매우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착화습은 자신이 그녀를 처리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저런 모습을 보였으니 그의 사냥감을 빼앗았다고 화를 내지는 못할 것이 아닌가.

착화습은 원래 은신하고 있던 나무 그늘에서 벗어나 천천히 진소은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 또한 아무런 기척조차 나지 않는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착화습은 자신의 은신술이 이미 암혈향을 능가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소은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절대 발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그림자 사이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의 아래에서부터 검 하나가 쑤욱 솟아났다.

푸욱!

‘끄윽?!’

착화습은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검날에 경악했다.

누군가 자신의 눈을 피해 은신해 있었다는 사실도, 자신의 은신이 다른 이에게 감지됐다는 사실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후, 숨이 끊어진 그의 시신만이 나무 그늘 아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혈우련 최고의 전력인 혈우삼노의 첫째치고는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은신술의 싸움으로 착화습을 간단히 죽인 선우진은 계속 은신한 채 움직이며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은신술이라 해도 상대에게 감지당해서야 아무 소용이 없지.’

착화습의 은신술은 매우 훌륭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월하환검무로 강화된 선우진의 감각을 속일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또한 그의 감각도 꽤 훌륭한 편이었지만 결국 선우진의 은신을 감지해 내지는 못했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방금의 승부를 아주 간단히 결정짓게 한 것이었다.

***

같은 시각.

당황해하는 곡무쌍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자가 또 한 명 있었다.

바로 곡무쌍과 함께 걸어왔다가 그의 부탁으로 뒤로 빠져 있었던 혈우삼노의 삼 노 누산투였다.

그는 독공의 고수였다.

특히 상대에게 은밀하게 독을 뿌리는 용독이 경지에 달해 있었다.

지풍에 실어 독을 쏘는 것도 가능했고, 한 가닥 불규칙한 바람의 길을 읽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정확히 독을 실어 나르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 누산투는 가볍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풍에 실어 독을 쏠 수도 있겠지만 곡무쌍의 암기를 막을 정도의 감각을 지닌 아이라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바람의 방향이 좋으니 바람에 실어 보내야겠군.’

그는 주변에서 불규칙하게 흐르는 바람의 길을 읽고는 진소은을 향하는 한 줄기 바람을 찾아냈다.

그리고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극독을 써서 죽이면 이 노가 마음 상해할 수 있을 테니, 간단히 산공독을 쓰도록 할까?’

그렇게 생각한 그가 독주머니로 천천히 손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투툭!

갑자기 누군가 그의 등 뒤를 두드렸다.

동시에 몸도 뻣뻣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

누산투는 경악했다.

자신이 인식도 못 하는 사이 점혈당해 버린 것이었다.

이런 수준의 은신술이라면 아마 착화습이 한 짓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왜 나를?!’

누산투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의 몸이 그림자 속으로 스르르 스며들었다.

상대에 의해 강제로 은신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은밀한 곳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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