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남해마경 만학숭-1
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일을 망쳤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만학숭이 나를 경계하게 만들다니, 완전한 실수였다.
‘젠장, 너무 과했군.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한데….’
물론 그와 싸우게 될 때를 대비한 대책도 이미 세워 놓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대책이 확실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사 효과가 있다 해도 시간이 더 필요했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만학숭에게 노림을 받아서야 아무런 대책도 없다는 뜻이었다.
놈은 천하사마의 일인이자 십오 인의 절대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아마도 혈마나 검성 어르신과 동급일 상대와 정면으로 붙는다?
자살행위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이제 어쩐다?’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만학숭이 살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자, 뭐 하고 있는 건가?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지. 어서 부모의 원수를 갚도록 하게.”
놈의 말은 진태도를 어서 죽이라는 뜻이었다.
그 이유가 마지막으로 부모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 힘을 빼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진태도 다음이 내 차례라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곤란한 상황이었다.
지금 놈의 말을 따라 진태도를 죽이는 것도, 그렇다고 그냥 놔두는 것도 곤란한 상황.
하지만 그 곤란한 상황 속에서 나는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놈의 마음을 눈치챘다는 걸 아직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그걸 이용해야만 했다.
나는 겉으론 매우 고분고분하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러고는 진태도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놈은 이제야 혈도를 눌러 어깨의 출혈을 멈추고는 창백해진 표정과 불안한 눈빛으로 나와 만학숭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무너졌군.’
방금 전 내게 심하게 꺾인 충격 탓인지 놈은 완전히 전의를 잃은 모습이었다.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치고는 엄청나게 한심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백호검으로 놈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태도! 이제 끝을 내주마!”
그러자 놈이 겁먹은 눈빛으로 뒷걸음질 쳤다.
“으으으!”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놈의 그런 모습에 오히려 경각심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흐음. 이건 좀 이상한걸?’
아무래도 뭔가 좀 부자연스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천하삼십육성의 경지에 오른 자가 한 번의 패배로 저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경지에 오른다는 건 그저 몸만을 단련하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문득 묵랑 어르신께 물었다.
‘어르신, 저자가 진짜 겁을 먹은 게 맞습니까? 혹시 겁먹은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러자 묵랑 어르신께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해 주셨다.
- 이제야 눈치챘군. 연기가 맞네. 겁먹은 척 방심을 유도해서 역전을 노릴 생각인 게지.
‘역시.’
새삼 감탄이 나왔다.
저런 추한 모습까지 연기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내 방심을 유도할 생각을 하다니.
역시 효웅이라 할 만한 자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건 내게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겐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전의를 잃지 않았어야 내 계획에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나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놈에게 말했다.
“추하구나, 진태도. 네놈이 원래 이런 놈일 줄 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고는 바로 전음을 보냈다.
- 연기하는 거 다 아니까 잘 들으시오.
그러자 놈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진짜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바로 이어서 전음을 보냈다.
- 당신을 만학숭 쪽으로 몰아넣을 테니 그에게 기습을 넣으시오. 그럼 나도 바로 놈을 공격하겠소.
놈은 덜덜 떨며 내게 사정하듯 말했다.
“오, 오지 마! 내, 내가 잘못했다! 제발 용서해다오!”
그러곤 바로 전음이 들어왔다.
- 갑자기 무슨 속셈이냐? 마경에게 복속되려는 게 아니었나?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무척 냉정한 목소리의 전음이었다.
문득 실소가 나왔다.
나도 나지만 이자 또한 대단한 연기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웃기지 마라! 네놈이 속죄하는 길은 죽음뿐이다! 어서 검을 들어라!”
- 그럴 리가. 그를 이용하려고 했을 뿐이오. 해남을 저런 놈에게 바칠 수는 없지 않소.
“아, 안 돼! 제발 나를 살려다오!”
- …이제 와서 말인가?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
“검을 들지 않은 이를 베고 싶지 않다! 어서 검을 들어라!”
- 믿지 않으면? 그냥 내게 죽을 텐가?
그 말을 들은 놈이 눈을 실룩거리는 것이 보였다.
분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놈은 결국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까 놈을 압도적으로 꺾을 수 있었던 건 내가 무리하게 월하환검무의 사 식을 시도해서였고, 그런 이유로 이제 다시는 그렇게 할 수 없겠지만….
놈은 그 사실을 모를 테니까 말이다.
저런 짓까지 해서라도 살아남고 싶은 놈에겐 내 제안만이 아마 마지막 방법일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진저리를 치는 놈에게서 결국 전음이 들어왔다.
“으으으으! 제발, 제발 살려다오!”
- …네놈이 먼저 공격해라. 그럼 내가….
“어서 검을 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냥 베겠다!”
- 개소리하지 마. 당신이 그 정도로 신뢰가 가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자성진인에게도 전음을 보내라. 당신이 먼저 공격하겠다고 하면 그도 믿어 줄 테니. 그리고 명심해라. 도망치고자 한다면 당신보단 내가 훨씬 더 잘 도망칠 수 있다는 걸.
“아, 안 돼! 아아아아악!”
놈은 공포에 질린 듯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러 댔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추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러고 있는 와중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보고 있던 자성진인이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태도에게 전음을 받은 모양이었다.
자성진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만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만학숭 쪽을 힐끗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속이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진태도와는 달리 연기에 전혀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진태도에게서 전음이 들어왔다.
- 자성진인도 동참하겠다고 했다.
- 좋소. 이제 당신을 그쪽으로 몰고 백호검을 던질 테니 그걸 이용하시오.
그 말을 들은 놈의 눈에 놀라움의 감정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의 검이 부서졌다고 해도 백호검까지 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인 듯했다.
‘자, 이제 가 볼까?’
나는 극을 시작하기로 했다.
급결성된 배우들과 함께하는 사기극을 말이다.
“진태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검을 들지 않았어도 네놈을 베겠다!”
그러고는 놈을 향해 돌진해 검을 내리쳤다.
“하아압!”
그러자 놈이 필사적으로 몸을 굴려 옆으로 피했다.
“으아아아아! 살려 줘!”
나는 실소가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 냈다.
게으른 당나귀처럼 땅을 구르는 나려타곤의 수법, 최악이었다.
“으어어어어어어!”
놈은 미친놈처럼 땅을 기어 만학숭 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런 놈의 모습이 너무 추해 도저히 계속 볼 수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가는, 놈에게 검을 던지며 소리쳤다.
“정말이지 추잡스럽기 그지없는 놈이로구나! 그냥 깨끗이 죽어랏!”
슈학!
백호검은 빛살처럼 날아가 놈의 몸통 바로 옆 땅에 꽂혔다.
아니, 막 꽂히려는 순간이었다.
놈은 공중에서 그대로 백호검을 낚아채서는 마경을 향해 돌진했다.
기습할 걸 알고 있던 나조차도 깜짝 놀랐을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압!”
슈학!
***
마경 만학숭은 비굴하고 추한 모습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진태도를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물론 놈이 한순간에 진짜 저렇게 망가졌다고 믿고 있지는 않았다.
‘아마 살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살기 위한 발악이라도 한 문파의 수장이라는 자가 저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건 무척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든 역시 대단한 놈이었다.
마경이 보기에 지금 놈에게 휘말린 쪽은 오히려 인파랑 쪽인 것 같았다.
부모의 원수가 보여 주는 추잡한 모습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방심하고 있다가는 오히려 기회를 노린 진태도에게 한순간에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겠지.’
마경은 이미 놈을 어떻게 할지 결정한 상태였다.
저렇게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놈을 애완용으로 키울 수는 없을 테니까.
후환이 되기 전에 죽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었다.
그러니 진태도가 상황을 역전해 놈을 죽인다면 그것도 괜찮았다.
어찌 됐든 마경에겐 그저 좋은 구경거리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 순간이었다.
진태도가 나려타곤으로 땅을 구르더니만 개처럼 기어 자신에게로 다가왔다.
“으어어어어어어!”
엄청나게 추잡한 모습이었다.
그가 연기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음에도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한심한 모습.
그리고 그 꼴을 보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던 인파랑이 놈을 향해 검을 던져 버렸을 때, 만학숭은 오랜만에 당황이란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하압!”
슈학!
순식간에 검을 낚아챈 진태도가 자신을 향해 찔러 오고 있었다.
아까 꽤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던 초식, 맹룡관해였다.
퍼어어엉!
대포 같은 파공성과 함께 들어오는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다.
마경은 황급히 그것을 후려쳤다.
“감히!”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놈이 튕겨 나가는 것이 보였다.
살짝 가슴이 서늘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은밀하게 찔러 오던 빛살 같은 검격을 발견하고는 진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쉬이이이익!
어느새 그림자처럼 다가온 선우진이 머리 위에서 소리 없이 검을 찔러 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꺼낸 묵랑검, 그리고 진태도의 맹룡관해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검격.
사일검법의 일시사일이었다.
위기의 순간, 만학숭은 온몸으로 공력을 방출했다.
호신강기였다.
“으하아아압!”
투웅!
선우진의 묵랑검이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는 모습이 보였다.
위기를 넘긴 것이었다.
그러자 만학숭은 그제야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개잡놈들이….”
두 놈이 짜고 자신을 농락했던 모양이었다.
활화산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선우진이 소리쳤다.
“도장! 지금입니다!”
음?
문득 바라보니 형산파의 육합검수들이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 오고 있었다.
‘어느새 이놈들까지?’
이젠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언제 이렇게까지 작당을 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만학숭은 자신을 향해 찔러 오는 두 자루의 검을 가볍게 팔을 휘저어 튕겨 냈다.
터엉!
이놈들 정도의 공격은 우스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만학숭의 얼굴은 금세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뒤로 튕겨 나간 놈들과 순환하듯 다른 놈들이 앞으로 나오며 다시 검을 찔러 넣었던 것이었다.
톱니바퀴 같은 연환격이었다.
“호오!”
마경은 이번에는 제대로 쌍장을 날렸다.
퍼엉!
그러자 묵직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의외였다.
‘이놈들 공력이?’
고작 초절정의 초입으로 보였던 놈들의 경력이 생각보다 지나치게 무거웠다.
이 정도면 오히려 진태도보다 더 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톱니바퀴처럼 위에서부터 한 명이 습격해 왔다.
“!”
만학숭은 아까 선우진이 말했던 얘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검진을 펼치면 호남제일검 위정국도 당하지 못한다더니….’
아무래도 좀 더 제대로 상대해 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만학숭의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악!”
“안 돼!”
“비, 비요!”
불길한 느낌이 뒷목을 스쳤다.
경악한 만학숭은 육합검수를 튕겨 내고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
그러자 바로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직속 부하인 대남사흉 비요마군 상도경의 몸이 두 쪽으로 쪼개져 있는 모습을….
자신에게 튕겨 난 후 후방으로 갔던 선우진이 그를 죽였던 것이었다.
그는 알 수 없었지만 묵랑검법 일 초 개천의 위력이었다.
“비요야!”
게다가 선우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놈이 마치 이형환위를 전개한 듯 순식간에 흑교마군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당황한 흑교마군이 몸을 방어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 이놈!”
하지만 그 순간 벼락같은 검이 그를 내리찍었다.
다시 한번 펼쳐진 묵랑검법 일 초, 개천이었다.
촤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흑교!”
분노한 만학숭이 다시 귀찮게 달려드는 육합검수의 검격을 튕겨내고는 놈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느새 그를 둘러싼 육합검수들이 사 면에서 검을 찔러 오고 있었다.
슈하아악!
“이 귀찮은 놈들!”
화아아아악!
터터터텅!
바로 방출한 호신강기로 놈들을 튕겨 냈다.
그 순간이었다.
어느새 선우진과 합공한 진태도의 검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백적마군의 등을 관통했다.
푸욱!
“커허억!”
백적마군이 선우진을 경계하고 있는 사이 진태도가 뒤에서 그를 습격했던 것이었다.
만학숭이 비통하게 소리쳤다.
“안 돼애애애!”
저들 대남사흉은 몇십 년 전부터 만학숭을 따라다녔던 부하들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부하라기보다는 제자나 동생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
근데 그런 네 명의 부하들이 모두 살해된 것이었다.
진태도와 선우진, 저 두 명에게 말이다.
까드득!
“으으으으으.”
분노를 참지 못한 만학숭이 낮은 신음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선우진과 진태도, 자성진인은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진득한 살기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엄청난 기세의 살기였다.
피부가 저릿하고 머리카락마저도 살짝 휘날렸다.
선우진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진태도에게 물었다.
“이 상황에서 도망가지 않다니 의외인데?”
그러자 진태도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흥!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 지금 도망치는 자가 제일 먼저 노려질 텐데.”
그 순간이었다.
만학숭이 한순간 벼락처럼 돌진해 왔다.
파아악!
“!”
“!”
깜짝 놀란 선우진과 진태도는 양쪽으로 몸을 날려 놈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만학숭의 양손에서 강환이 쏘아졌다.
슈하악!
선우진은 경악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강환의 직경이 자신의 키보다도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바위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지는 듯한 강환, 진태도의 맹룡관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범위의 공격이었다.
“크으윽!”
선우진은 천풍신법을 극한까지 전개했다.
그러자 거대한 강환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몸을 스쳐 지나갔다.
샤아악!
심장이 서늘해진 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선우진을 스쳐 지나간 강환은 협곡의 절벽에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은 폭발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강환이 절벽에 부딪쳐 폭발한 것이 아니라 절벽을 꿰뚫고 파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흙먼지 사이로 마치 동굴인 듯 깊숙이 파고 들어간 강환의 흔적이 보이고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그 순간 문득 선우진의 머릿속에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피했지만 진태도는?’
자신이야 천풍신법으로 피할 수 있었다지만 진태도에겐 불가능했을 것 같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진태도를 바라봤다.
“!”
그러자 볼 수 있었다.
왼쪽 어깨가 완전히 사라져 피를 뿜어내고 있는 진태도의 모습을.
아까 자신에게 잘렸던 왼팔의 남은 부분은 물론 어깨 안쪽까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심장까지 닿지 않은 것만도 천운인 듯했다.
“크으으윽!”
진태도가 창백해진 얼굴로 어깨를 감싼 채,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고 있었다.
너무 큰 부상이었다.
저런 부상을 입고 계속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 죽지는 않았지만 전력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단 한 방에?’
선우진은 등골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천하삼십육성인 진태도를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데 필요했던 게 고작 강환 한 방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빈틈을 노린 육합검수 두 명이 마경의 등을 찔러 갔다.
쉬이이익!
그러자 만학숭은 다시 한번 호신강기를 뿜어냈다.
“흐아아아압!”
화아아아악!
그러고는 그 상태로 육합검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터터텅!
온몸을 강기로 둘러싼 그에게 육합검수들의 검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모두 속절없이 튕겨 나갈 뿐이었다.
선우진은 이제 질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호신강기를 유지하면서 저렇게 움직인다고?’
호신강기는 아무리 초절정 고수라 해도 한순간의 방출로 대부분의 내공을 고갈시켜 버리는 엄청나게 소모적인 기술이었다.
그런데 만학숭은 그걸 유지하는 동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여 돌진했던 것이었다.
육합검수들의 검이 모두 가볍게 튕겨 나가고 순식간에 자성진인의 앞에 도달한 마경이 비릿하게 웃음 지었다.
“머리를 잡았구나.”
그를 보는 자성진인의 눈이 순간 공포로 가득 찼다.
그의 눈앞으로 휘둘러 오는 마경의 손바닥이 순식간에 확대되어 오고 있었다.
퍼석!
마경은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자성진인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그러자 다른 육합검수들은 그 자리에 뻣뻣하게 선 채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형산파 최강의 전력이라는 육합검수 파천조가 너무도 허무하게 무력화된 순간이었다.
마경은 움직임을 멈춘 육합검수들을 스윽 둘러보며 혀를 찼다.
“실혼인이라니. 하여간 정파의 위선자 놈들이란.”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살기가 광채처럼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짐승 같은 눈빛이었다.
그가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그사이 도망칠 줄 알았더니만, 기다리고 있었구나. 저 계집 때문이더냐?”
협곡 안쪽에 서 있는 진소은을 슬쩍 바라본 만학숭이 흐흐 웃으며 선우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존재감과 무위에 선우진은 꿀꺽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