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뜻밖의 조우
“이, 이쪽입니다.”
“고맙네.”
진태도는 효치곤의 부하들에게 안내를 받아 선우진이 들어간 선실 앞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유 있는 표정과 걸음걸이로 선실 앞까지 온 진태도의 표정은 선실 앞에 도착한 후 싹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 방이라고?”
“예, 예. 그, 그렇습니다.”
진태도는 문이 닫힌 선실을 굳은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 그대로 발검했다.
촤아아아악!
콰지지지직!
“허억?!”
진태도의 일 검에 선실 문을 포함한 벽이 길게 찢겨 나갔다.
하지만 그 틈으로 보이는 선실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선우진은 물론 진소은도….
그들이 이미 도망친 것이었다.
그러자 진태도를 선실로 안내해 줬던 마경의 부하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부, 분명히 여기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머리 짧은 계집과 둘이서 이 방에 얌전히 있었는데….”
진태도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이내 다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밖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얌전히 선실에서 기다릴 만큼 멍청한 놈이었다면 이미 죽었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빠져나갔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이 좁은 배에서 빠져나가 봐야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 주변은 온통 바다이고 더구나 자신의 함대가 쫙 깔려 있는 상태인데 말이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릴 뿐 어차피 주머니 속에 들어온 물건일 뿐이었다.
진태도가 그런 생각을 하며 빙긋이 웃음 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콰지지지지직!
“으아아아악!”
“살려 줘!”
큰 소리는 아니었다.
진태도 정도의 고수가 아니었다면 듣지 못했을 만큼 작은 소리,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음?”
진태도는 의아한 생각에 바로 갑판 위로 올라가 봤다.
그러자 그는 목격할 수 있었다.
해전대의 배들 중 해안가 방향을 포위하고 있던 배 네 척이 두 동강으로 쪼개진 채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모습을….
그 배들에 타고 있던 부하들이 바다로 떨어지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무슨?!”
진태도가 눈을 부릅떴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효치곤의 배가 탈출하기 위해 바다 쪽으로 돌진했었기에 지금 진태도가 있는 곳은 바다 먼 쪽 끝.
반면에 배들이 침몰하고 있는 곳은 이곳에서 수십 장 밖의 거리에 위치한 항구 쪽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또 한 척의 배가 굉음과 함께 쪼개졌다.
항구에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배였다.
콰지지지지지직!
“!”
그러자 초절정의 경지에 달한 진태도의 좋은 눈은 곧 발견할 수 있었다.
기울어져 가는 배 위에 서 있는 백의 청년의 모습을.
바로 선우진이었다.
“인파랑?!”
그 순간 천천히 뒤를 돌아본 선우진과 진태도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선우진은 빙긋이 웃고는 내공을 실어 진태도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 진태도! 싸우는 모습은 잘 봤다! 멋진 쾌검이더구나! 하지만…. 머리는 검만큼 빠르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그렇게 말한 선우진은 입꼬리를 올려 그를 비웃고 있었다.
그리고 진태도는 그 표정을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선우진은 처음 효치곤의 배를 타자마자 은신술로 모습을 감추고는 배에서 내렸었다.
애초에 선우진이 기다렸던 게 효치곤이 아닌 진태도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진태도가 올 것을 예상하고 지켜보던 선우진은, 진태도의 배들이 생각보다 훨씬 항구에 가까운 곳에서 포위망을 형성한 것을 보고는 오히려 바다를 건너와 가까이에 있던 진태도의 배들을 부쉈던 것이었다.
지금 진태도와의 거리는 수십 장.
게다가 바다 위였다.
아무리 그가 천하삼십육성에 속하는 고수라 해도 이곳까지 날아와 선우진을 추격하기엔 무리였다.
선우진은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겨 주고는 육지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 반가웠다, 진태도. 내게 볼 일이 있다면 한번 쫓아와 보도록!
그리고 막 육지를 향해 몸을 날리려 할 때였다.
진태도가 소리쳤다.
- 멈춰라! 지금 가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후회라….
별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선우진은 일단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진태도는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잡아먹을 듯 선우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멀리 있는 자신의 기함 흑룡대함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 그년을 데려와라!
‘그년?’
그의 말을 들은 선우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리고 잠시 후, 선우진은 자신의 불길한 느낌이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태도의 부하들이 흑룡대함의 갑판으로 데리고 나온 사람이 바로 묘아란이기 때문이었다.
해남묘가 가주 묘청주의 딸 묘아란, 진태도의 시선을 끌어 주겠다고 말했던 그녀가 구속된 채 흑룡대함의 갑판에 끌려 나와 있었다.
선우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런…. 다 발각된 건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녀를 구속한 이유가 자신에게 협조한 사실을 놈이 깨달았기 때문이라면, 몰래 해남도로 돌아간 사람들 또한 다들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일단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선우진은 냉정을 가장한 채 진태도를 향해 다시 소리쳤다.
- 내 원수의 딸이로군! 설마 후회할 거라고 말했던 게 저 여자 때문이었나?! 어이가 없군!
그렇게 말한 선우진은 다시 몸을 돌리려 했다.
아니, 그런 척을 했다.
그러자 진태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원수의 딸이 아니라 네 정혼자겠지! 그래서 모두를 다 죽였음에도 저년만큼은 살려 준 것이 아니더냐?! 상관없다고?! 그렇다면 좋다! 네놈이 그 배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저년의 목을 베겠다! 원수의 딸이니 상관없겠지?! 그렇지 않으냐?!
그의 말을 들으며 선우진은 살짝 안도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모든 걸 파악했기에 그녀를 구속한 것은 아닌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자신이 그녀를 죽이지 않은 이유를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유추하고는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협조한다는 사람을 구속해 끌고 오다니 대단한 놈이긴 했다.
‘자, 그건 다행이긴 한데 이제 어떻게 한다?’
선우진은 멀리 보이는 묘아란의 표정을 살펴봤다.
그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문득 입을 열어 입 모양으로 뭐라고 말했다.
그 입 모양이 ‘그냥 가요’임을 선우진은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었다.
‘난감하군.’
선우진은 고민했다.
그녀 말대로 해 줄 수는 없었다.
진짜 인파랑이라면 차라리 원수의 딸이라는 생각으로 그냥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선우진은 오히려 더 그녀를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 죄도 없는 데다 자신을 위해 협조해 준 사람을 그냥 버리고 가는 건 자신의 신념에 맞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우진의 망설임을 진태도는 긍정적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그가 광소를 터트리며 소리쳤다.
- 으하하하하! 원수의 딸이라며 왜 가지 못하느냐?! 역시 저렇게 예쁜 정혼자를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는 모양이지?!
선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묘아란을 태운 흑룡대함을 제외한 진태도의 해전대함들이 아주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 들어왔다.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거리를 좁히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진태도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 그거 아느냐? 네 정혼자가 현재 해남제일미인이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럴 만도 하지! 저렇게 아름다운 외모에 지혜와 무공까지 갖췄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사실 나도 가끔 네가 부럽더구나! 아마 주변 시선을 신경 쓸 입장만 아니었다면 이미 내가 그녀를 취했을 것이다!
진태도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선우진의 신경을 돌리려는 시도임에 분명했다.
반면 선우진은 아직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미 묘아란에 대한 마음을 어렵지 않게 결정한 후였다.
‘그녀를 저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선우진의 두 번째 삶을 관통하는 신념이었다.
그러니 그녀를 냉정하게 버릴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여전히 문제였다.
‘거리가 너무 멀어. 바다 위를 달려 저기까지 닿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설사 도착한다 해도 나보단 진태도와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깝다. 게다가 쫙 깔린 배들에 타고 있는 건 모두가 놈의 부하. 내가 얌전히 그녀를 데려가도록 내버려 둘 리가 없겠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그냥 여기서 도망가 버린다면 너무도 간단한 일이겠지만, 그녀를 구하겠다고 결정한 이상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선우진의 눈이 살짝 움찔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여전히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진태도를 향해 소리쳤다.
- 진태도! 네 아들의 생사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 말은 쉴 새 없이 말을 걸고 있던 진태도의 입을 순간 다물게 하고야 말았다.
이번엔 진태도의 얼굴이 확 굳어진 상태였다.
그가 잠시 선우진을 노려보다 대답했다.
- 내겐 아들이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공식적으로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진태도는 아직 정식으로 혼인을 하지도 않았고 혼외자 중에서도 아들은 없었으니까.
여기저기 방탕하게 씨를 뿌리기는 했으나 그렇게 나온 자식들도 다 딸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소리쳤다.
- 아, 그런가?! 그럼 백교방에 있던 혈해마도 윤삭의 아이가 네 아들이 아니란 말이로군?!
그 말에 진태도의 얼굴이 완전히 확 일그러졌다.
설마 했던 말을 놈이 실제로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저놈이 어떻게?’
그러자 선우진이 계속해서 비웃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내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궁금한가?! 백교방을 칠 때 윤삭의 여인이 직접 말해 주더군! 자신의 아들은 혈해마도 윤삭이 아닌 해남파 장문인 진태도의 자식이니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이런!’
그 말을 들은 진태도는 대강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숨을 위협받은 그녀는 그들이 윤삭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팔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 놀라운 일이 아닌가?! 원수를 갚기 위해 원수의 부하를 쳤는데 거기서 원수의 자식까지 딸려 나오다니 말이다! 솔직히 진심으로 감탄했었다! 자신의 심복에게마저 제 자식을 밴 여인을 보내다니! 진태도! 너는 정말 대단한 놈이다!
으드득!
진태도가 이를 갈았다.
그 사실을 자신의 부하들 앞에서 저렇게 떠들어 대다니. 할 수만 있다면 놈을 뼈째로 씹어 먹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태도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놈이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배가 계속 전진해서 놈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자기 말에 취해 있는 동안 거리를 더 좁힐 수 있다면, 놈을 씹어 먹는 것도 곧 가능해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선우진이 비릿한 웃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 자 묻겠다, 진태도! 내가 그녀와 그 아이를 어떻게 했을까?! 내 원수의 자식인 그 아이를 말이다!
진태도는 다시 한번 이가 부서지도록 갈았다.
뿌드득!
진태도는 혼인은 하지 않았지만 방탕한 생활을 하며 이곳저곳에 자신의 씨를 뿌려 놓았었다.
그중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 아이를 데려다가 키울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뿌린 씨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딸들뿐이었다.
그런데 그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얻은 아들이 하필 그가 윤삭에게 보냈던 그녀에게서 태어났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되찾아 올 수도 없는 상황에 진태도 또한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그 아이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거였는데, 하필 그 아이가 저 인파랑의 손에 들어가 버렸던 것이었다.
진태도는 아마도 놈이 그 아이를 죽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었다면 절대 살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선우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생각과는 좀 다른 말이었다.
- 너라면 당장 죽였겠지! 하지만 나는 너와 같은 짐승이 될 생각은 없거든! 갓난아기나 죽이는 인간쓰레기가 말이다!
그 말에 진태도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뭐라고?!
저 말은 아마도 그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인 것 같았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진태도의 유일한 아들이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었다.
진태도가 눈을 크게 뜨고 선우진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문득 자신을 향해 접근한 배들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던 선우진이 씨익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 자, 그럼 그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얘기해 보도록 하자고!
그렇게 말한 선우진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진태도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 멈춰라! 그대로 가면 너의 정혼자가…!
그때였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진태도의 뒤쪽, 묘아란을 붙잡고 있던 흑룡대함 쪽에서였다.
“뭐, 뭣?!”
깜짝 놀란 진태도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볼 수 있었다.
흑룡대함 위에 타고 있던 자신의 부하들이 누군가에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저, 저놈은?!”
진태도는 경악했다.
자신의 부하들을 학살하고 았는 자가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익히 들어왔던 자의 모습이었다.
거지나 다름없는 누더기 같은 옷차림, 봉두난발에 수염투성이 얼굴, 그리고 그런 행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백색의 검.
“하아압!”
그가 검을 휘두르자 하얀 한기와 함께 그를 둘러싼 채 합공하려던 진태도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얼어붙고 있었다.
지독한 빙공이었다.
마치 전설 속의 북해빙궁이 떠오를 정도의….
진태도가 씹어뱉듯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백랑… 검개? 놈이 어떻게?”
그는 바로 백랑검개였다.
어느 날 갑자기 늑대 머리가 장식된 순백의 검을 들고 나타나 듣도 보도 못한 빙공으로 해전대함 몇 척을 부숴 버렸던.
하지만 그가 여기 어떻게 나타난 건지, 그가 인파랑과 대체 무슨 관계인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가 하려는 짓이었다.
진태도가 버럭 소리쳤다.
- 쳐라! 놈을 죽일 수 없다면 그년이라도 쳐!
진태도의 명령에 묘아란의 바로 옆에 있던 해전대원이 문득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는 그녀를 향해 검을 찔렀다.
슈하악!
“아아악!”
죽음을 예감한 묘아란이 질끈 눈을 감으며 비명을 질렀다.
푸하악!
“크아악!”
결론적으로 묘아란을 죽이려던 해전대원의 시도는 절반만 성공했다.
백랑검개의 검환이 그의 머리를 날려 버리며 검이 묘아란의 가슴이 아닌 배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푸욱!
“아윽!”
배를 관통한 검에 묘아란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려 할 때였다.
마침내 그녀에게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한 백랑검개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아압!”
슈하악!
그가 바다로 뛰어들며 검을 펼치자 순식간에 바닷물이 얼어붙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묘아란을 구한 백랑검개는 그 얼어붙은 바다를 달려 옆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진태도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이 바보 같은 놈들!”
그 순간, 그의 귀에 다시 선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럼 잘 있어라, 진태도!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산두 항구 위로 올라간 선우진이 그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짧은 머리 계집과 함께 곧 몸을 돌려 육지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태도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노호성을 터트렸다.
“이노옴!”
그가 미치도록 죽이고 싶었던 인파랑과, 그 인파랑을 잡기 위해 데려온 묘아란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
선우진은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소은과 합류한 후 바람처럼 달려 산두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진태도의 배들이 항구로 오기 전에 종적을 감춰야만 했다.
그때 그의 옆에서 달리던 진소은이 선우진에게 물었다.
“선우 공자! 아까 그 사람은 누구예요?!”
그녀의 질문에 선우진이 달리며 대답했다.
“백랑검개라는 자인 것 같습니다! 최근 갑자기 나타나 해남파의 만행을 저지하고 있다는 협객이지요!”
“백랑검개?! 그와 원래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던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아까 갑자기 전음으로 제게 말을 걸더군요! 아마 저희 소문을 듣고 산두로 왔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산두에서 마경과 접촉할 것 같다는 소문은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상태니까요!”
“아아!”
진소은에게 대답해 주며 선우진은 아까 갑자기 들려왔던 그의 전음을 떠올렸다.
아까 묘아란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귓가에 한 가닥 전음이 들려왔었다.
- 너, 혹시 선우진인가?
그 전음에 선우진은 그야말로 경악했었다.
전음의 내용도, 그리고 그 목소리도 이곳에서 들을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목소리, 백랑검개가 정말 그일까? 그가 맞다면 대체 어떻게….’
속으로 생각하던 선우진이 진소은에게 말했다.
“그와는 이곳에서 약간 떨어진 조주의 봉황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어서 가 보도록 하죠!”
“네!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