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역전
진태도는 앞에서 달리고 있는 두 명의 남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여인 한 명을 업고 있는, 아마도 묘아란을 업고 달리는 남자는 인파랑, 홀로 달리고 있는 여자는 진소은이었다.
“드디어 잡았다! 이젠 놓치지 않는다!”
진태도와 육합검수들은 온 힘을 다해 속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백랑검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좀 이상했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상태가 심각해져 중간에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중요한 건 그가 아닌 인파랑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선우진과 진소은도 진태도를 발견한 상태였다.
진소은이 외쳤다.
“저들이 와요, 공자!”
진소은의 외침에 선우진은 뒤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자 진태도와 육합검수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부하들을 다 떨궜구려. 어쩐지 추격이 빨라졌다 했더니.”
진소은이 물었다.
“어쩌죠?!”
“우리도 좀 더 속도를 높입시다!”
“네!”
선우진과 진소은은 그들에게 따라잡히지 않도록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두 무리의 거리가 더 이상 좁혀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기 시작했다.
선우진 혼자였다면 더 거리를 벌릴 수도 있겠지만 진소은의 신법으로는 무리였다.
아직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그녀로선 초절정 고수들에게 추격을 받으며 따라잡히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지금 이 상태가 가능한 것도 마유겸을 육합검수들 편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도주를 멈추고 명상에 들어가기 전 마유겸과 진소은을 삭월, 육합검수들과 함께 보내려고 했었다.
추격당하고 있는 사람이 묘아란이니 그녀까지 보낼 수는 없었지만, 아직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마유겸이나 지친 진소은은 굳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소은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상황이 급해졌을 때 묘 소저를 맡아 줄 사람이 있어야죠. 아무리 선우 공자라도 묘 소저를 등에 업고 검을 쓸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진소은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제게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공자의 옆에 있을래요.’
그 말에 선우진이 당황해 대꾸하려 했다.
‘아, 그, 그건….’
그 말은 일전에 봉황산에서 진소은이 방해가 되지 않으려 죽음을 결심했을 때 선우진이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정확히는 ‘내 허락 없이는 어디든 갈 수 없소.’였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 들어맞는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것을 따지기보단 해맑게 웃고 있는 진소은의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어쩐지 너무 귀여워 보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결국 헛웃음을 지은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였었다.
‘알겠소. 그럼 우리는 함께 움직입시다.’
그 후, 진소은이 호법을 서 주는 가운데 선우진은 명상에 들어갔었다.
“진 장문인! 저길 보시오!”
자성진인의 외침에 진태도는 힐끗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관도 주변으로 보이는 둔덕들이었다.
추격이 계속되는 동안 주변 환경이 구릉 지대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었다.
봉황산처럼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놈이 만약 저 속으로 들어간다면 또다시 시야에서 놓쳐 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진태도의 눈에 선우진과 진소은이 관도를 벗어나 좁은 협곡 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진태도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저놈들이 또….”
놈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멀쩡한 관도를 놔두고 좁은 협곡 길로 들어갈 리가 없었다.
또 무언가 잔꾀를 부리려는 모양이었다.
‘이놈….’
진태도의 마음속에 문득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간 계속해서 놈을 놓쳐 왔던 기억들 때문이었다.
그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절대로…. 어서 서두릅시다! 저 여아의 무위는 아직 초절정에 이르지 못했소! 신법을 계속 전개하다 보면 내공이 고갈될 것이오!”
그렇게 이를 악문 진태도와 육합검수들이 선우진들을 따라 협곡 안으로 추격해 들어갔을 때였다.
그들이 그 안에 들어가자마자 보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었다.
진태도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막힌 길?!”
협곡은 반대쪽이 막혀 있었다.
막다른 길이었던 것이다.
선우진과 진소은은 막혀 있는 반대쪽 협곡 앞에서 멈춰 서서는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당황했던 진태도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찼다.
“이놈! 제 꾀에 제가 빠지고 말았구나!”
진태도의 얼굴은 더 이상 환해질 수 없을 만큼 환해져 있었다.
그 많은 위기들을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던 놈이 드디어 막다른 곳에 갇혀 버렸던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진태도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놈을 추격하며 이제야말로 끝이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었던가.
그 수많은 순간을 무위로 만들어 버렸던 놈의 기지에 진태도는 솔직히 감탄하다 못해 경악하기까지 했었다.
어쩌면 정말 못 잡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솔직히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놈이 막다른 곳에 몰린 것이었다.
주변은 십 장 높이의 절벽, 놈에게 하늘을 나는 재주가 없는 이상 이젠 어떤 수를 써도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야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있었다.
그간의 고생이 지금 이 순간을 더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진태도의 눈이 문득 선우진이 들고 있는 순백의 검에 멈췄다.
‘게다가 저 백호검, 놈을 죽이는 것에 더해 드디어 저것까지 얻게 되겠구나!’
그간 해남유가의 가주 유해응이나 오가의 가주 오익덕이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저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남파 장문인의 신물인 백호검 말이다.
그러니 이제 저 백호검마저 얻게 된다면 그들 또한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세상에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진태도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하하!”
그들은 한달음에 선우진의 앞까지 도달했다.
선우진은 묘아란을 진소은에게 넘겨주고는 검을 뽑은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진태도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선우진을 향해 외쳤다.
“인파랑, 이놈! 드디어 끝이로구나! 네놈을 수천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서 다른 가주들에게 보여 주마! 네놈을 죽이고 백호검을 얻은 내게 이젠 누구도 대항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선우진이 피식 웃음 지었다.
그러곤 진태도를 향해 물었다.
“과연 그럴까? 그 말, 예전에도 몇 번이나 했던 것 같지 않나? 왜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하지?”
막다른 곳에 몰린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여유가 넘치는 태도였다.
그런 선우진의 모습에 진태도의 얼굴에서 문득 웃음기가 사라졌다.
놈의 여유 있는 태도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태도는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며 코웃음을 쳤다.
“흥! 독 안에 든 쥐 주제에 끝까지 허세로구나! 이제 네놈에게 무슨 수가 있단 말이냐?! 설마 나, 그리고 형산파 진인들과 정면으로 맞붙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자신과 초절정 고수 여섯 명이 함께 있는 상황이었다.
설사 놈이 기연을 만나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고 해도 절대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하하! 왜 무슨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독 안에 든 쥐라, 그것참 적당한 표현이로구나! 으하하하하!”
그 소리를 들은 진태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그가 황급히 협곡 위쪽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협곡 위에 누군가 먼저 와 있었다.
그리고 위를 본 진태도의 얼굴은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어느새 수많은 무인들이 협곡 위쪽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커다란 체격의 백발노인을 발견한 순간 진태도는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경…? 어떻게?”
그랬다.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협곡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노인은 다름 아닌 마경이었다.
절대자 천하사마의 일인인 남해마경 만학숭.
진태도가 남해에서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그 괴물이 대남도를 벗어나 이곳까지 와 있었던 것이었다.
마경 만학숭이 진태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드디어 네놈을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반갑다, 진태도! 그리고 재회를 기념하는 뜻으로 명년 오늘을 네 제삿날로 만들어 주마! 으하하하하!”
그의 말을 들으며, 진태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빙긋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그를 본 진태도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단어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함정.’
아무래도 이 모든 건 계획된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자신이 놈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놈에게 유인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짙은 좌절감과 분노가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선우진은 비릿하게 웃으며 그런 진태도를 향해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이제 드디어 끝이로구나, 진태도. 네놈을 수천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 해남도에 가져다주마.”
분노로 가득 찬 진태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사실 선우진이 만학숭의 부하 비요마군 상도경을 만난 건 한 시진에 걸친 명상에서 깨어난 직후였다.
그는 비요(飛-날 비, 鰩-날치 요)라는 별호답게 뛰어난 신법으로 상포에서 선우진을 찾아 관도를 거슬러 올라오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명상 중인 선우진을 발견했던 그는 바로 선우진을 깨우려 했었다.
하지만 호법을 서고 있던 진소은의 제지를 받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진소은이 없었다면 그와 만나지 못했든가, 아니면 명상에서 강제로 깨어날 수밖에 없을 뻔했던 상황이었으니 그녀가 있어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명상에서 깨어나 그와 만난 선우진은 마경 만학숭이 직접 상포로 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마경을 유인해 진태도와 충돌시키려던 그의 계획이 드디어 결실을 본 것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역습의 때였다.
선우진은 상도경에게 요구했다.
자신이 진태도를 유인할 테니 그를 가둘 함정을 만들어 달라고….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진태도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선우진에게 소리쳤다.
“멍청한 놈! 네놈이 지금 여우를 잡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였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고작 사사로운 복수를 위해 해남의 가장 큰 적을 끌어들이다니! 결과가 어찌 되든 네놈이 결국 마경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걸 왜 모르는 것이냐?!”
그 말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나를 걱정해 주는 건가? 재밌군. 근데… 울면서 하는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거 알고 있나?”
“이놈!”
그 순간이었다.
협곡 위에 있던 만학숭이 세 명의 부하와 함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깃털이 떨어져 내리듯 천천히 그리고 사뿐하게 안착한 그의 위치는 협곡의 입구 쪽이었다.
진태도와 육합검수들이 나갈 위치를 막아 버린 것이었다.
그가 진득한 살기를 흘리며 말했다.
“예전 같으면 바로 꽁무니부터 빼려고 했을 터인데, 판단력이 느려졌구나, 진태도. 이것도 새끼 호랑이 때문인가?”
진태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학숭과 더불어 원래 네 명이었을 대남사흉의 세 사람이 잡아먹을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을 빠르게 훑어보며 생각했다.
‘청포마군의 복수를 할 생각이로군. 어렵겠어.’
그가 아까 바로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어차피 도망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만학숭의 위치가 입구 쪽이었기에 그냥 도망쳐 봤자 시선만 끌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선 그의 시선을 끌 다른 미끼가 필요했다.
진태도가 만학숭에게 물었다.
“고작 저놈 때문에 대남도를 비우다니 무슨 미친 짓이오, 마경? 성녀가 대남도를 노리고 있을 터인데?”
그러자 만학숭이 키득거리며 웃음 지었다.
“나를 걱정해 줄 여유도 있고 제법이군. 그런데 울면서 하는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네.”
선우진이 했던 비꼬는 말을 그대로 인용한 그의 말에 진태도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분노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만학숭에게 말을 하는 한편 자성진인에게 빠르게 전음을 날렸던 것이었다.
- 진인, 마경을 잠시만 붙잡아 줄 수 있겠소? 마경만 아니라면 대남사흉 놈들은 내 상대가 아니오. 저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마경을 합공합시다.
그의 말에 자성진인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천하사마의 일인인 절대자 마경 만학숭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러자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절로 몸이 떨려왔다.
그는 확실히 천하삼십육성인 형산파의 장문인 호남제일검 위정국이나 해남마검 진태도와 격을 달리하는 강자인 듯했다.
‘육합검진이 과연 저자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까?’
전혀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귀멸육합검진은 확실히 공격보다 방어에 좀 더 적합한 전력이었다.
그러니 진태도의 말대로 그가 대남사흉의 세 명을 빠르게 처리할 수만 있다면 뭔가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 알겠소, 진 장문인.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소.
- 부탁하오, 진인.
자성진인과 전음을 나누며 진태도는 속으로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잘만 하면….’
그는 사실 이 상황에서 그들과 힘을 합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진태도가 생각하기에 그가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육합검수들이 만학숭을 붙잡아 주는 사이 대남사흉을 뚫고 도주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귀찮아질 수 있으니 신법의 고수 비요마군 상도경의 발은 붙잡아 놔야 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가 그렇게 도주를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문득 선우진이 뒤에서 입을 열었다.
“뭘 꾸미고 있는지 안 봐도 알 것 같군. 보나 마나 형산파 사람들에게 만 선배님을 붙잡아 달라고 했겠지. 그사이 혼자 도망치려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진태도는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정확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성진인도 그 말에 깜짝 놀라 진태도를 바라봤다.
그러자 진태도는 황급히 자성진인을 향해 말했다.
“헛소리요, 진인! 신경 쓰지 마시오!”
하지만 선우진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신경을 쓰셔야 할 겁니다, 진인. 진인께서 지금껏 봐 온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시지요. 그가 과연 진인이 만 선배님을 맡아 주면 도주할 사람이겠습니까, 다시 돌아올 사람이겠습니까?”
진태도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자성진인의 눈빛이 차가워지는 것을 봤을 때, 그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인파랑, 이노옴!”
그가 불이라도 뿜을 것 같은 눈빛으로 선우진을 노려봤다.
그때 만학숭이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재밌군! 아주 재밌어! 역시 키울 맛이 있는 새끼 호랑이야! 옆에 두면 즐거울 일이 아주 많겠어! 무척 기대되는걸! 크하하하하!”
만학숭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선우진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자 선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아주 차갑고 냉정하게 식어 있었다.
지금 발언만 봐도 만학숭이 자신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나를 옆에 두고 해남파를 집어삼킬 생각이겠지. 그래서 아예 부하들을 이끌고 대남도를 나온 것일 테고.’
하지만 그 생각을 모르는 만학숭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다시 진태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진태도? 고작 저 여섯 늙은이가 나를 붙잡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놀랍구먼.”
그러자 이를 악문 진태도 대신 선우진이 대답했다.
“그렇게 우습게 보실 만한 자들은 아닙니다. 저들은 형산파의 비밀 병기인 육합검수 파천조란 자들로 저들이 검진을 펼치면 형산파 장문인인 호남제일검 위정국조차 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말에 이번엔 자성진인이 경악해 외쳤다.
“그, 그걸 어떻게?!”
“호오!”
자성진인의 경악한 눈빛과 만학숭의 흥미로운 눈빛이 동시에 선우진을 향했다.
그러자 선우진은 만학숭을 향해 공손히 포권하며 말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마경 어르신의 휘하에 드는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대남사흉의 세 사람은 인상을 찌푸렸다.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어린놈이 감히 만학숭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건방지다는 뜻이었다.
만학숭 또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수염을 매만지며 되물었다.
“선물이라. 어떤 것을 받고 싶단 얘기냐?”
그러자 선우진은 진태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 형산파의 파천조라면 어르신의 무료함을 달래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진태도 저자는 제게 주시겠습니까? 제가 직접 제 손으로 복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진태도를 바라보는 선우진의 눈이 강렬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자 만학숭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호오!”
진태도는 당황한 눈으로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과의 일대일을 요청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