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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49화 (236/359)

249화 혈우련주

“저런 바보 같은!”

산 중턱에서 진소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혈우련주 막종기는 분노한 고함을 터트렸다.

삼노의 일인인 곡무쌍이 저런 어린 여아에게 당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대암혈향 병기로 키워 온 자들이 저런 아이에게 패해 죽다니, 저 아이가 암혈향급의 고수라도 된단 말인가? 천하삼십육성인?

막종기가 문득 육성으로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진소은이 그녀의 나이치고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혈우련 살수들의 총공격을 여태껏 버텨 낼 수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정말 그녀의 나이치고 그렇다는 얘기일 뿐이었다.

그녀에게서 천하삼십육성들과 같은 압도적인 무언가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런 결과라니, 막종기로선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분노를 토해 냈다.

“게다가! 일노와 삼노는 이노가 저렇게 될 때까지 뭘 하고 있단 말이냐?!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냐?!”

그때였다.

그의 뒤에서 문득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죽었거든.”

막종기는 너무 깜짝 놀라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부하가 은신해 있던 곳에서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

파박!

그는 황급히 앞으로 몸을 날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백의의 청년 한 명이 그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웃으며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본 막종기가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너는?!”

막종기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바로 인파랑, 선우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가 대체 어떻게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그러자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선우진이 말해 줬다.

“그 독을 쓰는 노인이 알려 주더군. 당신이 여기에 있다고.”

“뭐, 뭐라고?!”

독을 쓰는 노인이라면 분명 혈우삼노 누산투를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위치를 발설할 리가 없지 않은가.

설사 고문을 당했다 해도 혈우삼노의 일인인 그가 적에게 정보를 발설할 리가 없었다.

“그따위 거짓말을! 웃기지 마라!”

절벽 끝에 선 막종기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치는 그의 마음속에선 짙은 의혹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다면 저놈이 어떻게 여기에 있단 말인가? 설마… 진짜 그가 배신을?’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혈우련의 최고 전력이 죽은 것도 아니고 적에게 붙어 자신을 배신했다는 얘기였으니까.

하지만 막종기는 일단 그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저놈이 여기까지 와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주변에 부하들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그사이에 다 죽였다는 얘기겠지.’

그것은 놀라운 얘기였다.

아무리 자신이 이노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이 거리까지 다가오며 부하들을 죽이는 것을 최상급 살수인 자신이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막종기가 생각하기에 그 사실이 말해 주는 정답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은신한 상태로 부하들을 죽이며 온 것이겠지. 이게 가능했다는 건 놈의 은신술이 정말 암혈향급이었다는 얘기로구나!’

속으로 탄식한 막종기는 문득 자신의 발 바로 뒤에 위치한 절벽을 힐끗 바라보았다.

한 발자국만 더 뒤로 가면 저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질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종기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게 그가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절벽이 무척 높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 저놈과 싸우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아래쪽엔 자신의 부하들이 또한 매복하고 있지 않았던가.

마음을 결정한 막종기는 선우진을 향해 씹어뱉듯 말했다.

“혈우련의 저력이 고작 이 정도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러곤 선우진의 대꾸를 듣지도 않고 바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버렸다.

화악!

천근추를 써 중량을 높인 막종기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가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방심하지 않고 절벽 위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놈이 자신을 따라오거나 아니면 위에서 공격하기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려다본 절벽 위의 선우진은 자신을 따라 내려오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낀 채 물끄러미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자신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방심한 것인가?’

저런 놈이 방심을 한다는 게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만 준다면야 막종기로선 그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어느새 절벽 아래의 땅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막종기는 서둘러 경신술로 몸을 가볍게 하고는 몸을 회전시켜 급히 낙하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어느새 부피에 비해 중량이 확 줄어든 그의 몸이 공기 저항을 받아 급격히 감속하며 마침내 절벽 아래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타닥!

그가 방금 보여 준 경신술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벽의 높이가 워낙 높았기에 그가 떨어지며 받은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땅을 밟은 그는 바로 다리를 굽히고 앞으로 몸을 굴려 충격을 흡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낙하한 지점 주변에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막종기는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미처 낙법을 수행하지 못했기에 낙하로 인한 충격이 다리에 고스란히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다리와 허리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막종기는 거기에 신경을 쓰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마치 그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를 둘러싸고 서 있는 이들, 모두 검수로 보이는 다섯 명 주변으로 수많은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모두 혈우련의 살수들, 부하들의 시신이었다.

막종기는 황급히 주변을 살펴봤다.

저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부하들을 죽인 걸 보면 자신의 적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너희는 누구냐?!”

막종기가 그들을 향해 물었다.

대답을 들으려 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주의를 끌어 틈을 만들어 보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 다섯 명은 그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저 무표정하게 검을 들어 그에게 겨눌 뿐이었다.

‘틀렸군.’

막종기는 말로 이들을 흔들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아무래도 힘으로 뚫고 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문득 힐끗 위를 보자, 멀리 절벽 위에서 선우진이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그가 내려오기 전에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아무래도 뚫고 나가야겠군. 다행히 이들은 기껏해야 절정 정도로 보이니 아무리 다섯 명이라도….’

막종기는 더 기다리지 않고 사방으로 암기를 뿌렸다.

휘리리리릭!

그러곤 다섯 명 중 여인이 있는 쪽을 향해 돌진했다.

가장 약해 보이는 여인 쪽으로 최대한 빨리 뚫고 나갈 생각이었다.

혈우련주 막종기의 독문병기인 투명한 유리 검이 여인, 육합검수 운영의 몸을 꿰뚫을 듯 찔러 가고 있었다.

쉬이이익!

그러자 운영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제자리에서 방어하기보단 뒤로 물러서려는 모양이었다.

막종기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저 여인이 비킨다면 굳이 계속 공격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 틈으로 바로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운영이 뒤로 물러나자 막종기의 양옆에서 다른 두 명의 검이 찔러 오고 있었다.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자연스러운 합격술이었다.

“!”

선우진은 절벽 위에서 팔짱을 낀 채 막종기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문득 묵랑이 그에게 말했다.

- 살수들 주제에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 저리 많다니, 과연 천하제일의 살수 집단을 자부할 만도 하군.

그의 말에 선우진도 빙그레 웃으며 동의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젠 천하제일이 아닌, 천하제일이었던 살수 집단이 되어 버리겠군요.’

막종기는 분명 초절정의 무인이었다.

하지만 살수이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초절정 고수들만큼의 근접전 능력을 갖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니 그런 그의 능력으로 귀멸육합검진을 감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푸푹!

절벽 아래로 막종기의 등이 두 자루의 검에 꿰뚫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금세 승부가 결정되고 만 것이었다.

이어서 운영의 검에 베인 그의 머리가 깔끔하게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본 선우진은 문득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진소은의 싸움을 바라봤다.

그러자 하루 전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 진소은이 혈우련의 살수들을 학살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살수들이 불쌍하게 보일 정도였다.

선우진이 문득 묵랑에게 말했다.

‘진 소저의 성장은 정말 대단하군요.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진가장에서 천하제일인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묵랑이 웃으며 대답했다.

- 이제 알에서 깬 병아리가 무엇으로 자라날지 어찌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 절기를 이을 자네가 그런 말을 해서야 쓰겠는가?

그 말에 선우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아직 이을 수 있을지 결정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넘어야 할 산들이 아직 많으니까요.’

문득 시선을 저 멀리로 던지자 숲 너머로 푸른 수평선이 살짝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저곳이 바로 광동성 산두, 광동성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항구이자 복건성과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바로 남해마경 만학숭의 본거지인 대남도가 위치한 복건성과 말이다.

그러니 대남도로 가기 위해서는 저기서 배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었다.

그리고 선우진의 행로를 주목하고 있는 다른 모든 이들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해남마검 진태도도, 형산파도 말이다.

선우진이 문득 중얼거렸다.

“해남마검 진태도. 그를 드디어 만나게 되겠군요.”

이제 인파랑을 위한 복수극도 종장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

일각쯤 전.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선우진에게 점혈 당해 붙잡혀 버린 혈우삼노의 삼노 누산투는 외딴곳으로 끌려와 선우진에게 심문을 당하게 됐다.

선우진은 그에게 다짜고짜 분근착골술 십 단계를 시전했다.

그러자 온몸의 뼈와 근육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이 그를 덮쳐 왔다.

“으으으으읍!”

끔찍한 고통에 누산투가 전신을 푸들푸들 떨고 있을 때였다.

선우진이 문득 그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아마 혈우련에서 가장 강한 전력이겠지. 당신들까지 왔다는 건 혈우련주도 근처에 있다는 얘긴가?”

그의 질문에 누산투는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코웃음을 쳤다.

이따위 고통으로 자신을 고문해 정보를 캐내려 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혈우련의 살수, 그것도 삼노인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딴 생각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놈은 자신을 고문해 정보를 캐내겠다면서도, 말을 할 수 있도록 아혈을 풀어 주는 것조차 잊고 있는 듯했다.

분명 고문이란 걸 해 본 적도 없는 풋내기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누산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선우진이 갑자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역시 그랬군. 그럼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누산투는 고통에 정신이 희미해져 오는 가운데서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신은 아무 말도 한 적이 없건만 대체 뭘 듣고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선우진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주변 지형을 주욱 살피더니만 이렇게 물었던 것이었다.

“아마 이쪽을 지켜볼 수 있는 곳에 있을 테니까… 저 산 위인가?”

선우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혈우련주가 있는 곳과 반대편의 산이었다.

하지만 누산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무 반응도 말이다.

그런데 그때 선우진이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흐음, 저긴 아니란 말이지? 그럼 저긴가? 아, 저기도 아니라고? 그럼 저기?”

누산투는 이제 이자가 미친 게 아닐까, 라는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선우진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긴가? 아, 저기였군.”

그가 그렇게 말하며 가리킨 곳은 정확히 혈우련주가 있는 산이었다.

누산투는 고통 속에서도 경악하고 말았다.

게다가 선우진의 질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저 산의 어디쯤이지? 정상인가? 아, 아니군. 그럼 중턱? 호오, 중턱이라. 혹시 저기 보이는 동굴이 있는 곳인가?”

누산투는 그가 그 질문을 한 후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 빙긋이 웃는 것을 보며 그제야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이놈, 설마 내 마음을 읽는…?’

정확히는 질문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누산투의 반응을 묵랑이 확인해 준 것이었지만, 그로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분근착골술을 당하고 있었기에 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놈의 질문에 아무런 생각도 떠올리지 말았어야…!’

누산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선우진은 미련 없이 그의 사혈을 눌러 버렸다.

혈우련 최강의 전력이라는 혈우삼노의 셋째, 누산투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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