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마검 대 마군
청포마군 효치곤은 뱃머리의 갑판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전방을 바라봤다.
그들이 출발하자 주변의 배들이 서둘러 그들의 진로를 피해 멀어지고 있었다.
마경의 깃발을 달고 있는 그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효치곤은 그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선실에 있을 인파랑이라는 놈을 생각했다.
‘어린놈이 제법이군.’
효치곤은 사실 마경이 형산파의 제안을 무시하고 인파랑에게 손을 내민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형산파 정도라면 충분히 복건용가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을 대남도에서 꺼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대두목의 말처럼 해남도로 이사를 가야 할 필요도 없겠지.’
그래서 효치곤은 어떻게든 인파랑이란 놈을 도발해 문제를 일으켜 볼 생각을 했었다.
놈이 먼저 문제를 일으키면 망설임 없이 죽여 버릴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놈은 자신의 도발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었다.
발끈하지도, 그렇다고 겁을 먹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제가 호랑이 새끼인지 고양이 새끼인지는 마경께서 판단하실 일인 것 같군요.’
효치곤에게 있어 그 말은 꼭 이런 뜻으로 들렸었다.
어차피 결정권자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 헛힘 빼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
효치곤은 놈이 자신의 의도를 꿰뚫어 봤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에게 의사를 전달한 것이었다.
자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의사를….
어쩐지 한 방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쳇, 건방진 놈.’
그가 전방으로 넓게 펼쳐진 푸른 수평선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들의 진로에 다른 배들이 끼어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음?”
효치곤은 눈을 꿈틀했다.
마경의 깃발을 단 그들의 진로에 다른 배들이 끼어드는 상황은 좀처럼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의 뒤에 선 부하가 소리쳤다.
“두목! 포위당하고 있습니다!”
포위?
그 말에 효치곤이 문득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전방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배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채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마침내 분노를 터트렸다.
“누가 감히 우리를 포위한단 말이냐?!”
그때 효치곤의 눈에 문득 전방을 막아서고 있던 배의 뒤에서 검은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그가 익히 알고 있는 배였다.
“저건!”
“흐, 흑룡함! 해남파 놈들입니다! 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흑룡함.
해남파 해전대의 최정예 함정인 흑룡함이었다.
효치곤은 문득 자신의 배를 둘러싼 삼십여 척의 배들을 급히 둘러봤다.
그러자 그것들 중 흑룡함이 무려 일곱 척이나 섞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마침내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놈들, 우리가 인파랑을 데리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구나.”
***
효치곤의 배를 포위한 흑룡함들 중에서도 가장 큰 흑룡대함.
그곳의 갑판에 선 해남파 장문인 해남마검 진태도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고마운 일이지. 그놈을 직접 잡아다 바다 위에서 건네주기까지 하다니 말이야. 그 보답으로 뭘 해 줘야만 할까?”
그들이 산두항에 도착했던 시기는 청포마군 효치곤이 산두에 도착한 바로 직후였다.
덕분에 진태도는 효치곤의 존재를 상대보다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그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하던 진태도는 그냥 그들이 인파랑을 먼저 찾아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자신들이 인파랑을 찾으면 도망가려 하겠지만 효치곤이 그를 찾아 합류하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렇게 말이지.”
진태도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어떻게든 방향을 틀어 포위망에서 벗어나려 하는 효치곤의 배를 지켜봤다.
배의 선수에 선 효치곤이 악을 쓰며 배의 선원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선수를 오른쪽으로 틀어라! 그쪽이 가장 포위망이 얇다! 당장 포격을 준비해! 무인들은 모두 전투를 준비하라!”
효치곤의 명령에 따라 배는 부드럽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쪽 방향에도 다섯 척의 배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검은색 흑룡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효치곤이 그쪽이 가장 포위망이 얇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쪽도 흑룡함이 없을 뿐, 해전대의 정예들임에는 차이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근접한 배가 선수를 돌려 옆구리를 보이고 있었다.
포격을 가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청포마군 효치곤은 그들이 포격을 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적의 배가 완전히 측면으로 돌아가기 전 그가 먼저 적들을 향해 튀어 나갔던 것이었다.
“이햐아아압!”
찻! 찻!
번개처럼 튀어 나간 청포마군의 신형이 파도를 두 번 밟고는 해전대함의 상공 위로 높이 뛰어올랐다.
그의 신위를 목격한 해전대 무사들이 하늘 위로 고개를 쳐들고는 경호성을 울렸다.
“적이다!”
“청포마군이다! 조심해!”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대남사흉 청포마군의 공격을 막기엔 너무 늦은 것이었다.
등에 메고 있던 언월도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던 효치곤이 배로 떨어지기도 전에 그것을 광폭하게 그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흐아아아아압!”
촤아아아아악!
언월도에서 이 장 가까이 뻗어 나간 거대한 도강이 해전대 무사들과 발사를 준비하고 있던 대포, 심지어 그들이 서 있던 갑판까지도 광폭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일반 무사들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은 일격이었다.
“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무사들의 몸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효치곤은 이미 갑판 위의 다른 무사들을 향해 언월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푸하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대남사흉의 일인 청포마군 효치곤의 앞에서 절정과 일류 무사들의 차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해전대함 한 척의 병력이 전멸해 가고 있었다.
그사이 효치곤의 선박은 부드럽게 그 배의 옆을 지나쳐 가는 중이었다.
자신의 배가 무사히 옆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본 효치곤은 마지막으로 선실의 입구를 향해 강환을 날렸다.
슈하악!
콰아아앙!
그는 선실이 박살 나는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다음 배를 향해 튀어 나갔다.
파박!
이런 식으로 두세 척의 배만 처리할 수 있다면 그사이 자신의 배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촤악!
수면 위를 스치는 갈매기처럼 파도를 한 번 밟은 그의 신형이 다음 배의 상공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이제 두 척!”
그러곤 다시 언월도를 내리치기 위해 하늘 위로 높이 끌어올렸을 때였다.
갑자기 엄청난 속도의 강환 하나가 그의 뒤를 덮쳤다.
슈하악!
“!”
깜짝 놀란 효치곤은 황급히 언월도의 방향을 돌려 강환을 향해 휘둘렀다.
부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크윽!”
강력한 충격에 손이 저려 왔다.
엄청난 위력의 강환, 이걸 날린 자는 절대 자신의 하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갑판 위에 떨어져 내린 효치곤은 자신에게 강환을 날린 자의 정체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을 든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 한 명이 빙긋이 웃으며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바람에 날리듯 부드럽게, 그리고 천천히 하늘을 날아 다가오고 있는 자의 얼굴은 그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효치곤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씹어뱉었다.
“진태도! 이놈!”
그러자 진태도가 깃털처럼 천천히 갑판을 향해 내려서며 대답했다.
“오랜만이로군, 청포마군. 칠 년 만이던가?”
효치곤은 이를 악물었다.
설마 했는데 진태도 이자가 직접 온 것이었다니, 최악의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비록 평상시에 쉽게 무력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가 천하삼십육성에 걸맞은 무력을 지닌 자임을 이미 칠 년 전에 붙어 봤던 효치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가 알기로 마경의 패거리 중 만학숭을 제외하고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진태도가 그를 향해 산보하듯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네. 그리고 나 대신 그놈을 데려와 준 건 더욱 고맙군. 그러니… 고통 없이 보내 주겠네.”
그 말을 들은 효치곤은 이를 세게 악물었다.
아무리 상대가 진태도라 해도 이런 취급을 당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또한 남해를 주름잡는 마두 청포마군 효치곤이었으니까.
“건방진 놈! 오만이 하늘에 닿았…!”
하지만 악을 쓰던 효치곤은 문득 그를 덮친 섬뜩한 느낌에 황급히 언월도를 휘돌려야 했다.
휘리릭!
쩡!
그러자 진태도의 검격이 그의 언월도에 튕겨 나갔다. 거의 본능적으로 방어한 일격이었다.
효치곤은 간신히 막아 낸 공격에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초고속의 찌르기.
진태도를 해남마검이라고 불리게 만든 해남진가의 쾌검이 방금 그의 눈앞에서 펼쳐졌던 것이었다.
진태도가 감탄한 표정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호오! 그걸 막아 내다니, 역시 청포마군, 대단하군!”
자신의 검격 한 번을 막아 냈다고 감탄하다니, 오만하기 그지없는 언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효치곤은 차마 그 말에 반박하지도 못한 채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거리가 더 좁혀질 경우 날아올 진태도의 쾌검을 반응해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칠 년 전에도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빨라졌…!’
쩡! 쩡!
뒤로 물러서던 효치곤은 또 갑작스러운 두 번의 검격을 간신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자 진태도가 다시 환하게 웃으며 감탄했다.
“오오! 이것도 막아 냈단 말이지? 그럼 어디….”
쩌쩌쩡!
“크윽!”
효치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삼연격을 간신히 막아 냈다.
하지만 이게 자신이 막아 낸 것인지 언월도 위로 놈이 검을 찌른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은 거의 반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진태도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다시 말하고 있었다.
“오호! 이것도? 그럼 어디….”
그러자 효치곤의 마음이 급해졌다.
놈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반응하기 힘들 만큼 빨랐던 놈의 검격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여기서 더 빨라진다면 도저히 반응해 낼 자신이 없었다.
효치곤은 결국 마지막 발악을 해 보기로 했다.
이대로 수비만 하고 있다간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죽을 것 같았다.
“으하아아아압!”
효치곤이 기합을 내지르며 진태도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온몸에서 푸른 호신강기가 화악 방출되고 있었다.
효치곤의 생각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호신강기로 놈의 공격을 받아 내며 검의 간격 안쪽으로 들어가 보려는 것이었다.
‘놈의 찌르기는 빠르긴 하지만 가볍다. 그러니 놈의 검격 안쪽으로 들어가 육박전으로 끌고 갈 수만 있다면!’
그건 분명히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또한 칠 년 전 진태도를 이미 겪어 봤던 효치곤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진태도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기합이 터져 나왔다.
“하아아압!”
진룡검법 구 초.
맹룡관해.
슈하아아악!
해남진가의 비전 검법인 진룡검법의 마지막 초식.
바다를 관통하는 맹룡의 검격이었다.
푸우우욱!
효치곤은 경악했다.
짙은 청색의 검강을 뿜어내는 놈의 검이 어느새 자신의 호신강기와 몸까지도 관통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로선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던 초고속의 검격이었다.
“이럴…. 쿨럭!”
효치곤의 입에서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왔다.
굵은 기둥에 관통된 듯 뻥 뚫려 버린 가슴으론 한 마디조차 제대로 남길 수 없었다.
진태도는 가볍게 검을 회수하며 효치곤에게 물었다.
“어떤가? 이 검이라면 그대의 대두목 마경에게도 통할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죽은 효치곤이 거기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털썩!
진태도는 가슴이 뻥 뚫린 채 갑판에 쓰러진 효치곤의 시신을 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겐 두 가지 마음이 있다네. 마경을 절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다시 한번 만나서 이 검을 그에게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말일세. 근데 어느 쪽 마음이 더 강한지 나도 잘 모르겠다네.”
마치 오랜 친구에게 말을 하듯 부드럽게 말을 하던 진태도는 문득 고개를 돌려 효치곤의 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배에 탄 모든 무인들이 넋이 나간 얼굴로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타닥!
진태도는 가볍게 몸을 날려 효치곤의 배로 건너갔다.
그러고는 배의 무인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나를 인파랑이란 아이에게로 좀 안내해 주겠나?”
그의 말에 효치곤의 부하들이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두목인 청포마군을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자에게 반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진태도는 효치곤의 부하들이 해 주는 안내를 받으며 인파랑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드디어 오랜 악연의 끝을 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