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백랑검개의 결심
당여은과 혼인을 약속했다는 선우진의 폭탄선언을 듣자 마유겸은 사당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후, 사당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선우진도, 진소은도, 부상당한 묘아란도 각자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굳게 입을 다문 상태.
특히 진소은의 안색은 부상당한 묘아란만큼이나 창백해져 있었다.
아마도 매우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선우진은 지금 그런 그녀의 상태를 눈치챌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묵랑과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선우진이 일방적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매여경 부조장을 흡정해 죽였고, 여은에게 암시를 걸어서 자신에게 종속시키려고 했습니다. 그가 했던 짓, 그리고 여은에게 하려고 했던 짓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 …맞네. 그랬었지.
‘만약 제가 없었다면 여은은 그자의 노리개가 되고 말았겠지요. 그자가 설사 진심으로 개과천선을 했다 해도 저는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선우진의 계속된 성토에 묵랑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에게 되물었다.
- 그래, 그럴 수 있네. 근데… 자네는 왜 그걸 굳이 나한테 납득시키려 하고 있는 건가?
‘…….’
그랬다.
선우진은 지금 묵랑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자기 자신한테 변명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잠시 묵랑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 선우진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사실은 선우진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지금 왜 이러고 있는지를….
지난 삶에서 마유겸의 미래를 봤고 그런 이유로 그를 증오하고 있었던 선우진은, 이번 삶에서 그의 속사정에 대해 알게 되고는 오히려 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상태였다.
그가 했던 짓, 하려고 했던 짓은 악독했지만….
그럼에도 선우진은 지난 삶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던 의문을 던질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그와 달랐을까?’
문득 그가 겪어야만 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려봤다.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던 자가 자신의 외조부였다.
그리고 그 외조부가 혈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사문의 비열한 잘못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다. 심지어 그 가해자는 자신의 아버지였고 말이다.
다시 한번 질문해 봤다.
‘나라면 그와 달랐을까? 그와 달리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었다.
전혀 자신이 없었다.
그게 누구라도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선우진은 이제 마유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용서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선우진은 마유겸이 얼마나 진심으로 점창파의 재건을 원했는지 눈앞에서 지켜봤었다.
그렇기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그의 좌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누구를 증오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 그의 절망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보다도 훨씬 짧은 시간에 설랑검의 봉인을 푼 그가 이제껏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끊임없이 죽음 속으로 뛰어들었겠지. 그것도 자신이 아닌 타인을 구하기 위해서.’
근데 그런 마유겸이 당여은을 입에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은 그를 쫓아내 버렸던 것이었다.
심지어 이번에 그에게 큰 도움을 받아 놓고도 말이다.
전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자꾸 선우진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문득 질문해 봤다.
‘그는 정말 개과천선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쉽지 않을 뿐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건 선우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지난 삶에 무기력한 돼지였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일류 최상급까지 올라갔던 선우진은 사람이 언제 변하게 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이 극에 달해 변화를 간절히 원할 때지.’
그리고 그 생각이 맞다면 마유겸만큼 그 조건에 잘 부합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선우진은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우.”
그러곤 묵랑에게 말을 전했다.
‘아무래도 그에게 가 봐야겠습니다. 다시 데려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러자 묵랑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그래, 그러게나.
마음을 결정한 선우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진소은에게 말했다.
“진 소저,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묘 소저를 좀 돌봐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진소은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했다.
“네, 네?! 아, 네. 알겠어요. 제가… 묘 소저를 돌보고 있을게요.”
그 후, 선우진은 바로 사당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유겸의 흔적을 따라 그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털북숭이 고양이 백아를 따라 묘아란의 냄새를 추적하고 있던 진태도의 부하는, 냄새를 맡던 백아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껏 백아와 함께해 온 그 부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진태도에게 보고했다.
“장문인! 놈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 모양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진태도는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제부터 속도를 늦춘다. 빨리 가기보단 조용히 가는 것에 더 신경을 쓰도록. 드디어 새끼 호랑이를 사냥할 시간이다.”
그 명령에 진태도를 따라온 스무 명의 절정 고수들은 진태도와 비슷해 보이는 웃음을 짓고는 움직임을 더 은밀하게 가져가기 시작했다.
진소은과 묘아란이 있는 사당까지의 거리는 이제 고작해야 몇십 장 정도였다.
***
형산파 최강의 전력인 육합검수 파천 삼 조의 조장 자성진인은 다시 한번 마유겸에게 물었다.
“다시 묻겠다. 인파랑이라는 자를 본 적이 있는가? 백호가 장식된 하얀 검을 들고 짧은 머리의 여인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자다.”
하지만 아까부터 큭큭거리고 웃기 시작한 마유겸은 다시 반복된 그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그저 계속해서 큭큭거리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큭큭큭! 큭큭큭큭!”
그의 이상한 반응에 자성진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행색이 심상치 않아 보이긴 했다만, 진짜 광인이었나?”
마유겸이 다 듣도록 대놓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마유겸은 자신을 광인이라 칭하는 자성진인의 말에도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화도 전혀 나지 않았다.
쓰레기에 불과한 자신을 광인이라 불러 주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쓰레기였다.
그것도 회생 불가능한 최악의 쓰레기.
방금 전 어마어마한 고수들인 저들이 선우진을 찾았을 때, 마유겸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들을 선우진에게 데려다주면 그를, 당여은의 정혼자를 없앨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후 바로 깨달았다.
자신이 정말 최악의 쓰레기라는 사실을.
‘적어도 죽을 때는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고? 크크크크! 정말 웃기는구나. 넌 정말 최고다, 마유겸! 크크크크큭!’
조금쯤은 그런 생각도 했었다.
남들을 위해 수없이 목숨을 걸었고,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던 지금의 자신은 이전의 마유겸과 전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자신이 죽는 것보단 살아 있는 편이 다른 이들에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보라.
당여은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와 버렸지 않은가?
선우진을 죽여서 당여은의 정혼자를 없애겠다는 생각을 하는 쓰레기로 말이다.
“큭큭큭큭! 와하하하하하!”
마유겸은 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미친 사람 같은 광소와 더불어 그의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유겸은 절망했다.
자신은 결국 그때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여은에게 음심을 품고 혈교의 수법으로 그녀를 손에 넣으려던 그 쓰레기에서 말이다.
그는 문득 자신의 마음속으로 사죄를 청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고작 저 같은 쓰레기를 위해 봉인을 푸시게 해서….’
- …….
마유겸은 이제 눈을 뜨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성진인을 향해 검을 뽑았다.
챙!
그리고 눈에선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채로, 입으로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형산파의 실력이 정말 소문처럼 그렇게 대단한가?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마유겸은 결국 결심한 것이었다.
더 이상 삶을 이어 가지 않기를.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야겠다. 그녀의… 정혼자를 위해. 아마 그게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일 테니까.’
“하아아압!”
설랑검을 든 마유겸이 형산파 최강의 전력, 육합검수 파천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과도 같은 처절한 몸짓이었다.
***
촤아아아악!
마유겸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기가 새하얀 한파가 되어 육합검수들을 향해 휘몰아쳐 갔다.
산두항에서 바다를 얼릴 때 사용했던 설랑검법의 일 초 북풍검파였다.
“한빙공?!”
그 일격에 놀란 표정을 지은 자성진인은 함부로 맞서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양쪽에서 두 명의 육합검수가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슈하아아악!
그러자 그들의 검기가 수십 개로 퍼져 가며 견고한 벽이 되어 한파를 막아 냈다.
두 명의 초절정 검수들이 전개한 검막이었다.
파바바박!
“!”
그 모습을 본 마유겸은 이를 악물었다.
그도 이 한번의 초식으로 승부가 날 거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막히다니.
저들의 무위가 생각보다도 더 뛰어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첫 공격이 간단히 막혔음에도 마유겸은 멈추지 않았다.
비장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돌진했다.
“하아아압!”
설랑검법 삼 초.
설랑주천.
촤아아아악!
그가 다시 검을 휘두르자 백색 늑대 두 마리가 튀어나와 검막을 전개한 두 검수를 향해 쏘아졌다.
검강을 얼음으로 된 백랑의 형태로 쏘아 내는 설랑검법의 절초였다.
“호오! 저건?!”
자성진인은 다시 한번 탄성을 내뱉었다.
단 한 번도 본 적은커녕 들은 적도 없는 위협적인 빙검공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탄성은 그저 신기한 것을 봤다는 감탄에 불과했다.
육합검수 파천조가 펼치는 귀멸육합검진을 위협하기에 상대의 실력은 여전히 모자랐다.
검막을 전개했던 두 명의 육합검수는 무리해서 백랑을 받아 내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그들과 교대하듯 옆에서 끼어든 두 명의 검수가 백랑의 측면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짙은 푸른 검강을 뿜어내고 있는 두 자루 검이었다.
파악! 파스스슥!
그들의 강력한 검격에 두 마리 빙백랑은 그대로 소멸되고 말았다.
설랑검법 오 초식 중 마유겸이 현재 익힐 수 있었던 최강의 초식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파훼된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의 대응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두 명의 검수가 백랑을 소멸시키는 순간, 그중 한 명의 머리 위를 넘은 다른 검수가 마유겸을 향해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느껴지는 숨 쉴 틈 없는 움직임이었다.
슈학!
“큭!”
마유겸은 이를 악물고 그의 검격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다른 두 명의 검수가 그의 주변을 포위해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약 이번 검격을 막아도 후방에서 두 명의 습격을 받게 될 상황이었다.
으득!
이를 간 마유겸은 온 힘을 다해 검초를 전개했다.
설랑검법 이 초.
천장빙벽.
“하아아아압!”
촤아아아악!
순간 마유겸의 검기가 섭선이 펴지듯 펼쳐지며 그의 전면에 짙은 한기의 방벽을 만들어 냈다.
그를 습격하던 검수는 물론 그의 옆을 포위하려던 검수들의 움직임까지 막아 내는 놀라운 초식, 설랑검법의 방어 초식인 천장빙벽이었다.
그러자 그 위협적인 초식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했던 육합검수들이 일단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자성진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검진을 유지했다.
자성진인이 마유겸을 향해 감탄하며 말했다.
“놀라운 검법! 노도가 오늘 안계를 넓히는구나! 내 이런 검법에 대한 소문은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하였다. 마치 전설 속의 문파인 북해빙궁의 무학이 실존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가 아닌가. 그대의 사문은 대체 어디인가?”
자성진인은 마유겸의 설랑검법에 진심으로 감탄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마유겸은 그의 감탄을 들으며 그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사문을 묻는 여유를 보이다니, 마치 재능이 뛰어난 아이를 칭찬하는 어른 같은 모습이 아닌가.
저건 자신의 공격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한 공격이 저자에게는 단지 칭찬해 줄 정도의 수준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제 마유겸에게 남은 밑천이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 오 초식으로 되어 있는 설랑검법 중 마유겸은 가장 위력적인 사 초와 오 초를 아직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마유겸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동귀어진을 생각했건만, 그저 개죽음에 불과하겠군.’
자괴감이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자신의 가치는 끝까지 이 정도뿐인 모양이었으니까.
마유겸은 다시 자성진인을 향해 묵묵히 검을 겨눴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설사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라 해도 말이다.
그러자 자성진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쯧, 이제 모자람을 알았을 터인데. 훌륭한 검법이 아깝게도 헛되이 사라지겠구나.”
마유겸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앗!”
혼신의 힘을 다한 그의 공격이 다시 한번 육합검수들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헛될 뿐이었다.
바다를 얼리는 그의 한파가 검막에 헛되이 막혔다.
혈교의 구천혈룡마공을 연상시키는 빙백랑 또한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허무하게 파쇄됐다.
육합검수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마유겸의 전면에 솟아났던 빙벽은 다섯 줄기 검강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마유겸은 빙벽을 부순 채 자신의 사방에서 찔러 오는 검들을 허탈한 눈으로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제야 끝이로구나.’
허무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쩐지 시원하기도 했다.
푸욱!
“커헉!”
검이 마유겸의 배를 시원하게 관통했다.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마저도 시원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마유겸은 곧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찔러 오던 검강은 분명 다섯 개였는데 막상 배를 관통한 검이 한 자루뿐이기 때문이었다.
마유겸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문득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자 네 자루의 검이 자신의 한 치 앞에서 멈춰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뒤에서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성진인의 얼굴 또한 눈에 들어왔다.
마유겸은 바로 무슨 상황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가 아까부터 자신의 검법을 아까워하더니만 아무래도 살려서 잡아가려는 모양이었다.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마유겸은 마지막 힘을 모아 자신을 찌른 검수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하압!”
그러자 그의 마지막 발악에 자성진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가 황급히 나머지 육합검수들을 움직이게 했다.
멈춰 있던 네 자루의 검이 다시 마유겸을 향해 찔러 오고 있었다.
죽음을 예감한 마유겸이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악!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흑자색의 날개가 자성진인의 머리 위 하늘을 뒤덮었다.
마치 거대한 신수가 출몰한 듯 위압적인 광경이었다.
“저, 저건?!”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자성진인은 바로 육합검수들을 자신의 옆으로 복귀시켰다.
알 수 없는 위협이 자신을 노리는 지금, 마유겸을 죽이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성진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진을 완성하라!”
그러자 마유겸을 공격하려던 육합검수들은 황급히 자성진인의 옆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거대한 날개와의 거리가 좀 있어 늦지 않게 자성진인의 주변에 검진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직후, 흑자색 날개가 하늘에서부터 그들을 덮쳤다.
날개의 정체는 마치 소나기로 화한 듯 하늘을 뒤덮은 채 빼곡하게 쏟아져 내리는 검기의 빗줄기였다.
쏴아아아아아아아!
자성진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막아라!”
그러자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다섯 명의 육합검수들이 힘을 합쳐 검막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장막과도 같은 검막이었다.
다음 순간, 검막의 위로 검기의 소나기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었다.
파바바바바박!
하지만 완성된 귀멸육합검진의 위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견고한 검진을 형성한 다섯 명의 육합검수들이 장대비 같은 검기의 소나기를 모두 막아 냈던 것이었다.
챠챠챠챠챠챠챵!
잠시 후, 검기의 소나기가 끝나고 마침내 무사히 살아났음을 깨달은 자성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대체 이게 무슨…?!”
그리고 그 순간 목격할 수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검초로 자신들을 공격했던 자가 한순간 봉두난발의 괴검사를 낚아채 바람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또한 자성진인의 눈은 그가 백의를 입은 청년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백색검에 백호 장식이 새겨져 있다는 것도 말이다.
자성진인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저자는?!”
그는 바로 선우진이었다.
자성진인으로선 알 수 없었지만 선우진이 묵랑검법의 이 초, 비상을 전개해 시선을 돌리고는 마유겸을 구해 갔던 것이었다.
그의 정체를 짐작한 자성진인이 황급히 외쳤다.
“인파랑이다! 절대 놓치지 마라!”
그러자 육합검수 파천조가 자성진인과 함께 한 몸처럼 몸을 날리며 선우진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운묘 백아를 이용해 묘아란의 냄새를 추적하고 있던 진태도는 산 중턱에 위치한 외딴 사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묘아란과 진소은이 남아 있는 사당이었다.
그곳을 본 진태도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잡았구나, 인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