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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60화 (260/359)

260화 설랑검법

진태도가 봉황산의 봉암에서 내려와 추격을 재개한 지도 하루가 흘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태도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가고 있었다.

금방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혀 목표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부상자를 데려가고 있을 놈들의 속도가 오히려 전보다도 더 빨라진 상태였다.

그러자 문제가 생긴 쪽은 오히려 진태도 쪽이었다.

“자, 장문인! 크윽!”

“이, 이! 이 쓸모없는 놈 같으니!”

진태도의 부하들은 이제까지 진태도의 독려에 의해 강압적으로 추격을 이어 가고 있었다.

금방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진태도의 호언장담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추격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러자 더 견딜 수 없었던 부하들은 이제 지쳐서 하나둘 낙오하기 시작했다.

진태도가 아무리 윽박지르고 위협해도 소용없었다.

완전히 소진된 이들의 체력이 윽박지른다고 돌아오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제 진태도는 대부분의 부하들을 뒤에 남기고 점점 줄어든 인원만으로 추격을 이어 가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드디어 추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운묘 백아를 담당하는 부하까지도 지쳐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진태도로선 분노와 더불어 난감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서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죄, 죄송합니다, 장문인. 저는 더 이상….”

진태도는 쓰러진 부하 앞에서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쳐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상황의 심각함을 느낀 육합검수 자성진인이 슬쩍 다가와 그를 불렀다.

“진 장문인.”

그러자 진태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부르는 거요?!”

진태도는 더 이상 사람 좋은 얼굴로 자신을 포장할 수 없었다.

그의 예민한 반응에 자성진인은 속으로 혀를 차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를 두고 가서야 추격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 혹시 그를 업고 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인파랑 그자가 일행들에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 말에 진태도는 잠시 침음성을 흘렸다.

“으으음.”

부하를 업는다는 건 지금까지의 진태도에게 있어 고민할 거리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권위적인 그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진태도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성진인에게 물었다.

“진인의 육합검수 중 한 명이 업을 수 있겠소?”

“….”

자성진인은 속으로 그를 욕했다.

그의 부하를 왜 자신의 조원이 업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겉으로는 허허 웃으며 진태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허허허! 당연한 일이지요. 진 장문인께서 업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흠, 그럼 부탁을 좀 드리겠소, 진인.”

그렇게 진태도의 일행은 다시 한번 추격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인원은 진태도와 육합검수 파천조, 그리고 백아를 담당하는 부하 한 명만 남은 단출한 인원이었다.

하지만 진태도는 이제 불만을 갖지 않았다.

인원이 줄자 오히려 추격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백아를 담당하는 부하를 육합검수가 업으며 속도가 빨라지자, 그들은 이제 드디어 초절정 고수로서의 신법을 발휘하며 선우진들을 추격해 갈 수 있었다.

“장문인! 놈들과의 거리가 많이 좁혀진 모양입니다! 백아의 반응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진태도는 오랜만에 얼굴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현재 위치는 복건성. 아마도 놈들이 향하고 있다고 예상되는 상포항에서 이틀 정도의 거리였다.

‘아마도 상포에서 배를 타고 마경을 찾아갈 생각이겠지. 그러니 상포에 닿기 전에 반드시 놈들을 따라잡아야만 한다.’

진태도의 눈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이제부터 상포까지의 길은 직선으로 뻗은 관도였다.

그러니 봉황산과 같은 변수는 다시 나올 수 없다는 뜻이었다.

‘봉황산 같은 상황만 아니라면 절대 놓칠 리가 없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 주지!’

무려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자신과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 여섯이 함께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따라잡기만 한다면 모든 상황이 끝날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진태도는 죽 뻗은 관도를 보며 몇 번이나 놓치고 말았던 선우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

한편, 선우진은 흑표 삭월의 등에 탄 채로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잔다고 말해 놨지만 사실 그에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몽혼대법으로 꿈속의 공간에 들어가 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아압!”

샤아아아악!

꿈속의 공간 속, 선우진이 검을 휘두르자 백색의 한기가 전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얼어붙은 수증기가 하얀 빙정으로 화해 부채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흐흠.”

선우진의 앞에 서 있었던 묵랑은 빙긋이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기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천풍신법을 시전하는 선우진보다도 더 바람과 닮아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묵랑을 향해 검을 뿌렸다.

“또 갑니다!”

슈하아아악!

이번에 선우진의 검에서 튀어나온 것은 다섯 마리의 하얀 늑대였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다섯 마리 늑대가 울부짖으며 묵랑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우!

“오호!”

묵랑은 제법이라는 듯 탄성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휘리리리릭!

그러자 순식간에 다섯 개로 분열한 묵랑의 검이 다섯 마리의 빙백랑을 가볍게 소멸시켜 버렸다.

퍼서서서석!

하지만 그 순간 선우진은 이미 묵랑의 바로 앞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그가 검을 그으며 외쳤다.

“천장빙벽!”

촤아아아악!

그러자 묵랑의 발밑에서 새하얀 얼음의 장벽이 솟아났다.

설랑검법의 방어 초식인 천장빙벽을 공격에 사용했던 것이었다.

묵랑이 재빨리 뒤로 물러서 그 영역에서 벗어나며 외쳤다.

“참신한 공격!”

선우진이 지금 묵랑에게 사용하고 있는 검초들은 마유겸이 익혔던 설랑검법의 초식들. 일 초 북풍검파, 삼 초 설랑주천, 이 초 천장빙벽이었다.

오 초식으로 된 설랑검법 중 마유겸이 익혀 낸 세 개의 초식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했던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세 개의 초식을 모두 사용한 지금, 선우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빙벽 뒤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는 심안을 통해 묵랑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그가 있는 쪽의 빙벽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설랑검법 사 초.

절대빙검.

슈하악!

그의 검이 빙벽을 찔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선우진이 찌른 빙벽 뒤로 투명한 얼음의 검이 묵랑을 향해 쭉 뻗어 나갔던 것이었다.

사라라라락!

암기처럼 방출되는 것이 아닌 허공에서 투명한 검이 생성되는 듯한 느낌의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 투명한 검은 순식간에 삼 장 뒤로 물러섰던 묵랑의 몸까지 관통해 뻗어 있었다.

선우진이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성공인가?!”

하지만 그 순간, 빙검에 관통당했던 묵랑의 몸이 흐릿해졌다.

잔상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한 걸음 옆으로 움직여 선우진의 공격을 피해 냈던 묵랑은 빙긋이 웃으며 빙검의 검면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팅!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러자 빙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선우진의 공격은 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파사삭!

선우진은 빙검과 더불어 허물어지는 빙벽을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묵랑에게 말했다.

“이때 오 초 만설개세까지 연결해 쓸 수 있었다면 어르신께 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그 말에 묵랑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직 자네에게 만설개세는 무리라네. 만약 그걸 펼칠 수 있었다면 묵랑검법의 멸천도 이미 펼칠 수 있었겠지. 그리고 너무 욕심이 많은 거 아닌가? 설랑검법을 익히자마자 마유겸도 아직까지 익히지 못한 사 초 절대빙검까지 펼쳐 놓고는 아쉬워하다니 말일세.”

“뭐, 그야 그렇지만요.”

선우진의 이해를 받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던 마유겸은 그 직후 바로 선우진에게 설랑검법을 전해 줬었다.

비록 몸이 회복되지 않은 데다 점혈까지 당해 있기에 직접 몸을 움직여 보여 줄 수는 없었지만, 일단 전음을 통해 구결을 전수해 줬던 것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은 처음에 그를 만류했었다.

그가 혹시라도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이 남아 있어 그 전에 미리 설랑검법을 타인에게 전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유겸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제 내 스스로 죽을 생각 따위는 절대 없네. 하지만 나는 부상 중이고 지금은 위기 상황이 아닌가. 만약을 위해서라도 어르신의 절기는 남겨 놓는 것이 낫네.’

그렇게 말하며 선우진에게 설랑검법을 전해 준 마유겸은, 정작 선우진이 묵랑검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자 자신은 배우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어르신의 절기는 내게 너무 과분하네. 설랑검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랬는데 또 다른 절기에까지 손을 댈 수는 없지.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점창의 검을 수련할 생각이네. 그러니 더 이상의 다른 검법은 필요 없다네.’

선우진은 그런 마유겸을 보며 그가 진짜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의지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선우진은 바로 몽혼대법의 공간 안으로 들어와 묵랑에게 설랑검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마유겸에게 배운 것은 그저 설랑검법의 구결뿐이었지만 묵랑은 나머지 초식과 형까지도 다 가르쳐 줬던 것이었다.

“묵랑검법이나 설랑검법 같은 검법들을 다른 검의 계승자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기로 한 건 내가 정한 규칙이었네. 하지만 그게 몰라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건 아니었거든. 근데 이제 설랑검법의 계승자가 자네에게 설랑검법을 가르쳐 주기로 하지 않았나? 그러니 나도 굳이 모른 척할 필요는 없는 거지. 자, 일 초식 북풍검파부터 한번 시작해 보세.”

그렇게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선우진은 놀랍게도 묵랑에게 설랑검법을 한 번 배우자마자 바로 익히는 데 성공했다.

한빙공인 설랑 심법을 익히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을 뿐 검법 자체는 원래 알던 것인 마냥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건 선우진 본인에게도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묵랑이 문득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선우진에게 물었다.

“자네가 왜 이렇게 설랑검법을 쉽게 익힐 수 있었는지 알겠는가?”

선우진은 그렇게 질문한 묵랑을 잠시 바라봤다.

그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건대 뭔가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설마 어르신께서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싶으신 건 아니겠죠?”

그러자 묵랑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너무 당연한 얘기이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그의 반문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던 선우진은 잠시 아까의 상황을 되돌아봤다.

“흠, 왜 그렇게 쉽게 익혔냐고 하시면…. 그냥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공을 한기로 바꿔 방출할 뿐 결국 검을 휘두르는 건 어차피….”

거기까지 말한 선우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묵랑은 아무 말 없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런 선우진을 기다려 줬다.

잠시 후, 생각에 잠겨 있던 선우진이 깨어나 멍하니 중얼거렸다.

“결국 같은 거였군요. 강검이든 쾌검이든 검을 세게 휘두르고 빠르게 휘두르는 것의 차이일 뿐 검을 휘두른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변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리고 탄식하듯 말했다.

“결국 모든 검은 같은 것이었군요.”

그러자 묵랑이 드디어 환하게 웃음 지었다.

선우진의 깨달음이 드디어 만류귀종(萬流歸宗)에 도달했던 것이었다.

선우진이 황급히 그를 불렀다.

“어르신!”

그러자 묵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두르게. 이번 깨달음을 놓치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으니.”

선우진은 지금 초절정의 벽 앞에 서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깨달음을 잡는다면 그도 드디어 초절정의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선우진은 그렇게 소리치며 서둘러 몽혼대법에서 벗어났다.

그러고는 그가 탄 삭월의 뒤를 따라오고 있던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여기서 잠시 멈춰야겠습니다!”

그의 급한 외침에 다른 일행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

진태도와 육합검수들은 관도 위를 바람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길이 하나였기에 백아의 안내를 받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가끔씩 멈춰서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는지만 확인한 채 하루를 꼬박 달려 선우진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운묘 백아를 맡은 그의 부하가 외쳤다.

“바로 이 근처입니다, 장문인! 놈들이 이곳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진태도는 그 반가운 소식에 다시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소리쳤다.

“좋다! 속력을 올립시다, 진인!”

“알겠습니다!”

그들은 이제 백아의 반응도 확인하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해 속도를 높였다.

상포까지는 이제 하룻길, 그전에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각쯤 지난 후, 진태도는 눈을 크게 뜨고는 외쳤다.

“저기다!”

그의 눈에 앞에서 달리고 있는 두 명의 남녀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백의를 입은 남자는 증오스러운 인파랑, 그놈임에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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