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백랑검개의 정체
광동성 조주.
선우진과 진소은은 바람처럼 달려 산두항의 북동쪽에 위치한 조주의 봉황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소은은 이곳에 오는 내내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선우진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진태도가 저희를 쫓아올 수는 없겠죠? 그리고 이제부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러자 선우진은 그녀에게 빙긋이 웃어 주며 대답했다.
“현실적으로 추격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도주했으니까요. 딱히 흔적을 남기지도 않았으니 추종향이라도 묻혀 놓지 않은 이상 따라올 방법이 없겠죠. 그리고 우리는 복건성 운소항 쪽으로 갈 겁니다. 그곳으로 가면 아마….”
선우진은 거기까지 말하다 말고 문득 남쪽 방향을 바라봤다.
진소은이 그쪽에서부터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낀 건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쉬이이이익!
잠시 후 누군가 숲 사이를 바람처럼 달려 다가왔다.
나이를 알 수 없는 봉두난발의 수염투성이 얼굴과 누더기 같은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순백의 설랑검, 바로 백랑검개였다.
그가 축 늘어진 묘아란을 업고 두 사람의 앞에 가볍게 착지했다.
선우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선우진의 눈을 피하고는 묘아란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다행히 심장을 꿰뚫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중상이다. 배의 내장 쪽을 다쳤어. 시간을 두고 잘 치료해 줘야만 할 것 같다.”
그의 말대로 묘아란의 상태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녀를 힐끗 바라본 후 백랑검개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마유겸 조장?”
그랬다.
그는 마유겸이었다.
점창파의 전 장문인 마원웅의 아들이자 혈마 전무광의 외손자인 마유겸.
당여은에게 암시를 걸고 그녀를 범하려다 실패해 비룡십삼대에서 도주했던 사 조의 조장 마유겸 말이다.
그가 거지꼴을 한 채 설랑검을 들고 이곳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마유겸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장이라….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로군. 하필 선우진 너를 다시 만나 그 호칭을 다시 듣게 될 줄이야.”
***
잠시 후 네 사람은 봉황산에 중턱에 위치한 외딴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묘아란의 상태 때문에라도 편히 쉴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작게 모닥불을 펴 온도를 높이고 묘아란의 상처를 응급으로 처치한 이후에야 선우진은 마유겸으로부터 지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유겸은 공허한 눈빛으로 모닥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와 그녀의 앞에서 도망친 후, 나는 문득 내가 미친 짓을 했다는 것과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게 내가 익혔던 혈교의 비기들 때문이란 것도….”
선우진은 묵묵히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그때의 마유겸이 혈교의 기술들을 익혀 정신이 망가졌을 거란 건 당시에도 익히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 전까지의 그는 오만하긴 했어도 나름 정도를 지킬 줄 아는 훌륭한 비룡대의 조장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혈마가 자신의 외할아버지라는 사실과 자신의 사문인 점창파가 어머니께 저지른 악행에 큰 충격을 받은 후이기에 본인도 어쩌지 못하고 망가져 버렸으리라.
“그때… 나는 깨달았지,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비룡대의 대원으로도, 점창파의 제자로도 말이다.”
그 후, 그는 정처 없이 동쪽으로 걸었다고 했다.
어디든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공허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고 싶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자결은 또 못 하겠더군. 그래서 그저 걷기만 했지.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나온 곳이 광서성 바닷가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은 요즘 남해의 마을들이 종종 그렇듯 해남파의 해적들로부터 약탈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본 순간 마유겸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왜 자결을 할 수 없었는지를….
“나는… 최소한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으로서 죽고 싶었더군. 적어도 죽는 순간만큼은 말이지. 아마 그런 쓰레기로서 죽기엔 내 삶이 너무 억울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말한 마유겸은 다시 공허하게 웃었다.
그때 마유겸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정말 필사적으로 싸웠었다.
당시 마을을 약탈하던 해전대에는 절정 고수를 비롯한 많은 무사들이 있었고, 반면 마유겸의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목숨 따윈 전혀 아깝지 않은 것처럼, 미친 악귀처럼 싸워 결국 해적들을 물리치고 마을을 구해 낼 수 있었다.
거기까지 말한 마유겸은 문득 순백색의 설랑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으로부터 이 설랑검을 받을 수 있었다. 몇 년 전 바다에서 건진 검이라며 자신들을 구해 준 보답으로 주겠다더군.”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은 대강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진태도가 해남인가의 가주 인계운을 습격했을 때 사라졌던 백호검은, 무슨 이유에선가 겉에 씌워진 백호 장식을 파손당한 채 원래 설랑검의 모습으로 어촌 주민에게 발견됐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가 보관하고 있던 설랑검이 결국 그를 구해 준 마유겸에게로 돌아간 것이었다.
정말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마유겸은 거기까지 말한 후 입을 닫았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 후의 일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우진이 그에게 물었다.
“설랑검법을 익힌 겁니까?”
그러자 마유겸이 문득 선우진이 들고 있는 백호검을 바라보다, 다시 그의 등짐에 삐져나온 천에 쌓인 기다란 것을 보고는 말했다.
“그게 아마 묵랑검이겠지? 묵랑심법이 천마신공을 본떠 만드신 거라고 했던가?”
그것은 대답이나 다름없는 반문이었다.
묵랑심법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건 그가 설랑검의 봉인을 깼다는 얘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선우진은 마유겸이 설랑검을 얻은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우진도 묵랑검의 비밀을 풀기까지 남을 위해 세 번 목숨을 걸지 않았던가.
선우진보다 늦게 설랑검을 얻었음에도 이미 봉인을 깨고 설랑검법과 설랑심법을 익히고 있다는 건 그가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수없이 걸어 왔다는 사실을 뜻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쓸모 있는 사람으로서 죽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줬겠지.’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우진의 옆에 앉아 있던 진소은은 그런 두 사람의 무거운 분위기에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이 지나간 후 선우진이 문득 마유겸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사실 겁니까?”
그 질문에 마유겸이 피식 웃음 지으며 중얼거렸다.
“산다… 라. 질문이 잘못됐군. 뭐, 일단은 해남파와 싸울 생각이다. 그러다 혹시 진태도를 죽인 후에도 내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땐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
선우진은 질문이 잘못됐다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의 목표는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목표는 아마도 그저 쓸모 있는 사람으로서 죽는 것뿐인 모양이었다.
그 말을 이해한 선우진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마유겸이 처음으로 먼저 선우진에게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간신히 내뱉은 물음이었다.
“그녀는, 여은은… 잘 지내나?”
이름을 말하지 않은 ‘그녀’라는 호칭일 때부터 선우진은 그가 누구에 대해 묻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이유로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선우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설마 그녀에 대해 물을 줄은 몰랐군요.”
그 말을 들은 마유겸이 씁쓸하게 웃으며 선우진의 눈을 피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네.”
선우진은 그런 그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여은과 저는 혼인을 약속한 사이입니다.”
쿠쿵!
그 말은 이 자리에 앉은 모두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마유겸은 물론 진소은, 힘없이 누워 있던 묘아란까지도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선우진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상관도 하지 않은 채 분노한 눈빛으로 마유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유겸 당신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든, 얼마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건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을 더더욱 용납할 수가 없군요.”
그러자 마유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그녀와 혼인을 약속했다고?”
그렇게 묻는 그의 눈동자는 태풍을 만난 조각배처럼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
마유겸은 숲길을 정처 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머릿속이 혼란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놈이… 여은과 혼인을 약속했다고?’
마유겸은 오랫동안 고행을 하는 수도승과도 같은 삶을 살아왔었다.
늘 자신의 육신을 춥고 배고픈 상태로 방치했고, 잠시도 편안함을 추구한 적이 없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마음만은 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비룡대를 벗어난 이후 처음으로 수많은 감정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가득 채워 버렸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후회와 환멸, 그리고 선우진에 대한 살의까지도….
마유겸은 그 자리에 도저히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우진에게 그저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사당 밖으로 뛰쳐나온 참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머릿속의 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당여은이 누군가와 혼인을 약속한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녀는 얼음의 여신,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해 주지 않는 도도한 절벽 위의 꽃이었다.
그런 그녀가 누군가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것을 마유겸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나 때문인가? 내가 그때 그녀에게 암시를 걸려고 했기 때문에?’
그때 암시법은 분명히 성공했었다.
선우진에 의해 끝을 맺지 못했을 뿐 그녀는 분명 암시에 걸려들었었다.
‘암시에 걸린 그녀에게 선우진 그놈이 무슨 짓이라도 한 건가? 자신을 벗어날 수 없도록?’
사실 그건 그때 마유겸 자신이 그녀에게 하려고 했던 짓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다른 이 또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분노와 살의가 확 솟구쳐 올랐다.
‘감히 그런 짓을 그녀에게…. 그래 놓고 다른 여인과 함께 있어?’
아까 선우진과 함께 있던 짧은 머리 여인과 인파랑의 정혼자라는 묘아란의 얼굴이 떠올랐다.
둘 다 당여은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미인들이었다.
놈은 감히 당여은과 혼인을 약속했다고 말하면서 다른 여인들과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했던 마유겸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놈은, 선우진은 나와 달라. 그놈은 실력이 별로일 때부터 늘 목숨을 걸고 남들을 위해 싸워 오지 않았던가? 그놈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마유겸은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치는 살의와 분노를 제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제자리에 멈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설사 그놈이 그런 짓을 했다고 한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놈을 징치한단 말인가. 나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짙은 허무감이 다시 그의 몸과 마음을 덮쳐 왔다.
마유겸은 방금의 이 생각이 정답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선우진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무슨 짓을 했든 자신은 그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후후후.’
문득 허탈하게 웃음 지었다.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놈에게서 떠나온 건 잘한 일인 것 같았다.
자신은 그저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매는 들짐승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유겸은 더 이상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쩐지 한 걸음도 옮겨지지가 않았다.
그때였다.
휘이이익! 탁!
갑자기 그의 앞에 여섯 명의 검수가 착지했다.
마치 한 명과도 같은 통일된 움직임이었다.
“!”
마유겸은 깜짝 놀라 뒤늦게 경계 자세를 취했다.
아무리 머릿속이 어지러웠다고 해도 여섯 명이나 자신의 눈앞까지 올 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유겸은 눈앞에 내려선 자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그들은 모두 장년 이상으로 보이는 여섯 명의 노도인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최소 초절정 이상으로 보이는 엄청난 실력자들, 그리고 마유겸은 그들의 복장이 모두 흰색 무복에 청색의 영웅건으로 통일돼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형산파?!’
그랬다.
형산파의 무인들, 마유겸으로선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바로 형산파 최강의 전력인 육합검수 파천조였다.
형산파 장문인 호남제일검 위정국이 인파랑을 잡기 위해 보낸 육합검수들 중 파천조가 먼저 이곳에 도착했던 것이었다.
파천 삼 조의 조장 자성진인은 마유겸의 백랑검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늑대 장식이라. 놈은 백호가 장식된 백색의 검을 들고 있다고 했었지. 착각이었나 보군.”
그가 오만한 표정으로 마유겸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서 인파랑이라는 자를 본 적이 없는가? 백호가 장식된 순백색의 검을 들고 있고, 사내처럼 짧은 머리의 여인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했었다.”
“…인파랑?”
마유겸은 본능적으로 저들이 찾고 있는 사람이 선우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형산파와 적대하고 있다는 소문은 그도 이미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마유겸은 여섯 명의 도인을 주욱 둘러봤다.
하나같이 초절정으로 보이는 실력자들,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한 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것을 볼 때, 실력 외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선우진을 노리고 있단 말이지?’
마유겸의 얼굴에 문득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
같은 시각.
해남파 장문인인 해남마검 진태도는 해전대의 무인들 중 가장 강한 무사들 스무 명만을 데리고 선우진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쪽입니다, 장문인!”
그들은 지금 백색의 털북숭이 고양이 한 마리를 따라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너무 풍성한 털 때문에 겉에서 보기엔 그냥 털 뭉치로밖에 보이지 않는 고양이는 잠시 멈춰 냄새를 맡고는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잠시 인상을 찌푸린 진태도가 자신의 부하를 향해 물었다.
“조금 더 빠르게 갈 수는 없는 건가?”
그러자 부하가 죄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백아의 속도로는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평소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그의 대답에 한숨을 내쉰 진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대신 최대한 기척을 줄이고 가도록 하지.”
그의 마음에 드는 속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진태도는 놈들을 절대 놓칠 일이 없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지금 앞에서 냄새를 추적하고 있는 ‘백아’라는 고양이는 해남도에 살고 있는 영물인 운묘였다.
해남술가의 사람들은 머리가 사람만큼이나 영민하고 한번 맡은 냄새는 절대 놓치지 않는 운묘를 잡아 길들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운묘가 추적하고 있는 냄새는 묘아란에게 복용시켰던 천리추종향이었다.
만일에 대비해 그녀를 인파랑에게 넘겨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진태도는, 이미 음식에 섞어 몰래 천리추종향을 복용시켜 놨었던 것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 쓰일 일이 있을 줄은 몰랐군.’
백랑검개가 묘아란을 구하려 했을 때, 진태도의 부하가 그녀를 죽이지 못한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원래 그녀를 보낼 일이 생기면 그녀에게 부상을 입히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상을 입은 그녀를 데리고 갈 인파랑의 속도를 늦추기 위함이었다.
진태도는 이를 갈며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
‘인파랑,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 주마.’
선우진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가운데 해남마검 진태도와 그의 부하들이 시시각각 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