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추격-3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진태도가 비릿하게 웃음 지었다.
‘제법 발악했지만 이제 끝…!’
하지만 그때였다.
푸욱!
자성진인의 검이 놈의 등을 가볍게 관통해 가슴으로 나왔을 때, 놈의 신형이 갑자기 흐릿해졌다.
“!”
진태도가 그 광경을 보고 눈을 부릅떴을 때였다.
자성진인이 놀란 눈으로 진태도의 머리 뒤를 바라보며 외쳤다.
“진 장문인!”
그 순간 진태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보고 있던 건 놈의 잔상이었고, 놈은 어느새 자신의 뒤로 넘어가 버렸다는 것을.
그로선 알 수 없었지만 선우진이 천풍화엽을 전개했던 것이었다.
“!”
깜짝 놀라 홱 고개를 돌리자 선우진이 출렁다리를 향해 날듯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악한 진태도가 외쳤다.
“안 돼!”
***
‘됐다!’
나는 진태도를 통과해 출렁다리를 향해 달리며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놈이 나를 인파랑으로 알고 있고, 그렇기에 남십자검만을 쓸 거라고 생각한 허점을 노린 것이었는데 훌륭하게 성공했던 것이다.
아무리 놈이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이라 해도 역시 처음 겪은 공즉시색과 천풍화엽에 대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그게 안 통해도 내 신법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도박을 건 것이었는데, 잘 통해서 다행이군.’
이제 출렁다리는 눈앞, 저 앞에 보이는 진 소저는 마유겸과 묘아란을 업고도 삼십 장 길이의 출렁다리를 벌써 절반 이상 건너간 상태였다.
아마 최후의 힘을 쥐어짜고 있는 모양이었다.
‘좋아.’
상황은 이제 나쁘지 않았다.
진태도와 육합검수들의 신법으로는 절대 나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고, 먼저 다리를 건넌 후 그걸 끊어 버린다면 상황은 끝일 테니까.
만약 놈들이 다리 위로 쫓아온다면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놈들을 떨어뜨리는 것도 가능할 테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최상이겠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뒤에서 진태도의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압!”
그리고 등 뒤로 섬뜩한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윽?!’
나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놈이 검환을 쏘아 낸 것이었다.
정확히 다섯 개의 검환이 내 등을 향해 덮쳐 오고 있었다.
‘젠장!’
심안으로 검환의 위치를 가늠한 가운데 황급히 천풍신법을 전개했다.
그러자 내 신형이 어지럽게 흐르는 바람처럼 흩날리며 검환들을 피해 낼 수 있었다.
푸른빛을 뿜어내는 강기 덩어리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쐐애애액!
나는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놈이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검환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다섯 발의 검환이 끝이 아니었다.
쐐애애애액!
쐐애애애액!
등 뒤로 다시 검환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번엔 무려 열 개의 검환이었다.
‘이 자식! 검환을 한꺼번에 열 개나!’
과연 엄청난 공력이었다.
나는 다시 천풍신법을 전개해 바람처럼 흔들리며 그것을 피해 냈다.
하지만 그걸 피한 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놈이 쏜 검환의 목표가 나만이 아니었다는 걸.
나를 스쳐 지나간 검환이 저 앞에 보이는 출렁다리의 기둥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다리의 줄을 묶어 놓은 기둥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내 눈빛이 아득해졌다.
콰아아아앙!
“젠장!”
몇 개의 검환에 직격당한 기둥 하나가 산산조각으로 터져 나갔다.
그러자 한쪽 줄이 끊어진 출렁다리가 파도처럼 크게 출렁이며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기울어지는 출렁다리의 파도는 아직 다리를 다 건너지 못한 진 소저를 향해 덮쳐 가고 있었다.
저대로는 진 소저가 위험했다.
황급히 소리쳤다.
“진 소저! 뛰시오!”
그러자 진 소저가 바로 황암을 향해 필사적으로 도약했다.
역시 심안을 익힌 그녀이기에 뒤돌아보지 않고도 상황을 파악했던 모양이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진 소저!’
힘껏 도약한 진 소저의 신형이 마침내 출렁다리를 넘어 황암 위에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힘이 완전히 다한 듯 착지하자마자 땅을 뒹굴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됐어!’
진 소저는 이제 안전해졌다.
그러니 이제 문제는 나뿐이었다.
쐐애애액!
쐐애애액!
다시 나를 스쳐 지나간 검환들이 남은 하나의 기둥을 향해 충돌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기둥이 산산이 터져 나가는 모습이 느리게 보였다.
마침내 다리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한쪽 줄로만 버티고 있었던 다리가 완전히 끊어져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에서 진태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하! 다리가 끊어졌으니 이제…!”
그가 그렇게 웃으며 소리칠 때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떨어지고 있는 다리를 향해 도약했다.
“하압!”
화악!
뒤에서 진태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맞은 편 황암에서 땅바닥에 누워 나를 보고 있던 진 소저 또한 깜짝 놀라 소리쳤다.
“공자!”
그들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떨어진 다리의 위치는 벌써 사 장 이상 멀어져 있었고, 그 다리를 향해 뛰어든 나는 꼭 자살하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실제로 까마득한 지면이 내려다보이는 가운데 추락하고 있는 출렁다리를 향해 뛰고 있는 내 느낌은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짜릿했다.
‘하지만!’
내 신법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음 순간, 힘없이 추락하고 있는 다리가 내 눈앞까지 다가왔던 것이다.
한순간에 사 장의 거리를 건너뛰어 다리에 닿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다리에 발이 닿는 순간, 나는 월하환검무를 전개했다.
월하환검무 삼 식.
현망월 발동.
화아아아악!
순간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그러자 떨어지고 있던 다리가 마치 그 자리에 멈춰 버린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멈춘 다리를 밟고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오직 나만이 제대로 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다다다다다!
그때였다.
진태도가 분노한 외침을 토해 냈다.
“이이이이노오오오오옴!”
그와 동시에 다시 놈이 쏘아 낸 십여 개의 검환이 나와 다리를 향해 날아왔다.
쐐애애애애애액!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놈의 검환은 충분히 빨랐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심안으로 뒤를 살피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사사삭!
그러자 나를 노린 몇 개의 검환은 어렵지 않게 피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리를 노린 검환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아직 건너지 못한 다리의 맞은편이 놈의 검환에 맞아 폭발하고 있었다.
다리 반대쪽마저도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 순간, 반대쪽 다리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는 나는 바로 몸을 날렸다.
“하아압!”
파박!
아직 황암까지의 거리는 칠팔 장 정도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내 신법을 믿는 수밖에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내 몸이 허공을 향해 천천히 떠올랐을 때였다.
문득 나는 진태도가 이 상황을 예측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놈이 연속으로 쏘아 낸 검환이 몸을 띄운 내게로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쐐애애애애액!
앞으로 날아가고 있는 내 등으로 여섯 개의 검환이 날아들고 있었다.
발 디딜 곳이 없어 피할 수도 없는 상황, 이대로 계속 가다간 등이 뻥 뚫려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극도로 집중한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공력을 집중했다.
“후웁!”
순간 몸을 둥글게 말았던 내가 한 바퀴를 빙글 회전한 후 몸을 쭉 뻗었다.
그러자 검환이 나를 강타하기 직전 내 발이 허공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파밧!
아주 살짝 올라간 것이었지만 검환을 피하기에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단 한 번뿐이지만 허공을 밟고 뛰어오르는 능공허도에 성공했던 것이었다.
‘됐다!’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내 밑으로 놈이 날린 검환들이 무서운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쐐애애애액!
쐐애애애액!
뒤를 슬쩍 돌아보니 진태도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능공허도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모양이었다.
그 일그러진 얼굴에 무척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긴 한데….’
일단 놈의 공격을 한 번 피하긴 했지만 내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검환을 피하기 위해 위로 뛰어오른 덕분에 황암으로 건너갈 추진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위로 올라가던 몸의 속도가 천천히 느려지며 제자리에 정지하고 있었다.
이다음 과정이 어떻게 될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진태도가 쏘아 낸 검환 몇 개가 또다시 쇄도했다.
쐐애애애액!
‘그럴 줄 알았다!’
온 정신을 집중한 나는 다시 한번 허공을 박찼다.
놈이 공격할 것을 예상했기에 미리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파박!
허공을 박찬 내 몸이 놈의 검환을 피하며 살짝 앞으로 전진했다.
이제 황암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사 장이었다.
‘조금만 더!’
그때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놓치지 않겠다!”
쐐애애애액!
검환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나는 심안에 완전히 집중한 채 묘기를 부리듯 허공을 밟아 그것들을 피하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황암까지 남은 거리는 삼 장이었다.
지금 내 기분은 마치 벼랑 끝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심안으로 감지해 피하고 있는 검환도, 처음 해 본 능공허도로 인해 빠르게 소모되는 공력도 약간만 삐끗하면 그대로 끝나 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악!”
진태도였다.
놈이 격분한 나머지 괴성을 지른 것이었다.
동시에 엄청난 수의 검환이 날아오는 것이 감지됐다.
아마 놈도 최후의 힘을 끌어 쓴 모양이었다.
‘수는 대략 삼십 개, 삼십 개라고?!’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저 공력 소모가 심한 검환을 저렇게나 날려 대다니.
저 정도 수의 검환을 날린 건 놈에게도 분명 무리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아마도 이것만 피해 내면 놈의 공격은 끝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쇄도하는 검환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마치 탄막을 친 듯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공간을 꽉 채운 채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쐐애애애애액!
‘젠장, 어쩌지?’
힐끗 뒤돌아보자 공간을 꽉 채운 채 날아오는 검환들과 그 뒤에서 창백해진 얼굴로도 사납게 웃고 있는 진태도의 얼굴이 들어왔다.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분하지만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이번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방법을 찾지 못한 내가 뒤돌아 검을 휘두를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이번엔 반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 공자!”
진 소저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그녀로부터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쐐애애애액!
‘저건?!’
고개를 돌린 나는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목봉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목봉을 내 쪽으로 던져 줬던 것이었다.
한순간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듯한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고맙소! 소저!”
나는 날아오는 목봉 위를 달려 위로 높이 솟구쳤다.
타다닥! 파박!
다음 순간, 내 밑으로 삼십여 개의 검환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쐐애애애애액!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검환을 모두 피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뒤에서 진태도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안 돼애애애!”
그 목소리가 지금의 상황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걸로 추격전이 끝났다는 걸.
드디어 놈을 떨쳐 낸 것이었다.
목봉을 밟고 도약한 나는 결국 안정적으로 황암에 착지할 수 있었다.
탁!
발밑에 느껴지는 단단한 느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먼저 진 소저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고는 뒤돌아 진태도를 바라봤다.
그러자 완전히 일그러진 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놈을 향해 씨익 웃어 주었다.
승자가 지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